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41)화 (642/763)

 어느새 피와 강철도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원래는 올해 완결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겹치는 바람에 약간 늦어졌다."

 그래도 로만이 내가 적고 싶은 글을 대신 쓰고 있으니 상관없다. 괜찮다면 멸망기사와 비슷하게 완결을 내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능하긴 하다. 발터 모델이 눈물의 똥꼬쇼를 펼치면 되니까.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고."

 '노르망디 상륙을 집중할 테니 거기서 시간이 좀 걸릴 거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모두 예상하고 있다시피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기반으로 쓸 예정이다. 그 유명한 피의 오마하 해변 말이다."

 이미 죽은 자와 곧 죽을 자만 남았다는 현세의 지옥. 5분만에 한 중대가 모조리 날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행히 오마하 해변만 그래서 망정이지, 다른 곳도 그랬다면 답도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뭐······'"

 몇 만명이나 되는 병력이 죄다 정예병으로 변해 나치 독일군을 압살한다."

 후에 벌어진 마켓 가든 작전으로 나치 독일의 숨통을 붙여줬다는 건 안 비밀."

 갈리폴리 전투처럼 영국이 삽질한 전투여서 나치 독일에게마저 조롱받는 작전이다."

 그 전투에 발터 모델이 있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어도 애당초 작전 자체가 말이 안 되는지라 까일 수밖에 없다."

 '히틀러 암살 미수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

 여러모로 굵직한 전투 및 사건들밖에 남지 않았다. 도쿄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든 도쿄 대공습도 남았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이자 최종막을 장식할 원자 폭탄은 등장하지도 않았다. 가끔 가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언급되긴 해도 다들 까먹더라."

 결말이 되면 절대 못 잊겠지만. 나는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마리는 아리엘과 낮잠을 자는 중이고, 나머지 사람도 저마다의 일로 바쁘다."

 모처럼 자유 시간인지라 영지를 시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정말 발전했네.'"

 겨우 3년이다.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널널한 시골이 순식간에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골이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5년 단위로 계획을 잡아야 된다."

 그러나 상부의 막대한 지원과 각 종족의 도움이 합쳐지니 계획의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중구난방으로 건물이 세워진 것도 아니다. 문화 도시인만큼 외관도 중요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축구장까지 점점 더 크게 개설되고 있었으니 날마다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더이상 대규모 공사라 해봤자 확장 공사밖에 없겠지?'"

 갖출 건 다 갖췄다 해도 무방하다. 남은 건 시대의 발전에 따라 하나둘씩 개선되는 것뿐."

 나는 가슴 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뿌듯함에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보니 신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인부들이었나?'"

 아직도 수많은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는만큼 공사도 많고, 그에 따라 다양한 산재가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성직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는 덕분에 안전은 확실하다. 설령 다쳐도 곧바로 신전에서 치유해주고."

 하지만 이건 마이샬 영지에 한해서다. 다른 곳은 성직자가 상시 대기하지 않는다."

 성직자는 순례자가 아닌 이상 돈을 주고 고용할 수 없다. 본인이 직접 봉사하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성직자가 필요할 때는 돈보다는 설득을 통해 협력을 받아야 된다. 돈이야, 신도들로부터 모금을 받으면 금방 빵빵해지니."

 '여기는 안전모 같은 것도 없고······'"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진다면 수많은 인부들이 산재로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대규모 공사인만큼 교단에서도 위험을 알고 찾아가긴 하겠지. 하지만 그전에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머리를 다친다면 그 후유증은 말할 것도 없다. 즉사는 물론이요, 남은 인생을 고달프게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흠······'"

 리나가 직접 지휘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떠올라서 그럴까. 문득 그쪽은 안전 보장이 잘 돼 있는지 궁금하다."

 비단 리나만이 아니라 마키나도 걱정스럽다. 거기는 광부들이 태반인지라 안전 사고에 취약할 터."

 조만간 운하도 뚫어야 할 테니 미리미리 조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때마침 플라스틱도 있으니 이건 세실리 누나한테 부탁해야지.'"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책상에 앉았다. 뒤이어 통신 구슬을 꺼내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머지않아 통신 구슬에 빛이 깜빡거리다가 이내 환하게 밝아졌다. 세실리에게 연결됐다는 뜻이다."

 [아이작? 무슨 일이야?]"

 먼저 연락해서 기분이 좋은지 고혹적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텔레포트할 기세다."

 나는 귀여운 그녀의 반응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누나. 다름이 아니라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할 거?]"

 응. 플라스틱 있지? 그거 분해 마법은 어떻게 됐어?""

 석유에서 뽕을 뽑을대로 뽑은 결과 플라스틱까지 발명했던 헬리움. 원래라면 플라스틱을 상용화하려 했지만 내가 막았다."

 지구조차 발명한 지 100년도 안 되어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지금부터 상용화되면 답이 없어진다."

 그래서 깔끔하게 분해시킬 수 있는 마법을 발명하기 전까지 상용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안 그러면 자연의 고통을 직접 맛 볼거라고 하니 다들 기겁했던 적이 있다."

 [그거라면 어느 정도 진척이 있어. 너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븐하임이랑 공동작업을 거치고 있거든. 알븐하임 쪽에서도 자연의 고통을 느낄 거라고 하니 동참하더라.]"

 아직 완전히 된 건 아니라는 거네?""

 [응. 아무래도 연금술과 깊은 관련이 있는 거라서. 게다가 플라스틱이 강점이 썩지 않는 거라 그걸 퇴보시키자니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야. 네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정말로 히르트 님이 고통받을 뻔했어.]"

 지구의 환경 문제와 똑같은 절차를 밟을 뻔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플라스틱은 잘 썩지 않아서 문제지만, 잘 썩어도 문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안전 즉, 목숨과 깊은 연관이 있는 거다. 더구나 일회용이 아니라 두고두고 쓰일 예정이다."

 그럼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플라스틱으로 투구를 만들어 줄 수 있어? 아주 두껍고 단단하게.""

 [······플라스틱으로 투구를?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럴 거면 강철로 만드는 게 더 편하잖아.]"

 세실리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얇디 얇은 플라스틱보다 단단한 철이 더 강하다고 느껴지겠지."

 하지만 플라스틱도 은근히 단단한 물질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벽돌의 충격마저 온전히 흡수시킬 수 있었으니까."

 물론 기술력이 기술력인지라 지구의 것과 똑같이 만드는 건 힘들 것이다. 그래도 비슷한 강도로나마 만들면 충분하다."

 강철은 충격이 흡수가 잘 안 되거든. 디자인까지 해서 보내줄 테니까 시험용으로 만들어서 하나 보내줘. 가능해?""

 [가능하긴 한데······ 어디에 쓰려고?]"

 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몸'으로 떼우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세상의 수많은 발명품 중 대부분은 거의 군용품으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GPS, 컴퓨터, 인터넷, 트렌치 코트, 통조림 등등. 많은 발명품들이 군용에서부터 시작됐다."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과학이 발전됐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종족전쟁과 그 직후에 벌어진 인간 연합끼리의 내전을 제외하면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대포를 비롯한 화약의 사용법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전쟁이 터지지 않아 발전은 멈췄다."

 물론 세계가 세계인지라 시대를 한참 초월한 발명품들도 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냉장고와 마력 기관을 탑재한 전차까지."

 내가 이번에 세실리에게 부탁한 안전모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안전모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근대에 나와야 하는 물건이다."

 플라스틱은커녕 철조차 귀한 중세에 안전모는 무슨 안전모.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시대가 바로 중세다."

 이거면 되겠어?""

 응. 이거 만들기 어려웠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 투구를 만드는 거랑 비슷했거든. 네가 요청한 것처럼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안전모의 등장은 파격적이라기보다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나는 세실리가 전달해준 안전모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최대한 전생의 것과 똑같이 디자인했기 때문인지 외양 자체는 내가 알던 안전모와 똑같다."

 얼굴을 고정시키는 끈은 나중에 따로 장착하면 될 터.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기술이 모자라 내피는 없지만 차차 보강하면 될 것이다."

 퉁! 퉁!"

 주먹으로 망치를 찍듯이 내려찍으니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강도와 탄성도 얼추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이것만으로 확실한 건 아니다. 나는 확신을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떨어뜨리기 적당한 물건 없나 싶어서."

 하지만 침실에는 책을 제외하면 마땅한 게 별로 없다. 바깥에 나가서 적당한 크기의 돌을 챙기는 게 나을 것 같다."

 누나. 잠깐 도와줄 수 있어?""

 네 부탁이면 언제든지.""

 고마워. 일단 마당으로 나가자.""

 나는 안전모를 들고 세실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섰다. 중간중간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해주는 건 덤."

 이윽고 저택 마당으로 나섰을 때, 나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잠깐 멈췄다."

 아. 잠깐만 기다려봐. 뭐 좀 가지고 나올게.""

 알았어.""

 머지않아 세실리는 내가 들고 나온 물건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수박귤 아니야?""

 응.""

 나는 수박처럼 생긴 귤, 수박귤 2개를 각각 옆구리에 낀 채 돌아왔다.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이라 수박 대용으로 쓸 예정이다."

 명칭을 보듯이 수박처럼 엄청 큰 귤이다. 뭐 이런 귤이 다 있나 싶지만 여기는 지구와 다른 환경이라는 걸 상기하자."

 아무튼 세실리는 내가 머슬렌지를 들고 오자 어벙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나를 따라 이동했다."

 뒤이어 연무장으로도 사용되는 넓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세팅이다."

 하나는 그냥 놓고, 다른 하나는 안전모를 씌울 거야.""

 방어력을 시험하는 거구나. 나는 뭘 하면 될까?""

 누나는 저기 있는 돌을 위로 올렸다가 그대로 떨어뜨리면 돼. 염력 마법은 사용할 수 있지?""

 물론.""

 세팅도 금방 끝났다. 수박만한 귤에 안전모를 올리니 뭔가 귀엽긴 하다."

 그 사이 세실리는 적당한 크기의 돌을 마법으로 둥둥 띄우기 시작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말할 때까지 높이 올라가는 돌."

 이윽고 적당한 높이에서 멈춘 후에 그대로 낙하시켰다. 돌은 중력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퍼억!"

 그리고 수박귤이 떨어지는 돌에게 사망했다. 아예 못 먹을 정도로 산산조각나버린 수박귤."

 조금 아깝긴 하지만 효능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도록 잘 치우기만 하면 된다."

 이제 여기에 떨어뜨려줘.""

 다음은 안전모를 씌운 수박귤 쪽이다. 혹시 파편이 튕기면 곤란하니 아까보다 좀 더 멀리 떨어졌다."

 세실리는 의심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있다가 내 신호에 돌을 낙하시켰다. 아까와 비슷한 속도로 떨어지는 돌."

 빠악!"

 플라스틱과 돌이 강하게 부딪히는 소음이 퍼진다. 고정끈이 없어서 그런지 안전모가 붕- 하고 떴다가 그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박귤은 멀쩡했다. 그 높은 위치에서 맞았는데도 상처 하나 없다."

 안전모도 마찬가지. 강철이었다면 찌그러진 흔적이라도 있을 텐데 안전모는 흙먼지만 묻었을 뿐이다."

 정말 완벽하다. 세실리는 내가 원했던 안전모를 그대로 제작해줬다. 역시 마족도 손재주 하나는 좋은 편이다."

 와······ 이게 이렇게 단단했어? 강철보다 단단한 거 같은데?""

 세실리는 흙먼지만 조금 묻고 멀쩡한 안전모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뭔가 귀엽다."

 응. 열에 약한 거지 은근히 단단해. 잘만 이용하면 강철보다 단단할 걸?""

 진짜? 전혀 몰랐네. 그래서 네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거구나.""

 헬리움은 플라스틱을 만들 정도로 연금술이 뛰어난 국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스틱은 너무 일찍 발명됐다."

 지구에서도 첫 발명 당시 플라스틱으로 장난감이나 만들었다고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총기류 및 다양한 곳에 사용된 거고."

 이 세상은 더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조차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요인이다."

 제작도 힘든데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다른 물질보다 가격 성능 대비에서 현격히 떨어지니 찬밥 신세로 지낸 거다."

 앞으로 공사를 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이걸 쓰라고 할 거야. 이거 하루에 얼마나 만들 수 있어?""

 최대 5개 정도 만들 수 있어. 연금술사랑 대장장이가 힘을 합쳐서 제작하는 거라 상당히 까다롭거든.""

 공장이 없다보니 저게 최대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도 마법과 마족의 능력이 합쳐져서 만든 거지, 원래라면 꿈도 못 꾼다."

 가격은?""

 인건비만 생각해도······ 하나당 최소 30골드는 넘을 거야.""

 원화로 치환했을 때 하나당 대략 300만원이라는 소리다. 무슨 안전모 하나가 그리 비싸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

 수작업이라 그렇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갑옷 세트 하나를 제작하기 위한 비용이 원화 기준 억 단위가 넘어간다."

 비록 공장이 들어섰다지만 아직 완벽히 흡수한 건 아니다. 비싼 건 여전히 비싸다."

 강철 투구보다는 훨씬 싼 편이네?""

 헬리움에 썩어넘치는 게 석유라서 그래. 공장만 들어서면 이런 건 바로 만들 걸?""

 그래도 가격 성능 대비가 미쳤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기사들은 상징 때문에 강철 투구를 쓰겠지만 다른 사람은 전부 안전모를 택할 터."

 300만원이라는 가격에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새삼 플라스틱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플라스틱이 비운의 발명품으로 그대로 묻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건 조금 궁금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네. 인간이나 드워프는 몰라도 다른 종족은 귀 때문에 쓰기가 어렵잖아. 특히 마족은······""

 나는 그리 말하며 세실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위로 우뚝 솟아난 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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