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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95)화 (596/763)

Chapter 594 - 재능 기부(2)

이제 와서 말하기 조금 그러지만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결혼식은 오늘을 기준으로 약 두 달 뒤.

결혼식은 세이비어의 교황청과 마이샬 영지 둘 중 한 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는데, 결국 마이샬 영지로 결정됐다.

세이비어 교국에 힘이 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지만, 아무래도 회색 사막 원정에 더 신경 써야 되서 양보한 셈이다.

그리하여 결혼식은 우리 영지에서 진행되기로 정해졌고 남은 건 준비다. 나나 마리나 성격이 소탈한 편이라 화려한 건 거절했다.

쓸데없이 화려하면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리기 마련이고 일일이 얼굴을 마주쳐야 된다나 뭐라나.

결혼식이 축제가 되는 것까지는 상관없어도 스트레스를 받을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리의 부탁이다.

"대신 웨딩 드레스는 아이작이 맞춰줘."

"왜?"

"너라면 예쁜 웨딩 드레스를 알고 있을 테니까."

맞는 말이라 하는 수없이 웨딩 드레스 코디는 내가 했다. 평소에 틈틈이 그림을 그린 덕분에 스케치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이 세상은 시대상에 맞게 보통 종교계가 결혼식을 관여하는 편이다. 따라서 웨딩 드레스의 복식도 종교스러운 면모가 있다.

그 드레스가 예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마리의 얼굴에 안 어울리는 옷을 찾기가 더 어렵다.

마리는 단지 새로운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욕심에 저런 부탁을 꺼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패션만큼은 굉장히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그녀였으니 기꺼이 허락했다.

"그때 쯤이면 배도 살짝 불러있을 테니 코르셋은 안 넣을게."

"알았어."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훗날 가슴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임신을 했으니 가슴이 커지는 건 당연한 수순. 이건 훗날의 일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웨딩 드레스도 웨딩 드레스지만 지금 중요한 건 마리의 안정이다. 하지만 저택 안에만 있는 것도 좋지 않다.

가끔 가다 아리엘과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새로 판매되기 시작한 콜 오브 듀티도 함께 했다.

원작자 우대랍시고 머스크가 카드를 전부 지급해줬기에 가능했다.

"아이작."

"······응?"

"너 은근 못하는구나?"

"다시 해."

발렸다. 단순히 발렸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매판마다 쳐발렸다.

전생에 카드 게임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직접 해본 경험은 거의 없다.

바둑도 전략전술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이건 나조차 처음 하는 거라 매번 패배했다.

'운빨좆망겜.'

겸사겸사 운이 더럽게 없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무슨 중동 석유 부자도 아니고 5턴에 한 번꼴로 석유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군수공장 카드가 떠서 기계병기를 뽑을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없더라. 참고로 기계병기를 뽑으려면 군수공장 카드가 있어야 된다.

군수공장 카드가 없어도 병기를 소환할 수 있다. 단지 바쳐야 하는 제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해서 비효율적이다.

여러모로 고증에 충실해서 빌드업을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게임이다.

"정말 뭐 같이 재미있는 게임이네."

"이러니 다들 재미있다고 난리지. 지금 아리엘이랑 클라크 시할아버님도 하고 있을 걸?"

아리엘과 클라크는 원래부터 서로가 서로의 바둑 상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콜 오브 듀티로 넘어갔다.

클라크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내가 이런 유흥 거리를 만들어 내니까 장례식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 말을 듣고 조금 어이없긴 해도 평생을 사명에 매달렸던 분이시니 웃으며 넘어갔다.

적어도 가시기 전까지는 재밌고 좋은 추억만 남기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리엘이 혼자 저택 밖으로 나갔다고 했나?"

"응. 아델 언니가 몰래 뒤따라갔긴 했는데 큰일은 없다더라."

아리엘의 존재는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이샬 영지에 천사가 나타났다나 뭐라나.

물론 나와 큰 연관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건 잊지 않았다. 제논 축제 당시에도 내가 아리엘을 데리고 다녔으니.

존재가 어느 정도 알려진 지금, 아리엘은 아델리아의 호위 아래에 영지에서 뛰어노는 중이다.

최근 영지에 입주자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아리엘 또래의 아이들도 대폭 늘어난 상황.

"같이 놀던 애들이랑 놀고 있는 거겠지?"

"카드 게임도 같이 하고 있지 않을까? 요즘 유행이니."

"음······"

마리는 살짝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혹여 아리엘이 또래와 어울리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교육을 했다지만 아리엘은 어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랐다.

간혹 개념 없는 어른이 있긴 한다지만 그들은 사회에 완전히 녹아든 인물이다. 반면 어린애들은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아리엘이 어린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약간 혼란스럽지 않을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리엘이 사고를 치면 책임져야지."

"그렇지? 나중에 우리 아이도 올바르게 키워야지."

마이샬 영지에서 성장한다면 적어도 삐뚤어지진 않을 것이다. 좋은 교육과 문화는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니.

나와 마리가 다정하게 미래를 천천히 그려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피와 강철은 반제 회의 이후로 사흘이 아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연재되는 중이다.

말만 한 번이지, 붉은 군대와 거인을 각각 연재하고 있기에 사실상 2권씩이다.

[칼즈: 살려주십시오, 제논 님.]

물론 그때마다 칼즈의 곡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내 알 바는 아니고.

내일이면 신간이 발매되는 날이 왔을 때, 재미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리엘의 친구들이 아빠를 보고 싶다고?"

"응. 아리엘의 아빠가 제논이라 하니까 아무도 안 믿어. 그래서 아빠 데려갈래."

그럼 네가 천사인 건 말이 되고? 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재미있는 상황이라 넘어갔다.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리엘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영지 내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럴까? 어디에 있는 애들이니?"

"전차 광장!"

"··· ···"

참고로 전차 광장은 제논 축제 당시 에인스가 전차를 두고 가서 전차 광장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광장인만큼 분수대가 존재했지만, 그 옆의 전차가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서 명사화가 됐다.

이윽고 아리엘의 조막만한 손에 이끌려 광장으로 향했다. 악마 숭배자가 기습할 걱정도 없는 것이, 마이샬 영지는 두 신의 보필을 받는 중이다.

하물며 최근 신전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지라 영지민들도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겠지.

"아리엘은 친구들이랑 뭐 하면서 놀아? 콜 오브 듀티?"

"그것도 하고 있지만 역할 놀이를 주로 해."

"역할 놀이?"

"응. 기사랑 성녀랑 엘프 궁수 이런 식으로. 재밌던데?"

세상 어딜 가나 역할 놀이는 존재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생의 사람들만 판타지 특유의 모험심을 동경하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도 모험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다.

괜히 기사 혹은 모험가가 선망의 대상이라 칭해지는 게 아니다. 판타지 속의 판타지라 봐야겠지.

게다가 현실주의자가 많은 도시와 달리 마이샬 영지는 2년 전만 해도 시골 깡촌이었다.

여전히 모험에 대한 동경심을 품은 사람들이 많으며, 축제 때마다 그런 욕구를 간접적으로 해소하는 편이다.

'어른들도 다를 바가 없겠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서 그렇지, 수많은 어른들이 판타지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광장으로 향하다가 문득 아리엘의 반투명한 날개를 확인했다. 엘프보다 판타지스러운 존재, 천사.

"아리엘."

"응? 왜?"

"아까 역할 놀이를 한다고 했는데, 아리엘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니?"

"아리엘은 천사야."

"그렇······ 응?"

현실에서도 천사인데 역할 놀이에서도 천사라니.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아리엘이 설명을 덧붙였다.

"모험가 파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축복을 내려주는 역할이야."

"어······ 그러면 재미없지 않아?"

"대신 성녀가 기도하지 않으면 축복은 없어. 모험가가 욕망에 휘둘리는 생활을 하면 축복도 덜 내려주고. 이거 은근 재미있다?"

"··· ···"

아리엘이 실실 웃으면서 대답했다. 단순한 역할 놀이 주제에 은근 고증이 철저하다.

제논 일대기 덕분에 아이들의 상상력이 올라간 것일 수도 있다.

이후로 아리엘의 손길에 이끌려 광장에 도착하고, 아리엘의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

"뭐야? 제논을 데려온다고 했으면서."

"우리 아빠가 제논인데?"

"어딜 봐서 제논이야? 제논은 빨간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를 갖고 있다고!"

"··· ···"

바로 뒤통수 맞았다. 아이언맨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로다주를 데려갔더니 그 아이가 울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한 바여서 허허 웃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난 단지 아리엘이 누구랑 놀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애들이지 않은가. 저 골목대장 포스를 풍기는 아이가 무례하긴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다.

"앗! 아이작 오빠다!"

"아, 맞다. 아이작 형이 제논이었지? 아리엘이 헷갈릴만도 하네."

한두 명은 눈에 익은 아이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주하기 전에도 마이샬 영지에서 지내던 아이들.

보통 같으면 높여 부르지만 우리 가문은 알다시피 권위와 동떨어져 있다. 그냥 형동생으로 끝이다.

나는 아리엘과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조잘조잘거리는 동안 리더로 추측되는 소년에게 시선을 옮겼다.

까칠해 보이는 얼굴과 대충 반듯하게 자른 머리. 부모님이 사주셨는지 손에는 작은 목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넌 이름이 뭐니?"

"형이 알아서 뭐하게요?"

음. 정말 싹수가 노란 아이구나. 그래도 이해해야겠지.

"이 형이 아리엘의 보호자라서 그래. 나중에 아리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한테 물어볼 수도 있거든."

"······마르스."

"멋진 이름이네."

빈말이 아니라 진짜 멋진 이름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의 또다른 이름이 마르스로 알고 있다.

다만 위상 자체는 마르스가 더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 마르스. 혹시 내가 진짜 제논이 아니라 실망했니?"

"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마르스.

마음 같아서는 사실 제논은 없어. 형이 다 지어낸 이야기야,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순수한 동심을 지닌 아이들에게 있어서 '산타는 없다'와 동급일 것 같아 관뒀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역할 놀이에 심취한 아이들에게 적절한 제안을 건넸다.

이 애들이 아리엘과 함께 지낼만한 심성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소위 막되먹은 아이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미안해. 대신 형이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데, 너희들 역할 놀이를 한다고 했지? 마르스 너는 뭐야?"

"기사요."

"나머지는?"

"저는 성직자."

"저는 궁수요."

"저는 도적이에요."

판타지라 해서 근본은 어디 가지 않는구나. 아니, 오히려 판타지 세상이어서 자연스러운 건가.

나는 아이들이 맡은 역할들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그럼 혹시 형도 끼워줄 수 있어? 대신 역할이 아니라 사회자로."

"사회자? 그건 뭐예요?"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 마르스의 물음에 나는 간단하게 답했다.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재능 기부는 괜찮을 것이다.

*****

그 시각 알븐하임.

[쾅!]

"어떻습니까, 여왕님!"

"저희 남매가 발명한 가상현실! 이거라면 콜 오브 듀티를 좀 더 현실감 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한 엘프 남녀가 홀로그램을 통해 전차의 발포 장면을 보여줬다. 

처음 발명했던 것보다 좀 더 다듬었는지 깔끔하게 세련된 장면.

알븐하임의 여왕, 아르웬은 굉장하다 못해 흉악한 걸 발명한 엘프 남매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대체 뭘 만든 거지?'

머리가 따라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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