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00)화 (601/763)

Chapter 599 - 축구(3)

중세는 낭만이 가득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심심하면 전쟁이 벌어지고 사람의 목숨은 파리처럼 여기던 시대.

다소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야만적인 게 맞다.

과학과 문화가 현대만큼 발달되지도 않았으며 인권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중세인이 보기에 현대는 다소 발전되어도 앞뒤가 꽉 막힌 사회처럼 보일 것이다.

[문명인들은 예의없는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기 때문에 야만인보다 더 무례하다.]

위의 명언처럼 상대방이 무례하게 굴어도 폭력을 저지르면 안 되고 국제 사회는 더 복잡하다.

국가의 행정력 및 권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현상이지만 중세는 법보다 주먹이 먼저 앞서는 시대인 셈이다.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스트레스 해소다.

제아무리 멘탈이 단단한 사람이어도 스트레스 관리를 잘못하는 순간 인생이 고달파진다.

본인 딴에는 단 한 번의 실수겠지만 인생은 단 한 번만 진행되는 것. 나는 예외지만.

이 세상에서 콜 오브 듀티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이와 큰 관련이 있다.

지구는 유흥 거리가 너무 많아 문제고, 이 세상은 유흥 거리가 거의 없다.

그나마 마상 시합이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축구장을 짓자는 것이냐?"

"네."

"흠······"

아버지는 내가 직접 제출한 계획서를 보며 턱을 쓰다듬으셨다. 현재 내가 제출한 계획서는 풋살장이 아닌 축구장 건설이다.

무슨 콜로세움처럼 거대한 원형 축구장은 아니다. 단지 축구장 주변에 마을 주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단상을 배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축구장의 면적이 문제여서 계획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면적을 비유할 때 축구장 몇 배를 지칭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마이샬 영지에 미개발된 지역이 많다지만 미네르바 제국의 지원이 문제다. 합이 맞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될 수도 있다.

"마음대로 하거라."

"예?"

"네 마음대로 하라고."

나를 어여삐 여기는 아버지여도 이건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승낙하셨다. 덤으로 계획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도리어 어안이 벙벙해진 건 나다. 콜 오브 듀티처럼 상품을 발매하는 게 아니라 영지를 사용해야 된다.

안 그래도 영지일로 바쁘실 텐데 내가 이런 것까지 들고 오면 화를 내시지 않을까라는 걱정까지 했다.

"왜 그런 반응을 짓는게냐? 나도 그 축구라는 걸 같이 봤으니 허락한 건데."

"그······ 너무 쉽게 허락하셔서요."

"돈은 충분하고 미개발된 영지까지 있지. 모든 게 완벽한데다가 영지민도 크게 만족할 거야. 아니니?"

하나하나 맞는 말씀이시다. 자금은 제논 일대기, 피와 강철로 번 돈뿐만 아니라 관광업으로 어마어마한 흑자를 보고 있다.

또한 미개발된 영지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원래부터 잠재력 하나는 좋다고 평가받았던 영지다.

마지막으로 영지민들이 가장 좋아할 것이다. 지금도 풋살에 죽고 못 사는 지경이다.

여기서 정식적으로 축구장이 개설된다면? 아마 충성심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겠지.

무엇 하나 아쉬운 게 없다. 마이샬 영지가 한 단계 더 발전되는 셈이다.

"그나마 걸리는 게 있다면 교단에서 뭐라 할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건 아무 말도 없느냐?"

"없을 거예요. 폭력은 절대 사용 금지. 마을 전체가 경기장이 아닌 규정된 공간에서만 축구를 할 것. 이 두 가지만 있어도 교단에서는 아무런 말도 못 할 거예요."

교단에서 평민들의 럭비를 엄격히 금지했던 이유가 심한 폭력성 때문이다. 도구마저 몰래 들고 올 정도로 심했다.

이런데도 금지령을 때리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으니 유흥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 및 범죄 행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인해 결국 금지됐다. 예술을 막았던 제이로스 혁명과 다르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 나머지 마약 및 알코올 중독자가 늘어났다고.

어쩌면 악마 숭배자가 술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럭비가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시기도 50년이 넘지 않았다.

"그럼 마음대로 하거라. 예산은 얼마면 되겠느냐?"

"당장 큰 돈은 필요없을 거예요. 아직 사람들이 축구에 익숙하지 않았고, 선수도 제대로 지정되지 않았거든요. 최소 보름은 걸릴 겁니다."

참고로 '팀'은 문제가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팀이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다.

마이샬 영지가 시골 깡촌이었던 시절의 영지민과 그 후에 이주한 영지민들. 혹은 기사와 일반인.

기사가 일을 해야지 왜 축구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기사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는 풀어야 된다.

하물며 영지 내에서 치안 관리로 파견된 기사가 꽤 많다. 일을 하는 도중에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날에만 참여한다.

'기사가 조직력이 좋긴 하던데.'

럭비를 체험하지 않은 기사는 없다. 단합력을 위해서 기사단마다 럭비를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축구는 손을 사용하면 안 되는 종목. 피지컬과 조직력이 강한 기사여도 대부분 드리블이 안 되는 편이다.

아직 섬세한 기술이 없다보니 엄지발가락으로 차다가 고꾸라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더라. 그래도 점점 발전하겠지.

"알겠다. 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어디 한 번 원없이 해보거라. 솔직히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을 거예요. 아버지도 보셨잖아요?"

"그랬지. 마음 같아서는 이 아비도 참여하고 싶지만 일이 너무 바빠서 원······"

"··· ···"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참여하시면 사단장 축구가 될 것 같은데.

아니면 기사고 뭐고 다 뚫는 전차가 되시거나. 내가 보기에는 후자다.

"어쨌거나 계획안과 규칙을 좀 더 세밀하게 짜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때는 예산도 계획안에 넣도록 할게요."

"그러거라."

허락까지 받았겠다, 나는 도장을 받은 계획안을 가지고 침실로 돌아갔다.

내가 아는대로 축구 규칙을 정해야 하고, 본업에도 충실해야 된다.

'아르웬이나 세실리에게 마나 감지 아이템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해야지. 축구장도 하늘에서 보면 설치하기 편할 테고.'

아무 생각없이 축구장 설립을 건의한 게 아니다. 설립이 가능한 인맥이 있으니 아버지에게 제안한 것이다.

애인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지민들이 너무 좋아해서 어쩔 수 없다.

풋살장은 이미 종족을 초월한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물며 그 수인조차 세모발이라 밸런스가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심판인데······'

축구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심판이 유명하다는 건 곧 악명이 높다는 뜻이라고.

실제로 무난하게 경기를 끌고 나가면 심판이 유명해질 수가 없다.

당장은 내가 임시적으로 심판을 맡고 있지만, 계속해서 맡을 수는 없는 법.

선수는 몰라도 심판만큼은 선별해야 될 필요가 있다.

'이것도 천천히 생각해야지.'

물론 여기까지는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지구의 축구를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이 세상의 문화에 따라 알아서 변화할 터. 나는 그저 전파만 하면 끝이다.

'재미있겠다.'

제논 일대기나 피와 강철과 다른 기분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구자가 된 기분이랄까.

나는 희희낙락하다가 잠깐 풋살장을 방문했다. 심판이 없어도 풋살은 꾸준히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자! 자! 누가 이길지 배팅해주십시오! 제이스 팀과 울락 팀 중에 누가 승리할까!"

"힘내라, 제이스! 난 오늘 너희 팀에게 50실버 걸었다고!"

"올락! 너 못 이기면 네가 맥주 쏴야 된다!"

"··· ···"

벌써부터 스포츠 토토가 생기기 시작하더라. 나는 그걸 보며 눈을 꿈틀거렸다가 잠깐 경기를 중지시켰다.

영지민들은 내가 경기를 중지시키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에 곧바로 할 말을 건넸다.

"앞으로 이런 도박은 엄격히 금지하겠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선수를 매수할지도 모르니까요.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이길 생각을 해야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스포츠맨십에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는 거라 바로 제지했다.

"이겨라! 너한테 맥주 걸었다!"

"나는 소세지 걸었어!"

대신 저 정도는 용인해줬다. 저런 게 있어야 응원할 맛도 나고 하지.

"혹시 카드는 걸어도 됩니까?"

"··· ···"

빌어먹을 중세 같으니.

******

마이샬 영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든 말든 피와 강철의 연재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작 입장에서는 할 일을 다 하고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린 거라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등장한 피와 강철 신간들. 지난번에는 나치 독일의 '가스실'이 충격을 줬다면,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붉은 군대(소련)이 전자였으며 거인(미국)이 후자였다.

[또다시 터져버린 스탈린의 고집. 히틀러의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현실화시키게 만들었다.]

독소전쟁과 2차 세계 대전의 분기점이 될 '청색 작전.'

사실 청색 작전 자체는 히틀러가 행복 회로를 돌린 것에 가깝다. 일종의 상상 전략인 셈이다.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본인이 직접 육군 사령관의 자리에 올라간 것부터 불안했는데 그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청색 작전을 실현시킨 스탈린의 위대한 어시스트가 존재했다. 나치 독일이 준비하는 동안 소련은 아무것도 안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아무것도 안 했다. 한 술 더 떠서 영국이 작전계획안을 입수해 소련한테 넘겨줬는데도 스탈린은 이를 무시했다.

마치 독소전쟁 초기처럼, 이런 등신 같은 준비로 인해 하르코프에서 참패를 당하고 청색 작전이 발동된다.

이것이 훗날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이어져 전세를 뒤집지만, 스탈린의 개짓거리가 너무 컸다.

[스탈린은 주코프가 아니었으면 모스크바와 함께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군사적으로는 완벽한 무능 그 자체.]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이 군사에 개입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보기 좋게 해석했다. 귀족들에게 함부로 군사 쪽에 개입하지 말라고 돌려깐 것이다.

실제로 경력조차 쌓지 않았는데 낙하산으로 꽂아넣는 경우가 꽤 있다. 군사 가문은 그렇지 않다지만 다른 가문에서 종종 발생한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개판이다. 당장은 전쟁이 없어서 경력만 쌓고 끝나지만, 과거에는 꽤 흔했던 악습이었다.

또한 귀족들뿐만 아니라 각 국의 지도자에게 날리는 경고이기도 했다.

뭣도 모르는데 깝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정말 본의 아니게 경고를 날린 것이다.

[반대로 미드웨이 해전은? 정보의 중요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첩보전은 결코 더러운 게 아니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될 일.]

[애물단지로 취급받았던 항공모함의 강력한 힘. 진주만 공습이 전화위복이 되어 미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반대로 미드웨이 해전은 정보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줬다. 미국이 일본에게 강력한 한 방을 먹이면서 전세를 뒤바꾼 해전.

미드웨이 해전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라 하면 단연코 'AF'일 것이다. AF는 본래 미드웨이를 지칭하는 일본의 암구호다.

미국은 일본이 AF로 온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여기서 획기적인 발상을 꺼낸다.

바로 일본에게 '일부러' 무전을 흘리는 것. 일본은 당연히 이를 몰랐으며 AF가 미드웨이라는 걸 입수한 것이다.

[정보의 우위에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의 싸움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있었다. 정보가 없었더라면 미국이 패배했을 것.]

[루미너스는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도 충분히 강력했으나 운명의 5분이 말 그대로 운명을 좌우했다.]

[끝내 침몰한 요크타운. 그러나 요크타운의 존재는 1인 함대 그 자체였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괄목할 점은 두 가지다. 미국의 잠재력과 일본의 오만.

본래 요크타운 항공모함은 산호해 해전에서 전치 3개월을 받았던 항공모함이다.

헌데 미국은 이를 3일만에 뚝딱 응급수술을 하고는 그대로 미드웨이로 보냈다. 심지어 전투가 종료되기 직전까지 살아남았다.

[일본의 오만은 너무 심각했다. 이미 질 걸 알고 있었으나 자신감이 너무 차 있었다.]

[전쟁에 자신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오만이다.]

반면 일본은 전력은 충분했으나 자만심이 너무 심했다.

워게임까지 실시하여 본인들이 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냥 무시했으니 말 다했지.

여기서 정보까지 신나게 털리고 있었으니 일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과 일생일대의 전투를 벌였으니 나름대로의 저력을 보여준 셈이다.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전쟁의 과정. 과연 누가 승리를 잡을 것인가?]

[북아프리카 전선도 곧 있으면 전세가 기울 것이다. 거대한 전투가 연달아 터지고 있다.]

청색 작전의 발동과 동시에 미드웨이 해전까지 터지니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군사 가문에서 직접 참조할 거라고 말할 정도로 꽤 사랑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처럼 세상이 피와 강철의 전개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

부우우우!

마이샬 영지에서는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