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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27)화 (628/763)

Chapter 626 - 엿(5)

가불기를 연타로 날리다보니 악마 숭배자도 어지간히 빡친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화가 나도 뭘 어찌할 수가 없는 게, 이미 그들만이 아는 암시를 뿌려놓았다.

사람들에게는 신들이 직접 데려온 영혼이라 말했지만 악마 숭배자들은 자기들이 소환하다 실패한 영혼인 걸 눈치챘겠지.

문제는 그 영혼이 제논 일대기를 창작해 자신들을 조져버렸다. 안 그래도 조부가 소환을 저지했는데 그 손자는 한 술 더 떴다.

이것만 본다면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를 터. 그런데 악마 숭배자가 원하는 피와 강철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악마 숭배자의 수작질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으며 심지어 나를 도와주려는 행동까지 취했으니.

물론 그들과의 적대 관계가 풀린 건 절대 아니다. 악마 숭배자는 죽어도 싼 놈들이다.

이번 일로 통해 언론사와 악마 숭배자를 동시에 엿 먹이고, 더 나아가 악마 숭배자들이 나를 절대 못 건드리도록 조치했다.

그들이 나를 건드린다? 이 세상에서 신이 '유일'하게 건드릴 수 없는 나를? 그러면 목표와 훨씬 멀어진다.

하물며 내가 직접 신들의 그림자 즉, 어두운 면과 관련된 신화를 집필할 거라 공표했으니 뒷통수가 얼얼할 터.

알면서도 걸릴 수밖에 없는 미끼이자 말 그대로 가불기다. 악마 숭배자는 이제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려야 되는 처지다.

[미네르바 제국. 지하 사원에서 소환이 된 정황이 있었다. 혼란 방지를 위해 각 국가와 협의했던 것으로······]

[헬리움. 제논과 헬리움은 한 몸이다. 제논에 대한 공격은 헬리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세이비어 교국. 루미너스께서 데려온 제논을 보호할 것.]

악마 숭배자뿐만 아니라 세계도 뒤집어졌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니까 뭔가 뽕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미네르바 제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직접 밝힌 사실이다. 사실 지하 사원에서의 소환은 반쯤 성공했고 그것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세계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기고 조사를 하고 있었으나 그 영혼이 나인 게 밝혀진 상황이다.

결과가 좋다 못해 세상을 구했으니 '통제는 잘못했지만 어쩔 수 없지'라며 넘어가는 추세다.

너무 성급하지 않았냐고 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쏙 빼놓고 말했다.

신들이 데려온 영혼이라고만 했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악마 숭배자는 눈치 깠겠지만.'

아마 지금쯤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을 것이다. 뒷목을 붙잡으며 기절하거나 길길이 날뛰거나.

상상만 해도 정말 맛있다. 그러게 누가 실패하래. 나는 피식 웃으며 신문을 들여다봤다.

악마 숭배자의 뒷통수를 강하게 때린 건 나뿐만이 아니다.

[신들께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구원하셨다!]

[교단을 방문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대폭 증가했다. 각 국의 수도의 신전은 사람이 너무 많이 방문한 나머지 시간별로······]

[3000년 전 발발한 악마 전쟁이 전면전이라면, 3000년 동안 일어난 건 조용한 냉전. 우리는 악마 숭배자로부터 모두 승리했다.]

세간에 이런 가설이 있다. 나는 신들이 데려온 영혼이며 세상을 구할 성자라고.

그런데 그 가설이 정확히 들어맞으면서(세상 기준) 필멸자들의 신앙심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어느 정도 전부 예상했던 반응들이라 편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마이샬 가문은 악마 숭배자를 세상으로부터 구해낸 영웅으로 우대받을 거고,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까지 이르렀다.

그래. 나는 딱 여기까지만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제논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루미너스와 모라의 신화 다음은 제논의 신화다. 제논이 승천한다면 제논을 위한 교단을 창시해야 된다.]

[30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영웅의 행보. 제논이 그 마침표를 찍을 것이며 세상은 악마로부터 안전해지리라.]

[각 교단마다 신들이 아닌 제논을 숭배하는 모습이 점차 늘어나······ 이에 신들은 호통을 치지 않고 신성력으로 보답했다.]

나를 예수나 부처마냥 '숭배'를 할 줄은 전혀 몰랐다. 단지 클라크 할아버지처럼 영웅 대우만 할 줄 알았다.

허나 하나하나 곱씹어본다면 충분히 숭배할만하다. 우선 신들이 데려온 영혼이라는 것부터 '신화적인' 내용이다.

영웅의 후손임과 동시에 신들의 배려로 탄생시킨 영혼. 그 영혼은 영웅의 뜻을 이어받아 평생의 숙적을 처단하고 업보를 청산한다.

동시에 세상의 문화 및 과학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차별받던 종족을 구원했다.

이게 신화지 아니면 뭐냐. 평범한 사람들은 눈 앞에 신화가 펼쳐진 셈이다.

엿은 악마 숭배자뿐만 먹은 게 아니다. 나도 달달하게 먹었다.

'심히 엿된 거 같은데 괜찮은 거 맞나요?'

그래서 루미너스를 찾아가 우려섞인 말을 꺼냈다. 세상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전까지만 해도 나를 신격화하는 움직임이 드문드문 존재했다. 그때는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반대다. 아예 본격적으로 교단을 창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만 해도 뒷통수가 얼얼한데 그 누구도 제지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루미너스와 모라조차. 내가 그들을 직접 찾아간 이유도 이때문이다.

[괜찮지 않니? 기왕 이리 된 거 진짜 성자가 되는 게 어떠니?]

'성자라는 게 양심을 팔아야만 될 수 있는 건가요?'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탄생한 결과다. 전생의 나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이었고, 환생 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악마 숭배자의 소환 의식과 클라크의 저지를 통해 넘어온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 할 수 있다지만 그 후에는 전부 우연이다.

제논 일대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엮어온 인연들. 실시간으로 나를 위협하는 악마 숭배자.

단순히 나비효과라 부르기에는 스케일이 말도 안 되게 커진 상황이다.

'루미너스 님.'

[말하렴.]

'루미너스 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정신적으로 평범하디 평범한 필멸자입니다. 제가 무슨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아닌데 숭배를 받는 건 좀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필멸자들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셨고,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고행에 나섰다.

또한 연구에 따르자면 두 사람 모두 신체적으로 강건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격하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성자들.

반면에 나는? 가족들과 애인들이 없었다면 진작에 절필하고도 남았다. 더구나 전생의 트라우마로 감정적인 부분이 이상한 경우가 있다.

'그러니 어떻게 안 될까요? 부담스러워서 미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이 사태는 우리도 어떻게 안 될 거란다. 괜히 막았다가는 혼란만 가중될 거란다. 차라리 시원하게 인정하는 게 낫지.]

'지구의 신들이 항의하지는 않나요?'

[절대 못하지. 우리가 널 못 건드리는 상황에서 신성을 얻은 거잖니? 그걸 빌미로 트집을 잡는다면 우리도 할 말이 있단다.]

'끄응······'

외통수다. 신들조차 이 상황을 타파하기 어렵다.

결국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으로 제논 교단이 세워지는 걸 봐야한다는 건가. 그것만큼은 싫은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만 조금이라도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다.

'케이트의 반응도 무섭던데······'

진실을 밝힌 이후 나를 바라보던 케이트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감격을 비롯한 온갖 감정이 섞인 시선이었으니.

[그 아이 입장에서는 본인이 믿고 있던 신앙이 눈 앞에서 펼쳐져서 그렇단다. 평범한 사람도 신화라 믿는 마당에 그 아이는 오죽하겠니?]

'괜찮은 거 맞죠?'

[아마도?]

'··· ···'

신은 내가 아닌 다른 필멸자의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마도라고 대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루미너스가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관계가 더 꼬이기 전에 순번을 잘 정하라는 뜻이란다. 세실리 그 아이가 침울해할 수도 있거든. 동생의 신자라지만 나도 양심이 있단다.]

'그것 참 도움이 되는 조언이네요.'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케이트의 시선 속에 섞인 감정은 감격뿐만 아니라 '욕망'도 섞여있었으니까.

나와 마주치거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볼을 붉히거나 시선을 회피했으니 확실하다.

아마 조만간 본인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해 루미너스에게 상담을 요청하지 않을까.

이미 전에 관계를 맺기로 약속했기에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저 그 날이 앞당겨질까봐 걱정되는 거지.

'결국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반쪽짜리라지만 신성도 얻었으니 날마다 신성력이 강해질 거란다. 신앙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이것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건가요?'

[들어보겠니? 참고로 열역학 법칙을 포함한 원리란다.]

'사양하겠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애당초 열역학 법칙조차 모르는데 들으면 머리만 아프지.

그래도 신성력이 나날이 늘어날 거라는 말은 도움이 된다. 신성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

[진짜 성직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다. 피와 강철 다음으로 쓸 차기작이 등장하면 신성력이 지금보다 몇 배나 뛰어오를 테니.]

'예? 잘못 들었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이상하게 되물었다. 당장 지금도 펄펄 넘쳐서 곤란한데 여기서 더 많아진다니.

애인들도 감당이 되지 않아 여자를 늘리는데에 기꺼이 허락하는 수준이다. 밤에는 최소 2명이 달라붙어야 하고.

내가 그리 묻자 루미너스는 도리어 뭘 묻냐는 뉘앙스로 친절히 대답했다.

[그렇지 않겠니? 훗날 우리의 과거와 관련된 책을 쓸 테고, 자연스레 우리의 숨겨진 과오도 등장하겠지.]

'예, 뭐. 히틀러 같은 분이셨······ 흠. 흠.'

하마터면 말실수를 할 뻔했다. 나는 다급히 헛기침을 토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기분이 나쁘구나. 아무튼 그 과오가 등장한다면 세상은 다시 한 번 혼란스러워지겠지. 어쩌면 우리를 향한 신앙이 흐려질 수도 있고.]

'그렇겠죠?'

[너에 대한 비난도 늘어나겠지만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란다. 그러면 여기서 정리를 하마.]

루미너스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이해가 되게끔 정리를 했다.

[신들이 데려온 영혼이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하고, 더 나아가 신들의 과오를 직접 밝힌다. 이러면 필멸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어······ 글쎄요?'

[신들이 과오를 고백하기 위해 직접 데려온 영혼이라 생각하지 않겠니?]

'······?'

뭔가 이상한데. 나는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아 미간을 좁혔다.

'아.'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런 씨발.'

제논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떠니? 신성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까? 모라에게도 배우면 될 거란다.]

'네.'

엿이 참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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