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59)화 (660/763)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이작 님의 곁에 있을 예정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두 분이서 지낼 방에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기야 따로 자기에도 애매하다. 극단주의자들, 그러니까 하얀 손은 전부 체포했다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다만 남녀가 한 방, 그것도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사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되었다."

 물론 그녀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그저 만약을 상정했을 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은혜는 체리와 함께 받을 예정이거든요.""

 그렇······ 잠깐만요. 체리요?""

 내 생각을 읽었다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내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은 내 표정만 보고 속마음을 읽더라."

 하지만 체리는 아니다. 느닷없이 체리가 언급되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네. 제가 은혜를 받을 때 체리도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듣자하니 체리는 이미 아이작 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 ···""

 아닌가요?""

 그······ 네······""

 도대체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짐작도 안 된다. 내가 음란마귀가 낀 건지, 아니면 체리가 거짓말을 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얼머부리며 넘어갔다. 오해는 천천히 풀어도 된다."

 '······아니면 뻔뻔하게 가?'"

 체리도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여인이다. 그것도 다른 여인들마저 안쓰러워할 정도로 불쌍한 여자."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무턱대고 받는 게 아니라 상호합의 하에 이루어져야 될 것이다."

 아참. 성자님.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분이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하룻밤 정도 머물 방을 정했을 쯤이었다. 문득 생각난 게 있었는지 아살라가 나에게 권유했다."

 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단다. 아살라 같은 지도자가 소개시켜준다니 약간 궁금해졌다."

 네. 상관없습니다. 위험한 분은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현자 님께서는 스타비르크를 여기까지 끌고 오신 분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저조차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죠.""

 흠?""

 저 정도 반응이라니 더 궁금해지는데. 나는 한 쪽 눈을 치켜떴다."

 심지어 이번 암살마저 예측하신 분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암살미수를 예측하셨다고요?""

 네. 현자께서는 극단주의자들을 모두 처리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 조언을 듣지 않았을 뿐.""

 그 정도면 거진 예언 아닌가. 나야, 사라예보의 과정과 매우 비슷해서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자라는 사람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런 조언을 내렸던 건지."

 알겠습니다. 어디서 기다리면 되나요?""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살라 님.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습니까?""

 아살라가 현자를 부르기 위해 나가려던 찰나 케이트가 그를 잠깐 불러세웠다."

 아, 네. 상관없습니다. 현자님은 사람을 시켜서 부르면 되거든요.""

 좋군요. 그럼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예.""

 아무래도 조국을 멸망시킬 뻔한 연합군의 사령관이어서 그럴까. 아살라는 껄끄러워하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군대가 물러난 이상 케이트는 총사령관이 아닌 추기경이었으니까. 그 점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살라와 케이트가 방에서 떠나고 홀로 남게 됐다. 나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묘하네.'"

 아까 눈으로 봤던 현상이 진실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던 상황."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래도 사이비 교주가 된 느낌이다. 실제로 사이비 교주가 이랬겠지."

 '사이비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

 나는 신들이 대놓고 밀어주는 상황이다. 사이비라 한다면 도리어 그 사람들이 욕을 시원하게 퍼붓겠지."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것이 부담스럽다."

 똑똑똑-"

 상념에 잠겨 궁상만 떨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생각보다 빨리 데리고 온 모양이다."

 들어오세요.""

 덜컥-"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온 사람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현자'라 칭할만한 노인이 문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간달프와 비슷한 인상."

 이 세상은 노인이 우대받는 경향이 강하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오래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몇 없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편하게 현자라 칭하면 된다네.""

 늙수레한 목소리에 역시 현자답다고 생각했다."

 거짓된 성자여.""

 ······?""

 진짜 현자신가?"

 아살라의 케이트에 대한 첫 인상은 빈말로도 좋다할 수 없었다."

 비록 전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루미너스 교단의 추기경이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 뻔한 세이비어를 구원했다지만 그게 끝이다."

 그때 당시에도 스타비르크는 한창 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었으며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념이 없었다."

 굳이 있다면 아이작의 예언 덕분에 세이비어가 정화됐다는 걸까."

 스타비르크에는 '현자'가 있었기에 예언가라 칭송받아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더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연합군과 함께 스타비르크를 멸망시키려 든 사람이다. 결코 좋게 볼 수 없다."

 어떠신가요?""

 네?""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 물어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자리를 마련한 후에 케이트가 대뜸 저리 물었다. 아살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알아챘다."

 케이트는 '성자, 제논'에 대해 묻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앞뒤 다 잘라먹고 묻지는 않겠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조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여인이었지만, 지금은 공통된 분모를 두고 대화를 나눌 뿐이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조국이 하마터면 멸망할 뻔했다는 것도, 제논 님 덕분에 구사일생했다는 것도. 모든 게 꿈 같아요.""

 저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릅니다. 모두가 불가능이라 생각한 것을 이루는 것.""

 기적이라······ 그것밖에 설명을 더 못하겠네요.""

 기적을 제외한 다른 단어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스타비르크가 공공의 적이 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모두에게 버림받은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것이 바로 아이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치 부모처럼 쓴소리를 하고 다음부터 잘하자는, 진심어린 조언과 격려를 나눠줬으니."

 스타비르크 민족들에게 구원자를 넘어선 성자 그 자체인 것이다."

 아살라 님도 들었다시피 아이작 님께서는 신들께서 데려오신, 그것도 다른 세상에서 온 분입니다. 말씀만 듣는다면 피와 강철이 본인의 세상이라 말씀하셨죠. 신들께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신 걸 보면 확실합니다.""

 그런 끔찍한 세계에서 오셨다니······ 어째서 그토록 목소리를 내라 외쳤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진실을 교묘히 밝히시더니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으셨죠.""

 아이작은 피와 강철의 시대 즉,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서 온 인물이다.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세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이들이 굳게 믿는 이유는 별 거 없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은데다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하니까."

 설령 들킨다 해도 상관없다. 우선 피와 강철 이후의 시대였으니 '겪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 아이작은 거짓을 섞었지만 그 거짓조차 완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치 독일의 임팩트가 강해도 너무 강한 나머지 다른 쪽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장 먼저 마족을 구원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주셨죠. 마키나의 혁명 당시에도 공장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를 보건데 아이작 님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목소리를 내라. 침묵하지 말아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수를 강조하셨다시피 너무 큰 목소리는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런 뜻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케이트의 포교(?)에 아살라가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괄목한 점은 케이트가 진심이라는 것. 사이비처럼 욕망을 위해 포교하는 게 아니라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아살라 님께 권유드립니다. 아이작 님의 말씀이 보다 더 멀리 퍼지도록, 스타비르크에 성지를 세우는 게 어떻습니까?""

 성지······ 말입니까?""

 네. 아이작 님께서 홀로 대군을 막으셨던 검문소 앞. 그곳에 성지를 세워 모두 다 함께 기도를 드립시다. 여러분을 구원해준 아이작 님에게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아이작 님의 가르침이 멀리 퍼질 수 있도록.""

 케이트가 두 손을 맞잡으며 부드럽게 웃어줬다. 아살라는 홀린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녀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신성함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다. 예로부터 '종교'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을 가졌으니."

 '우리 조국이 단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스타비르크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다."

 루미너스 혹은 모라를 믿지 않고, 그렇다 해서 히르트를 신실하게 믿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성장한 지역인데다가 대부분 이런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그쪽 종교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냐고."

 각 교단 쪽에서 열심히 포교해도 스타비르크 민족은 꿋꿋이 버텼다. 이런 경향은 최근들어 더 심해졌다."

 하지만 아이작은 다르다. 바로 눈 앞에서 '기적'을 보여줬는데 과연 누가 신앙심을 품지 않을까."

 스타비르크를 더욱 강하게 단결시키는 건 물론이요, 여태까지 부족했던 부분들을 메꿀 수 있는 기회다."

 ······다른 신들께서 불만을 가지지는 않습니까? 게다가 케이트 추기경은 루미너스 님을 믿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종교가 탄생한다면 기존 신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이 가해질 터."

 신들이 직접 데려온 영혼이니 핍박은 하지 않겠지만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비록 저는 루미너스 님의 종이지만, 동시에 아이작 님을 굳게 믿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어도 됩니까?""

 루미너스 님도 좋은 분이고 아이작 님도 좋은 분인데 어째서 한 쪽만 믿어야 하나요? 본인에게 맞는 교리를 따라 종교를 택하면 됩니다.""

 ···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추기경이 저런 말을 하니까 설득력이 굉장하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어째서 아이작 님을 돕는 거죠?""

 제 사명이니까요.""

 ··· ···""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될 것 같다. 이이상 묻는 건 포기하는 게 좋겠지."

 이후로 그들은 언제쯤 '성지'를 세울지 고민하면서 '문양' 또한 고민했다. 각 종교마다 상징하는 문양이 있다."

 루미너스는 태양을, 모라는 달을 본딴 문양이다. 히르트는 세계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고."

 제논께서는 작가이시니 펜과 관련된 문양이 어떻습니까? 글을 쓰는 것 또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니까요.""

 정말 좋은 생각이군요. 색상은 당연하게도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사상으로 변질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작은 이미 세상에 여러번 기적을 선보였으니."

 사상으로 변질될 위험도 없다. 종교는 사상과 다르게 주된 골자가 '가르침'이다."

 성지를 건설하는 건 때를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왜죠?""

 성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든요.""

 거대한 종교의 씨앗이 스타비르크에 심어지고."

 '전부 계획대로네요.'"

 케이트는 순수한 광기의 미소를 지었다."

 ******"

 나를 보자마자 거짓된 성자라 비판한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뭐가 재미있는지 비웃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거짓된 성자라 부른 것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에 비해서 내가 한참 모자라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다만 나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품은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싶다."

 이 현자는 무엇이 불만이길래 이러는 걸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현자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이작······ 아니, 제논이라 부르면 되겠나?""

 편하신대로 부르면 됩니다. 현자 님.""

 현자라······ 성자께서 높여 부르니 감개무량하군.""

 비꼬는 실력이 장난아닌데. 열이 오르기보다는 앞뒤를 다 잘라먹은 느낌이라 어리둥절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연결고리가 있었으면 모를까, 나와 현자는 초면이다."

 '듣기만 했을 때는 진짜로 현자였는데.'"

 사라예보 비슷한 사건이 터지기 전, 아살라에게 건넸던 경고. 그 경고는 이 노인이 어째서 현자라 부르는지 납득시켰다."

 하지만 좋았던 인상이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다. 뭐가 불만인지 알아야 대화가 통하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이에 나는 약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현자에게 물었다."

 저에게 가진 불만이 상당하신 모양이네요. 듣자하니 암살 미수를 예상하셨다고 하는데.""

 불만이라······ 그대에게 만족과 불만족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애증이라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고, 싫어하는데 마냥 싫어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것을 애증이라 부른다."

 뭐 때문에 나에게 애증 아닌 애증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에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인 부분을 말씀해주실수 있나요?""

 만족하는 부분은 많다네. 피와 강철로 하여금 우리 인류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거지.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말일세.""

 죄송하지만 과장 전혀 없는 순도 100%의 현실입니다.""

 내가 그리 반박해도 현자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듯,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나. 인류를 너무 바보처럼 생각하는군. 신의 존재가 불확실해도 인류는 똑똑해질 수 있어.""

 대신 말도 안 되게 멍청한 사람들도 많죠.""

 누군가 말했다. 나라를 이끌고 발전시키는 건 상위 10%에 달하는 엘리트 인재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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