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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31)화 (632/763)

Chapter 630 - 성자(2)

출판사 사장, 머스크에게 있어서 아이작은 훌륭한 사업 파트너를 넘어 물주 그 자체다.

매일매일 평범한 신문만 찍어내던 출판사를 귀족조차 쉽게 건드릴 수 없는 회사로 키웠으며 어마어마한 돈도 벌었다.

아이작의 위상을 등에 업은 덕분에 신분은 의미가 없어졌고, 돈은 돈대로 벌어들이니 그야말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에게 마음껏 투자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딸들 중 한 명은 귀족가의 혼담을 성사시켰다.

대신 시달리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기껏 키웠던 살이 쏙 들어갔지만 나이도 나이고 아내가 좋아하니 어련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니 머스크에게 아이작은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은혜라 할 수 있었다. 잘난 것 하나 없던 자신에게 내려준 한 줄기의 빛.

하지만 진짜로 성자인지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아. 그래요? 몰랐네요.]

아이작과 의견을 나눌 때마다 항상 나오는 말이다. 저런 어리숙한 면모를 볼 때마다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확신했다.

[글쎄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던데요?]

가끔 가다 기상천외한 발상을 떠올릴 때면 이 사람은 천재구나 싶었다. 가끔 시대를 앞서는 천재가 등장하지 않는가.

물론 '다른 세상'에서 사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작은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더욱 인간적으로 대우할 수 있었다. 절대 그가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갑. 떠받들다 못해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되는 슈퍼 갑이다.

'다른 의미로 성자가 맞긴 하지.'

자본의 신이 있다면 아이작이라 할 수 있다. 황금의 손마냥 무언가 건드릴 때마다 초대박을 터뜨리니까.

반쯤 손을 뗐다는 콜 오브 듀티도 그의 승인이 아니었더라면 성공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의 조언까지 추가하니 예상을 한참 웃도는 성공을 이룩했다.

종교적인 의미와 거리가 먼 성자인 셈이다.

"어떤 이유로 저에게 아이작 님에 대한 걸 묻는 건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들이 계실 텐데."

머스크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케이트에게 대답했다. 아이작과 대했을 때와 달리 조심스러운 태도다.

아이작은 그동안의 인연으로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었지만, 케이트는 아니다. 그녀는 무려 추기경이자 대심문관이다.

더구나 인간 아이작이 아닌, 성자 아이작에 대해 질문한 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까딱했다간 '너 이단' 이럴 수 있지 않은가.

"머스크 씨가 말씀하신 그 분들은 현재 협조하고 계십니다. 어떤 연유로 아이작 님이 머스크 씨를 선택한 건지 궁금할 뿐입니다."

이에 케이트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답해줬다. 그 옆의 체리는 대화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첩을 꽉 쥐고 있다.

서로 상반된 분위기의 미녀들이 각자의 매력을 뿜내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로서는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아까도 강조했듯이 말을 잘해야된다. 아이작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나오면 목숨이 날라갈 수도 있으니.

평소 케이트의 소문이 딱 그랬다. 신을 숭배하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모욕하면 목숨을 걸어야 된다.

머스크는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아이작 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살살 눈치를 보며 밑밥을 깔았다. 괜히 다 털었다가 끔찍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다행히 케이트는 상관없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습니다. 대신 오직 진실만 얘기해주세요. 거짓을 고할시······"

"성심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눈치 백단답게 재빨리 대답하는 머스크. 그는 분위기가 바뀌려는 징조를 느끼고 바로 대답했다.

케이트도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은연히 풍기던 기세를 거두었다. 이제 남은 건 아이작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이다.

머스크는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우선 아이작을 보았을 때 생각나는 건 한 가지.

"아이작 님께서는······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성격이십니다."

"흠.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 ···"

사사삭- 사삭-

머스크가 입을 열자마자 케이트는 추가 설명을 부탁했고, 체리는 말없이 수첩에다 기록했다.

평범하디 평범한 인터뷰에 머스크는 한시름 내려놓고 아는대로 말을 꺼냈다.

"한 번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겁니다. 추기경 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상은 신뢰하는 사람도 배신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예."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락한 추기경 사태만 보아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성격상 인맥을 넓게 다스리지 않고 좁지만 촘촘히 맺는 편이다. 덕분에 한 사람 한 사람 교감이 깊다.

하지만 그 사람을 깊게 맹신하는 경향이 짙은 편이다. 이건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성격인지라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당하는 놈이 바보고 당하는만큼 돌려줄 수 있는 시대라지만, 지구 문명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작은 여러모로 불편할 수도 있다.

"다행히 아이작 님을 등쳐먹······ 흠흠. 실례했습니다. 아이작 님을 속이는 사람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보이기는 하죠. 노스 같은 자도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진짜 예언가로 추종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케이트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작의 명성에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내놓던 작가.

처음에는 직접 찾아가서 조져버릴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희한하게도 그의 예측대로 전개가 진행됐다.

덕분에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노스는 아이작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런 거구나라고.

오히려 아이작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어서 한 번쯤 찾아갈까 고려 중이다.

"아무튼 속이기 쉬운 분이라는 거죠. 의심하지 않고 편하게 믿는 타입이라 해야 될까요?"

"의심할 바에야 속는 편이 낫다라······ 알겠습니다."

"··· ···"

스스슥- 스슥-

케이트의 해석(?)에 체리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현실적인 성격이 한순간에 종교적인 성격으로 탈바꿈됐다.

머스크는 눈 뜨고 코 베이는 느낌에 눈을 깜빡거렸다. 맞는 말이긴 해도 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한순간에 성자스러운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아이작 님이 머스크 님에게 성서의 판매를 맡긴 것도 이 성격 덕분이겠군요."

"그렇······ 겠죠? 다만 처음에는 부담감 때문인지 익명으로 원고만 보냈습니다."

"머스크 님에게만 보낸 겁니까?"

"네."

"어째서죠?"

케이트가 호기심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체리도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머스크는 달라진 둘의 반응에 당혹스러워하다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는 호크가 직접 찾아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에는 회사의 규모가 작았으니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출판사였다. 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

지금은 언론사도 겸하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규모가 훨씬 작았다. 애당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귀족밖에 없기도 하고.

호크가 자신의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이작에게 듣기로는 자기 아버지에게 맡긴 거라 본인도 모른다.

심지어 제논 일대기 판매 이전에도 성실하게 탈세(...)를 저지르고 다녔다. 세금 징수관에게는 열심히 뇌물을 먹였고.

절대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정직해야 잘 사는 법이었으니까.

"글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이작 님은 호크 씨에게 맡겼고, 호크 씨가 출판사에 찾아와 계약을 맺었으니까요."

"그 누구도 이유를 모른다······ 이 말입니까?"

"예."

"그렇다면 운명이라 할 수 있군요."

"예?"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머스크는 불신자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맹렬히 추종하는 신자도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던 일반인. 지금은 돈이 썩어넘칠 정도로 많은 일반인이다.

그런데 갑자기 운명이라니. 종교와 거리가 멀었던 그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만약 신이 들었다면 헛웃음을 흘리지 않았을까. 양심이 찔리는 수준이다.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아이작 님과 머스크 씨가 연결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머스크 씨께서는 아이작 님과 끝까지 의리를 지키셨죠."

"네, 뭐······"

머스크는 떨떠름했다. 아이작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킨 건 맞다.

하지만 거기에는 계산이 깔려있다. 아이작과 의리를 지킨다면 돈이 더 많이 들어올 거라는 계산.

귀족들이 찾아와도, 알븐하임에서 원로원이 찾아와도, 그보다 높으신 분이 찾아와도 끝까지 아이작을 모른다고 잡아뗐다.

물론 초고 도난 사태가 발발한 탓에 탈세 건으로 잡혀간 적이 있지만, 그것마저 뇌물로 겨우겨우 만회시켰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이작 님을 배신했을 겁니다. 허나 머스크 씨는 그러지 않으셨죠. 세상에 몇 없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 것.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 ···"

케이트의 신박한 해석에 체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기록했다. 머스크 입장에서는 다시 한 번 눈 뜨고 코를 베인 셈이지만.

사고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면 저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정말로 성자가 맞나?'

종교와 거리가 멀었던 머스크마저 그런 의문을 품을 정도였다. 그만큼 케이트가 달변을 퍼붓고 있다.

"게다가 머스크 씨께서는 한때 악마 숭배자에게 습격을 당했던 적도 있었죠. 목숨이 위험한데도 성서가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보호하기까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로 포기했겠죠."

"그건 그냥 돈이 많아서······"

"또한 신전에서 제논 일대기를 판매할 계획까지 세우셨더군요. 비록 무산되었으나 머스크 씨도 사명감을 가지고 계셨을 겁니다."

"그것도 돈이 많아서······"

"그리고······"

안 되겠다. 이제 포기해야겠다.

말을 해도 자기 좋을대로 해석해버리니 머스크는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케이트만 그러면 모를까, 체리마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니 환장할 노릇이다.

자신은 그저 자본의 노예이자 물욕에 충실한 인간. 아이작을 믿으면 돈이 알아서 넝쿨째 들어오는데 그 누가 포기하겠나.

"아이작 님을 믿으면 돈이 굴러와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솔직담백하게 대답했다. 돈 하나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역시! 머스크 씨께서도 아이작 님을 믿고 계셨군요!"

"··· ···"

안 되겠어, 이 여자. 어떻게 하지 않으면······!

머스크는 푸른 눈동자 속에 번들거리는 광기 아닌 광기에 몸을 흠칫거렸다.

도대체 아이작이 어떤 식으로 다스렸는지 모르겠다. 앞날이 창창한 여자의 미래를 완전히 고정시켜버렸다.

"······역시 선배님."

또 한 명. 옆에서 조용히 수첩에 기록하고 있는 체리도 포함이다.

머스크는 선교사처럼 아이작을 숭배하는 케이트를 바라보면서 땀만 닦았다.

이러다가 나중에 벌어들인 돈으로 장난질을 쳤다는 게 들킨다면? 보나마나다.

"케이트 추기경 님. 추기경 님의 생각처럼 전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탈세를 비롯한 부정부패를 저지른 건 물론, 아이작 님 덕분에 벌어들인 돈으로 장난까지 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식으로 저질러버렸다. 평생동안 가슴 졸이며 살 바에야 시원하게 맞는 게 낫지.

"그게 무슨 말이죠? 아이작 님의 은혜로 장난을 쳤다니?"

충격요법인지 광신도로 바뀔 뻔한 케이트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 눈에는 의문과 불신이 담긴 채.

머스크는 이제 좆됐구나 싶더라도 할 말은 하기로 정했다. 어차피 나중에 사라질 목숨 지금 얻어터지는 걸로 끝내자고.

"말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된 거냐면······"

머스크의 석고대죄는 줄줄이 이어졌다. 전부터 꾸준히 저지르고 있던 탈세부터 시작해 장부 조작 및 뇌물 공수까지.

물론 이후에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도 돈이 많다보니 죄다 귀찮아서 안 하고 있다. 귀찮게 할 바에야 다 내고 말지.

그렇다고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머스크는 옛날에 저질렀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하여, 아이작 님에게 전달될 돈을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

"어느 정도죠?"

"비율로 따지면 한 1% 정도······?"

그것조차 많은 금액이었다. 그걸로 뭘 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뒷돈이다.

대공황 이후 공장이 설립되자 알아봐야 할 곳이 많아도 너무 많아졌으니까.

케이트는 머스크의 고해성사 아닌 고해성사에 싸늘한 눈빛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아이작 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 어느 정도 눈치채고 계실 겁니다. 평소 돈에는 큰 관심이 없는 분이라······"

"신뢰하는 자에게는 풍요를, 스스로에게는 겸허함을."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머스크는 당황한 얼굴로 케이트를 쳐다봤다.

그녀는 또다른 교리(?)를 창시하고 있는 건지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무언가 중얼거리던 케이트는 눈을 천천히 뜨며 머스크를 바라봤다. 전보다 가라앉은 눈빛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살인, 강간, 약탈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으셨나요?"

"그,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상인으로서 편법을 저지를지언정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반드시 지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머스크의 격렬한 부정에 케이트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도리어 머스크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작 님께서는 신뢰하는 자에게 풍요를 주시는군요.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자에게 말이죠."

"··· ···"

"알면서도 눈 감아 준다는 건······ 마치 부모 같은 느낌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맛있는 걸 사기 위해 부모의 지갑을 건드린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는 그걸 알면서도 눈 감아 주는 편이고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머스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듣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인터뷰는 장장 2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머스크 씨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훗날 '책'이 완성된다면 아이작 님이 신뢰하는 머스크 씨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저야 괜찮습니다만······"

"돈은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사명이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머스크는 성자에 이어 성녀들의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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