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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93)화 (594/763)

Chapter 592 - 콜 오브 듀티(4)

전생의 나는 무교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불교에 가까운 무교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무교였던 나조차 신을 찾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컴퓨터 게임을 할 때다.

당시의 나는 한때 질병겜이라 욕 먹는 게임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갖가지 게임을 섭렵했는데, 여기에는 축구 게임도 포함돼 있다.

축구 게임은 모두 알다시피 악명 높은 '카드깡'으로 유명하다. 유명한 선수에다가 그것도 높은 등급이 나오는 순간 인생역전.

그 순간만큼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했다. 다 필요 없으니까 친구 새끼들보다 좋은 카드만 뜨라고.

큰 욕심은 바라지 않으니 제발 저 놈보다 비싼 게 뜨라고 말이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친구 새끼가 당시 적폐로 유명한 선수를 뽑았을 때는 배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원래 운이라는 게 그런 거다. 납득할 수 있으면서도 할 수 없는 운.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지만 결국 운은 운이다. 운이 좋아 로또를 맞을 수도 있고 운이 없어 똥을 밟을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이건 지구의 이야기고 신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어떨까.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면 행운이 올라갈까.

대답은 Yes다. 성직자들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편이며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행운도 올라간다.

이걸 적절히 이용해서 신앙도 올릴 겸 콜 오브 듀티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약간 신성모독 같은 이야기라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신들과 친한 몸이다.

하물며 신들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구나.]

그러나 루미너스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까는 분명 신앙심이 깊을수록 행운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그런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루미너스는 내게 이해가 되게끔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네 말마따나 성직자들은 보편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란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 말하는 것도 있고, 과연 이게 '절대적인' 행운을 올리는 건지도 애매하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마침 네가 판매하기 시작한 카드가 있으니 그걸 예로 드마. 30% 확률로 좋은 카드를 뽑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훗날 성직자가 되고, 신앙심이 깊어져 확률이 50%로 올라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좋지 못한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란다.]

'음······'

[90% 확률로 당첨인데 10번 이상 당첨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거란다. 과연 이건 운이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나쁜 사람일까?]

'아.'

무슨 말인지 명확히 이해가 갔다. 확률이 올라가도 운이 없는 사람은 끝까지 없다는 소리.

어째서 루미너스가 절대적인 행운이라 칭했는지 알 것 같다. 이건 신앙심이고 나발이고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다.

확률이 확률이다보니 계속 까다 보면 좋은 카드가 뜰 수도 있다. 허나 그게 전부 꽝으로 나올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미묘하네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니까.'

[그렇지. 전쟁이 발생하면 나를 믿는 군인들이 태반인데 전부 죽어나가잖니? 신은 운명을 지켜보고 결정할 뿐,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단다. 물론 너는 예외지만.]

'··· ···'

아, 맞다.

이 인간 아니, 신 원래 전쟁을 관장하는 신이었지. 신에게 기도해도 돌아오는 건 참혹한 배신일 수도 있다는 얘기. 

조언을 듣고 나니 내 계획이 참 병신처럼 느껴졌다. 자칫하다가 신앙심이 도리어 깎일 수도 있다.

결국 신앙을 이용하는 건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전부 운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

'카드팩이 도박으로 규정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아세요? 다른 건 몰라도 전 도박 중독자를 양성할 마음은 전혀 없어요.'

[네가 이미 제안했잖니? 확률 공개.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란다.]

'정말이요?'

[그럼. 도박은 불확실한 확률에 확실한 것을 거는 행위. 하지만 확률이 공개된다면 기대 심리가 팍 꺾일거란다. 도박 중독의 원천이 바로 그 기대 심리거든.]

이외에 속칭 카드깡 혹은 듀얼(?) 자체를 즐기는 건 상관없고, 여기에 돈을 거는 순간부터 도박이라 설명을 덧붙였다.

그 분야는 종교계에서 경계하고 있으니 내가 따로 나서야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거라고.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무려 신이 그리 설명하니 묘하게 신뢰가 간다.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겠네요. 이대로 해도 되는 거죠?'

[물론이란다. 도박이라는 행위를 규제해야지, 놀이를 규제하는 건 주객전도잖니?]

'동의합니다.'

그러면 전생의 대한민국과 중국은 뭐 하는 나라였을까. 중독을 예방해야 되는데 틈만 나면 게임을 패고 다녔다.

안 고쳐지니까 그러는 거지~ 라며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라면 온 나라가 진작에 파탄났을 것이다.

심지어 그 중국조차 다른 건 다 막아도 마작은 못 막았지 않았는가. 사람은 유흥을 찾기 마련이다.

[그나마 네가 건전한 놀이를 만들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단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유흥이라 더욱.]

'아이들이 놀만한 게 별로 없었나요?'

[없어서 자기들끼리 기사 놀이하다가 서로를 때리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따라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는 광장으로 가기도 했지. 도축장에 가서 장난감을 만들 재료를 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 ···'

역시 판타지 중세. 지난번에 마리가 심심하면 공개 처형장 구경하러 가자고 권유한 적도 있다.

게다가 몬스터까지 존재하고 있어서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다.

정말이지 귀족으로 태어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다.

'······기왕이면 다른 놀이 문화도 만들어 볼게요. 예를 들면 축구라던가. 지금도 비슷한 게 있지 않나요?'

[비슷한 건 있단다. 소나 돼지의 방광에 바람을 넣어서 차고 놀거나, 아니면 머리를 차면서 놀거나.]

'그렇······ 네?'

내가 뭘 들은 거지? 화들짝 놀란 나머지 몸을 크게 꿈틀거렸다.

[굴러가는 거면 공놀이 하기에 적합하단다. 특히 몬스터의 머리가 인기지.]

'··· ···'

[도시는 몬스터가 거의 침입하지 않으니 사형수의 머리나 아니면 도축된 동물의······]

'그만해주세요.'

무례하지만 너무 적나라해서 도중이 끊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머리를 차면서 노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린 바이킹이나 중세 영국인이 사람 머리를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

그때는 틈만 나면 전쟁이 일어나던 시대여서 '살생'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던 시대다. 이 세상은 몬스터가 덤이다.

아이들은 그런 문화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 입장에서는 이게 정상인 거죠?'

[그렇지. 우리도 지구의 문화를 처음 목격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단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 세상도 시대에 비해 발달된 부분들이 많다. 그중 독보적인 것이 마나와 마법이다.

저 둘이 없었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발전하지도 못했겠지. 틈만 나면 몬스터에게 당했을 테니까.

나는 그저 문화에 독을 뿌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이미 몇 개 뿌린 것 같지만 조용히 넘어가자.

'우선 카드부터 천천히 해결할게요. 축구까지 넣으면 조금 골치 아파져서요.'

[그러렴. 그건 네가 따로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란다.]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요?'

[이미 책에 적었잖니?]

음. 할 말이 없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단순 공차기 놀이가 아닌, 근대적인 축구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정도 개념만 설립해 놓으면 알아서 잘 놀겠지. 종족 간의 밸런스는 솔직히 내가 고려할 건 아니다.

[만약 도박 중독이 걱정된다면 모라를 찾아가렴. 그 애가 잘 해결해줄 거란다.]

'모라 님은 정신 분야를 담당하는 도박 중독에 적합하겠네요.'

[그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나한테 반쯤 떠넘긴 상황이었거든. 이제는 아니겠지만.]

'··· ···'

하기야 그전까지는 모라보다 루미너스가 더 인지도가 높았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모라의 권능을 모르고 있던 상황이다. 머지않아 도박 중독자들이 모라 교단을 찾아가겠지.

모라 입장에서도 나쁜 건 아니다. 원래 맡아야 됐던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신도들을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카드 하나만으로 이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게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나는 루미너스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모라를 방문하는 건 경과를 지켜본 후에 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막 신전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응? 케이트 씨?"

"안녕하세요. 아이작 님. 루미너스 님과 영접하고 오시는 길인가요?"

때마침 신전 안으로 들어오려던 케이트와 딱 마주쳤다. 백색 갑주가 아닌 수녀복인 걸 보면 일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외모와 따뜻한 미소. 나는 그녀의 미소에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상담할 일이 있어서 잠시 찾아뵈었습니다. 혹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내 질문에 약간 망설이는 케이트. 이윽고 그녀는 말없이 손에 쥐어진 걸 보여줬다.

덕분에 그녀가 무엇을 보여줬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얼굴에 한 눈 팔린 상황이어서 아래를 못 봤다.

그리고 케이트의 손에 쥐어진 물건을 보며 황당과 당황을 동시에 느꼈다.

"······콜 오브 듀티? 그거 사신 거예요?"

"네······"

부끄럽다는 듯, 카드로 얼굴을 가리며 조용히 대답한 케이트다. 얼굴이 미약한 홍조가 인 걸 보면 창피했던 모양.

창피할 일이 뭐가 있나 싶어서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죄다 구매하고 있는 카드다.

"그······ 지금까지 좋은 카드가 안 떠서 그렇습니다."

"네?"

"혹시 루미너스 님에게 기도하면 뜨지 않을까 싶어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케이트가 소심하게 고백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동감 아닌 동감을 해버렸다.

그래. 기도 메타는 언제나 존재하는 거지. 그녀의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정말로 이 세상에 기도 메타가 통하는 것인지.

"지켜봐도 될까요?"

"네?"

"궁금해서 그래요. 기도하면 정말 좋은 카드가 뜰지."

"··· ···"

내 제안에 케이트는 우물쭈물거리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약하게 웃고는 그녀와 함께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뒤이어 케이트 같은 고위직 성직자가 기도하는 개인예배실에 들어섰다. 확실히 크긴 큰 곳이다.

"전능하신 빛과 희망의 신, 루미너스시여. 저에게 부디 빛을 내려주기를······"

"··· ···"

케이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꽤 간절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루미너스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 카드팩을 고른 순간 '운명'은 이미 결정됐으니.

루미너스는 운명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지, 이미 지나간 운명을 뒤바꾸지는 않는다.

좋은 카드가 뜰 팩을 알려줄 수 있어도 케이트가 고른 카드는 지나간 운명이다.

"저는 지금껏 루미너스 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행했습니다. 설령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와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길고도 짧은 기도가 지나간 후, 마지막으로 성호를 그린 케이트가 바닥에 내려놓은 카드팩을 집었다.

찌이익-

이윽고 포장된 카드팩이 찢어졌다. 케이트는 카드가 얼핏 보이자 가슴을 두드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남은 건 카드를 꺼내 결과를 확인하는 것뿐. 나는 어깨 너머로 조용히 관찰했다.

그리고······

"······어?"

피와 강철 카드는 전반적으로 평범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카드.

하지만 제논 일대기 카드가 문제다. 단순한 황금색이 아니라 도금을 한 것처럼 반짝거리는 게 아닌가.

한 달에 단 3장만 출시된다는 도금 카드. 극악의 확률로 뽑힌다는 그 카드.

'진: 디아볼스' 카드가 케이트의 손 안에 쥐어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아······"

그런데 케이트는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망한 듯 탄식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을 텐데 어째서 저런 반응을 짓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케이트 씨?"

"아, 네. 아이작 님."

"그거 엄청 좋은 카드인데······"

단순히 엄청 좋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수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카드다.

케이트는 내 질문을 듣고 진: 디아볼스 카드를 힐긋거리더니 우울한 기색으로 말했다.

"사실 저는······ 릴리 카드를 원했습니다."

"······릴리 카드요?"

"네. 이 카드가 좋은 건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제가 원하는 카드가 아니면 모두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잠깐만요."

나는 곧바로 눈을 감고 기도에 들어섰다. 때마침 루미너스도 이곳에 현신해 있을 테니 상황 설명을 해줄 터.

[운이 너무 좋은 나머지 저걸 뽑은 거란다.]

'본인이 원하는 카드가 아니었는데요?'

[그건 운이 없는 거지.]

'··· ···'

진짜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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