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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39)화 (640/763)

Chapter 638 - 해상(1)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과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성자라 추앙받는 나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호수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정도로 심심찮게 돌을 던져대지만, 다른 사람도 돌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경우조차 십중팔구 나로 인한 나비 효과라는 게 흠이면 흠이다. 아무튼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미네르바 제국. 스타비르크 지역의 주둔군 철수!]

미네르바 제국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 스타비르크. 그 지역에 주둔했던 군대가 철군한 것이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스타비르크는 한창 독립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대공황이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는지라 그 분위기도 점차 강해졌다.

여태까지 마이샬 영지만 이목이 집중되서 그렇지, 스타비르크도 야금야금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뜬금없이 미네르바 제국에서 먼저 손을 뗀 것이다.

[갑작스러운 철군 소식에 스타비르크를 포함한 많은 나라가 당황하고 있다.]

[스타비르크는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네르바 제국의 심리전?]

[미네르바 제국은 단지 내실을 다질 때라는 말만 하고 있으며······]

워낙 뜬금없는 사람이라 많은 언론들이 미네르바 제국의 심리전이라니,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니 등등.

제국의 입장에서는 달콤한 과실 그 자체인 스타비르크여서 무작정 믿지 않았다. 사실 저게 당연한 거다.

만약 철군을 할 거라면 그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도 물렸겠지. 당장 주둔군만 철군한 것이다.

[스타비르크 지역의 사람들은 당황하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스타비르크가 제대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설립이 우선적으로······]

[싸워야 할 대상을 잃어버려 혼란에 빠진 스타비르크. 그들의 미래는?]

하지만 이 행동만으로도 스타비르크에 큰 혼란을 집어넣었다. 싸워야 할 대상이 사라지니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원래라면 끝까지 미네르바 제국에게 저항하면서 조금씩 힘을 길렀을 터. 그 다음부터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스타비르크 입장에서는 미네르바 제국이 먼저 때려야 확실한 명분도 챙기고 그랬겠지.

그런데 이게 웬 걸. 싸울 거라 예측했던 주둔군이 먼저 철수해버리네?

미네르바 제국도 많은 걸 포기했으나 스타비르크는 방향성에 큰 혼란이 닥친 셈이다.

[미네르바 제국은 여전히 스타비르크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타비르크에서도 당장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만 본다면 제국 쪽에서 심리전을 건다고 할 수도 있다. 주둔군만 철수시킨다 해서 독립이 되는 건 아니니까.

도리어 이런 식으로 안심시킨 뒤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예로부터 꽤 자주 쓰이던 전략인 걸로 알고 있다.

언론만 본다면 미네르바 제국에서 꿍꿍이를 꾸미는 거구나 싶겠지. 실제로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국이 꾸미는 건 예상을 한참 웃도는 큰 그림이었다.

"제국은 바다로 진출할 거야."

"바다?"

간만에 찾아온 리나가 나에게 꺼낸 말이다. 미네르바 제국은 바다로 눈을 돌릴 거라는 말.

나로서는 의아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기에 추가 설명을 부탁했다. 지금 응접실에서는 나와 그녀밖에 없다.

뒤이어 리나는 들어올렸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 같은 눈매가 나를 직시한다.

"네가 생각하는 바다가 맞아.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빈번한 환경. 제국은 그곳으로 눈을 돌리기로 정했어."

"스타비르크는 완전히 포기한 거야?"

"반쯤은 포기한 셈이지."

내 질문에 리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만약 내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스타비르크를 포기한다는 말에 의아했겠지.

하지만 바다다.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깃들어 있는 바다. 예로부터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영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작디 작은 본토와 다르게 영국은 세계를 지배했다.

대륙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식민지를 두었으며 최고의 발명품, '미국'마저 영국의 손에서 탄생했으니 말다했다.

물론 그에 따라 패악질도 심심찮게 부리는 바람에 그리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한다. 이건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열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야. 아바마마께서 나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셨거든. 그 안에 설득해야 돼."

"그런 거면 나를 찾아올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찾아갔어야지. 누구였더라······ 고츠 후작?"

장인어른, 드미트리 공작가의 사교회에서 만남을 가졌던 사람이다. 마티우스 후작과 달리 바다를 담당하는 사령관.

뱃사람답게 구릿빛 피부와 폭삭 늙은 얼굴.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와 호탕함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셜과의 콤비가 꽤 잘 맞았던 걸로 안다. 화력에 흠뻑 빠져서 대포를 펑펑 쏘고 다닌다고 했나.

내가 그에게 괴혈병을 방지하고 싶으면 야채와 과일을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난 역사를 알 뿐인지 바다에 대해서는 거의 몰라. 심지어 여기는 몬스터까지 있잖아? 그건 어떻게 해결하려고?"

어딜 가나 그 놈의 몬스터가 항상 문제다. 안 그래도 바다는 '신의 분노'를 자주 볼 수 있는 환경이다.

지구조차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수 백년의 시간이 소요됐는데 이 세상은 오죽할까.

신의 분노와 몬스터가 겹쳐진다면 그야말로 재앙을 한참 넘어설 것이다.

"상관없어.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잠재력 즉, 미래거든."

"미래라······"

"앞으로 공장이 더 세워진다면 생산량이 늘어나고 자연스레 인구도 늘겠지. 하지만 제국은 지금도 포화 상태야. 바다로 진출하는 게 아닌 이상 전쟁밖에 답이 없어져."

정확하다. 내가 전생의 지식을 알음알음 전달했다고 해도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하기 전, 중세 유럽은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 바빴다.

지중해는 이슬람 세력이 활개쳤으며 북해는 바이킹이 선점하고 있었다. 해군이 강력해질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미네르바 제국의 체급이 커도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육군으로 찍어누르면 전부 해결되는데 굳이 키울 필요는 없었으니.

청나라가 저래서 망했다는 게 웃기고도 슬픈 점이다. 체급이 커도 너무 큰 나머지 경쟁을 할 대상이 없어져 쪽도 못 쓰고 지배당했다.

"바다 건너에 있는 테르스 왕국을 견제할 수 있고 무역망도 커지면서 경제력이 늘어나겠지. 알븐하임조차 해군은 강한 편이 아니니까. 견제할 이유도 없고."

"그 말 그대로 황제 폐하에게 말씀드렸으면 되지 않아?"

"스타비르크를 포기하면서까지는 메리트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지."

미네르바 제국의 영토는 지구의 중국과 흡사하다. 서쪽에 거대한 사막이 있는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한반도 역할을 하는 스타비르크의 영토는 한반도보다 훨씬 큰 크기를 자랑한다. 잠재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곳을 포기하면서까지 바다에 눈을 돌릴 메리트가 되느냐. 리나는 이걸 원하는 것 같다.

"충분히 되고도 남지. 영국이 바다를 지배하고 세계를 정복했는데."

이에 나는 뭘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역사를 잘 아는 나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리나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에게는 그렇겠지. 너의 진실을 알고 있는 나도 그렇고. 그런데 우리 아바마마께서는 아니잖아?"

"아. 그런 거라면 설명하기가 어렵겠네."

"그래서 너를 찾아온 거야. 바다와 관련된 전문가는 고츠 후작이 있으니 괜찮지만, 잠재력은 네가 알려줄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까다로운 사안이다. 애당초 영국과 미네르바 제국의 상황은 너무 다르다.

영국은 넘쳐나는 생산량을 감당하지 못해 식민지배 즉, 제국주의가 발달했다. 그 전의 대항해시대가 초석을 마련했고.

반면에 미네르바 제국은 약간 다르다. 생산력이 넘쳐날 정도로 공장이 충분히 가동되지도 않았고, 영토가 바다 쪽에 몰린 것도 아니다.

'설마 나 때문인가?'

최근 그런 적이 너무 많다보니 자연스레 나부터 의심하게 된다. 실제로도 그럴 것 같고.

그래도 리나가 부탁했으니 대답은 성심성의껏 해야겠지.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잠깐 생각했다.

바다의 잠재력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무궁무진하다. 영국이 아니더라도 해군력이 강하면 그 나라는 대부분 패권을 쥔다.

더구나 과거의 상인들은 바다가 육지를 가로막는 게 아닌, 육지가 바다를 가로막았다 생각할 정도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게 바로 '운하'다. 특히 파나마 운하는 '산'을 파면서 만들 정도로 대규모 공사다.

"우선 지도를 봐야 알 것 같은데······"

"그럴 줄 알고 가지고 왔지."

내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했는지 리나가 손에 쥔 지도를 나에게 보여줬다. 철두철미한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과를 대충 치우고 지도를 펼쳤다. 꽤 보관이 잘 된 지도인지 누렇게 변한 부분조차 거의 없었다.

"여기가 우리 미네르바 제국의 위치야. 바다를 낀 채 밑에 있는 나라가 테르스 왕국이고. 알븐하임은 동쪽, 마키나는 북서쪽."

"정확한 건 아니지?"

"너네 세상처럼 일반인도 세계지도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마. 이거 하나 제작하느라 최소 7년이 걸렸어."

동서고금 막론하고 지도는 상당히 중요한 물건이다. 군대는 두말할 것도 없으며 지리를 통해 나라의 장단점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상세한 지도일수록 고위층만이 갖고 다닐 수 있다. 리나는 황녀이니 그 권한이 있을 테고.

나는 투박하지만 괜찮게 제작된 세계지도를 면밀히 살펴봤다. 나도 말로만 들었지, 지도로 세상을 보는 건 처음이다.

"흠······ 여기가 벨루아 공국이지? 테르스 왕국과의 유일한 육지 경로."

나는 중간에 교두보처럼 끼여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저 육지 하나 때문에 바다가 지중해처럼 육지로 둘러쌓여있다.

"맞아. 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게도 아주 중요한 지점이지. 제국의 후원으로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야."

"혹시 여기에 운하를 뚫을 생각은 안 했어?"

마음대로 내뱉은 게 아니라 역사적 고증이다. 저기 뚫기만 한다면 제국은 지금보다 몇 배에 달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을 터.

벨루아 공국의 허리 부분도 상당히 얇은 편이라 운하를 뚫을 법한데 어째서 안 했는지 의문이다.

"운하가 뭐야?"

"응? 운하가 뭔지 몰라?"

"피와 강철에서 수에즈 운하를 이용했다는 건 들었지. 그걸로 보급했다는 것도 알고."

리나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의문을 자아냈다. 나는 그걸 보며 황당해졌다.

도대체 바다를 얼마나 멀리하면 운하조차 모르는 걸까. 무역조차 바다보다 육지를 선호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악마가 만든 환경이라는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 이러니 과학이 심각하게 언밸런스하지.

"운하가 어떤 거냐면······"

이에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지난번에 항해술이 중세에 머물러 있다 했는데 정정해야겠다.

항해술'만' 중세에 머물러 있고 다른 건 전부 고대 시대다. 잘 생각해보니 종족전쟁 당시에도 해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리나에게 운하가 어떤 건지 설명해준 결과, 그녀는 별 해괴한 걸 들었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너네 세상은 미친 사람들밖에 없어? 어떻게 땅을 파서 바다와 이을 생각을 해?"

"산을 파서 만든 운하도 있는데 뭘."

"그거 누가 만들었어?"

"미국."

"··· ···"

무언가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나다. 뒤이어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러니까 세상을 멸망시킬 무기를 수 천개나 가지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개통시킬 거야?"

내 물음에 리나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역사에 미친년으로 기록될 것 같긴 해도······ 해야지."

확실히 국정에는 진심이다. 앞으로 제국은 발전할 날만 남으리라.

"근데 저거 다 삽으로 파야돼?"

"드워프한테 돈 주고 파라고 해."

"너어는 진짜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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