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09)화 (610/763)

Chapter 608 - 스탈린그라드(4)

모두 알다시피 아이작은 미래를 경험하고 그걸 글로 쓴 예언가로 추종받는 중이다.

본인은 물론 지인들은 그의 본질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쓴웃음만 지었다.

하지만 세실리를 보듯이 애인조차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 헌신하고 있다.

당장 주변인들조차 아이작을 성자로 인식하는 마당에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소설부터 시작해 콜 오브 듀티, 축구 등등. 전에 없던 유흥 거리를 퍼뜨리니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악마 숭배자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있어서 예언가로서 아이작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졌다.

물론 신 바로 아래에 속해있어서 섣불리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의미로 추종할 뿐.

아이작을 추종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현실도 고려해야 됐기에 가끔 가다 찾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높은 나머지 찾는 것조차 죄송한 사람. 그게 바로 아이작이다.

"우리 아들 시험 잘 치게 해주세요!"

"그녀와 이어지게 해주세요!"

"부디 사업이 잘 되기를······!"

허나 아이작보다 위상이 턱없이 낮은 노스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그의 집 앞에는 성지 순례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어째서 신전도 아닌 노스의 저택에 성지 순례를 오는 것이냐. 그가 현재 예언가로 추종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바꾼 아이작보다는 아니지만 피와 강철의 전개를 죄다 맞췄으니.

특히 전개부터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는데 노스는 전부 다 맞췄다.

프랑스 6주부터 시작해서 나치 독일의 악역화까지. 예언이 틀린 게 없다.

"저리 가! 이 빌어먹을 놈들아! 예언가 아니라고!"

노스는 아침부터 시작된 성지순례에 창문을 활짝 열고 버럭 소리쳤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았는지 듬성듬성 하얗던 머리카락이 더 하얘진 느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스의 외침에도 굴하지 않고 저마다 기도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결국 노스도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자 포기하고 창문을 도로 닫았다.

"제기랄. 저 놈들은 신들이 무섭지도 않나."

그는 푹신한 의자에 털썩 앉으며 피곤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프랑스 6주부터 알음알음 찾아오더니 이제는 아예 명소 취급 받고 있다.

미네르바 제국의 예언가가 아이작이라면, 테르스 왕국의 예언가는 노스라는 식으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만 두 나라 간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감안해야 된다.

더 나아가 테르스 왕국의 국민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 놈과 달리 진짜 예언가도 아닌데······'

하지만 노스로서는 난처하다 못해 머리가 아프다. 원래는 관심을 끌기 위해 되는대로 씨부렸다.

아이작을 자극시켜 테르스 왕국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그걸 위해 후원을 받고 있지 않는가.

언론도 충분히 매수했고 남은 건 아이작의 반응을 보는 것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나름 괜찮은 계획이었는데 거하게 꼬여버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

자신을 무슨 점쟁이로 아는 건지 어떻게든 한 번 만나보려 애를 쓰는 중이며, 자신의 집은 성지가 됐다.

정작 제일 중요한 타겟인 아이작은 관심도 없다. 사흘에서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내는 놈이니 지금도 글만 쓰고 있겠지.

'어째서 신들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

신들은 미래를 함부로 알려주지 않는다. 설령 알려줘도 신탁처럼 애매한 형태로 알려준다.

그만큼 미래를 알려준다는 건 큰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때문에 신전에서조차 어지간하면 신도의 미래를 알려주지 않는다.

미래를 알려주는 건 신이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권역을 해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이작이 더 숭상받고 있는 것이다.

'놈은 미래를 보여주는 책을 써서 그렇고, 나는 단지 예측만 해서 그런가?'

노스는 굳어진 머리를 최대한 회전시켰다. 실제로 저것이 가장 타당한 이유다.

아이작은 필멸자가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미래를 보여줬기에 숭상받는 거고, 자신은 아니다.

만약 아이작처럼 미래를 본 거라면 그걸로 책을 냈겠지. 이른바 반쪽짜리 예언가인 셈이다.

신전에서도 미래를 알려줄 수 없으니 어떻게든 예언가로 알려진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다.

'놈을 찾아가라고 하기에는 껄끄러울 테고.'

아이작의 명성은 하늘을 뚫고 올라간지 오래다. 직접 마주하는 것조차 실례를 끼치는 거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작가와 독자의 입장으로서 만나는 건 언제든지 상관없다. 하지만 대놓고 미래를 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스는 답답함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옆을 힐긋거렸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편지 한 통이 올려져 있었다.

'왕가도 반쯤 포기한 상태고······ 그래도 이해해줘서 다행이야.'

아이작을 끌어들이기 위해 후원해줬던 왕가도 거의 포기한 상황이다.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질책하고 심하면 소리없이 처리할 계획이었을 테지만, 피와 강철은 상식 밖의 전개를 보여줬다.

왕가조차 이건 좀······ 이라면서 노스를 인정해준 것이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다.

'그런데 그 새끼가 진정 악마인 건 아닌가?'

프랑스 6주까지는 그렇다 치자. 히틀러의 입지를 키우기 위한 영웅적 행적이라 치부하면 끝이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만큼은 악마 숭배자들조차 경악할만한 사건이다. 사람을 가축보다 못한 벌레처럼 취급하는 제도.

그걸 모두 동의한 나치 독일이나, 동조 및 방관한 나치 독일 국민들이나 다 똑같다. 

평범한 사람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아이작은 그걸 해냈다.

'차라리 그 놈을 악마로 선동해서······ 아냐. 그러면 악마 숭배자가 습격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작은 악마가 아니라 미래에서 왔다면 진짜 미래에서 왔을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이미 또 하나의 예측을 언론에다가 뿌른 참이다.

스탈린그라드의 총 사상자가 무려 200만 명이나 될 거라는, 실로 무시무시한 예측.

'종족 전쟁에서 총 사상자가 거의 300만명이었는데 말이 안 되지.'

종족 전쟁은 규모로 따지자면 피와 강철급에 달하는 전쟁이다. 이 세상 모든 종족이 오직 싸움에만 매달렸던 전쟁.

다만 피와 강철처럼 대규모의 군대도 없었으며 사상자도 훨씬 적었다. 때문에 사상자가 제일 많이 발생한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므로 200만명, 게다가 '단일 전투'에서 그만한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진짜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아닌 말로 사람을 '갈아넣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수치였으니.

'많아봐야 20만명 내외겠지. 페스 전투가 그 정도였으니.'

미네르바 제국이 삼국지를 찍던 시절에 남은 기록이 있다.

한 영웅이 강물을 틀어막은 후, 20만명의 병력이 도하할 때 습격을 가했다는 이야기.

상대 병력은 쏟아지는 물살에 허둥지둥거리다가 사냥감마냥 한 명 한 명 처치당했다.

그로인해 미네르바 왕국이 진정으로 제국이 되어 통일을 거칠 수 있던 것이다.

만약 아이작이 봤다면 그거 살수대첩 아니야? 라고 할 수 있었을 터.

차이점은 살수대첩은 강물을 틀어막는 게 아닌 도하할 때 기습한 것이고, 이 세상은 실제로 강물을 틀어막았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까지 맞는다면 내가 신전을 찾아가야지.'

200만명 사상자라는 예측까지 맞는다? 이제 스스로 의심해야 할 때다.

어쩌면 자신조차 모르던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몰랐으니.

노스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설마 300만명이 넘는 건 아니겠지.'

이후로 시간이 흘러서.

[스탈린그라드 전투 사상사가 80만명이 넘었다. 페스의 4배나 달하는 수치.]

[대체 언제까지 군인들을 투입시키는 것인가?]

[형벌 부대까지 투입한 소련. 드미트리는 오늘도 살아남아 부대를 이끌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꾸준히 이어졌고.

[기어코 넘어버린 사상자 100만명. 시가전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나치 독일.]

[점점 겨울이 다가오는 가운데, 두 지도자는 한치의 물러섬 없는 싸움을 진행 중이다.]

사상자가 100만명이 넘었을 때는 노스조차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분명 과장을 섞은 이야기일 텐데 현실성이 극도로 높았다.

훗날 과학이 발전했을 때 전투가 발발하면 이런 형식일 거라고 예언하는 것처럼.

하지만 노스의 경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연옥처럼 길게 이어졌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총 사상자: 120만명]

거인과 달리 붉은 군대는 거의 똑같은 레퍼토리였으나 드미트리의 활약으로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결말마다 각 측의 사상자를 수치로 보여줬는데, 한 권마다 무려 20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하여 겨울이 점점 다가오고 천왕성 작전이 막 실행되기 직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사상자는 총 150만명에 달했다.

"··· ···"

노스는 이 수치를 보며 무언가 심히 잘못됨을 느꼈다. 정말로 200만명을 찍는 게 아닌가 싶어서.

속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간절히 믿었으나 아이작은 언제나 자신의 기대를 배반하는 놈이다.

[소련의 반격, 천왕성 작전이 발동되었다. 90만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대군.]

[소련은 정말로 사람을 만들어서 투입시키는 것인가? 그토록 막대한 사상자를 낳았는데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형성했다.]

그리고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다고.

[언제나 그렇듯이 형편없는 나치 독일의 보급으로 종료된 스탈린그라드 전투.]

[사상자는 두 국가 합쳐서 약 200만명.]

[이번에도 노스의 예언이 적중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막 끝났을 때, 노스는 뒷목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뒷목만 잡고 끝났겠지. 그러나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논입니다. 한창 따뜻한······(중략) ······해서 노스 님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예언가이신가요? 다음에 또 예측이 적중하신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악마 같은 아이작이다. 아이작의 말만 없었더라면 그냥저냥 평범하게 흘러갔겠지.

하지만 아이작마저 '예언가'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탓에 더 많은 사람들이 노스의 저택 앞에 몰려들었다.

"예언가님! 한 번만 제 아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노스시여! 어떻게 한 번만······!"

"정말로 피와 강철이 우리의 미래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미래입니까!"

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린 저택 앞을 보며 노스는 말했다.

"아니다. 이 악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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