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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36)화 (637/763)

Chapter 635 - 머저리(1)

건강한 신체를 얻은 아이작이 애인들과의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세상은 여전히 아이작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다들 아이작이 어디서 왔는지 추론하고 난리다.

신들이 직접 데려왔다는 영혼인 것만 알고 있지, 어디서 데려왔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때문에 처음 예상했던대로 미래에서 왔다니, 제논 일대기가 본인의 이야기라니 등등.

다양한 가설이 튀어나오는 가운데, 오직 한 세력만이 아이작의 출신을 정확히 짚었다.

"갑자기 호출하더니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네."

로브를 뒤집어 쓴 청년이 삐딱한 말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마찬가지로 로브를 쓴 노인이 앉아있다.

"뭐? 피와 강철 속 세상이 놈의 고향? 나이가 많아서 노망이라도 든 건가?"

이제는 거의 적대하고 있는 청년의 비난에도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저 가소롭다는 듯이 약하게 비웃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청년은 발악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아이작의 정체를 제대로 꿰뚫고 있는 집단은 다름아닌 악마 숭배자. 정확히는 악마 숭배자 수뇌부 쪽이었다.

수뇌부라 해봤자 타락한 추기경 사건 이후로 몇 명 남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제일 중요한 군주가 남았으니.

"어리석군. 어리석어. 질투에 눈이 멀어 일을 저지르더니 결국 놈에게 도움만 주는 상황이구나."

"··· ···"

노인이 명료히 받아치자 청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살의가 청년으로부터 새어나왔다.

노인의 말마따나 어떻게든 아이작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고 일을 저질렀다. 때마침 회색 사막에서도 충격적인 사실이 튀어나왔지 않았는가.

원래부터 아이작을 성자로 추종하고 있던 마족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 된다면 가장 단단했던 방어선이 무너졌을 터.

하지만 아이작은 되려 이걸 역이용했다. 아무도 몰랐던 진실을 털어놓을 뿐더러 클라크 마이샬의 정체도 밝히기까지.

이로 인해 흠집은커녕 완전히 성자로 격상해버렸다. 이제 언론으로 아이작을 건드는 순간 거대한 역풍이 불어올 터.

청년으로서는 화가 나다 못해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왕국에서도 의심을 품은지라 당분간 활동도 못한다.

아이작은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자신은 추락만 경험하는 것 같다.

"그래도 너의 그 오만함 덕분에 우리도 큰 성과를 얻었지. 놈을 도와줘야 된다는 게 짜증나지만 우리로서는 제일 중요한 확신을 얻었어."

"무슨 확신? 놈이 다른 세상에서 살다 왔다는 확신?"

"거짓된 신들도 그 놈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확신."

여지껏 아이작에게 신나게 털려서 그렇지, 악마 숭배자는 바보만 모여있는 집단이 아니다.

지금도 음지에서 자금을 야금야금 벌어들이고 있었으며, 전도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때마다 격파당해서 그렇지. 세이비어가 선포한 성전으로 어지간해서는 몸을 사리는 중이다.

"근거는?"

"제논 일대기가 등장했을 때는 그 놈들도 좋아했겠지. 하지만 피와 강철은? 놈들이 제일 싫어할 텐데 어째서 출판을 허용했을까? 이것만으로 충분해."

"근거가 너무 빈약한데?"

"애당초 그 놈이 이곳에 남았다는 것부터가 근거 중 하나지."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안 가는 근거다. 도대체 노인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청년은 눈쌀을 찌푸린 것도 잠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피어올랐던 살의가 허탈감으로 무너진다.

"더이상 너도 놈을 건드릴 수는 없을걸세. 지금도 곤란한 상황 아닌가?"

"······닥쳐. 난 아직도 놈이 성자라는 걸 믿지 못하니까."

"진짜 성자는 아니겠지. 단지 성자에 비견될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을 뿐."

노인은 요점을 정확히 짚었다. 실제로 아이작은 건강한 신체를 얻었다지만 성자의 본질이자 정체성, 건강한 정신을 얻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다면 자연스레 신성을 얻는다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

"악마 숭배자는 멍청이들밖에 없는건가? 당한 게 얼만데 발악도 하지 않고 놈의 성자 행세를 지켜보겠다고?"

"동시에 우리의 궁극적 목표를 손가락 까닥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기회지."

하지만 노인은 그러지 않았다.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저쪽에서 해준다는데 굳이 건드려야 되나 싶다.

특히 아이작이 성자임을 밝힘과 동시에 꺼냈던 말이 있다. 피와 강철 이후로 신들의 '그림자'에 대해 쓸 예정이라고.

악마 숭배자로서는 알고도 당하는, 그야말로 가불기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놈이 정말로 거짓 신들의 그림자에 대한 책을 쓴다면, 우리는 더욱이 놈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러지 않을시 건드릴 예정이고."

"정말로 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쓰든 말든 상관없다네. 굳이 놈이 쓰는 책이 아니더라도 괄목할만한 작품이 하나 있으니."

"뭔지 알 것 같군."

두 사람이 말하는 작품은 멸망기사 즉,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다.

아직은 누가 쓴 건지 모르지만 아이작이 직접 말했다. 이 작품을 집필하는 사람을 건드리지 말라고.

더군다나 장편연재로 결정됐으니 악마 숭배자로서는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무려 순리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어찌 보면 피와 강철보다 더한 작품이었으니까.

"너희들이 원하는 세상에 딱 그 작품이지 않나?"

"만물의 아버지께서 다시 세상을 다스린다면 상관없지. 우리도 멸망하는 세상은 원치 않는다네. 피와 강철이 이상향에 부합하지."

"의외로군."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가 '진실'이라면 피와 강철은 '이상향'이다.

그래서 피와 강철이 등장했을 때 악마 숭배자의 활동이 잠시 멈춘 것이다.

만약 피와 강철 세계관에도 신들의 존재가 명확했다면 아이작을 끝까지 위협했겠지.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개가 사람 대 사람, 국가 대 국가로만 진행되고 있다. 여러 사상과 공식들은 덤이었고.

"어떤 미치광이가 망해가는 세상을 원하겠나?"

"사람을 산제물로 바치는 미치광이 집단이 할 말은 아닌데 말이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절멸시키는 나치보다는 나을걸세. 우리는 뚜렷한 목표가 있잖나."

미치광이가 미치광이를 보고 미치광이라 한다. 이것만큼 웃기고도 무서운 코미디가 존재할까.

청년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그는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어째서 놈의 고향이 제논 일대기도 아니고 피와 강철이라는 거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못 믿겠는데."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가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나?"

"그냥 전부 다. 이딴 말도 안 되는 세상이 실존할리가 없지."

피와 강철은 분명 세상에 커다란 영향력을 준 작품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말도 안 되는 전개가 튀어나오는 건 물론이요,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속출하는 중이다.

그중 압권인 건 다름아닌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군사력은 분명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강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시원하게 말아먹기 전까지는. 이후의 여러 전투에서도 일본군은 상식과 동떨어진 무언가를 보여줬다.

"덕분에 신들이 없으면 인류는 전부 얼간이라는 것만 알게 됐어. 멸망하지 않은 게 더 신기한 국가도 있었고. 나치의 광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지."

"계속 말해보게."

"네 말대로라면 히틀러가 이곳으로 넘어왔어야 했을 텐데?"

"후우······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생각이 짧구만."

이제는 답답한 것도 귀찮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노인이다. 그 반응에 청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시당하는 것도 점점 한계다. 마음 같아서는 노인을 어떻게든 조져버리고 싶다.

그러나 이곳은 자신의 권력이 통하지 않는 곳. 결국 다시 한 번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놈이 이 전쟁을 겪었더라면 각 국가의 사정마저 상세히 적을 수 없었겠지. 또한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의식이 방해받아 시간대가 달라졌다네. 만약 정상대로였다면 히틀러나 스탈린 둘 중 하나가 넘어왔을 터."

"··· ···"

"그리고 소환 의식이 진행된 시간과 놈이 넘어온 시간의 차이는 약 100년 정도가 날 거라네."

"어째서 100년이지? 소환 의식에서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고 했을 텐데."

"100년이면 '역사'로 남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니까."

노인은 요점을 제대로 짚었다. 아이작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음에도 핵심만 정확히 골라냈다.

비록 80년보다 더한 100년이라는 시간이었으나 상관없다.

그만한 시간 간극이 생겼다는 걸 추론한 것부터 대단한 것이다.

아이작이 이걸 들었다면 압도적인 지혜를 갖춘 노인을 경계했겠지. 그러나 청년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청년에게는 눈 앞의 진실만이 중요했으니까. 아이작이 피와 강철과 같은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것 자체부터 못 믿었다.

"그러면 놈도 결국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영혼이라는 건가?"

"그렇지. 그에 대한 반증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이래도 못 믿겠는가?"

"당연히 못 믿지."

청년이 피와 강철을 '판타지'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원인.

"어떻게 사람이 이 정도로 멍청할 수가 있는지 궁금하거든."

"사람의 목숨은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날아갈 수 있다네. 이건 자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걸세."

"그렇긴 하지."

노인의 반박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따로 반박할 생각이 없던 모양.

그럼에도 청년이 못 믿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전술 초보자조차 가축을 끌고 정글로 들어가지는 않아. 작정하고 한 국가를 머저리로 만든 거지."

"일본을 말하는 거군. 그래도 미드웨이 해전 전까지는 잘 싸웠던 걸로 아는데."

"그런 놈들이 검만 들고 돌격했지."

'상식'과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으니.

"이게 실제 역사라면 놈은 머저리 같은 세상에서 온 거지."

그 머저리 같은 역사 덕분에 인류는 핵폭탄을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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