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55)화 (656/763)

 대표단의 암울한 보고에 아살라는 그럼 그렇지라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스타비르크가 전세계의 적이 된 후로 아살라는 바삐 움직였다."

 각 나라마다 대표단을 보내 협상을 하거나 부탁을 하는 등. 어떻게든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 암살을 시도했던 하얀 손 단체를 모조리 붙잡아 넘기는 조건도 있었다."

 물론 결과는 전부 다 실패. 미네르바 제국은 물론이요, 분위기가 가장 험악했던 헬리움마저 퇴짜를 맞았다."

 헬리움은 성명문을 발표했던대로 악마 전쟁 이후로 돌아갈 준비나 하라더군요.""

 하아······""

 아살라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동족을 처단하는 게 싫어 현자의 말을 무시했건만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사실 헬리움이 꺼낸 성명문과 퇴짜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보통 같으면 다들 헬리움을 비난하고도 바빴겠지."

 하지만 헬리움에게 있어서 아이작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모르는 나라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분노를 이해해줬다."

 무엇보다 잘못은 스타비르크 쪽에서 먼저 저질렀다. 잘못도 잘못이지만 처음 겪는 사태라 성명문을 잘못낸 것도 크다."

 원래라면 '하얀 손'이라 부르는 극단주의자들을 철저히 배제해야 됐으니까. 그러나 너무 억울한 나머지 감싸주는 식으로 발표했다."

 뒤늦게나마 하얀 손과 연루된 관계자들을 잡아들였으나 그것만으로 분노를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아살라는 고민했다. 세상은 스타비르크 민족을 절멸시켜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기류는 스타비르크 내에도 만연히 퍼져있다. 다들 불안에 떨고 있으며 언제 쳐들어올 지 군대를 두려워하는 중이다."

 심지어 분열의 징조도 보였다.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이리 된 거지만 결국 윗선을 욕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억울하다며 대비를 해야 된다는 쪽도 있고, 잘못은 우리가 아닌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거라며 항의하는 쪽도 있다."

 아살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극단주의자의 암살 시도를 막지 못한 것도 잘못이면 잘못이겠지."

 하지만 그 암살 대상이 성자, 제논이었다는 게 문제다. 진짜 '하필이면'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아살라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헬리움과 세이비어는 스타비르크 민족의 씨를 말살시킬 기세다."

 억울한 자가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지. 스타비르크 민족에 대한 평가가 수직낙하한지 오래다."

 도리어 쌤통이라며 비웃지 않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대화'로 푸는 건 불가능하다."

 '제국도 나 몰라라하는 상태고······'"

 암살미수 이후 제국은 협정문을 보냈다. 제국측 사절단과 협상을 하면서 받은 1차 협정문이다."

 이걸 수락하지 않는다면 군대를 보내 그대로 밀어버리겠다는 협정문. 스타비르크는 당연하게도 거부할 생각이었다."

 피와 강철에 등장하는 '식민지'처럼 될 바에야 차라리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는 마인드였으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헬리움의 격노 이후 미적지근해졌달까. 어차피 스타비르크가 좆되는 건 예정된 결과이니 뒤에서 꿀만 빨겠다는 뜻이다."

 물품 지원 및 국경 개방만으로 미네르바 제국의 심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알고도 못 막는 게 현실이다."

 이에 아살라가 반쯤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단 지도를 가져와.""

 아살라 님.""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거야. 그러니 잔말 말고 갖고 와.""

 최악은 전쟁이고 차악은······ 모르겠다. 아살라의 힘 빠진 명령에 메르샤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대표단도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고 메르샤가 지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살라는 혼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봤다."

 미네르바 제국이 국경을 개방한 이상 길목은 한 곳밖에 없다. 스타비르크의 지형은 반도였으니까."

 배를 타고 온다면 답이 없겠지만 다행히 해군은 모든 나라가 약하다."

 총의 발명 현황은 어떻지?""

 암살자들이 사용한 총기를 보았을 때 실전에서도 사용이 가능할 겁니다.""

 대신 드넓은 평야에서 사용하기는 힘들겠지.""

 스타비르크의 지형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개간되지 않은 자연이 많다. 따라서 지나갈 수 있는 길목은 한정돼 있다."

 1차적인 수비 라인은 반도가 시작되는 곳. 이곳을 막는 것이 제일 낫지만 지형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뒤로 물리자니 바로 스타비르크의 요충지이자 임시 수도, 가르칸과 맞닿는다."

 본래 가르칸은 미네르바 제국의 군대가 주둔하는 장소고, 그만큼 교류가 활발했기에 많은 인구를 자랑했다."

 여기서 전투가 발발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우선 만약을 대비하여 민간인들을 대피시켜야 될 것 같다."

 우선 싸울 수 있는 인력은 최대한 모집해. 총을 쏠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

 훈련은 어떻게 하죠?""

 나라의 국운이 걸린 사건이야. 훈련을 할 시간도 없어. 그냥 있는대로 모집해.""

 임시 정부의 지도자가 내릴 법한 결정은 아니다. 아무리 총이 다루기 쉽다지만 어느 정도 훈련은 필요하다."

 그만큼 스타비르크가 궁지에 몰려있다는 것을 반증해줬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뒤로 물려서 군대를 훈련시키고 싶다."

 하지만 가르칸 밑으로는 개간되지 않은 지역이 훨씬 많다. 항구 도시가 몇몇 있기는 해도 제대로 된 도시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애당초 스타비르크가 본래 '지역'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된다. 현재도 도시 국가에 가까운 형태다."

 대장장이들에게 화약과 납탄을 제작시키도록 명령해. 밀수했던 마력 기관은······""

 아살라가 발 빨리 움직이고 있을 때쯤이었다."

 아살라 님! 아살라 님!""

 밖에서 누군가 다급히 뛰쳐오며 방으로 들이닥쳤다. 아살라는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누군가 들이닥치자 인상을 살짝 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쫒을 수도 없는 노릇. 이에 그는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방금 전에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을 텐데.""

 그, 그게······ 소, 손님이······ 아니, 귀빈께서······""

 귀빈?""

 전령이 말을 더듬거리며 보고하자 아살라의 표정이 묘해졌다. 현자가 왔다면 현자라 칭했을 텐데 '귀빈'이라니."

 만약 다른 나라의 사절단이었다면 사절단이 왔다고 보고했을 것이다. 헌데 전령은 귀빈이라 칭했다."

 아살라는 직감적으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쁘다지만 일단 받아들였다."

 여, 여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전령이 귀빈을 데리고 왔다. 아살라는 귀빈을 자세히 살펴봤다."

 로브를 뒤집어 쓴 바람에 안쪽 얼굴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마법이라도 걸린 모양이다."

 스륵-"

 하지만 귀빈이 로브를 벗어던지자 아살라의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탐스럽게 빛나는 붉은색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내렸으니까. 아름다운 외모와 특유의 황금색 눈동자는 덤이다."

 보기만 해도 경건함이 드는 외모랄까. 아살라는 어색하게 웃는 귀빈을 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제, 제논? 정말 제논입니까?""

 안녕하세요. 우리 구면이죠?""

 놀랍게도 귀빈의 정체는 아이작이었다. 그는 세이비어의 성명문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스타비르크로 향했다."

 물론 미네르바 제국과 스타비르크 사이를 이어주는 텔레포트 기관은 차단돼 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스타비르크로 온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세실리가 아닌 아르웬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헬리움은 현재 난리도 아니니 세실리에게 부탁하기가 힘들었으니."

 알븐하임이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것도 아르웬이 아이작을 도와줬기 덕분이다.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스타비르크로 올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요.""

 무슨 일을······ 아니, 그전에 저희는 당신에게······""

 아살라가 어안이 벙벙한 횡설수설했다. 아이작이 그 안에 담긴 뜻을 파악했다."

 당신을 암살할 뻔했는데 어째서 이곳으로 찾아온 거냐.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 등등."

 이에 아이작은 그의 마음을 파악하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소수의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다수가 동의하는 건 아니잖아요?""

 현재 위기에 처한 스타비르크에게 있어서."

 저는 그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러 왔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한 줄기 구원과도 같은 말이었다."

 스타비르크로 향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대부분이 반대했다. 곧 전쟁이 터질 텐데 어째서 가냐고. 너무 위험하다고."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필사적으로 강행했다. 내가 가지 않는다면 억울한 사람이 죽고, 그로 인해 더 피해를 낳을 거다."

 나는 억울한 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는 것이다. 이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며 피해를 최대한 낮출 거다."

 가거라.""

 아버지?""

 여기서 도움을 준 사람은 의외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는 동안 침묵을 고수하셨다."

 그런 상황에서 상당히 무겁게 말하셔서 결국 스타비르크행이 결정됐다."

 만약 네가 단순히 전쟁을 막겠다는 말만 했다면 거부했겠지. 너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 뿐이지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

 하지만 전쟁보다 억울한 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겠다는 말을 듣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단다. 그러니 가거라.""

 아버지는 전쟁과 억울한 경험 모두 경험하신 분이다. 단순히 황자의 호위기사였다는 이유만으로 북쪽으로 전출당하셨다."

 그곳에서 온갖 끔찍한 경험을 겪었을 테니 억울함은 누구보다 강하셨을 터. 그런 분이 말씀하시니 그 무게가 달랐다."

 이에 가족들도 아버지의 의견을 따랐다. 대신 만약을 대비하여 아델리아는 호위기사로 대동시켰다."

 날 과부로 만들기 싫으면 멀쩡히 돌아와야 돼. 알겠어?""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멸망할 걸?""

 농담도 참. 빨리 갔다 오기나 해.""

 마리와 서로서로 농담 아닌 농담을 던져주고 곧장 스타비르크로 향했다. 참고로 여기서 아르웬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전에 왔던 스타비르크 임시 정부 관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기 전 아델리아는 잠깐 밖에 대기시켰다."

 아무래도 지금부터는 아살라와 단 둘이 대화해야 될 것 같았으니.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가 오고 갈 것이다."

 힘드시겠어요.""

 ······네.""

 일단 위로 아닌 위로부터 건네자. 아살라는 내 위로에 몸을 흠칫 떨더니 쓰게 웃었다."

 지금 스타비르크 상황은 단순히 '힘들다'라는 말로만 설명이 불가능하다. 국가가 멸망하기 직전이다."

 미네르바 제국과 전쟁을 하는 거면 어찌저찌 버틸 수 있겠다만 헬리움과 세이비어가 협력하여 몰려오고 있다."

 군대는 편성하셨나요?""

 전사를 제외하면 되는대로 총을 쥐어줄 계획입니다. 다만······""

 역부족이다······ 라는 걸 알고 계시는군요.""

 ······예.""

 역부족이다 못해 의미 없는 발악이다. 헬리움이 마법만 몇 번 날린다면 스타비르크는 추풍낙엽으로 쓸려가겠지."

 게다가 기사에 해당하는 전사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편제조차 없는 상황이다. 독소전쟁의 스탈린그라드처럼 그냥 총만 쥐어주고 끝."

 더구나 사기조차 매우 빈약할 가능성이 높다. 독소전쟁에서 소련은 엄연히 침략을 당한 입장이라 병사들의 사기가 대부분 높았다."

 또한 나치 독일을 향한 복수심으로 꾸역꾸역 버티고 버텨 붉은 군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비르크는 그것도 없다."

 지도자의 실책과 극단주의자의 행동이 합쳐져 억울한 자만 대거 양성될 뿐이다. 분명 자국을 원망하겠지."

 '아니지. 억울한 자도 없겠네.'"

 스타비르크 민족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다. 설령 살아남아도 과거의 마족 못지 않은 핍박 속에서 살아갈 터."

 너무 가혹한 처지이지 않냐고, 각 국의 지도자들도 무고한 민간인이 있는 걸 알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건 시대의 한계라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닌 군주제가 기본 디폴트값이니까."

 한 명 한 명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더 중요시되는 것이다. 내가 퍼뜨린 문화가 그걸 조금씩 희석시키고 있지, 아직은 모자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몇 년 전만 해도 마족은 전세계로부터 차별을 받아왔다. 스타비르크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혹시 제가 쓴 피와 강철을 읽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책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총을 발명한 겁니다.""

 ··· ···""

 빌드업을 채우려고 꺼낸 말인데 말문이 막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다지만 저게 가능한 건지 의문스럽다."

 아무튼 말을 해야겠지. 총에 대한 건 천천히 알아보면 된다."

 그럼 스탈린그라드에 대해서도 알겠군요.""

 사지 멀쩡한 남자는 전부 총을 들고 여자들은 공장으로 갔다는, 그 전투 말입니까?""

 아살라는 혹시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냐는 눈빛을 보냈다. 끔찍하기는 해도 스타비르크의 운명을 지킬 수 있다면 괜찮다는 표정."

 평소였다면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말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다."

 이에 아이작은 그의 표정을 읽고 피식 웃더니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혹시 그 전투처럼 할 생각이면 바로 버리세요. 바로 머리 위에 마족의 마법이 떨어질 테니 의미가 없을 겁니다. 대공포도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마족의 화력을 고려하면 보병은 태풍 앞의 먼지처럼 흩어질 것이다. 애당초 군사력만 따지면 헬리움에 비견될만한 나라는 거의 없다."

 알븐하임도 그 놈의 마인드 때문에 말아먹었으나 헬리움은 그런 것도 없다. 본인들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기에 사리는 것뿐."

 다른 나라들도 경계하려던 차에 사태가 터졌으니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어떻게든 막을 테지만."

 제가 바라는 건 군대가 어디로 몰려들지 알려주는 것. 그리고 거기까지 데려다주는 것. 그것밖에 없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원하는 물건도 준비해줬으면 좋겠네요.""

 ······죄송하지만 하나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어째서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는 겁니까? 비록 소수의 실수라지만 저희는 당신을 해할 뻔했습니다.""

 내가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하자 아살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물었다. 나는 미묘한 미소만 지어줬다."

 하기야 그럴만도 하다. 실수라고 하지만 어찌 됐든 나를 죽일 뻔했으니까. 그 업보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상태고."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살라가 적절한 대응만 했어도 이정도로 커지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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