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05)화 (606/763)

Chapter 604 - E=mc²(4)

나는 1.5%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게 대단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과학 관련 분야는 하나도 몰라서 기분이 묘하다.

'대단한 건가요?'

[우리 입장에서는 귀여운 수준이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대단한 거지. 지구의 신들도 인류가 그 법칙을 깨우쳤을 때 흐뭇했을 걸?]

그 정도인가. 역시 듣고도 와닿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의 물리학의 완성도를 1.5%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을.

완전한 1.5%가 아닌 불완전한 형태지만 과정도 과정일 뿐더러 완성하는 순간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다.

[그 이상이지. 물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도 크게 상승할 테니까.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 온갖 실험이 자행될 거야.]

'아. 그렇군요. 사실상 물리와 다른 학문은 다 연관이 있죠?'

[없다고는 못하지. 물리는 자연의 현상을 수식화한 거고, 자연을 거스르는 건 없으니까. 우리 엄마를 봐봐. 자연의 여신이지만 뜻대로 자연을 조절하지는 못하잖니?]

'화를 내면 화산이나 지진이 일어나지 않나요? 그리고 하루가 멈춘 적도 있잖아요.'

1년 전, 루미너스와 대화하는 도중에 모라가 끼어들어 신열을 앓았던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열을 앓아서 진짜 죽을 뻔했는데, 그때 갑자기 지진이 발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르트가 화를 내서 그런 거라며 넘겨짚었으며, 실제로 쌍둥이 남매 신들이 히르트에게 혼났다.

이외에 하루가 말 그대로 멈춘 적이 있다. 모라의 고행으로 인해서 내 멘탈이 가루가 될 뻔했던 때. 그때 히르트가 제대로 화났지.

그걸 듣고 신은 신이구나 싶었지만 무언가 모순된 점이 많았다.

[자연재해는 아무런 상관없어. 그때는 진짜 우연이었거든. 하루가 멈춘 건 우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 맞지.]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우리는 초월자지만 인격을 지닌 '존재'지. 너희들에게는 신의 뜻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인위적'인 셈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예를 들어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 하나 있다고 치자.

계곡을 그대로 둔다면 돌이 깎여나가는 지점이 있을 테고, 물살이 더 빨라지는 구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누군가 커다란 바위로 막아버린다면 물은 흐르지 않는다. 풍화가 자연적인 거고 거대한 바위는 인위적인 것이다.

[자연적인 걸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우리 때문이라 생각하면 편해. 불완전하다고 평가 받는 주술도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걸?]

'에이. 아무리 그래도 주술은 도박이잖아요.'

[특정 행동을 실행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확률을 구해라. 이런 식의 문제를 듣긴 들었을 거 아냐?]

'있기야 있는데······ 아무튼 주술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행위 아니에요?'

[우리 엄마도 존재하는 자인데?]

'··· ···'

저리 말하니까 무어라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문과가, 그것도 필멸자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신으로부터 수학 교육을 받을 바에야 차라리 글이나 쓰고 말지. 나는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이런 거 다 필요없다. 필요도 없는 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게 응당 당연한 수순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주술도 너희가 '에너지'를 바쳐서 결과를 얻는 거야. 하지만 그게 과연 제대로 통할지는 확률적으로 계산해야 되지. 눈을 감은 채 올바른 길을 찾는다는 느낌일 거야.]

'확률이라는 탈을 쓴 도박이라는 거네요.'

[정확해. 더럽고 치사해서 다른 데에 눈길을 돌린 거야. 애니머즈는 문명이 건설된 지 300년밖에 되지 않아 주술을 사용하는 거고.]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도박에 가까운 확률을 보여주기에 멀리하는 모양이다.

도박이 무슨 과학적이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과학은 아니다.

[과학이라기보다는 선택이지. 네가 썩은 과일을 고르느냐 과즙이 풍부한 과일을 고르느냐. 그런데 과일이 대부분 썩어있어.]

'그건 사기죠.'

[난 당첨이 없다고 하지 않았잖아? 우리 엄마도 그런 기분이었을 걸?]

왠지 전생에서 가챠로 악명이 높았던 게임이 떠오른다. 지금 발매하고 있는 콜 오브 듀티보다 더욱 악랄할 것이다.

[지구도 자연과 관련된 건 빗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야. 당장 내일 날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잖니? 과학이 좀 더 발달된다면 확률을 좀 더 올릴 수 있겠지. 더 나아가 아예 인공적으로 날씨를 조정할 수도 있고.]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리네요.'

[지구의 신들에게는 가까운 이야기겠지. 우리와 달리 무려 수만 년동안 인류를 지켜봤으니까.]

'부러우신가요?'

모라의 말 속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있었다. 물론 만년도 지나지 않은 세상에 지구의 학문 수준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양심이 없는 거다.

그래도 옆집에서 자식들이 대성하고 있는데 부러울 수밖에 없겠지. 좋든 싫든 이 세상은 지구와 차이가 나니까.

비록 내가 정답을 알려줬다고한들,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결과를 입증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요구될 터.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다른 건 몰라도 학문은 인류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 부분이니까.]

'신들께서 가르쳐 줄 수는 없나요?'

[공부시켜줄까?]

'죄송합니다.'

단번에 대답이 나왔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자라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천재들조차 미쳐버릴 텐데 나 같은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도 신들을 향한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약간 빙구 같은 이미지였는데 지금 들으니 똑똑한 교수님처럼 느껴진달까. 역시 신은 이해해서는 안 될 존재인 듯했다.

[네가 친 사고는 우리에게 곤란한 거지, 골치 아픈 건 아니야. 막말로 핵분열의 존재도 모를 걸? 그건 화학도 함께 발전해야 되는 거라서 입증조차 오래 걸릴 거야.]

'다행······ 이라고 해도 되죠? 핵폭탄을 만들 가능성은요?'

[아예 없지는 않지. 이미 합일이라는 마법이 있잖아? 위력도 알고 있는데다가 위험도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는 않을 거야. 특히 알븐하임은 보수적이라 허락하는 것만 해도 오래 걸리겠지.]

'휴우······'

다행이다. 혹여 누군가 핵폭탄을 발명시킬까봐 걱정했는데 우려였던 모양이다.

이미 합일을 통해 핵폭탄의 위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 것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모라의 말마따나 합일은 금지된 마법으로 지정된만큼 이론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방사능 걱정도 할 필요는 없어. 신성력으로 어떻게든 케어가 될 테니까. 물론 의존하는만큼 발전이 느리겠지만.]

'······방사능이 갑자기 왜 나와요? 그거 엄청 위험한 물질이잖아요.'

[대신 위험한만큼 가치가 높지. 돌연변이를 발생시키지만 인위적으로 다스릴 수 있으면 인류는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어. 우리가 생명을 창조할 때도 줄곧 이용했거든.]

'창조한다는 것만 들으면 신화적인데 방사능을 이용했다고 하니 과학적이네요.'

[우리는 세상 모든 진리를 깨우쳤으니까 가능한 거야. 원한다면 공부를 시켜줄 수도 있고.]

전적으로 사양했다. 억까를 당할지언정 평생동안 글쟁이로 살 예정이다.

내 자식들 중에 마법사 혹은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친절히 소개시켜주겠지만.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모라와 1대1 교육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너 진짜 못된 아이구나?]

'모라 님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아무튼 제가 가르쳐 준 공식 때문에 사고가 날 일이 없다니 다행이에요. 대신 두 분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러운 기분이네요.'

워낙 난리를 치길래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걱정했다. 그래도 모라의 말을 들이니 안심이 된다.

물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악마 숭배자가 합일의 이론을 먼저 깨우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냐. 아냐. 아까 말했듯이 신성 때문에 곤란한 거지, 골치아픈 건 아니야. 도리어 엄청 좋은 거지. 무려 1.5%까지 도달할 길을 네가 열어줬으니까. 지구의 신들에게는 죽 쒀서 개 준 꼴일 거야.]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그만큼 대단한 건가요?'

[엄청 대단한 거야! 지구 인류의 역사가 무려 수만 년이야, 수만 년! 하지만 우리는 만년도 안 됐는데 벌써 1.5%를 얻은 거라니까?]

정말 날먹한 거네. 이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곳의 신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내가 이곳으로 왔지만, 정작 문명의 발전이 수백 년 앞당겨진 상황이다.

만약 내가 아버지처럼 기사의 재능에 눈이 떴다면 기사로 살았겠지. 이게 전부 육체적 재능이 뒤늦게 빛을 본 덕분이다.

'뭐. 좋으면 좋은 거겠죠.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건 골치 아프니까 공식 같은 건 자제하도록 할게요.'

[그냥 시원하게 밝혀도 돼.]

'솔직히 말해서 제가 모릅니다.'

모라는 잠깐 말이 없다가 이내 아, 하며 뭔가 깨달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과의 한계를 알았겠지.

뒤이어 그녀는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해했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알았어. 어차피 네가 대충 써도 다른 애들이 열심히 연구해줄 테니까 상관없겠지.]

'그 말을 들으니 엄청 불안한데요?'

[불안할 것까지는 없어. 마법도 없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걸 보고 놀라긴 하겠다만.]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바라 걱정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이미 전차까지 나온 마당에 더 놀랄 게 있다고.

공식도 문제가 없는 것이, 이번에 밝힌 질량-에너지 동등성은 너무 유명해서 나도 알고 있는 거다.

다른 건 다 전부 모른다. 모라의 도움을 받는다면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기억하기도 싫고.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가 더 큰 도움을 받았지. 마음 같아서는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은데······]

나는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 솔깃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신이 주는 선물은 거절할 수 없다.

모라가 장난을 자주 친다지만 '선물'에 한해서는 엄격한 편이다. 본인이 주는 선물이었기에 신성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음······ 아니다. 지금은 다 필요없겠네. 그냥 물을 많이 마시고 다녀.]

'······그게 끝이에요?'

[얘가 뭘 모르네. 너 물이 얼마나 대단한 물질인지 전혀 모르는구나?]

'생명의 근원인 건 알고 있어요.'

[맞아. 그리고 순수한 에너지에 가장 가까운 물질이지.]

순간 마나 아닌가 싶었으나 다음에 이어진 말은 나를 떨떠름하게 만들었다.

[우리 엄마를 탄생시킨 에너지인데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이건 장담할 수 있어.]

'아······ 네. 그렇······ 겠죠?'

[장난치는 거 아니라니까? 정말이야! 한 번만 믿어줘!]

더 못 믿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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