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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33)화 (634/763)

Chapter 632 - 건강한 몸(1)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사실 이 말은 원래 비꼬는 용도로 쓰이던 말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몸으로 하는 일이 많아 자연스레 몸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몸만 키우지 말고 책도 좀 읽으라는 비판에 가깝다. 중세 기사들이 깡패에 가까웠다는 걸 상기하면 안다.

심지어 자신이 문맹이라는 거에 자랑스러워했다니 적어도 중세까지는 비꼬는 형태로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교육의 양질이 늘어나면서 스포츠계의 명언으로 자리잡았다.

격투기 선수들이 함부로 무력을 과시하지 않는 걸 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본인이 위험하다는 걸 잘 알기에 스스로 절제하고, 그 절제력은 단련된 신체로부터 우러러 나왔으니.

"건강한 몸을 얻는다면 인내력이 강해진단다. 그건 너도 알고 있을 테고."

"으그그극······!"

"사람은 가장 먼저 대상의 외모부터 확인하지. 설령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건강한 신체를 보면 저절로 경건함이 든단다."

나는 루미너스의 설파 아닌 설파를 귀에 담지 못했다. 왜냐고?

지금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는 중이거든. 고작 팔굽혀펴기를 하는데 오만상을 쓰냐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팔굽혀펴기라면 내가 빌빌거리지도 않았다. 신성력으로 신체가 월등히 강해졌는데 팔굽혀펴기는 껌이다.

"으어어······"

결국 모든 힘을 쏟아낸 내가 바닥에 쓰러졌다. 온 몸의 힘을 빼버리자 어마어마한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등에 올린 것도 없는데 무슨 중압감이냐 할 수 있다. 여기서 루미너스가 약간의 조작을 거쳤다.

공간의 중력을 몇 배로 올린 것이다. 덕분에 드래곤볼 속 등장인물의 기분을 만끽했다.

"슬슬 정신력이 바닥났을 테니 휴식을 하마."

딱!

내가 오징어처럼 완전히 퍼져버리자 루미너스가 휴식을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내 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숨조차 쉬기 힘들었는데 숨통이 트인다.

나는 엎드려있던 몸을 간신히 뒤집었다. 갈비뼈를 너머 폐까지 짓누르던 압박감이 완전히 사라지니 살 것 같다.

"허억······ 허억······"

"살만하니?"

숨을 가삐 몰아쉬고 있을 때 옆에서 루미너스가 말을 걸었다. 그게 말이냐 방구냐라고 받아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력도 없다. 정신력은 물론 기력까지 완전히 바닥나 대꾸하지도 못했다.

단지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지. 루미너스라면 내 속마음도 읽을 수 있으니 상관없다.

"잠들지 않고 욕하는 걸 보니 아직 기력이 남아있는 모양이구나?"

곧바로 죄송하다고 속으로 외쳤다. 지금은 운동은커녕 가만히 있는 것조차 힘들다.

루미너스도 장난이었는지 약하게 웃어넘겼다. 다행히 억지로 몸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듯하다.

"후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점점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하얀 백색 공간이라 그런지 하늘도 하얗다. 내가 이곳에 들어선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바깥 기준으로 3시간이 지났단다."

"······여기는요?"

"보름 정도?"

그렇다면 보름 내내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신체만 주구장창 단련했다는 건가. 이제는 헛웃음도 안 나온다.

처음 루미너스가 '건강한 신체'를 먼저 만들어야 된다 했을 때는 의문을 가졌다. 내 몸은 객관적으로도 튼튼했으니까.

하지만 신이자 초월자인 루미너스에게는 달랐다. 그가 언급한 건강한 신체는 그 어떤 힘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버티는 신체다.

그 힘에는 신앙도 포함돼 있다. 훗날 신성이 완성되고도 건강한 신체가 없다면 시름시름 앓다가 소멸될 거라고.

남에게 신성력을 하사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자기자신이 버틸 수 있는 '그릇'이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발전소 역할도 해야지. 혹시 사람의 몸에서 전기 에너지가 생산된다는 건 알고 있니?"

"······들어본 적은 있어요."

"그거랑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된단다. 간단히 축약하자면 현재 이 세상처럼 네 몸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셈이지."

그것 참 알기 쉬운 설명이로군요. 비꼬는 게 아니라 단숨에 이해가 가는 거라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사람의 몸은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하루에 1만 칼로리를 소비하는 운동 선수도 그 이상은 힘들다.

현재 내가 거치고 있는 작업은 내 몸을 발전소로 바꾸는 것. 그냥 마력 기관을 다는 거라고 보면 편하다.

대신 사람의 몸이 기계도 아니고 오히려 기계보다 더 복잡하다. 이런 운동만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내가 곁에서 도와주고 있는 거잖니? 다시 강조하지만 신성력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완성시키는 거란다."

"너무 힘든데요······"

"설마 날로 먹으려 한 건 아니지? 무려 신성력을 전달하는 성자가 되는 건데 말이야."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우셨데. 나는 루미너스의 따끔한 지적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는 것이, 예수와 부처도 각각의 고행을 거쳐 성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형은 너무 유명하니 따로 말이 필요없는 수준이지만 부처의 경우는 특이하다.

세상에 알려진 고행을 자기가 전부 체험하고 '이건 아니다'라며 딱 잘라 말했으니.

반면에 나는 거의 날로 먹는 식으로 진행됐다. 루미너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성자가 되기는커녕 필멸자로 살았겠지.

지구의 성자를 생각하다보니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루미너스와 모라의 교리를 전파한 최초의 신자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이라면 충분히 '성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단지 루미너스와 모라가 어떤 신화적인 업적을 이룩했다는 것만 기록됐지. 그 이상은 없다.

"··· ···"

그 생각을 가진 채 고개를 돌려 루미너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말이지 '건강한 신체'에 어울리는 크레토······ 아니, 루미너스의 몸이다.

뒤이어 내 생각을 읽은 루미너스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쓴웃음에 가까운, 정말 복잡한 미소다.

"······예수의 부활과 부처의 깨달음에는 지구의 최고신이 직접 관여했단다. 그들로 하여금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지."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닌가 보네요."

"그들은 자기들을 믿는 신자로 하여금 성자에서 신으로 승천할 수 있었지. 이처럼 신앙을 지닌 신자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단다."

"··· ···"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이제 슬슬 피와 강철도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그들의 과거도 조금씩 풀 때가 됐다.

우선 루미너스가 만물과 바다의 아버지를 쓰러뜨리고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건 안다. 그 과정에 수많은 신들이 소멸됐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현재 알려진 신화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속에 담긴 이야기가 나올 듯했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도록 하마.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신은 어떻게 될까?"

"소멸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소멸의 조건이란다. 우선적으로 신에게 가장 중요한 '신성'을 잃어버리게 되지."

"그리 된다면 어떻게 되죠?"

신성을 잃어버린 신. 과연 그것을 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모라도 지구의 신이 걸어놓은 제약 때문에 아주 약간이나마 신성을 잃었다.

하지만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인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성마저 완전히 회복됐다.

그 누구도 모라를 믿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됐겠으나 루미너스 다음으로 믿는 신이 바로 모라였으니.

"··· ···"

내 질문에 루미너스는 잠깐 과거를 회상하는 듯,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어차피 과거의 일들은 그들이 먼저 말해줘야 됐으니.

곁에서 재촉해봤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신성을 잃어버린 신은······ 갈림길에 설 거란다."

"갈림길이요?"

"그래. 갈림길. 신성을 다시 되찾을 것인지, 아니면 조용히 늙어죽을 것인지."

신성을 잃어버린다면 필멸자로 격하되는구나. 그리고 루미너스와 모라는 다시 신성을 되찾은 모양이다.

아마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인 현재의 신화였을 테고. 그러면 그 신화를 퍼뜨린 성자는······

"스스로 성자가 된 건가요?"

"그렇단다. 필멸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설파하고, 그들을 위기로부터 구원해줬지.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자연스레 모라 또한 신성을 얻을 수 있단다."

"그때 히르트 님께서 성자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건가요?"

루미너스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히르트가 도움을 준 건 아닌 모양이다.

한때 신이었으니 승천도 스스로 한 건가 싶었다. 루미너스는 태생이 신이었으니까.

나처럼 필멸자에서 성자로 올라간 게 아닌, 신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진짜 신.

"어머니는 대지모신이라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단다. 오직 만물의 창조자셨던 아버지만이 가능했지. 당시에는 말이야."

"성자가 혼자서 승천할 수 없다는 거군요."

"그래. 특히 필멸자는 불가능하지. 시간을 다루는 방법조차 모를 테니까."

"그러면 루미너스 님은······"

필멸자로 격하됐는데 어떻게 스스로 승천하게 된 거지. 여러모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에 루미너스는 씁쓸한 미소를 띄우더니 아주 작은, 정말 작디 작은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아주 먼 과거, 아버지로부터 신성을 잃은 적이 있단다."

"그게 혹시······"

세계를 멸망시켰을 때의 일인가 싶었지만 아니다. 내 마음을 읽은 루미너스가 고개를 가로저었으니.

뒤이어 그는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이더니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옛날에 내가 좀······ 망나니였거든."

"망나니?"

"그래. 망나니. 망나니가 뭔지 알고 있지?"

당연히 알다마다. 친누나, 니콜이 나를 볼 때마다 망나니라고 부르는데.

그래도 쓰레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패륜을 저지르긴 했다지만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면 그때의 경험으로 승천할 수 있던 거군요."

"그런 셈이지. 그때 내 아······"

무언가 말하다 말고 다급히 입을 다무는 루미너스. 나는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은 듯한 그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미너스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떠들 때가 아니구나. 어서 일어나렴."

슬그머니 손을 들어올리면서. 저거 일부러 나에게 보여주는 거다.

"아. 잠깐만······!"

따악!

"꾸억!"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중압감이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아까보다 강도가 더한 것 같은데 착각인가.

"어서 일어나렴. 이번에는 하체를 키울 테니까."

"으그그그극······!"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자, 어서 일어나."

몸과 정신 모두 피폐해질 것 같은데.

이처럼 건강한 몸을 가지기 위한 훈련은 며칠동안 이어졌고.

"루미너스 님."

"말하렴."

"한 대 때려도 되나요?"

신에게 개길 수 있는 정신(깡)까지 터득했다.

"훌륭하구나. 정신이 신체를 따라잡다니. 강도를 더 늘려도 되겠네."

"잠깐만요."

재앙을 불러일으킬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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