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47)화 (648/763)

 해군을 강화하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달콤한 과일을 포기할 수 없는 법. 애당초 국제 정치가 이런 식이다."

 무엇보다 '명분' 자체를 주는 것만으로도 힘의 균형이 오락가락한다. 미네르바 제국은 줄다리기를 하는 셈이다."

 따라서 현재 스타비르크는 독립인 듯 독립이 아닌 상황. 좀 더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거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이제 뭐함? 더도 말고 딱 이 상황이다."

 은발은안에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인 미녀, 메르샤는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이에 스타비르크의 독립을 이끌던 남자, 아살라는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상황이 너무 꼬였다."

 글쎄······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제국의 의중이 도대체 무엇인지. 대표단을 보내긴 했지만······""

 독립에 강한 열망을 띄고 있던 아살라도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강력한 제국에 맞서 싸우며 스타비르크 민족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중심이 되어 저항한다."

 이것이 1차적 목표였으며 제국도 하나하나 받아쳤다. 제국은 절대 스타비르크를 포기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해군을 성장시키겠다며 스타비르크의 주둔군을 전부 철수시켰다."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100% 기만 전술이라 판단했다. 방심하는 사이에 군대가 쳐들어올 거라고."

 제국의 주요 인사 중 한 명 반드시 이곳으로 불러야 해. 아마 제국도 그걸 원하겠지.""

 우리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 된다는 거군요.""

 그쪽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해야 되니까.""

 미네르바 제국은 압도적인 강자고, 스타비르크는 한없이 약자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것도 국제 사회의 눈치 덕분이다."

 마키나와 교역을 하면서 스타비르크를 향한 찬밥 대우는 오랜 기간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이것이 독립의 계기였다."

 하지만 막상 어부지리로 독립이 되다보니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제국에 대항해 나라를 건국한다는 거대한 명분이. 그리고 이것은 나비효과가 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말이 많아요. 제국이 자신들을 기만하는 거라며, 당장 나라를 건국해야 된다는 소리도 많아요.""

 반대로 우리처럼 천천히 나아가야 된다는 쪽도 있지.""

 메르샤와 아살라의 말처럼 현재 스타비르크는 두 개의 분파로 분리되었다."

 하나는 제국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정부를 세워야 된다는 쪽과, 다른 하나는 외교로 천천히 풀어가야 한다는 것."

 제국과 무수한 외교전을 벌였던 아살라로서는 후자가 끌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아살라는 절대 어리석지 않다."

 미네르바 제국과 스타비르크 사이의 격차는 아득히 벌어져 있다. 그걸 조금이라도 메꾸기 위해 총을 발명하려 애쓴 거고."

 강경파는 누가 대표로 있지?""

 자크. 자크 에릭 둔타라는 인물이에요. 애국심 하나는 아살라 당신보다 더 뜨거운 사람이죠.""

 난 스타비르크가 불바다가 되는 건 사양이야.""

 평소 독립 운동을 열심히 펼친만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스타비르크인은 많다."

 문제는 그 독립 운동이 일종의 선동에 가까웠다는 것. 또한 미네르바 제국에서도 어느정도 제지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합쳐진 바람에 꽤 많은 스타비르크인이 제국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주둔군을 배치한 것도 감시를 위해서였고."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그러고 보니 자크 그 놈도 무기 발명에 힘을 쓰고 있지 않나?""

 네. 사실상 그가 총괄이죠.""

 후우······""

 아살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가 간다. 제국이 이런 식으로 외통수를 치지 않았다면 무력 충돌은 반드시 존재했을 테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변심한 건지 몰라도 아살라에게는 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역시 세상은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똑똑똑-"

 [아살라 님. 대표단이 복귀했습니다.]"

 때마침 시기적절하게도 제국으로 보낸 대표단이 돌아왔다. 아살라는 의자에 기대었던 등을 곧바로 뗐다."

 그 사이 메르샤는 문 쪽으로 걸어가 대표단을 맞이했다. 제국으로 보낸 대표단은 총 3명이다."

 하지만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건 대표단뿐만이 아니었다. 이에 메르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자 님?""

 뭐?""

 메르샤가 현자라는 말을 입에 담자 아살라가 화들짝 놀랐다. 뒤이어 문 쪽을 바라보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장년층으로 구성된 대표단과 달리 자글자글한 주름을 가진 노인. 희끗한 머리카락과 단정하게 기른 수염."

 마지막으로 우묵한 푸른색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통 노인은 눈빛이 죽기 마련인데 현자는 그러지 않았다."

 현자는 어안이 벙벙한 메르샤와 아살라를 번갈아보더니 늙수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들어가도 되겠나?""

 아, 네! 물론입니다. 다른 분들도 들어오시죠.""

 아살라는 환한 표정으로 대표단과 현자를 맞이했다. 예의를 담아 의자를 끌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련된 자리. 이윽고 메르샤가 가벼운 다과를 준비한 후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제국 측에서는 무슨 말을 했습니까?""

 대표단에게 정중한 어조로 묻는 아살라. 부디 좋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에 대표단 중 가장 나이가 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살짝 굳은 표정을 보아하건데 그리 좋은 반응은 아니다."

 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직 고려할 부분도 많은데다가 스타비르크에 투자한 것도 있다면서요.""

 지랄.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살라는 다급히 사과했으나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만큼 제국은 뻔뻔했다. 저 투자라는 것도 '공장'을 말하는 것일 터. 노동자는 당연하게도 제국민인 아닌 스타비르크인이었을 것이다. "

 대답은 그것밖에 없었습니까?""

 다행히 얻은 건 있습니다. 제국의 황태자와 황녀가 아살라 님을 만나고 싶다는군요. 서로 나눌 이야기가 있다면서.""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저희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살라 님이 제국으로 가는 게 아닌, 그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예?""

 아살라는 물론, 가만히 듣고 있던 메르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국의 황족이 스타비르크를 방문한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씩이나. 이건 분명 심상치 않은 메세지다."

 보통 같으면 아살라와 메르샤가 제국으로 향했을 텐데 이번에는 반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저쪽에서 먼저 제안할 게 있다는 것이다."

 ······시기는 언제죠?""

 아살라 님이 원하시는 대로라고 대답했습니다.""

 ··· ···""

 심지어 방문 일정도 이쪽이 잡는다. 시사하는 바가 커도 너무 크다."

 전쟁을 선포할 거면 선전포고문을 지닌 채 전령을 보냈을 터. 하지만 제국의 황족, 그것도 두 명이나 오는 건 다르다."

 이에 아살라가 혹시? 라는 심정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현자가 입을 열었다."

 늙수레한 목소리였지만, 기이하게도 집중을 이끄는 목소리다."

 받아들이게나.""

 현자 님?""

 현자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현자는 수많은 시선이 쏠렸음에도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현재 제국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역량이 없다네. 대공황의 여파가 남아있을 뿐더러 제논과의 관계에도 집중해야하지. 무엇보다 해군을 강화시키는 것 자체가 한 곳을 포기한다는 걸세.""

 정말로 해군을 강화시키는 것을 대가로 스타비르크를 포기한 겁니까?""

 아니. 이르면 20년 후에 다시 점령하겠지. 강력해진 해군을 통해서.""

 현자의 말에 모든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력해진 해군으로 스타비르크를 재차 점령한다니."

 스타비르크는 지형의 특징상 해군이 강해야 되는 구조다. 현자도 독립을 한다면 무조건 해군부터 키우라고 누누이 언급했다."

 나는 현재의 제국이랬지, 미래의 제국이라 하지 않았네. 강력해진 제국의 해군이 바다를 둘러싸기만 해도 스타비르크의 운명은 끝일세.""

 하지만 총도 중요한 무기라고······""

 중요하지. 제국은 육군이 강하고, 또 그 병과에만 투자하는 나라였으니까. 여기에 해군까지 강화시킨다면 그 어느 나라도 막기 힘들거야.""

 ··· ···""

 무엇보다 독립을 하는 순간 제국은 지금보다 더 더러운 방법을 사용할 걸세. 지금은 자기네 땅이라 인식하지만, 독립하는 순간부터 스타비르크는 '외국'일세. 그것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외국.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아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나라든지 간에 국경을 맞대고 있다면 사이가 험악한 편이다. 사이가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가 없다."

 심지어 바다를 끼고 있는 미네르바 제국과 테르스 왕국조차 사이가 굉장히 나쁘지 않은가. 이리 된다면 스타비르크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허면 독립을 늦춰야 된다는 겁니까?""

 그것도 제국의 원하는 바지. 지금도 정부를 세워야 된다는 목소리가 많지 않은가? 그리 된다면 자연스레 균열을 야기할 걸세. 지금 필요한 건 독립이 아니라 결집이야.""

 최악의 경우에는 내전까지 발생할 수도 있겠군요.""

 아살라의 결론에 현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에 아살라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독립을 위해 제 한 몸 갈아넣었는데 내전이 일어난다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 중의 최악의 결과다."

 미네르바 제국이 독립 문제를 질질 끄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을 터. 제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것 같다."

 그러면 황태자와 황녀가 방문하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압박이지. 만약 여기에 사고라도 터진다면 제국에 명분을 주는 셈이고.""

 사고라면 어떤······""

 아살라의 물음에 현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애국심.""

 애국심?""

 그래. 정확히는 삐뚤어진 애국심. 내 경고 하나 하겠네.""

 현자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삐뚤어진 애국심을 가진 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게나.""

 그게······ 무슨 말씀······""

 당황한 아살라가 말을 더듬거리고 있을 때, 현자는 묵묵히 자기 할 말을 끝냈다."

 그렇지 않는다면 스타비르크는 불바다가 될 테니까.""

 ******"

 그 시각 마이샬 영지."

 뭐? 나랑 같이 스타비르크로 가고 싶다고? 네가 왜? 아니, 그전에 내가 스타비르크로 가는 건 어떻게 알았어?""

 리나는 아이작의 부름을 받고 마이샬 저택에 도착한 상황이다."

 아이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질문한 리나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몰라. 모라 님이 무조건 가라고 하셨거든. 넌 신의 말씀을 거역할 거야?""

 ······재수없어. 어쨌거나 알았어. 어차피 별 얘기 안 하고 돌아올건데.""

 미래가 바뀌었다."

 스타비르크는 미네르바 제국에게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반도라는 특징 자체부터가 크게 먹고 들어간다."

 게다가 최근에는 해군력도 강화시킨다고 했으니 그 가치는 몇 배나 더 상승할 것이다."

 따라서 제국은 스타비르크를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이건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는 바다."

 아마 먼 훗날 강력한 해군을 이용해 압박을 가하거나 내부적으로 균열을 야기시키겠지."

 반도라는 지형적 특징은 다양한 메리트가 존재하지만, 반대로 바다를 지키지 못한다면 답이 없다."

 조선도 임진왜란 당시 성웅, 이순신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손쉽게 점령당했을 것이다."

 특히 당시 일본은 막 전국시대를 끝내 동아시아 최강의 육군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이순신이 없었더라면 조선은 물론 명나라마저 멸망의 기로에 놓였을 테니 역사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비르크는 사실상 하나의 공통체로 거의 결합된 상황이야. 사상으로 갈릴지언정 민족으로 갈리진 않겠지.""

 며칠 후면 함께 스타비르크로 향할 리나가 차를 마시며 설명을 꺼냈다. 이미 황실과 합의하여 나도 따라가기로 정했다."

 단,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외교 문제까지 끼어들게 된다면 괜스레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

 테르스 왕국 같은 경우는 그쪽에서 먼저 공격한 거라 괜찮다. 하지만 스타비르크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미네르바 제국에서 스타비르크를 찬밥 대우한 것부터가 걸린다. 스타비르크 민족을 2등 시민 취급을 했다나 뭐라나."

 여기에 내가 함께 따라간다고 공표하면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이건 리나 쪽에서 먼저 말렸다."

 나와 오라버니가 함께 가는 이유는 독립도 독립이지만 일종의 협상을 위해서야.""

 협상?""

 최소 몇 십년간 테르스 왕국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말라는 거지. 제대로 된 정부가 세워진다면 향후 몇 년간 방황할 테니까.""

 상당히 예리한 협상이다. 현재 스타비르크에는 임시 정부가 세워진 상태다."

 그러나 임시 정부가 으레 그렇듯 그 나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여기에 무력 시위까지 합쳐진다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반란군이다. 설령 정부가 세워져도 리나의 말처럼 방황할 것이다."

 지금까지 독립 운동만 열심히 했지 실질적인 국정 운영은 하지 않았으니. 당장 주둔군 및 영주가 철수한 것만으로도 큰 혼란에 빠졌다."

 테르스 왕국만 콕 집어서 말한 걸 보면 저쪽에서도 움직임이 있는거야?""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 마리아 여왕과 프리드리히 국서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니까. 물밑으로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아.""

 주둔군을 철수했다지만 감시망까지 철수시킨 건 아니다. 아마 황실에 여러 보고가 올라왔을 터."

 나는 생각보다 복잡하디 복잡한 정세에 찻잔을 들었다. 황실에서 레오르트와 리나를 동시에 보낸 이유도 분기점이라 그렇다."

 변수도 변수인데다가 결과값이 너무 많다. 자칫하면 스타비르크에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고, 평화롭게 흘러갈 수도 있다."

 '모라가 나에게 무조건 가라고 한 걸 보면······'"

 그런데 평화의 여신, 모라는 나에게 이리 부탁했다. 어떻게 되든 간에 리나와 같이 스타비르크로 향해라."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부탁을 들어줌과 동시에 질문했다. 스타비르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모라는 너무 큰 미래가 변동하는 거라 제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대신 세상이 거대한 화마에 휩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걸 고려한다면······'"

 나는 차를 마시면서 리나를 빤히 쳐다봤다. 모라의 반응을 보아하건데 스타비르크에서 레오르트나 리나가 큰 위험에 빠진다는 의미일 터."

 미네르바 제국이 스타비르크를 찬밥 대우한 것도 있고, 스타비르크 자체적으로 민족주의가 강해진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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