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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29)화 (630/763)

Chapter 628 - 신성력(2)

루미너스의 설명에 따르자면 신성력의 본질은 '시간'이다.

신자가 기도를 통해 시간을 소비하고, 그 소비된 시간이 일종의 에너지가 변해 신들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신성력은 신자가 '시간'을 간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치유도 따지고 보면 자연 회복력을 늘려주는 거란다. 대신 어떤 부분을 회복시킬지는 사용자의 역량에 달렸지.]

'예를 들면요?'

[팔이 절단되는 상황이 있지. 대부분의 성직자는 지혈하는 수준밖에 안 되지만, 역량이 뛰어나다면 절단부를 접합시킬 수 있단다. 성직자들이 기본적으로 의술을 배우는 이유가 이때문이지.]

전에 말했듯이 신전은 병원의 역할도 겸하고 있으며, 성직자는 의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루미너스가 말한대로 무작정 신성력만 쏟아부어서 해결되는 건 거의 없다. 어디를 치료해야 할지, 어디를 고쳐야 할지 정해야 된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의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뭔가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럼 저도 의술을 배워야 된다는 건가요?'

루미너스의 말은 즉, 의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신성력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중세 시대의 의술이라지만 의술은 의술. 미치도록 어려운 걸로 유명하다.

물론 가끔 가다 돌팔이 같은 의술사가 있긴 해도 시대의 한계로 어쩔 수 없다.

[배우고 싶으면 배워도 된단다. 너는 꼭 배울 필요가 없거든. 아까 말했다시피 가장 중요한 건 신성력을 전달하는 방법이지,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니까.]

'휴우······ 다행이네요.'

[그럼 설명을 이어가마. 너의 신성력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 그중 제일 원초적이고 쉬운 방법이 성교란다.]

'··· ···'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건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빡거렸다.

신의 입에서 성교라는 말이 나오니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그래도 진지하게 말한 거라 태클을 걸 수가 없다.

[솔직히 그 행위만으로 충분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다른 방법도 생각해야지. 그 방법이 바로 '성수'란다. 어쩌면 신성력이 넘쳐나는 너에게 제일 쉬운 방법일 수도 있겠구나.]

'성수요? 세례를 받을 때 부어주는 그 성수?'

[그렇단다. 전에 모라가 말해주지 않았니? 물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좋다고.]

듣기는 들었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시작점 그 자체.

물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생명은 살아갈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모라가 물을 자주 마시라고 조언했던 것도 에너지의 기초를 담당하는 물질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것과 같은 원리란다. 성교가 원초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성수는 물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몸 전체에 퍼지도록 해주는 셈이지. 둘 다 사용하면 더 좋을 거란다.]

'성수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건가요?'

[그렇긴 하다만 처음에는 힘들 거란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하지. 우선 작은 컵에 담긴 물을 성수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서, 신성력으로만 성수로 만드는 일까지.]

'차이점이 뭐죠?'

듣기만 하면 별 차이점이 없을 것 같다. 물을 성수로 만드는 것과 신성력을 성수로 만드는 것.

어찌 됐던 간에 둘 다 물이지 않은가. 약간 의아해진다.

[온갖 오렌지 원액으로 제작한 오렌지 주스와 오렌지를 짜내서 만든 오렌지 주스의 차이라고 보면 된단다.]

'아하.'

저렇게 설명하니 단번에 이해가 간다. 오히려 내가 빡대가리였나 싶을 정도다.

원액이 진하면 진할수록 성수의 질도 대폭 상승할 터. 루미너스의 말로는 케이트조차 신성력으로 성수를 만드는 건 힘들단다.

반면 나는 그보다 신성력이 훨씬 많은데다 자체 생산(?)까지 되기에 수월할 거라고. 게다가 자기들도 도움을 줄 거라 말했다.

'어지간히도 일이 많나 보네요?'

[흠. 흠.]

부정은 못하는 루미너스. 그들 입장에서 직원이 늘어나야 일이 편해지니 눈이 돌아갔겠지.

나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니어서 순순히 들어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신성이 완성될 수밖에 없다.

'성수의 효능은 어떤 게 있나요? 마시기만 하면 에너지로 치환된다지만 피부에 바르거나 다른 용도로 쓴다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다. 피부에 바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한 거니?]

'그냥 머리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잘 자라나는 것 정도? 제 머리카락은 아예 긴머리로 고정됐잖아요.'

이제는 잘라도 잘라도 다음 날이 되면 원상복구돼 있다. 이것도 신성과 연관된 건지 궁금하다.

아마도 모라가 장난을 쳤을 때 내 유전자를 건드린 듯한데, 지금은 나도 딱히 바꿀 생각이 없어서 그냥 방치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장발로 유지되는 건 모라의 장난이란다. 탈모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없으니 신성력만 넣으면 끝이거든.]

'그럼 탈모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신성력은 독이라는 건가요?'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면 된단다. 자라는 속도보다 빠지는 속도가 느리면 머리카락은 자라니까.]

'오······'

그렇다면 성직자들은 전부 탈모에서 벗어나는 건가. 지구에서도 동서고금 막론하고 많은 위인이 탈모를 막으려 애를 썼다.

로마의 황제를 비롯해 철학가, 예술가 등등. 여러 위인들이 동물의 똥오줌을 머리에 바르면서까지 탈모를 막았다.

죄다 쓸모없었지만. 그나마 지금은 약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으나 '완치'는 불가능한 불치병이다.

[물론 신성력이 풍부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을 거란다. 대신 질병으로 인한 탈모는 완치할 수 있겠지.]

'유전은 답도 없다는 건가요?'

[탈모 유전자를 제거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하면 모르겠구나. 지구에서도 이건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답이 없다는 거구나. 역시 문명의 탄생 이후부터 이어져 온 불치병답다.

그래도 신성력으로 탈모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부터 대단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몇몇 사람이 그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머리카락을 자라나게 하는 것만으로 신앙심이 투철한 사람이 있나요?'

[의외로 많단다. 특히 그 아이들이 죄를 지었을 때 머리카락을 죄다 빠지게 만들었지.]

'··· ···'

아, 악마다. 악마가 여기 있다!

나는 악마 숭배자 못지 않은 신의 천벌에 몸을 흠칫 떨었다.

어쨌거나 신성력으로 제작한 성수는 마시지 않는 이상 아무런 효과가 없다.

우리의 몸은 물이 70%를 차지하고 있고, 성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셈이니 점차 적응할 터.

중간중간 애인들과 뜨거운 밤까지 지낸다면 내 신성력에 익숙해지는 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언제부터 할 건지 물어봐도 되겠니?]

'일단 오늘은 맛보기로 할게요.'

[그럼 눈을 뜨렴.]

나는 루미너스의 말을 듣자마자 조용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매우 익숙한 흰색 공간에 눈 앞에 펼쳐졌다.

보아하니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든 모양이다. 나야 상관없지만.

"우선 신성력을 끌어올리는 것부터 연습하는 게 좋겠지."

"네······ 응?"

자연스레 대답하다 말고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원래 신들과 대화할 때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로 뒤에서 익숙하디 익숙한 루미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를 돌아보니 이게 웬걸.

"······루미너스 님?"

반짝거리는 금발벽안의 미남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굉장한 미남이다.

신학 관련 서적을 봤을 때 묘사됐던 루미너스의 얼굴은 확실하다.

"이런 식으로 보는 건 처음이지?'

루미너스가 온화한 미소로 부드럽게 말한다. 말투만 본다면 세상을 한 번 멸망시켰다던 '전쟁의 신'과 거리가 멀다.

그래. '얼굴'과 '말투'만 보자면 말이다. 나는 멍한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슬금슬금 내렸다.

그는 편안한 옛날 복장 즉,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볼법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나풀거리는 옷 안으로 그의 몸이 대부분 드러났다는 뜻이다.

"어······ 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꾸만 얼굴과 몸을 번갈아보게 된다.

얼굴은 작은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데, 목 아래로는 여러 의미로 굉장하다.

우선 신체부터. 우선 내가 고개를 살짝 들어야 할 정도로 키가 매우 크다.

아버지조차 키가 190cm를 넘기지 않으신데 루미너스는 한참 웃돌고 있다.

두 번째로 체격. 얼굴이 작은 것도 있겠지만 어깨가 정말 넓다. 특히 승모근이 장난 아니다.

근육은 또 어떠한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도 저 근육은 조각하지 못할 것 같다. 석상으로 봤을 때조차 저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흉터. 전쟁의 신인만큼 다양한 전쟁터를 누볐을 것이며, 그에 따라 흉터가 많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무언가 관통된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복부를 제외하면 흉터가 거의 없다. 가끔 가다 팔에 몇 개 있는 정도.

"······루미너스 님?"

"왜 부르니?"

정말로 루미너스가 맞구나. 나는 보기만 해도 위압감과 숭고함이 전해지는 그의 풍모에 얼떨떨해졌다.

모라를 직접 마주했을 때는 철없는 여신으로만 느껴진 반면, 루미너스는 뭐랄까.

"다시는 깝치지 않겠습니다."

깝치면 죽는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루미너스는 진지하디 진지한 내 말에 부드럽게 웃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래. 잘 하자."

내가 깝칠 거라는 미래를 보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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