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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28)화 (629/763)

Chapter 627 - 신성력(1)

신성력은 마나와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에너지다. 마나는 일반인들도 얻을 수 있는 반면 신성력은 신이 직접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직자이며, 성직자가 아닌데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신의 '은총'을 받았다던 케이트도 루미너스가 신성력을 주지 않는 이상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신들은 '발전소' 역할을 하는 거고 성직자가 '전기'를 받아먹는 기계인 셈이다.

'신성력 자체는 누가 전달하든 성질이 똑같은 건가요?'

[다르단다. 관장하는 영역이 다르니 신성력의 성질도 다를 수밖에 없지.]

루미너스를 믿어도 상관없고 모라를 믿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둘 다 믿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둘 다 믿는 건 이른바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지기에 권장하지는 않는다. 그냥 잡캐가 된다나 뭐라나.

나 같은 경우는 신성력을 대부분 체력 즉, 신체에만 투자하고 있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반쪽짜리지만 신성이 생겼으니 너만의 신성력을 가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단다. 지금도 적지만 알아서 신성력이 생기는 수준이니.]

'무한동력이라는 뜻이네요?'

[세상에 무한동력은 없단다. 너를 믿는 신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신성력이 채워질 뿐.]

루미너스는 딱 잘라 말했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나를 진심으로 숭배하는 신자가 늘어나면 회복 속도가 더 빨라진다. 신앙이 그런 거니 이해할 수 있다.

대신 신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루미너스와 모라는 티격태격거리는 쌍둥이 남매신이라지만 동시에 경쟁자다.

애당초 둘이 관장하는 영역조차 상반되지 않은가. 전쟁과 평화는 동전처럼 공존하되 공존하지 않는 관계다.

'김칫국을 들이마시는 생각이지만 경쟁자가 늘어나면 안 좋지 않나요?'

[아니. 우리 입장에서는 좋지. 다른 영역을 관장할 존재가 늘어나는 거니까.]

루미너스의 설명은 이렇다. 히르트와 쌍둥이 남매신을 제외한 다른 신들이 소멸 혹은 영면에 든 상황.

세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건 괜찮지만 지구에 비해 효율이 월등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신들을 보조해주는 천사마저 탄생하지 않는 상황이다.

일감이 미친듯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신들께서 특정 분야를 담당하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에 지나지 않나요? 신성력을 주는 걸 제외하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인류와 똑같단다. 세상을 안정시키고 외부의 침략을 막는 등. 인류가 3차원에 존재한다면 초월자는 차원을 뛰어넘는 곳에서 활동하는 셈이지.]

'··· ···'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문과라서 그런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신이 된다면 일감이 줄어든다는 건 알겠다.

이건 기업의 직원이지, 신이 아니잖아.

[겸사겸사 과학 공부도 해야겠지. 우선 중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법부터 가르쳐줄까?]

'저 그냥 나갈게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저 말은 어떻게 또 알고 있는 거지. 지구에서 배우고 오신 건가.

내가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루미너스는 작게 웃더니 장난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나와 모라가 각각 고유의 신성을 가진만큼, 너 또한 고유의 신성을 가질 날이 올 거란다. 그때 너의 신성이 어떤 능력을 띄는지 알게 되겠지.]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절대 아니란다. 신성력은 초월자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거든. 예로 들어 물은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거지만 종류가 다양하잖니?]

이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본질은 같아도 성질이 다르다는 거구나.

그러니 훗날 나만의 신성을 가지게 됐을 때 어떤 효과를 지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효과를 지니는지 예상할 수 있나요?'

[전혀. 대신 신성만 그렇지, 신성력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란다. 나와 모라도 효율은 다를지언정 효과는 어느 정도 비슷해.]

맞는 말이다. 모라가 루미너스에 비해 정신적인 분야에 강하다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다.

모라의 신앙이 강해지기 전까지는 루미너스의 신자도 정신 관련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신앙은 발전소고 신성력은 전기다.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 네가 신경 써야 할 건 신성력을 보다 더 잘 쓰는 법이란다. 신성력이 알아서 회복되는 수준이니 효율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지.]

'남을 치료해주거나 기운을 복돋아주는 것밖에 되지 않나요?'

[또 하나 있잖니?]

'그게 뭐죠?'

[수명.]

수명이라는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신성력을 지닌 사람은 수명이 한계까지 늘어나는 걸로 안다.

하지만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각각의 존재마다 수명은 정해져 있으니까.

장수족인 엘프와 마족조차 1000년이 한계선이다. 그만큼 오래 살 뿐이지 그보다 더 오래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루미너스는 그 수명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신성력으로 수명을 좀 더 늘릴 수 있을 거란다.]

'이미 그러고 있지 않나요?'

[네가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포함해서.]

'··· ···'

어떻게? 루미너스의 말을 듣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신성력이 많은 사람이어도 영생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모라의 신성을 섭취했기에 그나마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과 애인들은 아니다.

[대신 너는 물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조건을 갖춰야 된단다. 너는 완전한 신성을 얻어야 하고, 네가 사랑하는 애인들은 네가 그랬듯이 너의 신성을 섭취해야하지. 그리 된다면 수명의 한계는 초월할 거란다.]

'······제가 모라님의 신성을 먹었을 때 큰일날 뻔했죠.'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맞아. 사랑하는 애인들이 버틸 수 있도록 네가 곁에서 도와줘야겠지. 그 전에 적응해야 될 테고.]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는 잠깐 말을 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수명의 한계를 초월한다. 이걸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였다.

제논이 아닌 아이작을 먼저 지켜봐주고, 더 나아가 세실리를 시작으로 많은 여인을 허락한 그녀.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다. 나는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겠지만 마리는 아니다.

많아도 100년이 흐르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터. 과연 그때 버틸 수 있을까.

'세실리는 그리워하면서 살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다. 평생동안 기억에 남을 여인인데 그리워하며 살아가기는 힘들다.

물론 마리의 의견도 물어봐야겠지. 평생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내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생각해볼게요. 이건 저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더 중요할 것 같으니.'

[그러렴. 그러면 이제 신성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줘도 되겠니?]

'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상의를 해봐야 될 것 같다. 애당초 내가 신성을 완성시킬지도 미지수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필멸자로 살아가는 선택지도 있다. 세실리의 말마따나 그리워하면서 살다가 영면에 드는거지.

내가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루미너스가 나에게 신성력을 설명해줬다. 솔직히 별 거 없을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건 하나란다. 나나 모라가 아닌, 이제는 너 자신을 믿으며 신성력을 사용해야 되지.]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다른 신자들이 기도를 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잖니? 빛의 루미너스시여라던가 아니면 안식의 모라시여라던가. 이른바 신앙심이라는 거지.]

'어······'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내가 직접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되는 건지, 아니면 전파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모세처럼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보여줘야 되는 건지 고민하고 있을 때쯤, 루미너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신성력을 '전달'하기 위한 초석에 지나지 않는단다. 사용하는 건 엄청 쉬우니까. 대신 우리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너 스스로를 믿어야 된다는 게 차이점이지.]

'음······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좀 더 세세하게······'

[발전소가 어떤 원리로 전기를 전달하는지 설명하는 건데 괜찮니?]

'추상적인 방법으로 가죠.'

역시 나는 문과가 체질이다.

*****

아이작이 루미너스로부터 교습 아닌 교습을 받고 있을 시간.

루미너스와 아이작의 열렬한 추종자, 케이트는 신전의 자기 방에 머물면서 한창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기도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자신의 신앙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그에 따른 감격. 점점 커져가는 아이작을 향한 마음까지.

아이작의 예상대로 그 마음에는 '욕망'도 섞여있었다. 지금도 하얀 뺨에 홍조가 인 채 기도를 읊고 있었다.

"아이작 님의 씨앗을 온전히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제 몸과 마음을 순결히 유지하도록 다짐하겠습니다. 또한······"

똑똑똑-

케이트가 요망하면서도 순수한 기도문을 읊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조용히 노크했다. 그와 동시에 케이트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누구도 노크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딱 한 사람만 예외로 뒀다. 아마 그 사람이 온 듯하다.

이에 그녀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문 쪽을 쳐다봤다. 이윽고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끼익-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케이트는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분홍색 머리카락.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과 달리 어두침침한 분홍색 눈동자.

케이트와 함께 '공동집필'을 할 예정인 문학소녀, 체리였다. 아카데미에 있어야 할 그녀는 케이트의 부름에 따라 마이샬 영지를 방문했다.

자그마치 추기경, 그것도 교황 다음의 권위자의 부름이었기에 로즈베리 가문에서도 기꺼이 응답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체리.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네······ 잘 지내고 있었어요······"

항상 밝은 분위기를 띄는 케이트와 항상 어두운 분위기를 띄는 체리. 상극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둘은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우선 아이작이라는 공통된 분모가 있는데다가 바라보는 방식도 매우 흡사했다.

케이트는 '신앙'의 대상으로, 체리는 '동경'의 대상으로.

마지막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지, 두 사람 모두 아이작을 향해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미 '숭고한' 작업을 함께 하는 중이라 둘의 사이는 매우 가깝다. 핵융합이 일어나는 것마냥 대화가 통하는 것도 한몫했다.

케이트는 체리의 맞은편에 앉고는 이것저것 물었다. 그동안 뭘 하고 있었냐, 혹시 아카데미는 재밌냐 등등.

체리는 특유의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아주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케이트는 '친구'였으니까. 자신의 외모 및 가문만 바라보지 않는 친구.

더구나 은밀하지만 은밀하지 않은 취미까지 함께 공유하고 있어서 사이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체리도 신문을 보셨죠? 아이작 님께서 사실 신들께서 데려온 영혼이라는 걸."

"네······ 봤어요······"

체리는 작게 대답했다. 그 신문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눈이 살짝 커졌을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이작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맞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자신을 '구원'한 게 아니었다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찾아온 '성자'가 확실하다고 말이다.

케이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확신을 내렸으나 좋은 게 좋은 거니 넘어가자.

"저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아이작 님의 일생을 적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분의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 은혜를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을 찾는 것이 제 의무라고."

"··· ···"

"아이작 님의 곁에 계신 분들은 그 은혜를 마땅히 받을 분들이었죠. 그리고······"

케이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체리를 지긋이 응시했다. 체리는 그녀의 부담스러운 시선에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뒤이어 케이트는 확신에 가득찬 표정을 짓고는 체리에게 선언하듯이 말했다.

"체리도 그 중 한 사람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은혜라면······ 이미 받았는데요······?"

꿈을 이루어준 것만으로 은혜를 받았다. 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답하자 도리어 놀란 건 케이트였다.

"네, 네?! 버, 벌써······! 어, 어떻게?"

"그냥······ 선배님께서 먼저······"

둘 사이에 시작된 '오해'는.

"그, 그렇군요. 저도 어서 빨리 받아야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네······ 케이트 님은 친구니까요······"

핵융합을 넘어선 원자폭탄 제조의 과정까지 이르렀다.

"이, 일단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정말로······ 세상이 밝아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느낌은 다시는 못 느낄 거예요."

"와아······"

이제는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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