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56)화 (657/763)

 '무엇보다 악순환만 반복될 거고.'"

 이대로 가면 스타비르크 민족이 마족보다 더 심한 대우를 받는 건 물론, 악마 숭배자가 될 확률이 높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라 나를 향해 화살을 돌리겠지. 극단주의자들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나선 것이다."

 '내가 진짜 성자도 아니고.'"

 일종의 성자 코스프레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성자에 비견되는 명성을 가졌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아살라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야만 하니까요.""

 그래야만······ 한다고요······?""

 네.""

 나중에 당신들이 내 목에 칼을 겨눌까봐 그렇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괜찮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위의 말을 꺼내고 싶었다. 저거 말고 달리 말할 게 없었으니."

 그래서 입에 발린 말을 꺼내어 아살라를 강제로 설득시켰다. 설득이라기보다는 현혹이라 봐야겠지."

 나는 멍한 얼굴의 아살라를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 미꾸라지는 완전히 없애는 게 좋을 겁니다. 당장은 괜찮지만 또다시 스타비르크에 큰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지금 말하지만 독단적으로 계획을 수정했던 레오르트는 조용히 묻혔다. 판이 너무 커진 탓이었다."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나 뭐라나. 물론 리나가 그를 향해 뾰족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건 잊지 않았다."

 알겠죠? 구렁이 담 넘듯이 묻어가지 마세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자님.""

 아살라가 은색 눈동자를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정말이지 부담스러운 눈빛이다."

 설마 나를 진짜 성자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옆을 슬쩍 쳐다봤다."

 비서격인 메르샤마저 아살라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다. 그녀는 아예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감동한 표정이다."

 '······상관없겠지.'"

 내 목표는 확고하다. 조만간 이곳에 쳐들어올 헬리움·세이비어 군대를 막는 것."

 단신으로 군대를 막자니 긴장감에 가슴이 떨린다. 하지만 누누이 강조했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전생에서 악순환이란 악순환은 역사로 지켜본 입장으로서 최대한 막아볼 요령이다. 물론 이것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만약을 대비하여 민간인은 대피시키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확신을 못 내리겠거든요.""

 알겠습니다. 그 외에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으니 군대가 진격할만한 방향과······""

 나는 필요한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줬다. 아살라는 그 얘기를 듣고 감동 반 진지 반의 표정으로 들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필요한 '물건'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그걸로 무엇을 하실 겁니까?""

 안 되나요?""

 그건 아니지만······ 설마 전투를 고려하시는 건······""

 에이. 설마요. 저 약해요.""

 아버지라면 모를까, 나는 실전 경험이 아예 없는 몸이다. 건강한 몸을 얻었더라도 알맹이는 텅 비어있다."

 그러니 내가 아살라에게 부탁한 '물건'은 어디까지나 협박용에 가깝다. 아주 유용한 협박용 물건."

 준비해줄 수 있죠?""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옷도 하나 준비해주세요. 로브만 입고 와서 마땅히 준비한 게 없거든요.""

 스타비르크 전통 옷이면 되겠습니까? 햇빛은 가려주고 통풍은 잘 되는 옷입니다.""

 그거면 될 것 같습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남은 건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뿐."

 과연 일이 잘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안 되더라도 잘 되도록 만들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한정돼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모라가 봤다는 미래가 실현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좀 걱정된다."

 *****"

 헬리움과 세이비어 연합은 신속히 구성되었다. 총사령관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케이트로 지정됐다."

 아무래도 헬리움은 전쟁 경험이 거의 없으며 '성전' 또한 처음이다. 군사력은 막강해도 사령관에 대한 건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얻는 건 상당히 많다. 우선 이번 성전으로 헬리움은 '교국'에 해당하는 지위를 얻게 될 예정이었으니."

 이전까지만 해도 국교만 모라일 뿐 세이비어와 같은 교국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연합을 계기로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헬리움·세이비어 연합. 스타비르크에게 선전포고. 스타비르크를 지도상에서 없애버릴 것.]"

 선전포고까지 끝마쳤다. 다소 강경한 선전포고이긴 했으나 다들 납득하고 넘어갔다."

 감히 세계를 구원해준 성자를 해칠 뻔한 놈들인데 자비는 없다. 이번에 참전한 연합군의 마인드가 그러했다."

 미네르바 제국의 국경 개방으로 연합군은 좀 더 빠르게 스타비르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여기에 헬리움의 막강한 보급이 이어지기까지."

 절대 막을 수 없는 연합의 탄생에 미네르바 제국조차 살짝 긴장할 정도였다. 다행히 저 연합의 창칼이 자신에게 향하는 게 아니라는 것."

 오직 스타비르크만 향하는 창칼이다. 다만 이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미네르바 제국이 스타비르크의 독립을 인정해야 된다."

 그래서 인정했다. 스타비르크는 독립을 하자마자 멸망에 처하게 된 셈이다. 정말이지 기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운명."

 하지만 잘못은 그 쪽에서 먼저 저질렀기에 그 누구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케이트 추기경 님.""

 네. 말씀하세요.""

 만약 그들이 암살범들을 전부 공개 처형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연합군이 스타비르크, 정확히는 가르칸으로 진군하고 있을 때 어느 한 성기사가 케이트에게 질문했다."

 케이트는 수녀복이 아닌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고 다닐 때 착용하는 백색 갑주를 입고 있었다. 대심문관다운 복장이다."

 스타비르크 내에서도 말이 많습니다. 자비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많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광기에 빠져들기 직전이었지만 그나마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기사가 그 예시다."

 성자를 해쳤다는 점에서 괘씸죄가 듬뿍 들어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스타비르크 민족 전체를 말살하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이전이었다면 당연히 의문을 가졌겠지. 다 같은 족속들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허나 피와 강철을 읽고나서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단체가 욕먹어도 개개인이 피해를 입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이에 케이트는 성기사를 빤히 쳐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에 성기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들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실 테니까요.""

 허면······""

 그리고 그들을 신들 곁으로 보내는 게 저희의 몫입니다. 직접 대면하면 영혼이 깨끗해지겠죠.""

 ··· ···""

 순수한 미소로 광신에 찬 대답을 꺼내는 케이트. 성기사는 파리해진 안색으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케이트는 그런 성기사를 힐긋거렸다가 앞을 쳐다봤다. 뒤쪽은 든든한 연합군이 포진된 반면, 앞은 텅 비어있다."

 이제 조금만 걷는다면 가르칸 입구가 보일 터. 보통 같으면 매복을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헬리움의 마법사 군단이 꼼꼼이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겸사겸사 정찰까지 행하니 이토록 편할 수가 없다."

 물론 케이트는 매복이 없을 거라 진작부터 확신했다.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사령관님. 정찰대의 보고에 따르자면 입구에 사람이 있답니다.""

 사람? 어떤 사람이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스타비르크 전통 복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보고에 케이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분명 그 사람, 아니 그 분이다."

 그녀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필요한 건 연기다."

 알겠습니다. 입구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확인하겠습니다. 만약 위험한 행동을 할시 즉각적으로 반응하겠다고 지시해주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머지않아 헬리움 측 병사가 지시를 내리러 뒤로 이동했다. 일일이 보고 하는 게 아니라 텔레파시로 말하면 끝이다."

 지금의 연합은 일반 병사들이 아니라 정예 중의 정예들이다. 이것만으로도 스타비르크는 충분히 제거할 수 있겠지."

 하지만 케이트의 목표는 스타비르크의 멸망이 아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를 원하고 있다."

 이에 기대로 부푼 마음으로 진군하자,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만큼 가르칸의 입구와 가까워졌다."

 방금 전 보고를 들었던, 입구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사람도."

 어?""

 보고로 들었을 때는 얼굴을 가리고 있다던데 지금은 아니다. 이에 케이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앞의 사람을 쳐다봤다."

 물론 저 반응도 '연기'다. 하지만 그 연기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응?""

 저 분은······ 설마?""

 다른 사람도 그러한 반응이 나왔으니까."

 차이점은 케이트는 연기였던 반면 다른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진심으로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게 가르칸 입구 앞에는 길게 기른 붉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청년이 당당하게 서 있었으니."

 복장은 스타비르크 전통 복장 즉, 햇빛을 막되 통풍이 쉽게 되는 옷이었다. 대신 다부진 체격으로 하여금 건강한 이미지를 드러냈다."

 성자님이······ 맞는데?""

 왜 이곳에 계시는 거지?""

 대체 왜?""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어 얼굴이 팔릴대로 팔린(...) 아이작이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연합군과 마주했다."

 정예병들만 뽑아서 왔다더니 그 위세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헬리움은 검은색 갑주를, 세이비어는 흰색 갑주를 착용하여 위압감이 돋보였다."

 저 병력이 그대로 스타비르크를 쳤다면 그 날 멸망은 확정됐겠지. 헬리움의 제작 능력을 고려했을 때 총탄도 뚫리지 않았을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케이트를 제외한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아이작이 말없이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제서야 연합군은 아이작이 맨몸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거 도끼 아냐?""

 그런 거 같은데······ 설마 우리와 싸우시려고?""

 그럴리가 성자님은 무력이 거의 없으시다고 하셨는데······""

 아이작은 작은 손도끼 하나를 오른손에 굳게 쥐고 있었다. 전투용이라기보다는 벌목 내지 공업용으로 사용할 법한 손도끼."

 모두가 그 손도끼의 용도 및 아이작의 등장에 의견을 주고 받고 있을 때, 아이작은 어느새인가 연합군의 앞에 도달했다."

 불과 10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아이작은 케이트와 얼굴을 정확히 마주했다. 둘 모두 결연한 표정이다."

 ······안녕하세요.""

 시덥잖게 인사부터 건넨 아이작. 그러나 그 인사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자연스레 모든 이목이 아이작에게로 쏠린 상황. 그는 긴장감에 한숨을 내쉬더니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마 전부 모르시겠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케이트가 속마음으로 그리 말했다."

 그녀는 아이작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자 다른 의미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몸에서 후광이 펼쳐지는 착각이 들이날 정도. 최대한 막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돌아가주세요. 저는 소수로 인해 다수의 억울한 자가 생기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용기 있게 말하는 아이작의 모습은."

 이 도끼로, 제 손목을 자르겠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자'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까."

 지부상소(持斧上疏)"

 조선 시대 선비들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 중 가장 강력한 상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말이 틀리다면 도끼로 머리를 쳐달라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상소."

 임금도 목숨을 걸고 직언한 선비의 목숨을 취할 수는 없는지라 대부분 큰 효과를 자랑한다."

 희대의 폭군이라 평가받는 연산군이라면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폭군이 아닌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내가 행한 짓거리도 일종의 지부상소라 할 수 있다. 도끼를 들고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직언이 아니라 일종의 '협박'이다.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즉시 목숨과도 같은 손을 자르겠다."

 작가에게 손은 억만금을 줘도 포기할 수 없는 신체 부위다. 작가뿐만 아니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이나 다름없다."

 뭐······ 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 폭탄선언에 케이트가 경악한 표정으로 질문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꼬리가 조금씩 파들거린다."

 여태까지 경악한 그녀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아마 놀랄 때 나오는 케이트만의 특징인 듯싶다."

 바, 방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지? 손목을 자르시겠다고?""

 왜? 스타비르크 민족은 성자 님을 해하려 했잖아.""

 어째서 감싸주시는 거지?""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내 선언에 연합군들도 커다란 동요에 빠졌다. 대부분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들이다."

 확실히 이들로서는 시대가 시대다보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째서 자신을 해한 놈들을 감싸주는 거냐고."

 나도 호구가 아니다. 과정을 보았을 때 스타비르크의 극단주의자는 언젠가 사고를 칠 운명이었다. 이건 확실하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수'만 바라보면서 '억울한 다수'를 제 손으로 없애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 아직 세상은 혼란스러웠으니까."

 많이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어째서 저를 해할 뻔한 스타비르크 민족을 감싸주는 건지 의문이 들겠죠. 하지만 저는 그들을 감싸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또다른 악마를 만드는 걸 막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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