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98 - 축구(2)
세상 어딜 가나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꽤 유명한 말이면서 인류사의 전통 아닌 전통이다. 지구 기준 기원전에도 비슷한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말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세대 차이가 가장 크다. 인간뿐만 아니라 수명이 긴 엘프와 마족도 똑같다.
그러니 콜 오브 듀티만 하느라 바깥에서 뛰어놀지 않는다는 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
콜 오브 듀티라는 카드 게임이 등장하기 전, 어른들은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노는 걸 보면서 흡족했을 것이다.
몸도 단련하고 또래와 만나면서 사회성도 기를 수 있었으니까. 허나 콜 오브 듀티는 아니다.
사회성을 기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몸을 단련시키는 건 힘들다. 그냥 집에 눌러앉아 카드 게임만 하고 끝.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풍조가 짙게 깔려있으니.'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도시든지, 반대로 사람이 거의 없는 시골이든지 관계 없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상 특유의 치안. 이제는 지긋지긋한 몬스터의 존재까지.
저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된다는 경향이 강하다.
다소 야만적인 풍조라고 할 수 있으나 총조차 발명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애들 입장에서는 왜 그러냐고 투덜거릴 뿐일 테지만.'
신문에서는 콜 오브 듀티를 하는 사람이 아닌, 명확하게 '아이들'이라고 지정하고 있다. 내가 비판하지 않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안 그래도 사행성 꼬리표가 따라붙는 게임인데 신체마저 단련을 게을리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가격도 싼 탓에 모으기 쉽다. 카드 게임이라는 특징 때문에 덱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고.
'그래도 아이들은 걱정 없이 놀아야 된다는 건 공통이라.'
이 세상은 지구에 비해 결코 친절하지 않다. 아스카날 사건처럼 평화로운 일상에 드래곤이 덮칠 수도 있다.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늘 대비하는 편이다. 최악 중의 최악만 대비하는 거지, 어지간하면 어른이 아이를 보호한다.
강하게 키우겠다고 아이를 막대하면 야만인이라며 까고 다니지. 아무튼 부모님들은 콜 오브 듀티가 아닌 다른 유흥 거리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단다. 이게 뭘로 보이니?"
"공 아니에요?"
"공처럼 보이는데."
평소 아리엘과 함께 놀던 마르스 무리. 오늘은 TRPG가 아니라 다른 놀이를 가져왔다.
지금 나는 공 하나를 잡고 있었는데, 영지의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특수 제작한 공이다.
기술이 기술인지라 전생의 것과 완벽히 똑같지 않지만 그래도 공은 공. 게다가 아이들이 다칠 수 있어 부드럽게 제작했다.
"맞아. 공이야. 돼지 방광에 공기를 채운 것따위가 아니라 특수 제작한 공."
"그거 가지고 놀라는 거예요? 돼지 방광으로 충분한데."
"공놀이는 원래 금지 아니었어요?"
마르스 다음으로 체구가 듬직한 소년, 말콤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말콤이 말하는 공놀이는 아마 축구가 아닌 '럭비'일 것이다. 이 세상도 구기 종목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대충 공 같은 물건 제작하여 '골' 지점까지 달려가면 끝.
인원수 제한은 없으며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문제는 폭력성이다.
"맞아. 네가 말한 럭비는 일반인에게 금지된 놀이지. 귀족들의 전유품이랬나?"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인원 제한이 없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매번 패싸움으로 변질됐다.
무기를 숨겨져 가지고 오는 건 물론이요, 주변 건물이 박살나는 건 일상.
그러나 '재미' 하나만큼은 탁월했기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여했던 놀이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주변 상가들이 죄다 부서지는 바람에 종교계에서 금지했지. 지금도 몰래 하다가는 벌금을 강하게 물고."
마을과 마을 간의 경기가 치러질 때마다 인적 및 물적 손실이 미친듯이 상승했기에 나라와 종교계가 합심하여 금지를 때렸다.
흔히 말하는 '은거 기인'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사상자가 꽤 많이 나와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심지어 경기가 진행 되는 와중에 집을 터는 등. 범죄 행위도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래서 '감당이 가능한'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것이다. 아카데미에서도 인기 종목으로 남아있다.
'럭비가 아니라 미식축구지.'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보기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릴 정도로 과격했던 걸로 안다.
하지만 럭비조차 '스포츠'가 아닌 평범한 유흥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감당이 가능한 자들만 즐기는 유흥 거리.
반면 내가 알려줄 축구는 리스크가 훨씬 적다. 폭력은 절대적으로 사용 금지이며 과격한 태클도 경고 처리할 것이다.
'축구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도 종교계가 너무 강력해서겠지.'
지구에서는 종교가 강해도 '좆까' 한 마디면 충분했을 것이다. 사람의 유흥은 절대 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은 천벌을 맞을 수도 있으니 두려웠을 터. 강력한 신권의 또다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줄 건 축구야. 혹시 들어본 적 있니?"
"저 알아요! 무솔리니가 월드컵에서 이기려고 심판을 매수했던 거!"
"··· ···"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녀, 앨리스의 힘찬 대답에 떨떠름해졌다. 피와 강철의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종목이 축구다.
그때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월드컵 및 올림픽만 진행됐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대한민국의 손기정 선수가 히틀러와 만남을 가진 것도 묘사했고.
"아, 아무튼 귀족들이 하는 공놀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축구를 알려줄 거란다. 저기 양쪽에 설치된 골대 보이지?"
현재 나와 마르스 일행이 있는 곳은 미처 개발되지 않은 공터. 이곳을 개발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걸로 안다.
그래서 양쪽마다 각각 간이 골대를 설치했다. 당연하지만 난 손재주가 그리 좋지 않아 사람을 시켰다.
골대의 크기도 크지 않다. 지금 하려는 건 축구가 아닌 풋살이다. 땅도 문제가 없는 것이, 미개발 지역이라 천연 잔디가 깔려있다.
설령 넘어져서 부상을 입어도 근처에 신전이 있으니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면 될 것이다.
"규칙에 대해 설명해줄게. 금지된 럭비와 달리 축구는 오직 발만 사용하는 거야. 손은 절대 사용 금지."
"그럼 골은 어떻게 넣어요?"
"발이나 머리로 넣어야지. 손만 사용하지 않으면 돼. 대충 감이 오지?"
모르면 일단 해봐야지. 사람이 사람인지라 골대 전부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만 사용했다.
골키퍼는 돌아가면서 하기로 정했다. 나 혼자만 골키퍼를 한다면 애들이 어떤 건지 모를 수도 있으니.
그리하여 건전한 유흥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축구가 아닌 풋살이 진행되었다.
"아리엘 반칙."
"엑. 왜요?"
"날면 안 돼. 마나 사용도 금지."
신체 능력으로만 승부해야 된다. 아니면 어딘가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처럼 초인들의 싸움으로 변하겠지.
때문에 수인들에게 매우 유리하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지만 공은 둥글다. 분명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할 것이다.
뻐엉!
말콤의 강력한 슛으로 인해 밧줄로 만든 그물이 철렁거렸다. 골키퍼였던 마르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와하하하! 들어갔다!"
"에이씨······"
투덜거리면서 말콤과 교체하는 마르스. 이 다음에 골을 넣은 아이는 무려 앨리스였다.
어린데다가 생전 처음 겪는 스포츠에 경직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모두 재미있게 즐기는 모습이다.
"형이 없어도 다른 애들을 불러서 놀아도 돼. 문제가 생기면 아리엘한테 말하고. 알겠지?"
"네!"
"대신 부모님이 부르면 가야한다?"
그 후로 다음 날이 밝았다. 아리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놀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깐 구경하러 가니 마르스 일행이 다른 무리를 불러서 다 함께 축구를 즐기고 있더라.
인원이 인원이다보니 골대 하나가 아니라 두 개 모두 사용했다.
중간중간 쉬는 타임마다 콜 오브 듀티를 즐기는 건 덤.
"아니! 이거 반칙이잖아! 다리를 그렇게 거는 게 어디 있어!"
"반칙은 무슨! 손만 사용할 수 없지, 다리는 아니라고 했어!"
"싸, 싸우지 마······"
"··· ···"
아무래도 축구를 하는 동안에는 내가 심판을 해야 될 것 같다. 겸사겸사 노란 종이와 빨간 종이도 구하고.
애들끼리 싸우면서 크는 거라지만 괜스레 충돌을 빚는 건 좋지 않다.
"그런데 축구까지 종교계에서 금지하면 어떡해?"
최근 내가 외출하는 일이 잦아지자 다시 호위기사로 돌아온 아델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도 한때 아카데미에서 럭비를 즐겼던 몸. 축구는 럭비보다 거칠지는 않아도 높으신 분 눈에는 똑같을 수도 있다.
이에 나는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전의 공놀이는 규칙따위는 없는, 정말로 전쟁을 방불케했기에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부상자가 있어도 물적 손해는 거의 없다. 그냥 골대와 공만 있으면 끝.
설령 종교계에서 따끔한 눈초리를 보내도 크게 상관없었다.
"설마 금지하겠어? 양심이 있으면 안 하겠지. 만약 금지한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따질거야."
내가 뭘 하든 간에 신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 그래도 진짜로 독을 뿌리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아델리아는 내 말을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축구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린애들을 위한 축구장이라 규모도 작고 인원도 적지만, 인기를 끈다면 진짜 축구장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의외라면 의외네."
"뭐가?"
"생각보다 수인도 활약하기 힘들다는 거."
아델리아는 턱짓으로 경기장을 가리켰다. 나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이들 중에는 수인도 있었는데, 예상대로 타고난 신체 능력은 있지만······ 발이 세모다.
손은 인간의 것을 닮았으나 발이 동물과 흡사했던 것이다. 정말 생각치도 못한 변수라 흥미를 끌었다.
레오나는 혼혈이어서 인간과 흡사한 것이지, 일반적인 수인은 대부분 저런 식이다.
텅!
"들어갔다! 들어갔다고!"
"핸들! 핸들! 얘 손 썼어요!"
"아냐! 안 썼어! 진짜라고!"
"··· ···"
벌써부터 신의 손이 나오는 건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골 무효를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손을 사용한 마르스에게 옐로우 카드를 주는 건 덤.
마르스도 본인이 손을 썼다는 건 인정했는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내일 또 하자! 다른 애들도 부를 거야?"
"불러야지. 형도 내일 올 거죠?"
"점심 이후에."
그리하여 우리 영지에 축구를 도입하고나서 시간이 흐르고.
"장하다! 우리 아들! 잘한다, 잘해!"
"상심하지 마! 골 더 넣을 수 있어! 포기하면 안 돼!"
"엇. 저거 저거 반칙 아니야? 도련님! 저거 반칙 안 주십니까?"
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구경하는 어른들이 점차 늘어나더니.
"에헤이. 형님. 거 너무 한 거 아니요?"
"손을 못 쓰는 거지 다른 부위는 사용할 수 있잖나. 공에 못 다가오도록 하는 게 뭐 어때서?"
"맞는 말씀이십니다.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될 뿐, 다른 건 용인돼요."
기어코 어른들이 아이들 대신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체력이 굉장한 아이들이어도 지칠 때가 있는 법. 그 틈을 노려 어른들이 대신 축구장을 차지한 것이다.
종교계에서 금지를 했던 럭비가 아닌 축구라는 생소한 종목에 다들 애를 먹었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
범죄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 지정된 공간에서만 축구를 하기에 혼란도 예방할 수 있었다.
"퇴장입니다. 10분간 밖에 나가세요."
"그냥 평범한 태클 아닙니까?"
"백태클은 공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무조건 퇴장입니다. 자칫하다가 불구가 될 수 있거든요."
"에잉······"
그리고 나는 아이, 어른할 것없이 심판을 맡았다. 내가 판 구멍에 빠져버린 셈이다.
이외에 또 하나.
"이 양반이 일은 안 하고 또 축구하고 앉았어? 당장 집에 가!"
"10, 10분만 뛰면 안 될까?"
"··· ···"
어째서 종교가 럭비를 금지했는지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