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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91)화 (592/763)

Chapter 590 - 콜 오브 듀티(2)

모두 알다시피 이 세상의 유흥 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근대로 넘어가는 중세 시대의 배경상 어쩔 수 없는 면모도 있으며, 지금도 공개 처형이 유흥 거리로 남아있다.

게임도 마찬가지. 최근 바둑이 널리 퍼지고 있다지만 공식적으로 발매한 것도 아니어서 큰 인기는 끌고 있지 않았다.

체스 같은 보드 게임이나 트럼프 비슷한 카드 게임이 있긴 해도 관심 있는 사람들, 특히 귀족들이 주로 즐기는 편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평민들도 여유로운 시간이 있기 마련. 그 시간 동안 뭘 해야 될지 고민하는 게 대다수다.

지금이야, 제논 일대기와 피와 강철이 있다지만 그전까지는 놀만한 게 없다. 특히 어린애들에게 있어서 놀이는 극소수다.

체스나 트럼프 같은 건 진입장벽이 좀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적합하지 않고 바둑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대부분 바깥에서 뛰어노는 일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내 작품에 푹 빠졌다지만 한계는 명백하다.

놀이 문화만큼은 중세답다면 중세다운 이 세상에서, 카드 게임이 등장한다?

'대박을 치겠지.'

이건 나도 몇 번 생각한 거다. 나름대로 문화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겸사겸사 돈벌이도 될 테니까.

하지만 당시에 제논 일대기를 연재하던 중이어서 금방 묻어뒀다. 수집용으로는 괜찮아도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게임으로는 힘들다.

진영도 인류측 진영과 악마측 진영밖에 없다. 등급마다 나눈다면 달라지겠지만 캐릭터도 다양한 편이 아니다.

더도 말고 딱 수집형 카드에 어울리는 것이 제논 일대기다. 제논 일대기라는 명성 하나빨로 밀고 나가야 된다.

무엇보다 밸런스를 맞춰야 되는 걸 생각하니 여러모로 머리가 아파 포기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냈죠. 피와 강철을 배경으로 둔 카드 게임을 만들고, 그 카드에 제논 일대기 카드를 한 장씩 넣으면 어떨까?"

허나 머스크는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나보다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나는 저 말을 듣고 기가 차서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피와 강철은 연재 중이니 업데이트(?)를 꾸준히 하면서 게임으로 만들고, 제논 일대기는 말 그대로 수집형으로 나가자고.

둘을 분리시키는 게 아니라 아예 하나로 합친 것이다. 말 그대로 패키지다.

"······너무 창렬이지 않나요?"

"창렬의 뜻이 뭐죠?"

"가격 대비 결과값이 너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제논 일대기만 모이려는 사람에게는 심각할 정도로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것.

머스크는 팩당 6장을 넣고 그중 한 장은 제논 일대기와 관련된 카드를 넣을 거라 말했다.

오직 장사꾼들만 할 수 있는 발상. 머스크는 이전에 스스로 상술을 부릴지언정 상인으로서의 도리는 지킨다고 말했다.

저건 양심은 어디 갔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술이다. 이 사람이 슬슬 대머리가 될 때가 되었나.

"그럴 바에 차라리 제논 일대기만을 위한 카드팩을 따로 만드는 게 어때요? 게임으로 만들기는 힘들지만 수집용으로는 충분하잖아요."

"그리 된다면 가치가 떨어질 겁니다. 제논 일대기는 예언서로 추앙받는 작품. 그에 맞는 희귀도를 가진다면 모두가 납득할 겁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예언서로 취급 받는 것과 희귀도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피와 강철도 따지고 보면 미래를 보여주는 책이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머스크는 이 질문도 예상했는지 막힘없이 대답을 꺼냈다.

"살짝 욕을 먹을지언정 수집 욕구를 더 증가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설령 욕을 먹어도 카드가 욕을 먹지, 제논 일대기가 욕 먹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냥 돈이 될 것 같아서 그런 거라고 하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하하하."

머스크도 머쓱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역시 돈벌이에 한해서 머리가 잘 굴러가는 그답다.

아무튼 카드 패키지를 판매하는 건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극악의 확률을 뚫어야 하는 카드깡인 건 변함이 없지만.

제논 일대기는 본래의 명성 및 희귀성으로만 먹고 사는 것으로 일단락됐고, 다음은 피와 강철이다.

사실 피와 강철이 본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아예 게임으로 만들 작정이었으니까.

"게임이라고 하셨는데 생각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예. 어떤 거냐면······"

머스크는 나에게 피와 강철을 배경으로 둔 카드 게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개성이 뚜렷한 진영으로 나눌 것이며, 각 진영에 속하는 카드가 존재한다.

여기서 A는 a에 해당하는 힘을, B는 b에 해당하는 힘을 나누고 각각마다 고유의 특성이 존재하도록 만든다.

이걸 적절히 버무려서 내는 게 머스크가 제안한 카드 게임이다. 마침 진영별로 딱딱 나누어지니 패키지로 만들기 편하다.

"어떻습니까? 나름 괜찮지 않습니까?"

"··· ···"

자신만만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머스크의 말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될지 모르겠다.

이 인간. 전부터 느꼈던 건지 칼즈처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인 것 같다.

평범한 출판사 사장이 맞긴 한 걸까. 심지어 출판사 사장이어서 카드 패키지를 출시하기 더 편하다.

나야,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어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데 머스크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다.

"······괜찮긴 한데 밸런스 문제는 어떻게 하실 거죠?"

"밸런스 자체는 저희가 감당할 예정입니다. 아이작 님께서는 특징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음······"

끌리는 제안이다. 밸런스를 고려하기 싫어서 카드 게임은 뒤로 미룬 건데 알아서 해준단다.

여기에 이것저것 추가하다보면 전생과 비슷한 게임이 등장하겠지. 물론 이 세상만의 특색이 깃들긴 할 것이다.

'출시해도 상관없겠지?'

내 본업은 작가지, 카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머스크의 말마따나 기본적인 개성 및 특징만 전달하면 끝이다.

칼즈에게는 초안을 보내줘야겠지. 피와 강철뿐만 아니라 제논 일대기도 함께 말이다.

돈은 돈대로 벌 수 있으면서도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제안. 나쁘지 않다.

운빨좆망이라면 욕은 좀 먹겠지만.

"알겠습니다. 머스크 님의 제안을 받겠습니다만······"

"다만?"

"몇 가지 룰을 추가하셨으면 합니다. 피와 강철의 세계관이 복잡한만큼 그만한 룰은 더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요?"

나는 예를 들어달라는 머스크의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컨셉 자체는 편하다. 나치 독일과 일본은 초중반까지는 강하다가 후반 뒷심이 밀리는 컨셉을.

반대로 미국과 소련은 초중반까지는 힘들다가 후반에 도달하면 포텐셜이 터지는 방식으로.

골치아픈 수 싸움이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이나 소련은 빌드업을 세밀하게 해야 되고, 나치 독일과 일본은 초반에 이득을 봐야하니.

"몇 가지 조건에 부합한다면 특정 효과가 발동한다던지, 특정 인물이 등장하면 효과를 본다던지 등등. 생각보다 많습니다."

"으음······ 아까 말씀하신 대로 밸런스를 맞추기가 어렵겠군요."

"간단하면 재미가 없죠."

머릿속에 떠오른 게 하나 있긴 있다.

오직 미국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자 조건을 발동시키기 더럽게 빡센 효과.

조건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존 폰 노이만 등과 같은 과학자가 3명 있어야 된다.

과학자를 모으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특정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고 그에 맞는 공군 및 사령관까지 보유해야 된다.

예상했겠지만 내가 말한 효과는 뉴클리어 즉, '핵폭탄'이다. 효과가 발동되는 그 즉시 상대방에게 치명적 일격을 가하는 위력.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진영 상관하지 않고 저것만 발동하면 끝이다. 물론 저걸 차근차근 빌드업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뒤질 확률이 높겠지.

하물며 실력뿐만 아니라 '운'이 따라줘야 된다. 게다가 당장 판매할 효과도 아닌 것이, 피와 강철에서조차 극후반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피와 강철은 꾸준히 연재 중인데 지금 판매해도 괜찮겠습니까?"

"상관 없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카드를 내면 되니까요. 사실 지금 발매하는 것도 약간 늦은 편입니다."

업데이트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칼즈를 스윽 쳐다봤다.

칼즈는 현타가 강하게 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이에 그의 어깨 손을 얹었다. 손을 얹자마자 칼즈가 나를 바라봤다.

"칼즈 씨."

"······예."

"빨리 문하생을 찾는 게 좋겠네요."

"꼭 저 혼자 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이만한 돈을 주면 기꺼이 하지 않아요?"

참아왔던 게 폭발했는지 결국 항의하는 칼즈.

"칼즈 씨만한 사람이 없어서 문제죠. 진짜 없습니다."

"없다고요? 말이 안 되는······"

"아이작 님에 비견되는 작업 속도를 가진 사람은 칼즈 씨 말고 없습니다."

"··· ···"

머지않아 머스크의 말에 납득 아닌 납득을 해버렸다.

"······미리 도망쳐야 했는데."

후회 어린 칼즈의 중얼거림은 덤이다.

*****

피와 강철이 두 가지 맛(?)으로 분류된 이후, 사람들은 의문을 지녔다.

이거 둘 다 구매해야 이야기가 진행되냐고. 다른 파트를 읽지 않는다면 스토리의 이해가 힘드냐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다. 하나만 집중해서 읽어도 상관없으며 다른 국가의 상황도 겸사겸사 알려줬다.

소련과 미국은 연합국에 소속돼 있었으며, 특히 소련은 미국의 렌드리스를 통해 나치 독일을 꾸역꾸역 막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동맹이라서 상황 자체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차이점은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은 나치 독일에게 조국이 짓밟혔기에 복수를 울부짖었고, 미국은 일본에게 참교육을 시전하려 벼르고 있다.

소련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반대로 미국은 활발하고 정열에 넘치는 분위기인 셈이다.

[심성이 약한 자들은 거인을, 반대로 무거운 이야기를 원한다면 붉은 군대를 읽어라.]

미국편이 남녀노소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면 소련편은 전쟁의 끔찍한 참상이란 참상은 전부 튀어나왔다.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할 수 있었으나 붉은 군대의 수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순화 같은 건 하나도 없고 온갖 범죄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됐으니. 그런 게 싫은 사람들은 대부분 거인을 골랐다.

물론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다가 청소년이라 해서 붉은 군대를 읽지 말라는 건 아니다.

오히여 시대상이 시대상이다 보니 청소년들에게 권유하고 다닌다. 전쟁을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이렇듯 피와 강철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을 때쯤.

"응? 이게 뭐야? 카드?"

"콜 오브 듀티······ 나치 독일 팩?"

서점이 아닌 잡화상점에 새로운 물건이 등장했다. 아이작의 조언 아래에 제작된 카드 게임, 콜 오브 듀티.

전생의 게임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팩마다 나치 독일, 소련, 미국, 일본, 영국 등등. 여러 종류의 팩이 존재했다.

사실 카드 자체는 신문을 통해 판매한다고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점을 방문한 사람은 상당히 앳된 얼굴들이다.

신문과는 거리가 멀고 부모님의 용돈으로 하루를 보내는 소년소녀들. 친구들과 지내는 것만으로 하루가 행복한 아이들이다.

"한 번 사볼까?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하나당 50 쿠퍼란다."

10쿠퍼는 원화로 따지면 100원이다. 다시 말해 500원이라는 뜻.

대공황의 여파가 슬금슬금 옅어지는 상황이기도 했으나 용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값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싼 가격에 놀란 것도 잠시, 곧바로 콜 오브 듀티를 구매했다. 한 명은 나치 독일로, 다른 한 명은 소련이다.

나치 독일답게 포장지가 검은색이었으며 반대로 소련은 붉은색이었다. 팩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응? 이거 피와 강철이잖아? 카드로 언제 나왔데?"

"그러게. 넌 뭐 떴어?"

"어디 보자······"

앳된 얼굴의 소년은 친구의 말에 카드를 주섬주섬 확인했다.

일반 병사, 나치 독일의 무기, 전차 등등. 신기한 것들은 많이 떴지만 정작 좋아 보이는 건 없었다.

이에 실망하려던 찰나,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게 하나 있었다. 머스크가 언급했던 수집용 제논 일대기 카드.

"진이 떴네? 이름이······"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소년에게 루미너스의 행운이 깃들었던 걸까.

"디아볼스? 디아볼스의 영혼을 먹어치운 진이라는데?"

"그거 제논 일대기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 아냐?"

"내가 알기로는 그래.

극악에 극악의 확률로 뽑을 수 있을 거라 추정되던 카드, '진: 디아볼스' 카드가 소년의 손에 쥐어졌다.

겉표면도 도금을 한 것인지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카드. 누가 보아도 좋아 보이는 카드다.

"이거 좋은 거야?"

"반짝거리는 걸 보면 좋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소년들은 그 카드의 값어치를 모르고 있었다.

"얘들아. 혹시 그 카드 이 아저씨한테 팔지 않겠니? 이 아저씨가 10골드에 사도록 하마."

"당신 양심이 있는 거요? 적어도 100골드는 되야지!"

"이보세요!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일단 아이 부모님을 불러서······"

"비켜! 내가 저 카드를 살 거야!"

"어, 어?! 저 새끼 막아! 조금이라도 손상이 가면 값어치가 떨어질 거라고!

상점 안에 있던 사람들만 빼고.

아이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상점을 멀뚤멀뚱 둘러볼 뿐이었다.

"이거 좋은 거 같은데?"

"그러게. 이걸로 뭘 살 수 있을까?"

"마차?"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이작이 세상에 또다른 독을 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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