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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13)화 (614/763)

Chapter 612 - 축가(2)

결혼식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저택뿐만 아니라 영지 전체가 결혼식 준비로 분주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서는 결혼식이다보니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영지를 방문할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부터 고난인 것이, 고위급 귀족들부터 시작해 왕족까지 방문하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나라들은 무려 최고 지도자 즉, 왕까지 방문할 예정이다. 나는 괜찮다지만 영지민들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겠지.

귀족들 입장에서는 작은 마찰조차 조심해야하며 실수라도 했다가는 막대한 피해가 돌아올 것이다.

물론 나도 불상사가 일어나는 건 한사코 사양했기에 최대한 조율할 예정이다.

"조율이라고 해봤자 행패를 부리면 영지 추방이 끝이잖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결혼식을 빙자한 축제나 마찬가지다. 결혼식이 끝나는 즉시 축제가 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귀족 간의 결혼이 사교회 분위기처럼 흘러간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중세 시대의 결혼식, 그것도 귀족 간의 결혼은 실제로 축제 같은 면모를 띠고 있다. 나는 그냥 스케일이 큰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 결혼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어? 황제 폐하께서도 방문하신데?"

"아니. 리나 말로는 참석하고 싶어도 못하는 형편이래. 업무가 너무 많이 쌓여있으시다는데?"

"힘드시겠다."

분위기로 따지자면 베리트 황제도 참석해야 될 판이다. 하지만 베리트 황제는 불참 의사를 내보였다.

공장이 꾸준히 가동된 덕분에 대공황의 여파가 스멀스멀 없어졌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업무량이 폭증했다.

원래 황제라는 직위가 권력에 비례해 어마어마한 업무량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과로해도 호상으로 갔다고 할 정도.

'권력을 적절히 분배하지 않으면 힘들겠지.'

민주주의가 꼭 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권력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될 때가 올 것이다.

특히 공장이 세워진만큼 자본주의도 자연스레 등장할 예정이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복잡해질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면 뭐할 거야? 나는 귀족들이랑 얘기하다가 저택으로 돌아올 것 같은데."

"자려고?"

"응. 마음 같아서는 저녁 늦게까지 축제를 즐기고 싶지만······ 알잖아? 우리 애가 얼마나 힘이 좋은지."

마리는 배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임신을 겪고 2달이 지나서인지 약간이나마 볼록해졌다.

그녀도 밖에 나가서 신나게 놀고 싶겠지. 하지만 아이를 위해 참는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임신 초기는 유산할 확률이 가장 높다며 어머니가 신신당부했던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알았어. 결혼식이 끝나면 내가 저택에 데려다줄게.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줄 거야."

나와 마리가 과속했다는 사실은 전세계가 알고 있다. 우선 급하게 결혼식을 잡은 것부터 눈치 챈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괜스레 트집을 잡힐 수도 있었으니 아예 공표했다. 웃긴 점은 다들 놀라기는커녕 수긍했다는 것.

난봉꾼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이런 효과를 불러들일지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면 되겠지.

"주례는 누가 해? 역시 케이트 추기경?"

"응. 내가 직접 요청하니 바로 수락해주셨어."

"조금 궁금하네. 과연 케이트 추기경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

"그러게."

서로 침대에 누워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잘 시간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마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내일이 당장 꿈에 그리던 날인데 어찌 잠을 잘 수 있을까. 기대와 긴장 때문에 눈이 감기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불타는 밤을 보내고 싶지만, 마리와 아이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 패스했다. 결국 자정이 넘도록 말을 주고 받았다.

"그거 알아? 옛날에는 결혼식 이후에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신랑과 신부가 침대에 올라가 밤을 지새야 했데."

"정말? 엄청 부끄럽겠다. 나는 절대 못할 거 같아."

"나도 그건 못할 거야. 그나저나 우리 아이 이름은 정했어?"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오는 마리의 기습적인 질문.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자그만한 미소를 지었다.

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아이 이름은 빨리빨리 정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실망할 거라고.

그래서 최대한 고르고 골라 선별한 이름이 있다. 심지어 루미너스와 모라에게 직접 조언까지 들었다.

나는 기대감을 품은 마리의 눈동자와 마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알려줄까?"

"응. 알려줘."

"아들이면 어셔. 딸이면 그레이스"

대충 지은 이름이 아니다. 내 세상의 지식을 뒤지고 뒤져서 고심 끝에 만든 이름.

이름의 뜻은 둘 다 똑같다.

"둘 다 축복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예쁜 이름이네."

다행히 마리도 만족하는 표정이다. 그녀는 빙그레 웃다가 내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그런데 쌍둥이면 어떡해?"

"··· ···"

역시 쉽지 않구나. 내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짓자 마리가 꺄르르 웃었다.

그녀다운 장난에 볼을 살포시 꼬집으니 아프다고 엄살을 피운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자란 말인가.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나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그녀.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이 생각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녀는 내 아이를 품었으며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아있다.

나는 마리의 작디 작은 머리를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그녀도 말없이 나에게 안겼다.

"마리."

"응."

"사랑해."

덤덤하지만 진심이 묻어있는 고백. 마리는 내 사랑 고백에 히히 웃더니 두 팔로 나를 껴안았다.

"나도 사랑해."

뜨겁지는 않지만 달콤한 하룻밤이 지나가고.

"일어나! 지금도 늦었다고!"

"우웅······ 10분만······"

"오늘 우리 결혼식이야, 마리! 늦잠 자면 안 돼!"

너무 달콤하게 잔 나머지 늦잠을 자버렸다.

*****

중세 시대의 결혼식은 대개 교회에서 진행되거나 마을 광장에서 진행되는 편이다.

결혼식장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교회가 결혼식장을 대신하는 것이며, 심지어 귀족들만 해당하는 사안이다.

평민들끼리의 결혼식은 단출하기 그지 없다. 신랑신부가 특정한 곳에 모여 백년가약을 맺는 것밖에 없었으니.

그러나 나와 마리는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결혼식. 영지에서 진행되는 건 다를 바 없으나 규모 면에서 차원을 달리했다.

세계에서 유명하거나 인지도가 있는 인사들이 죄다 마이샬 영지로 모여든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덕분에 치안대는 죽어나갔으며 혹여 트집이라도 잡힐까봐 걱정했지만, 아이작이 미리 경고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제 결혼식은 모두가 즐겼으면 합니다. 불의를 저지른다면 그 즉시 추방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작이 단호하게 엄포했는데 그 누가 행패를 부릴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적당히 마셔야 될 판이다.

물론 마이샬 영지에는 즐길 게 많았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냥 방문만 해도 며칠은 뚝딱 흘러가는 곳이다.

테르스 왕국 입장에서는 입맛이 씁쓸하겠으나 어쩔 수 있겠나. 꼬우면 자기들도 아이작 같은 인물을 배출해야지.

"이럴 때는 마리가 부럽네요."

"동감이니라."

마리의 늦잠으로 약간 지체된 시간에 진행된 결혼식. 그래도 결혼식 자체는 성대하고도 무난하게 진행됐다.

결혼식이 진행된 장소는 마을의 광장. 원래라면 전차 한 대가 떡하니 놓여있을 테지만 누가 조종했는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대신 결혼식 특유의 밝은 풍경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바닥에는 신랑신부가 걸어갈 레드 카펫이 길게 늘어졌다.

VIP에 해당하는 인사들은 신랑신부를 좀 더 가깝게 볼 수 있도록 앞쪽에 배치된 테이블에 앉아있다.

영지민이나 평민들은 뒤쪽 테이블 혹은 결혼식장 주위를 빙 둘러싼 형태였다.

"그거 아세요? 저 드레스 아이작이 직접 디자인했다는 거."

"정말이냐?"

"네. 듣자하니 결혼식 때 입는 옷을 웨딩 드레스라고 한데요. 순백의 의미로 흰색 드레스를 입는 거고요."

세실리와 아르웬도 VIP 전용 테이블에 앉아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재 아이작과 마리는 케이트의 주례를 받는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리의 웨딩 드레스에 주목하고 있었다.

보통 결혼식은 자기가 애용하던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편이다. 웨딩 드레스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현재 마리가 착용 중인 웨딩 드레스는 순백을 의미하듯, 전신이 흰색이었다.

평소에도 흰색 드레스를 애용하고 있다지만 그보다 더 색채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외모마저 아름다운데 그 뜻마저 아름답구나. 나도 한 번 입어보고 싶어."

"여왕님 이전에 제가 먼저 아닐까요? 저도 한 번 저런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어요."

"그대의 가슴을 보면 맞는 드레스가 있기나 할지 의문이다만?"

"맞춤 제작하면 그만이에요. 안 그래도 이 드레스도 맞춤 제작인데."

아이작의 또다른 애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다른 하객들도 마리의 외모에 찬사를 보내는 중이었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지만 웨딩 드레스는 그 외모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아이작이 검은색 예복을 착용하고 있다는 게 효과적이었다.

본인 딴에는 전생의 기억을 빌린 거라지만 그 점이 신부를 더욱 아름답게 연출시켰다.

"나도 저런 드레스 입어 보고 싶다······"

"정말 아름다우셔. 원래부터 아름다우셨는데 오늘은 더 아름다운 것 같아."

"어쩜 저리 잘 어울릴 수 있는 거지?"

그로 인해 결혼식에 참여한 왕족 및 귀족들은 물론이요, 영지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처럼 성대한 결혼식은 꿈도 못 꾸겠지만 한 번쯤 저런 드레스를 입어 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아이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상입니다. 두 분 모두 루미너스 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추기경 님."

물론 본인은 그저 결혼식이 별탈 없이 진행됐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었다.

마리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부랴부랴 준비했으나 아무런 잡음조차 없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의미로 입맞춤을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상위층은 그저 담담하게 박수를 치는 반면, 영지민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거센 환호 소리로 보답해줬다.

이렇게 세상에서 단 한 번뿐인(마리 입장) 결혼식이 종료되는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다.

아이작은 잠깐 목을 풀더니 미리 준비했던대로 케이트에게 수정 구슬을 넘겨받았다.

일반적으로 마이크처럼 사용하는 구슬이다.

"아. 아. 들리십니까?"

보통 같으면 끝나야 할 결혼식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자 하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지어 마리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녀가 들은 바로는 케이트의 주례가 끝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건지 몰라도 아이작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선 저와 마리의 결혼식에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하실 줄은 전혀 몰랐네요."

처음에는 너스레를 떨면서 평범한 분위기로 이어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잔잔한 음악을 펼치던 악단이 아이작 쪽으로 다가오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작이 직접 초청했던 리루스 악단. 그들은 새로운 악기인 '드럼'과 함께 본인들만의 음악을 펼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어디까지나 지정된 자리에서만. 지금은 아이작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는데다가 무거운 드럼까지 갖고 오는 것이 아닌가.

눈치가 없는 사람이어도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늘 그녀에게 있어서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인만큼, 아름답고 인상 깊은 추억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그리 말하며 뒤쪽에 포진된 리루스 악단에게 눈짓을 보내는 아이작. 

계획에도 없던 상황에 마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리루스 악단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많은 생각을 가졌을 테지만, 저는 이 노래 하나로 대답하겠습니다."

이윽고 아이작의 여러 의미가 포함된 말을 끝으로 리루스 악단, 아니.

[I'm hurting, baby, I'm broken down.]

아이작의 축가가 시작되었다.

전생에서 유명했던 밴드의 노래.

[I need your loving, loving, I need it now.]

그 제목에 걸맞도록 정말 달콤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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