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5 - 엿(4)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나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자 히틀러의 충실한 하인, 괴벨스의 어록으로 유명한 명언이다.
다만 저 말을 실제로 괴벨스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워낙 괴벨스다운 어록이었기에 다들 그가 했다고 믿는 편이다.
심지어 저런 말을 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니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도 일종의 선동이라 할 수 있다. 본질 자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함이니까.
하지만 괴벨스는 99%의 거짓 속에 1%의 진실을 섞었고, 나는 완전히 반대라는 게 차이점이다.
"믿기 힘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제 조부님 덕분에 제논 일대기가 탄생했다는 건 절대 거짓이 아닙니다."
내 말에 사람들은 벙찐 표정으로 나와 클라크를 번갈아봤다.
축복을 받고도 사라지기는커녕 성력이 충만한 스켈레톤과 세상을 구한 예언가.
연결고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이어졌으나 뭔가 이상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에 누군가 초를 치기 전, 서둘러 그 연결고리에 개연성을 부가해줬다.
"아마 몇몇 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겁니다. 제 조부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저에게 영향을 줬냐겠지요. 특히 제 조부님은 악마 숭배자가 의식을 치렀던 지하 사원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건 케이트 씨와 미네르바 제국이 직접 보증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오?"
"추기경 님. 제논 님의 말이 사실입니까?"
내가 호언장담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케이트 쪽으로 쏠렸다. 루미너스의 충직한 종인만큼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심리가 깔려있을 터.
케이트 입장에서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클라크가 나와 만났던 일은 엄연히 사실이고, 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니.
이미 모든 현상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라 케이트로서는 그것이 진실이라 굳게 믿는 중이다.
"네. 루미너스 님에게 맹세할 수 있습니다. 클라크 씨는 결코 사악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추앙 받아야 할 영웅이십니다."
[추앙 받을 것까지는 없는데······]
케이트의 증언에 클라크가 머쓱했는지 머리를 매만졌다. 머리에 신성력이 화염처럼 일렁이다보니 멋짐이 폭발했다.
어쨌거나 케이트가 증언까지 했겠다, 남은 건 확신이다. 나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논 일대기가 아닌, 클라크 마이샬의 일생에 대해서.
"제 조부님께서는······"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마이샬 가문은 악마 숭배자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았으며, 클라크 대까지 이어졌다.
악마 숭배자가 좋아해야 할 마이샬 가문이 목숨의 위협을 받은 이유도 간단하다. 여태까지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서로 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악마 숭배자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설상가상으로 타락한 추기경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세상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뭉친 사람들이 있었으나 하나둘씩 쓰러지고, 결국 혼자 남게 됐다.
"그, 그럼 클라크 님뿐만 아니라 다른 영웅들이 있었다는 겁니까?"
클라크 혼자만 이루어낸 업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어떤 한 사람이 다급하게 물었다.
세상에 클라크 뿐만 아니라 숨겨진 영웅들이 있다. 이것만 해도 특종 중의 특종일 것이다.
이에 장본인은 이걸 말해도 되나 싶어 머리를 긁적거렸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소. 말해도 전혀 모를 거요.]
"상관없습니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다면야······]
클라크는 자신의 뜻에 따라 동행한 영웅들의 이름을 한 명씩 밝혔다.
각각 인간, 마족, 엘프, 수인, 드워프 등등. 각 종족들마다 한 명씩 악마 숭배자와 맞서싸웠다고.
실로 영웅다운 파티였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대부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래도 이름만큼은 꼭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이비어 교국의 성기사, 엘리 루이제 에스토냐.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료였지.]
"그 영웅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겁니까?"
[아니. 마지막 순간에 내가 간절히 부탁했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희생보다 반려에게 사랑받는 여인이 되라고. 끈질긴 설득 끝에 떠나갔지.]
처음 듣는 이야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클라크를 쳐다봤다.
아버지도 그렇고 마이샬 가문만의 유전인지 자신의 과거를 구태여 꺼내지 않는다.
지금도 나를 돕기 위해 즉, 필요에 의해 과거를 담담하게 꺼낸 것이다. 본인 딴에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라 생각했던 걸까.
나 또한 클라크 할아버지의 과거를 자세히 알게 되니 그가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제논 일대기 같은 이야기로군요. 그렇다면 지하 사원에서 발견됐다던 시체들은······"
[악마 숭배자들이 '군주'로 추종하는 존재들이오. 제논 일대기로 따지자면 칠죄종이라 할 수 있지.]
"그럼 다른 영웅들과 함께 처치하신 겁니까?"
[나 혼자 다 죽인 거다만······]
그 대답에 질문을 한 기자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잠시 사고회로가 멈춘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아닌가.
마이샬 가문은 지금처럼 명성을 얻기 전만 해도 뛰어난 무력을 자랑하는 기사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조차 아는 사람만 아는 쪽에 가깝달까. 내 명성이 올라가고 자연스레 가문의 위명도 올라간 케이스다.
'내가 변종이지 뭐.'
사람들은 빨간머리와 황금색 눈동자를 보고 납득한 거겠지. 나를 통해 아버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클라크의 말도 안 되는 무력을 설명할 바탕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영웅적인' 행각을 바라봤을 수도 있겠지.
덕분에 그 누구도 클라크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하 사원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데다가 제논 일대기의 모티브가 됐다고 했으니.
게다가 애당초 전부 진실이다. 못 믿는다면 신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면 끝이다.
단,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허면 어째서 아들이 아닌 손자에게 영향이 간 겁니까?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유독 귓가에 박히는 질문이다. 동시에 분위기도 급격히 가라앉았다.
나는 질문을 건 기자를 쳐다봤다. 아까 전부터 하나만 걸리라는 표정을 짓던 기자다.
지금은 아예 걸렸다는 얼굴이고. 아마 나를 공격한 언론사 쪽에서 보낸 거겠지.
"클라크 씨의 영웅적인 행적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하 사원의 예시도 있는데다가 명확한 증거들이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 현 마이샬 가주가 아닌 제논 님에게 영향을 끼친 겁니까? 하물며 마이샬 가주에게는 2명의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니라 어째서 차남인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에게만 영향을 끼쳤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리하다 못해 비수 같은 질문이다. 실제로 그의 질문을 듣자마자 어? 하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확실히 들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 것이다. 아버지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형이나 누나도 아닌, 나에게만 영향을 끼쳤냐는 게 의문점이다.
"제논 일대기의 모티브가 클라크 씨가 아닌, 정말로 우연인 게 아닙니까?"
누구인지 몰라도 사람 하나 잘 뽑았네. 얼굴 기억해야겠다.
다행히 저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나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 정도는 쉽다.
이에 의미모를 미소를 지어주자 질문을 걸었던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나는 입을 열었다.
"그거야 간단합니다. 클라크 할아버지가 지하 사원에서 악마 숭배자의 의식을 저지하고 눈을 감으셨을 때, 제 영혼이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죠."
"그 말은······"
"마이샬 가문과 악마 숭배자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끊어졌으나, 신들께서 조부님의 뜻을 받아들인 겁니다."
90%의 진실과 9%의 거짓말, 마지막으로 1%의 msg가 추가된 말이다.
클라크는 눈을 감기 직전 이곳으로 넘어온 영혼을 잘 보살펴 달라고 신에게 부탁했다. 그 영혼이 바로 나다.
신들은 그 영혼을 데리고 친히 마이샬 가문으로 환생시켜줬다. 전생을 온전히 기억하는 상태로.
스토리와 개연성을 한 방에 챙긴 셈이다. 그곳에 거짓이 섞여있으나 그 누구도 거짓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굵직한 건 전부 진실이니까. 악마 숭배자의 의식으로 내 영혼이 이곳으로 넘어오고, 그 결과로 제논 일대기가 탄생했다.
그 속에 담겨있는 '진실'은 알려주지 않고 단지 '영향을 끼쳤다'라고만 둘러대면 끝이다.
'악마 숭배자도 어렴풋이 눈치채겠지.'
내 말이 신문으로 퍼져나간다면 악마 숭배자들도 눈치 깔 것이다. 자기가 소환한 영혼이 나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랄발광을 하는 것밖에 더 있겠냐만은.
언론사와 함께 악마 숭배자에게도 빅엿을 먹일 수 있는, 말 그대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제 아버지는 조부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그걸 생각할 여력도 없이 고달픈 삶을 사셨죠. 지금은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하시고 존경받는 가장이십니다. 제 형제자매도 마찬가지고요."
"··· ···"
"가끔 가다 꿈을 꾼 적도 있습니다. 특히 강렬했던 건 조부님께서 악마 숭배자의 의식을 저지했을 때죠. 조부님께서는 목숨이 끊기기 직전이셨고, 얼굴이 완전히 함몰된 엘프 악마 숭배자는 원통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해명 아닌 해명은 끝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나를 공격할 건덕지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영웅을 넘어선 신화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으니. 이들이 진짜 진실을 알 방법은 없다.
악마 숭배자를 제외하고는. 그러나 악마 숭배자는 가히 나치 독일 같은 취급을 받는지라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죠. 악마 전쟁의 발발 원인이자 마족을 고통받게 만든 마이샬 가문은 처벌받아야 된다고. 저희 가문도 3000년 동안 악마 숭배자에게 고통 받았습니다. 악마 전쟁의 책임을 지기 위해 업보와 사명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었죠."
"··· ···"
"특히 마족. 여기서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나는 아까 전 예리한 질문을 걸었던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3000년 동안 마족을 악마로 취급한 사람들과 3000년 전 선조의 실수로 마족을 탄생시켰으나 동시에 구원한 마이샬 가문. 누가 더 잘못한 것 같습니까?"
"그건······"
"악마 숭배자라는 진짜 적을 두고서 저와 제 가족들을 공격하다니. 정말 안타깝고도 의심스럽네요. 혹시······?"
내가 뒷말을 흐리며 빤히 쳐다보자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 기자 쪽으로 몰렸다. 내가 느껴도 어마어마한 선동 능력이다.
당연하게도 그 기자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본인은 절대 악마 숭배자와 연관이 있지 않다는 어필이었다.
저런 어필조차 하지 않는다면 케이트에게 뚝배기가 따이겠지. 나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약간 말을 흐렸다가 최대한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금 실망스럽네요."
그 말이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펜을 열심히 굴리던 기자들의 손이 우뚝 멈췄다.
미안하지만 아직 엿 투척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여기가 본론이라 할 수 있다.
"제 조부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웅으로서 대접을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물고 뜯는 모습에 조금 회의감이 듭니다."
구라다. 나도 양심을 조금 팔아먹은 거짓말을 뱉었는데 회의감은 무슨 회의감.
그냥 엿 먹으라고 하는 거지.
"대공황 당시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 잘못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했으니까요. 그렇기에 책임을 지고 노력했습니다."
"··· ···"
"하지만 지금은······ 진정 노력해야 되는지 고민이 됩니다. 제가 뭘 하든 간에 트집을 잡을 사람들이 널려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난 원래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무언가 불안하면 통조림에 직접 갇혀서 책임지는 것밖에 없다.
"피와 강철 이후 또다른 작품을 쓸 예정이었습니다. 신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작품이죠."
"신화······ 말씀이십니까?"
"네. 루미너스 님의 교리에서 '그림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신화입니다. 루미너스 님은 물론 다른 신들께서도 허가하셨죠. 다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망설여집니다."
망설이기는커녕 당장이라도 차기작 쓰고 싶어서 죽겠다. 그 온화하던 루미너스가 크레토스처럼 날뛰는 걸 적고 싶다고.
"차라리 펜을 내려놓고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 부탁합니다.
"여러분께서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 다시 펜을 들겠습니다. 아, 물론 피와 강철은 전부 연재할 예정입니다."
나 대신 엿 좀 먹여주라.
이리하여 내 말이 언론에 퍼져나간지 정확히 이틀이 지나고.
[제논을 공격한 언론사 대표. 지난번 직조공 사태처럼 건물에 매달린 채 발견돼······]
[대표의 내장으로 '메시지'를 만든 악마 숭배자. 메세지의 내용은······]
악마 숭배자가 열심히 일을 해줬다.
[엿 먹어라.]
정말 열심히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