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04)화 (605/763)

Chapter 603 - E=mc²(3)

나는 이 세상에 환생하고 나서 수많은 사건사고를 저질렀다. 카드 게임이 아니라도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 세상에 밝힌 공식, E=mc²은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공식이라지만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이걸 기반으로 마른 소년과 뚱뚱한 남자를 제작한다지만 이 세상은 판타지 세상이다. 지구의 물리 법칙을 가뿐히 무시하는 세상이라는 거다.

질량-에너지 동등성 공식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니 뭐니 하면서 난리를 치기 바빴다.

이에 바쁜 아르웬을 대신해 세실리에게 물어보니 그녀의 대답은 나와 비슷했다.

"글쎄? 나는 물리보다는 연금술 쪽이라 잘 모르겠어.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물리학도 공식을 전부 외운 거지, 이해는 힘들었거든."

문과인 건 아니지만 과목이 달라서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지구는 물리가 안 끼는 곳이 없지만 이곳은 아니다.

물리학 자체가 기피되는 과목일 뿐더러 신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신학 및 철학에서 분류되지 않은 과목이 곳곳에 널려있다.

당장 화학이 발달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연금술이라 칭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민주주의가 아닌 군주제가 디폴트값인 이유도 있다.

아무튼 알븐하임에서 난리를 친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질량-에너지 동등성을 입증하기 위해 각종 연구에 나섰다.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알븐하임의 성지에 모이기 시작하고, 내가 뿌린 공식을 증명하기 위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마나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가능한 거냐. 마나를 배제한다면 가능하다. 그렇다면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거냐.

내가 퍼뜨린 공식이니 가능하다는 쪽과 피와 강철은 '판타지'이니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나뉘었다고 들었다.

누구한테 들었냐면 당연히 아르웬이다. 갑자기 폭탄을 맞은 바람에 중재를 하느라 힘들다고.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다음에 위로해주겠다고 잘 타이른 후 곧바로 루미너스를 찾아갔다.

정말로 이 공식이 세상에 정립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오늘은 모라를 찾아갈 수 있겠니?]

'어째서요?'

[그런 게 있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퇴짜를 맞았다. 온화한 목소리는 똑같았지만 기분이 상당히 다운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말다툼을 하면 말다툼을 했지, 이처럼 퇴짜를 맞는 경우는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기분이 안 좋다니 조용히 나와야지.

모라의 신전으로 향하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설마 그 공식을 밝히는 바람에 루미너스의 기분이 좋지 않은 건가 싶어서.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공식과 루미너스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품으면서 모라의 신전에 도착했다. 모라와 대화하는 건 약간 어색했지만 그래도 옛날만큼 관계가 복구된 상황이다.

[우선 네 예상대로 그 공식을 밝혔다는 것 자체부터가 오빠를 심란하게 만들었을 거야.]

'어째서죠?'

[너희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잖니? 불완전한 평화라지만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전쟁은 거의 없었다는 거.]

'아.'

모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미너스가 전쟁을 관장한다는 것까지 떠올랐다.

지구에서도 핵폭탄이 발명된 이후로 실험만 주구장창했지, 일본처럼 나라에 직접적으로 투하한 경우는 없다.

나라에 투하하는 순간 저쪽도 끝나고 나도 끝난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확증파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인지 어느 나라든지 전쟁 자체를 꺼려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러-우 전쟁이 있다지만 세계대전에 비해서는 약과 중의 약과다.

[애시당초 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적었어. 가장 위험했던 알븐하임과 헬리움은 네 아내들이 통솔할 테니 전쟁이 터질 이유도 없고. 1000년 뒤면 모르겠다만 그 과정에 원자폭탄이 먼저 발명될 걸?]

'그러면 모라 님은 좋겠네요.'

[약간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라 나도 썩 기분은 안 좋지. 그래도 10년마다 큰 전쟁이 터지는 것보다는 나아.]

전에 말했듯이 지구의 역사는 반 이상이 전쟁이다. 이 세상은 신의 존재로 전쟁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그건 선을 넘었을 때의 이야기고.

당장 미네르바 제국조차 종족 대전 이후 판타지판 삼국지를 찍고 있었다. 무려 10년이 넘도록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1년마다 수십 장이 넘는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관련 유물은 어마어마한 금액에 팔린다.

'그나저나 질량-에너지 동등성 공식이 이 세상에도 성립되는 거예요?'

[성립되는 거야.]

'마나와 마법이 있는데도?'

[설명하자면 긴데, 너희 지구에도 마나와 마법이 있어.]

'예?'

놀라운 사실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화 시대가 실존했기에 마법이 존재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의 에너지에 가까운 마나까지 있다는 건 처음 듣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구는 마나를 찾지 못한 걸까.

[지구의 신들조차 가장 고민했던 게 바로 마나의 존재를 인지시키느냐 마느냐였어. 혹시 신화 시대의 영웅이 수많은 괴수를 잡은 설화를 알고 있니?]

'당연히 알고 있죠. 헤라클레스가 가장 유명한데.'

[적당한 예시네. 당시에는 신들의 도움으로 마나를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인간이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없었겠지.]

그런 게 있었구나. 어쩐지 맨몸으로 거인을 쓰러뜨린다니, 아니면 통나무를 휘두른다 했어. 마나가 없으면 말도 안 되지.

[이를 보듯이 마나는 인지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 방향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하지만 네가 생각하듯이 지구처럼 발전할 수는 없었겠지. 결국 지구의 신들도 이 점을 알고나서 마나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고. 게다가 기회는 여러번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지.]

'기회가 있었다고요?'

[대표적으로 예수가 지상에 강림하고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와 부처가 열반에 들었을 때가 있겠네. 마나의 깨우치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감정이거든.]

들은 적 있다. 지금은 세련되었다지만 과거에는 거대한 감정에 휩쓸려 마나를 깨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모라가 언급한 두 가지 경우는 각각의 종교에 있어서 가장 감정적인 사건으로 꼽혔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마나를 깨우치지 못했다는 걸 보면 신의 직접적인 도움이 없는 이상 거의 불가능한 모양이다.

'신기하네요. 그러면 마법과 신성력도 발견하지 못한 거예요?'

[마법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잖아?]

'예?'

[마나를 발견하지 못해서 개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거지, 따지고 보면 마법을 사용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학자의 명언이다.

맨 처음 리나에게 지구의 문물을 알려준 적이 있다. 그에 따른 리나의 반응은 '웃기지 마라'에 가까웠다.

어떻게 인류이 스스로의 피조물로 하늘을 날 수 있냐고, 어떻게 인류가 세상을 멸망시킬 무기를 직접 제작하냐고 등.

판타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마법'으로 치부할만한 일들인데 지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행하고 있다.

이걸 보고 마법을 이미 이용하고 있다고 하는 거구나 싶었지만, 모라가 말하는 마법은 사뭇 달랐다.

[너희 세상에서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됐을 때가 언제니?]

'굳이 따지자면······ 냉전이죠?'

[맞아. 냉전. 냉전 시기에 과학이 어마어마하게 발달됐지. 지구는 그 시기부터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거야. 마나도 없이 말이지.]

더욱 아리송해진다. 냉전에 발달된 과학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모라는 미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정답을 알려줬다.

[컴퓨터야.]

'컴퓨터요?'

[응. 정확히는 프로그래밍? 그쪽 기술이겠지. 혹시 코드라고 알고 있니?]

'IT 관련 사람들이 치를 떤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문과다. 주변에 이과 친구는 있긴 하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 코드를 붙잡고 오열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가끔 가다 코딩 사진을 올려주면서 왜 먹지를 못하니! 라며 울부짖더라.

나는 친구가 고통 받는다는 거에 집중해서 낄낄 웃어넘기기만 했다. 그런데 그게 마법과 큰 연관이 있었다니 신기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거지만, 마법은 원래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 '창조'하는 거야. 사람에 따라 재능이 갈리는 건 본인이 코드를 이상하게 짜서 그런 거고. 최적화라고 알지?]

'들어는 봤어요. 그거 하나 때문에 게임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를 봐서.'

[그런 거라고 보면 돼. 사람 한 명 한 명이 컴퓨터라 생각하면 편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조금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일반인은 컴퓨터보다 성능이 낮지 않아요?'

[그것도 맞지. 훗날 과학이 발전하고 컴퓨터가 등장하면 일반인도 마법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지구는 마나를 발견하지 못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거고. 물론 그 컴퓨터조차 사람이 제작하는 거니 완벽에 가까운 마법은 없을 거야.]

'오오······'

흥미롭다. 마나의 존재 하나만으로 발전의 방향성이 이리 달라질 수가 있나.

게다가 모라, 그러니까 신이 하는 말씀이라서 거짓말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듣다보면 하나하나 맞는 말에 가까운데다가 굳이 안 믿을 이유도 없다.

'신기하네요. 지구도 사실은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라······ 마나의 유무가 어마어마하네요.'

[그렇지. 하지만 마나를 발견했다면 그런 식으로 발달되지도 않았을 거야. 말 그대로 방향의 차이지.]

'그러면 신성력은요? 다른 건 몰라도 신성력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잖아요. 무려 신들께서 주시는 힘인데.'

마나와 마법은 그렇다 쳐도 신성력이 제일 문제다. 신성력 하나 때문이라도 물리 법칙이 전부 어긋난다.

신전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다. 과연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심지어 시간마저 거스를 수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이걸 봤다면 물리학은 때려치웠겠지. 아니면 평생을 연구하면서 지내던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모라는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마치 귀여운 아이를 보는 듯한 웃음이다.

[너희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야. 너희들도 우리에게 큰 힘을 주잖아?]

'무슨 힘이요?'

[시간.]

'시간?'

시간이라는 대답에 의문을 가지던 찰나, 모라가 부가 설명을 꺼냈다.

[우리는 시간도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물리법칙으로 설명하는 건 좀······'

[왜 안 된다고 생각해?]

이제 와서 다시 느낀 거지만.

[시간도 '자연 현상'의 일부잖아?]

신들이 어째서 '신'이라 칭해지는지 알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을 고수하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럼 질량-에너지 동등성 법칙은 전체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나요?'

그에 따라 나온 모라의 대답을 듣고 생각했다.

[1.5% 정도?]

역시 문과를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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