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50)화 (651/763)

 드디어 나왔다.""

 저 두 사람이 황태자와 황녀인 거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도로 양옆에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피부가 구릿빛이었으며 눈동자 또한 은색이었다. 머리카락도 저마다 달랐으나 대부분 회색에 가까운 빛을 띄고 있다."

 가르칸에 거주하는 스타비르크 민족들이 사절단을 보기 위해 나온 것이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느낌이다."

 격렬한 환영까지는 아니어도 손님으로서 충분히 대우해주는 모습.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았다."

 스타비르크 독립 만세!""

 누군가의 외침을 기점으로."

 스타비르크 독립 만세!""

 스타비르크여. 영원하라!""

 우리는 절대 굴종하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독립을 향한 열기가 군중들에게로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날이 날이라 그런 모양이다."

 충분히 불쾌할만한 상황이었지만 레오르트와 리나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서로 시선을 살짝 마주했다가 행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레오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짝짝짝!"

 레오르트는 독립을 외치는 군중들을 보며 말없이 박수만 쳤다. 입가에 상쾌한 미소를 짓는 건 잊지 않았다."

 ""와아아아!!!""""

 효과는 굉장했다. 군중들은 레오르트가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는지 더욱 열띤 반응을 보였으니까."

 확실히 겉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박수만 쳐주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반응이다."

 정작 레오르트는 스타비르크의 독립에 회의적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것도 일종의 정치적 전략이겠지."

 지금쯤 군중들의 마음 속에 레오르트의 이미지가 호의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리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군중들을 향해 우아하게 인사했으니까.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열기가 더욱 뜨거워진다."

 '대단하네.'"

 레오르트는 꾸준히 박수를 쳐주면서 호응을 이끌었고, 리나는 인사만 하고는 도로 착석했다."

 여기서 괄목할 점은 행동만 취했지 입 하나 벙긋하지 않았다는 것. 뒤통수를 칠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다."

 스타비르크민들은 오늘 독립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겠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응?""

 그러던 와중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혼자 무덤덤한 사람이 있다."

 아니. 무덤덤한 걸 넘어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또한 품 속에 무언가를 숨긴 것처럼 자세가 어정쩡하다."

 설마 저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찰나,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그 청년과 딱 눈을 마주쳤다."

 ··· ···""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흠칫 떨더니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청년. 오죽하면 식은땀이 흐르는 게 선명히 보일 정도다."

 아무래도 군중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암살자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다."

 그래도 주시하는 게 좋겠지. 나는 마차에서 잠시 떨어져 뒤에서 따라오던 수행원에게 속삭였다."

 저기 콧수염에 자세가 어정쩡한 젊은 남자가 있습니다. 한 번 살펴주세요.""

 ······예.""

 내 부탁에 표정을 싹 굳힌 수행원이 발을 돌린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얼어있던 청년 쪽."

 청년도 수행원이 자신에게로 다가온다는 걸 직감했는지 서둘러 군중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도망치려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잡히겠지."

 수행원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다가 거리가 멀어지자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리나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석연찮음을 직감한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직 심증만 있어.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했거든.""

 ······알았어.""

 리나는 그 즉시 레오르트에게 소식을 전달했다. 박수를 치며 호응을 이끌던 레오르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피식 웃었거든. 이어서 그가 자리에 앉으며 내가 들리게끔 입을 열었다."

 고작 그런 일로 물릴 수는 없지. 설령 무슨 일이 발생해도 행사는 그대로 진행한다.""

 심증만 있다지만 암살 위협을 고작이라 칭하다니. 나도 악마 숭배자로부터 암살 위협을 2번이나 받았다."

 그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레오르트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황태자로 살았던 몸."

 나와 달리 강심장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의 형제는 리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으며 그 리나마저 나와 정략혼을 맺을 예정이다."

 사실상 차기 황제로 낙점된 상황인데 '증명'을 못한다면 베리트가 다져놓은 근간이 휘둘릴 것이다."

 '힘들겠네.'"

 사라예보 사건 당시의 대공과 비슷하면서 다른 상황이다. 둘 다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무리를 했다는 점이 같다."

 그래도 암살 위협은 피했으니 이대로 저택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독립을 외치는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사절단이 대략 중간 지점에 도착했을 쯤이었다."

 톡- 톡- 데구르르-"

 작고 동그란 물체가 마차와 뒤의 기마병 사이에 굴러왔다. 격렬한 환호 속에서도 그 소리만큼은 귀에 들어왔다."

 아마 건강한 몸을 얻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물체의 정체부터 확인했다."

 치이이익!"

 ······어?""

 동그란 물체에는 작은 줄 하나가 달려있었는데, 그 줄이 불에 타면서 빠르게 타들어갔다."

 위험하다. 그런 판단이 서자마자 다른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위험합니다!!""

 물건의 정체를 깨달았는지 스타비르크 쪽 수행원이 다급히 외쳤다. 그 외침에 레오르트와 리나도 외침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폭탄으로 추정되는 심지가 전부 타들어갔을 때쯤, 스타비르크 수행원이 그 폭탄을 몸을 날려 덮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폭탄의 심지는 수행원이 몸으로 덮기 직전에 전부 타들어갔다."

 이대로라면 수행원의 몸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나겠지. 내가 알던 폭탄이 맞다면 말이다."

 쾅!"

 다행히 폭탄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저 화약의 위력을 이용한 폭탄인 듯싶었다."

 하지만 그 폭발만으로 스타비르크의 수행원을 다치게 만들기는 충분했으며."

 우웅-"

 폭발의 충격으로 마차의 보호 마법마저 사라졌다."

 대낮에 발생한 폭탄 테러는 분위기를 급격히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독립을 외치던 군중들은 폭탄으로 인해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사절단은 다급히 저택으로 향했다."

 폭탄의 위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수행원은 다행히 목숨은 붙어있었다. 하지만 수행원은 기사에 해당하는 전사 계급이다."

 그러한 실력자가 몸을 던져 막았는데도 중상을 입었으며 마차의 보호 마법마저 망가졌다. 다만 보호 마법이 망가진 건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아무리 그래도 충격으로 보호 마법이 망가진 건 의아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폭탄이 데굴데굴 '굴러왔다'는 것이 약점을 찔렀다."

 보호 마법은 마차의 아랫부분에 설치돼 있어. 작은 충격은 괜찮지만 그만한 폭발이 일어났으니······""

 마법사가 고칠 수는 없어?""

 이건 마법사가 아니라 드워프가 있어야 수리가 가능해. 스타비르크 장인을 불러도 되지만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운이 없다면 운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기야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이나 독침을 의식하지, 밑바닥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바닥에 함정을 설치했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스타비르크 쪽에서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폭탄 테러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해도 무방하다. 아니, 폭탄 '마법' 자체는 예상했다."

 범인을 잡으니 화약과 파편만 이용한 폭탄이래. 마법은 전혀 없었어.""

 폭발 테러가 마법이라 생각했구나?""

 응. 그래서 마법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마법도 설치했는데······""

 마법이 아닌 오직 기술로만 제작한 간이 폭탄. 아직은 과학보다 마법이 더 가까운 시대였기에 발생한 사고다."

 다시 말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폭탄 테러가 일어날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수류탄일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다행히 수행원만 중상을 입고 범인까지 체포했지만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은지 오래다."

 다시 만나서 반갑군. 얼마나 격한 환영이었는지 모르겠어. 요즘 스타비르크에는 환영 인사를 폭탄으로 하는 건가?""

 오죽하면 아살라와 대면한 레오르트가 웃으며 저런 말을 할 정도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 없다."

 책임자, 아살라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딱딱한 표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하겠군요. 반드시 주모자들을 처벌하겠습니다.""

 그 주모자들을 제국으로 이송시켜주면 화가 풀릴 것 같군.""

 레오르트의 말에 아살라는 눈 밑을 꿈틀거렸다. 저건 범인들을 미네르바 제국이 직접 심판하겠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스타비르크는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 주권 침해라 인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생의 중국도 마약 관련 범죄만큼은 외국인조차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여기서 다른 나라가 뭐라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아무것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스타비르크는 엄연히 제국에 편속돼 있고, 사고는 저쪽에서 쳤다."

 곧장 본국으로 돌아가 전쟁을 선포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너그럽게 참아주는 것이다."

 ······협정이 끝나면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좋게 좋게 끝냈으면 좋겠어.""

 그나마 다행히 서로가 원하는 게 있어서 전쟁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레오르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아살라를 따라갔다."

 리나와 수행원으로 변장한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클로제 후작이 총독 시절에 머물렀던 저택은 평범하디 평범했다."

 애당초 식민지에 가까웠고 클로제 후작은 무관이다. 영지를 다스리는데에 적합하지 않다."

 서류만 대충 처리하면 그만이었기에 저택의 규모도 작은 편이다."

 여기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샤라는 여인이 협상이 진행될 방으로 안내해줬다. 방에는 대표 및 각 측의 수행원 1명씩만 대동할 수 있었다."

 스타비르크는 건장한 체격의 수행원 2명을 대동했으며 제국은 클로제 후작과 나를 함께 대동했다."

 이윽고 양측의 국운을 걸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범한 크기의 테이블 하나를 기준으로 각 측마다 의자가 배치됐다."

 나는 레오르트와 리나가 자리에 앉자 그들의 뒤에 섰다. 클로제 후작도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대기했다."

 단도직입으로 말해도 되겠나?""

 협정이 시작되자마자 레오르트가 말을 열었다. 사실 테러가 발생한 이상 주도권은 미네르바 제국이 꽉 쥐고 있다."

 아살라도 이를 알고 있는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옆에 앉은 메르샤도 긴장한 낯빛이다."

 뒤이어 레오르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스타비르크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걸세. 특히나 이런 식으로는 말이지.""

 처음부터 폭탄을 터뜨린 레오르트다. 제국은 스타비르크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폭탄."

 독립을 갈망하던 스타비르크로서는 허탈함이 들겠지만 아살라는 의외로 덤덤한 반응이었다.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이에 레오르트가 한 쪽 눈을 치켜뜨며 흥미로운 반응을 지을 때, 아살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제국은 우리나라를 쉽게 포기하지 않겠죠. 특히 해군을 강화하기 시작한 이상은.""

 흠.""

 우리나라의 지형은 항구를 짓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그 바로 밑에는 테르스 왕국이 존재하죠.""

 놀랍게도 아살라, 그러니까 스타비르크 측은 미네르바 제국의 속셈은 전부 꿰뚫고 있었다."

 당장 주둔군을 물리지만 해군을 강화시켜 미래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칠 거라고. 스타비르크가 1차적 목표일 거라고 말이다."

 지구와 달리 정보 교류가 지극히 한정적인 세상에서 저만한 통찰력은 매우 대단한 수준이다."

 더구나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멀리한다. 바다의 잠재력조차 모를 텐데 저걸 꿰뚫은 건 놀라운 수준이다."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것. 그것이 제국의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까?""

 누가 알려줬는지 몰라도 우리의 패를 훤히 들여다 보고 있군. 내가 이래서 자네가 정말 싫어.""

 레오르트는 패가 전부 탄로났음에도 피식 웃기만 할 뿐,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이건 리나도 마찬가지."

 전에 리나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번 협정에서 제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테르스 왕국의 견제."

 스타비르크가 독립을 하게 된다면 자연히 '해상무역'의 중심이 될 예정이다. 반도의 특정상 어쩔 수 없다."

 그리 된다면 자연스레 테르스 왕국을 포함한 수많은 왕국과 접촉을 하게 될 터. 이런 저런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유리하다."

 하지만 자네들도 알고 있을걸세. 스타비르크는 싫든 좋든 제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겠군.""

 패를 모두 보여줬으니 남은 건 머리 싸움이다. 그것도 좀 전의 테러로 스타비르크가 상당히 불리한 싸움."

 테러가 아니더라도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정은 국력이 진리요, 규칙이다. 안 그래도 불리한데 테러로 더 불리해진 것이다."

 설령 미네르바 제국이 불평등 조약을 내밀어도 스타비르크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협정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다."

 '그 협정 내용이 진짜······'"

 협정의 내용도 리나가 먼저 알려줬다. 협정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하나하나 바뀌겠지만 초안만 보면 정말 악랄하다."

 요약하자면 스타비르크판 강화도 조약이다. 말만 자주권을 인정하는 거지, 사실상 식민지나 다름없는 협정."

 제국이 직접 항구 개설을 도와준다고 명시돼 있다만 뻔하디 뻔한 수작이다. 그 항구를 통해 스타비르크를 압박하겠지."

 ··· ···""

 아살라는 리나가 건넨 협정문 초안을 보며 눈밑을 꿈틀거렸다. 황당과 분노가 적절히 섞인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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