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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90)화 (591/763)

Chapter 589 - 콜 오브 듀티(1)

반제 회의 즉, 홀로코스트는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충격을 선사했다.

전쟁은 다양한 이유로 발발하지만 민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 터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상대 민족을 향한 증오심으로 온갖 범죄가 나오기 마련이며, 학살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편이다.

그러나 민족 사이의 전쟁조차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지, 결코 '절멸'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아닌 노예 혹은 가축 취급을 하더라도, 그걸 보며 낄낄 비웃더라도, 어쩌다 보니 목숨을 잃게 만들더라도 절멸까지는 아니다.

하물며 홀로코스트는 국가는 물론 국민들마저 단체 광기에 빠져버렸던 사건이다. 누가 보아도 '악'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반드시 무찔러야 할 '악'이 되었다.]

[한치의 용납조차 허용하지 않는 악이 되었으나 그렇기에 훌륭하다.]

[히틀러가 중간에 개심하는 것이야말로 개연성이 어긋나는 일. 광기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옹호하는 자들은 없었다. 유대인이 무슨 잘못을 했겠지라며 변호하는 자들마저 등을 돌렸다.

꾸준히 언급했듯이 이 세상은 마족이 유대인 포지션에 가까웠기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내가 예상한 대로 단순한 십새끼를 넘어서 그레이트 십새끼로 진화한 모습.

'악의 화신'으로서의 매력 및 캐릭터성도 진화한 건 덤이다.

그나마 다행히 사상만큼은 쏙 빼놓고 캐릭터만 칭찬하고 있다.

[제논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너무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는 전개다. 그렇기에 믿고 싶지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미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족에게 힘이 없었다면······]

[우리는 신에게 감사해야 된다. 신은 필멸자들이 광기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고 계셨다.]

겸사겸사 신앙이 더욱 강해졌다. 사람들이 피와 강철에 관심을 지닌 이유 중 하나가 신의 존재다.

지구는 신의 존재가 불확실해도 종교가 있으며, 문명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불확실하기에 나치 독일과 같은 광기를 제어하지 못했다.

현실에 없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

무엇보다 세이비어의 광신을 막은 기록까지 있으니 신앙심이 전보다 훨씬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작."

"말씀하세요."

"정말 이런 미친 생각을 한 나라가 존재한 게냐? 네 상상이 아니라?"

다만 부작용 아닌 부작용을 낳기도 했는데, 바로 독자들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다.

독자들은 이러는 게 개연성에 부합하다며 경악과 동시에 칭찬을 했지만, 부모님을 포함한 지인들은 다르다.

이들에게 지구를 보여줄 때는 내 과거 및 영화만 보여줬다. 2차 세계 대전처럼 회색빛만 가득한 지옥이 아니라.

괴리감이 심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유대인이 민족 단위로 학살당하는 시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평화롭다.

비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창 전쟁 중이고, 끔찍한 참상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지만 2차 세계 대전보다는 낫다.

"네. 스포일러지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괜찮다."

"훗날 나치 독일은 입에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는 존재가 돼요. 본인들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는 중이고요."

훗날 서독의 총리가 폴란드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한 건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도 다를 게 없다. 유럽에서 발언권이 큰 독일이라지만 나치 독일 관련 사안은 '범죄'로 취급한다.

장난식으로라도 독일에서 나치식 경례를 한다? 잡혀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전에 시민들에게 신나게 얻어터질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만······ 정말 못 믿겠구나. 전쟁이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지만······"

아버지는 내 대답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전쟁이라면 신물이 날 아버지지만, 아버지조차 나치 독일의 만행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다.

도덕 이전에 인간성일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홀로코스트. 사적으로는 평범한 사람이라 다름없다는 게 더 공포다.

제일 윗대가리인 히틀러조차 사적으로는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유대인 이송으로 유명한 아이히만도 마찬가지고.

"아이작. 이거 정말로······"

"아이작? 이거 거짓말이지?"

"아이작. 잠깐 할 말이······"

아버지 다음으로 수많은 지인들이 나에게 찾아와 진의를 물었다. 알븐하임으로 복귀했던 아르웬조차 믿을 수 없었는지 냉큼 달려오더라.

그럴 때마다 일일이 해명 아닌 해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시기에 살던 건 아니지만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사실이다.

가끔 가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워낙 많았어야지.

더 끔찍한 건 아우슈비츠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이 많은 반면, 다른 수용소는 죄다 죽어서 생존자가 거의 없다.

'히틀러가 이 세상에 왔으면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히틀러가 아니다.

현재 홀로코스트로 인해 세상이 떠들석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카데미도 중요하다.

제논 축제 이후 시간이 흐른지라 아카데미가 개학했지만, 나는 물론이요 마리도 아카데미로 가지 않았다.

물론 아카데미와 합의는 했다. 마리의 임신으로 인해 학생 신분으로 남기는 어려우며, 앞으로 교수로 활동할 거라고.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쌍수를 틀고 환영할 소식이어서 어떤 편의는 봐줄 거라고 말했다. 덕분에 시간을 조금 벌 수 있었다.

'비축분도 쌓을 대로 쌓았고. 추축국도 악당으로 변했으니 그나마 편해질 거야.'

피와 강철 연재도 문제가 없었다. 1942년은 2차 세계 대전의 정점이었던 시기.

전쟁의 판도를 뒤집어버릴 대형 전투가 연달아 터지며, 수많은 사람들은 추축국이 악이라 인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중일전쟁부터 시작해 틈만 나면 학살, 강간, 생체실험을 해댄 탓 비호감 스택을 착실히 쌓았고, 진주만 공습으로 정점을 찍었다.

나치 독일은 두말 할 것없다. 이번 반제 회의를 통해 일본보다 더한 십새끼들이 된 상황이다.

'보통 같으면 미국은 정의의 포지션으로, 소련은 복수귀지만······'

꾸준히 밀고 있던 컨셉 아닌 컨셉이다. 하지만 미국도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이라는 과오를 저지른 적이 있다.

이외에 인종차별 문제가 심심하면 거론되었으며, 2차 세계 대전에서조차 유색인종은 차별받았다.

결국에는 미국과 소련 모두 복수귀 포지션에 가깝다. 소련은 불곰이고, 미국은 약간 세련된 형식인 게 차이일 뿐.

'걸리는 점은······'

2차 세계 대전은 그 위명에 걸맞게 전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나라와 나라가 아니라 전세계를 포함해서.

어느 한 곳에서 전투가 터지면 지구 반대편에서 전투가 동시에 터지고, 어느 한 쪽이 조용해도 한 쪽은 조용하지 않다.

이걸 왔다 갔다 설명하기에는 너무 중구난방이다. 그렇기에 약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아예 분류하느냐, 아니면 시간대로 하느냐.'

원고는 이미 다 적었다. 하지만 전개 방식 자체가 걸렸다.

어느 게임처럼 각 측의 진영을 따로 나누어 연재할지, 아니면 시간대에 따라 물 흐르듯이 연재할지.

게임에서는 전선에서 구르고 구르는 '주인공'이 존재하기에 좀 더 편할 테지만, 피와 강철은 아니다.

전선에서 구르는 병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머리를 싸매며 전략을 구상하는 사령관, 마지막으로 제일 윗대가리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기에 분류하면서 연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여기서부터는 순수 내 역량이다.

'우선 전투를 중심으로 잡고,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묘사해야겠지. 나치 독일과 일본은 악당 포지션이니까······'

나치 독일과 일본의 등장 빈도는 전보다 적어질 것이다. 원래라면 전략전술을 짜는 상황을 상세히 표현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열심히 놀고 있으니 넘어가자.

그곳은 지금도 롬멜이 신나게 뛰고 있다. 앞으로 패튼과 몽고메리도 등장할 테니 더 즐겁겠지.

'분류별로 하자.'

시기별로 적었다가는 독자들도 어지러워 할 것이다. 몇몇 전투는 대충 묘사할지언정 진영별로 묘사하는 편이 낫다.

북아프리카 전선도 미국측 진영으로 묘사하면 편하다. 소련은 나치 독일에만 집중하는 상황이고.

이처럼 모든 것이 정리됐겠다, 나는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각 전투별로 비축분을 쌓았다.

물론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수정해야 되는 건 변함없다. 이건 좀 고생해야 될 부분이다.

'나처럼 고생해야 될 사람이 한 명 있지.'

진영별로 연재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당연히 '표지'도 교체해야 할 타이밍이다.

지난번 칼즈로부터 꽤 멋있는 표지를 받았지만 내가 마음 먹은 이상 교체할 수밖에 없겠지.

칼즈를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돈을 주는만큼 값을 해야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주식에 전부 꼴아박은 나머지 그는 돈이 절실하다. 반대로 나에게 차고 넘치는 게 돈이고.

'소련은 붉은 군대에 걸맞도록 붉은색 바탕으로 하고, 미군은 짙은 청록색으로······ 아참. 부제도 정해야지.'

칼즈가 살려달라고 비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만 착각이겠지.

시간이 없다면 다 함께 통조림이 되면 그만이다. 한 번 경험했으니 두 번 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부제로는 붉은 군대와 거인으로 하면 되겠다.'

나는 흡족해 하며 구상을 끝냈다. 남은 건 발매 뿐.

초반에는 미국과 소련 모두 추축국에게 패배하는 그림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해군에게 패배하고, 소련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승리할지언정 꾸준히 패배할 테니.

그러나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승기를 가져올 예정이다.

'가기 전에 혹시 모르니 다시 한 번 통조림이 되는 게 좋겠다.'

아카데미로 향하기까지 약 일주일 정도가 남은 상황. 그중 하루 정도는 칼즈와 사이좋게 통조림이 되는 게 좋을 것 같다.

칼즈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환청이 들리는 건 왜일까.

적적하지 않도록 영화라도 틀어줘야 하나 싶었으나 그건 약간 곤란하다.

'돈을 좀 더 주면 되겠지.'

돈이 최고다.

******

반제 회의를 통해 전세계가 급격하게 요동치는 와중에 피와 강철의 연재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도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피와 강철은 열심히 정독했다.

홀로코스트의 시작이 언제인지 궁금한 것도 있으나, 우선 모스크바 공방전이 제일 시급했으니.

모스크바가 함락되는 순간 스탈린의 모가지가 날아가고, 그리 된다면 소련은 자연스레 패배에 직면한다.

원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치 독일을 응원했지만, 반제 회의 이후에는 어떻게든 소련이 버티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논 축제에서 히틀러 역할을 맡았던 소감은?"

"그때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얼씨구."

앤은 로이의 대답을 듣고 한 쪽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그러나 로이는 떳떳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떳떳한 것과 별개로 눈치는 있다. 인중에 나 있던 칫솔 수염이 깔끔하게 없어졌지 않았는가.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결코 굴복한 게 아니야. 단지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지."

"염병 떨고 있네. 반제 회의 보자마자 허겁지겁 면도하던 놈이."

"제논 축제가 돌아오면 다시 기를 거다."

"에휴."

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제로 로이는 눈치 때문에 면도했을 뿐, 제논을 향한 팬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제논 축제마다 칫솔 수염을 비롯한 히틀러 코스프레를 하며 나타날 거라 엄포했다.

여러모로 제논을 향한 팬심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도 히틀러가 가상 캐릭터라는 걸 일깨워주는 사고방식.

평상시에 코스프레를 한다면 이상한 놈 쳐다보듯이 바라보겠지만, 제논 축제만큼은 예외였다.

"음? 뭐야?"

피와 강철 신간 구매를 위해 서점에 방문했던 두 남녀. 서점에는 제논의 작품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제논 일대기는 물론이요, 피와 강철까지 분류돼 있어서 구매하기 편하다. 하지만 오늘 발매된 신간이 심상치 않았다.

"표지가 바뀌었네?"

"표지가 바뀐 것도 있는데 부제도 달렸어. 이건 뭐지?"

하나는 '피와 강철: 붉은 군대', 또 하나는 '피와 강철: 거인'이라는 식으로 분류돼 있었다.

표지도 각각 달라서 뭐가 어떻게 된지 알 수 없는 상황. 오늘 발매된 신문을 읽지 않고 기간만 알고 와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몰랐다.

"자네들 그 소식 못 들었나보군. 앞으로 피와 강철은 이런 식으로 발매될 걸세."

로이와 앤 같은 상황을 많이 보았는지 지나가던 행인 한 명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에 두 남녀가 행인을 바라보자 행인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최근에 미국도 참전했지 않았는가? 그래서 하나는 독소전쟁을 기점으로, 또 하나는 태평양 전쟁을 기점으로 두었다네."

"소련과 미국 말인가요?"

"그렇지. 그래도 독소전쟁이 인기다보니 붉은 군대가 잘 팔리는 모양이야."

실제로 그렇다. 붉은 군대는 바닥을 보이기 직전인 반면 거인은 상당히 널널한 편이었다.

독소전쟁은 인기가 절정을 달하고 있는 반면, 태평양 전쟁은 이제야 막 발발한 거라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행인의 설명을 들은 앤과 로이는 잠깐 고민하다가 서로 합의했다.

"내가 붉은 군대를 살 테니까 네가 거인을 사. 서로 바꾸면서 읽으면 되니까. 최근 장비 수리비 때문에 돈이 애매해."

"알았어. 근데 나중에 소장용으로 천천히 사면 되겠지."

어차피 함께 붙어다니는 입장이라 다른 걸 구매해도 상관없다.

그리하여 로이는 붉은 군대를, 앤은 거인을 각각 구매했다.

"근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그냥 다 함께 적으면 되지."

"세계대전이잖아. 좀 더 편하게 묘사하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겠지?"

이때까지만 해도 제논이 상술 아닌 상술을 부린다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다.

하지만 이 선택은 아이작조차 몰랐던, 이른바 신의 한 수가 되는 결정적 판단이었다.

그걸로 득을 보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유흥 거리를 만들자고요? 카드 같은 거?"

"예. 마침 분류도 깔끔하게 하셨지 않습니까?"

돈에 한해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머스크였다.

"근데 저는 또 왜 부른 겁니까?"

"칼즈 씨가 필요하거든요.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 ···"

고통 받는 건 칼즈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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