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16)화 (617/763)

Chapter 615 - 강의(2)

아카데미 강의는 전반적으로 지구의 대학교와 비슷하다. 차이점은 요구 학점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

일주일에 10개 정도 되는 수업을 들어야 하니 여러모로 고욕이다. 그때는 타자기가 아닌 펜으로 집필하고 있어서 시간이 부족했다.

그건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2학년까지는 학점을 충당하기 위한 수업을 들어야 하며, 3학년부터는 본인이 원하는 전공을 고르면 된다.

설령 전공을 고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대충 아무 강의나 듣고 좋은 점수를 받은 후, 그걸 인정받는다면 졸업할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은 빡빡한 스케일에 죽어나가는 곳이지만 교수는 많아봤자 일주일에 3~4번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적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끝이거든. 날먹이라 할 수 있는데 날먹 맞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결코 날먹이 아닌 것이, 일종의 시험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고, 누누이 강조했듯이 나는 전생의 힘을 빌린 사람이다.

여러모로 긴장될 수밖에 없었으며 부디 밑천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이때까지 잘했으면서."

내가 긴장에 떨자 아델리아가 살살 다독여줬다. 현재 우리는 강의실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내 강의를 듣기 위해 전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앉아있을 터.

지금도 강의실 바깥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심장이 말 그대로 쫄깃쫄깃해지는 기분이다.

"신기하네. 남들을 가르치는 게 그리 어려워? 전에 정체를 밝힐 때는 당당했잖아."

아델리아가 팔짱을 끼며 약간 이해하기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는 무학과 조교로 활동한 적이 있어 누구를 가르치는 데에 익숙하다.

하지만 조교는 1대1 과외와 비슷한 느낌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가르쳐 주는 건 또 다르다.

"그때는 케이트 씨의 도움이 있었어. 게다가 정체를 밝히는 건 용기만 필요하잖아? 강의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네가 지식에서 부족하다는 점은 못 느끼겠는데······ 아무튼 열심히 해. 설령 강의가 이상해도 누가 널 건드리겠어?"

아델리아는 내 어깨를 힘차게 두드려주며 용기 아닌 용기를 건네줬다. 그녀의 말마따나 강의가 이상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얼굴에 철면피를 깔 수만 있다면 진작에 깔았겠지.

나는 준비한 자료를 재차 확인하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슬슬 들어가야 된다.

"나는 밖에서 기다릴게. 수상한 사람이 오면 바로 제지해야 되니까."

"알았어. 열심히 하고 올게."

"파이팅!"

아델리아가 주먹을 말아쥐며 귀엽게 외쳤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긴장이 옅어진 것 같다.

뒤이어 문고리를 잡고 재차 숨을 내쉰 후, 소리가 나게끔 문을 천천히 열었다.

드르륵-

"··· ···"

"··· ···"

"··· ···"

문이 열리자마자 떠들석했던 강의실 내부가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이 분위기가 제일 무섭다.

나는 순식간에 쏘아지는 시선들에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도망가고 싶다.

심지어 강의실도 무려 100명을 충분히 수용할 정도로 넓은 강의실이다. 듣자하니 원래 무학과의 강의실이라고.

예로부터 무학생은 문학생보다 훨씬 많은 수를 자랑하고 있었으니 강의실이 넓은 건 이상하지 않다.

척-

발걸음을 조용히 움직인 끝에 칠판 중앙에 설 수 있었다. 나는 칠판 중앙에 서고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파릇파릇한 학부생들은 물론이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도 다수 섞여있었다.

다들 내 강의를 듣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고작 글쓰는 걸 알려주는 것뿐인데······'

강의 내용은 정말 시덥지 않다. 문예창작과에서 알려주는 작문 및 소설 집필 방법이었으니.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었기에 시덥지 않은 것이지, 제논 일대기 등장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은 영어 수능이었다.

온갖 어려운 단어들로만 빼곡히 채워져 있었으며 문제집을 풀이하는 것마냥 하나하나 해석해야 됐으니.

그러니 일주일 동안 진행될 강의에서 기본적인 작문법 및 내 생각을 밝힐 계획이다.

'익숙한 얼굴이······ 체리밖에 없구나.'

맨 앞자리에는 예상했듯이 체리가 앉아있다. 늘 그렇듯이 우울한 분위기를 사방에 퍼뜨리는 중이다.

다른 학생들은 다소 낯선 얼굴들이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다. 2학년 때부터는 지인들만 함께 지냈으니까.

내가 원래 아싸 기질이 있기도 하고 사교회도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차라리 글을 조금이라도 더 쓴다는 마인드다.

아무튼 인사는 해야겠지. 나는 좌중을 모두 둘러본 뒤에 예의를 담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사숙녀 여러분. 제 이름은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꾸벅 인사하니 박수 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움찔할 뻔했다.

이어서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다시금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만큼은 막을 수가 없다.

나는 체리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된 좌중들에게 말했다.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여러분들께 일주일 동안 기본적인 작문법을 알려드릴 겁니다. 물론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분들도 계시겠죠. 이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한만큼 확고한 주제는 있다. 지금까지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글은 편해야 합니다. 전달 받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결코 글이라 할 수 없겠죠. 책도 마찬가지고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글은 편해야 된다는 것. 전문적인 지식이 첨가된 글은 일반인이 알기 힘들겠지만, 최소한 전문가는 알 수 있도록.

전문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책은 그 가치가 상실하게 된다. 아무도 읽지 못하는 책이 무슨 책이란 말인가.

"적어도 본인이 원하는 생각을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이 포함된 글이어도 글로써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내가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자 대부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집중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부분이다.

소수는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학생이 아닌 외부에서 온 인원인 듯싶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평소에 책을 집필하던 사람이겠지. 대충 무슨 상황인지 뻔히 예상이 간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는 일주일 간 진행될 강의의 주제를 밝혔다.

"그래서 여러분께 작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즐길 수 있도록, 더 나아가 다양한 책이 등장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제논 일대기와 피와 강철에서 사용되던 작문법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당장 체리의 작품도 그렇지 않은가.

비록 나만의 작문법이라 알려진 바람에 사람들이 주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제논 일대기, 그리고 피와 강철 같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겁니다."

******

강의 1일차는 오리엔테이션에 가까워서 금방 끝났다. 하지만 금방 끝난 것과 별개로 두근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지만, 혹여 누군가 헛점을 파고들까봐 긴장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자잘한 질문은 있을지언정 예상 밖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1일차밖에 안 되는데다가 다들 나를 지켜보는 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동안 두문분출하던 사람이 강의를 한다니 신기했겠지. 나에게는 다행인 부분이다.

"휴우······"

강의가 끝나고 휴식을 위해 찾아간 카페. 시원한 커피를 마시니 터질 듯이 뛰던 심장이 점차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고생했어. 첫 강의치고는 잘 하던데?"

"다 듣고 있었어?"

"응."

나는 얼굴처럼 시원시원한 아델리아의 대답에 살짝 멍해졌다. 아무래도 마나를 운용해서 내 강의를 다 들은 모양이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에 말없이 커피만 홀짝거렸다.

아델리아는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다. 뭔가 느낌이 묘하다.

똑똑똑-

[저······ 선배님 계신가요······?]

그때 타이밍 좋게도 노크와 함께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울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체리다.

체리가 왔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아델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문을 열어주자 드러나는 체리의 모습.

강의 때는 멀리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키도 살짝 커지고 얼굴도 성숙해진 것 같다.

세실리 못지 않게 압도적인 흉부는······ 언제까지 성장할지 모르겠다.

"왔어? 여기 앉아."

"네······"

체리는 내 안내에 따라 맞은편에 앉았다. 확실히 앳된 티가 전보다 옅어졌다.

점점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묘한 감정을 지닌 것도 잠시, 나는 체리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는 아예 상징으로 자리잡은 음울한 눈동자다. 세실리에게 듣자하니 아직까지도 친구가 없다고.

참고로 얼굴과 몸매에 음심을 가진 남자들은 그녀가 먼저 피하고 다녔단다.

그녀는 상처를 입었을 뿐이지, 절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보네. 내 강의는 어땠어?"

"정말 좋았어요······"

체리는 미리 주문했던 커피를 홀짝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체리는 내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

이미 본인의 작품,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을 완결 지었던 작가다. 더구나 그녀만의 개성까지 깃든 책이다.

그런 그녀가 왜 내 강의를 듣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오늘 체리를 부른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세실리 누나한테 듣자하니 차기작을 쓴다는데······ 맞아?"

"네······"

바로 그녀의 차기작이다. 어엿한 작가인만큼 나에게 따로 알려줄 의무는 없으나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게다가 책을 출판사로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거쳐야 된다. 나와 달리 그녀는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니까.

"제목이랑 무슨 내용인지만 알려줄 수 있어?"

"··· ···"

체리는 내 질문을 듣고 눈을 내리깔았다. 잠깐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다.

나에게 숨겨야 할 정도로 민감한 내용인 걸까. 아니면 개인적인 취향이 가득 담긴 내용인 걸까.

뭐가 됐든 간에 상관없는 것이, 이미 전생에 그렇고 그런 작품들을 셀 수도 없이 지켜봤다.

물론 중세 특유의 야만적인 느낌이 첨가됐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다.

"그게······ 다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개인 사정이라도 있어?"

"네······"

개인 사정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그냥 제목만 듣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럼 제목만 알려줄 수 있겠어?"

"제목 정도는······ 네. 괜찮아요······ 제목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셨고.

"빛의 길."

"······?"

"빛의 길이에요."

그대로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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