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88)화 (589/763)

Chapter 587 - 절멸(4)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점차 광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건 대부분의 독자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법부터 시작해서 세계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전쟁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치 독일이 터뜨린 일이다.

사실 정세가 정세다보니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나치 독일은 선을 넘는 행위를 밥 먹듯이 진행했다.

특히 장애인들을 모두 안락사시키는 T4 작전은 세상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가장 반발이 심했던 곳은 당연하게도 종교계였고.

안 그래도 스택을 조금씩 쌓아가다가 전쟁으로 터뜨린 나치 독일인데, 최근에 발간된 책은 가히 '악마'나 할 짓을 선보였다.

[머스크 출판사. 절멸은 멸종과 학살을 적절히 섞은 단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 알고 있을 것.]

반제 회의에서 등장한 최종해결책, 유대인의 절멸.

절멸이라는 단어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지만, 주석을 보자마자 몇 번이나 확인에 확인을 거쳤다.

유대인을 동물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도축하는 것마냥 말살시키는 프로젝트. 도덕심 이전에 인간성을 모조리 상실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제논이 기어코 선을 넘어버렸다.]

[과연 이것이 생각하는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무슨 마약 하셨길래 이런 생각을 한 겁니까?]

[신들이 천벌로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다른 민족을 멸종시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너무 충격적이고 가혹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작을 비판했다.

그러나 저 비판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마족이 유대인처럼 취급받았다. 마족은 헬리움이라는 국가가 있기에 안전했지, 유대인은 보호해줄 국가조차 없다.]

[300년 전 종족 전쟁 당시 인간이 수인을 학살했을 때를 떠올려라.]

[머나먼 과거, 세이비어는 마족을 악마라 단정짓고 성전을 선포했다.]

이 세상에도 비슷한 역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교적 최근에 발발했던 수인 학살이 거론됐다.

당시 종족을 보호해줄 국가가 없었으며 전쟁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수인은 인간 연합에게 학살당했다.

그중에는 노예로 붙잡혀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산 수인도 있었으며, 그 여파로 애니머즈와 인간 국가는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하지만 수인마저 유대인처럼 '도축'당하지는 않았다. 전쟁이라는 특수성에 힘 입은 학살이었을 뿐.

더구나 문명을 이룩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수인의 인구수는 턱없이 적었다. 히크가 애니머즈를 건국하여 인구수가 말 그대로 폭증한 것이다.

[세이비어가 광기에 빠져 마족을 학살할 때, 루미너스께서 경고를 내렸다.]

[마족은 비록 다른 종족에게 차별을 당했지만, 모라 님만이 그들을 어둠 속에 숨겨주셨다.]

[신의 존재가 불확실하기에 피와 강철 속 인간은 막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막는 게 아닌 이상 결코 막을 수 없다.]

반제 회의를 통해 다시 한 번 '신'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세이비어가 광신에 빠져 막나갈 때도 제지한 존재가 신이고, 차별 받는 마족과 다크 엘프를 보호한 것도 신이다.

비록 수인이 학살 당했을 당시에는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이때는 '선'을 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피와 강철은 신의 존재가 불분명하다. 국가가 단체로 인간성을 상실해도 제지할 존재가 없다.

[신께서는 거대한 폭력을 막을 수 있다. 허나 피와 강철 세계관은 더 큰 폭력이 필요하다.]

[나치 독일은 이미 자정 능력을 잃어버렸다. 프랑스 침공으로 나치 독일인은 히틀러와 정권을 신처럼 여기고 있다.]

[폴란드를 포함한 나치 독일 점령지에는 학살이 꾸준히 벌어지는 상황이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퍼즐이 딱딱 맞춰지는 기분일 것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독일인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한 정책이 바로 유대인 탄압이다.

여기서 선동 능력이 좋았던 괴벨스가 훌륭한 어시스트를 찔러주고, 프랑스 침공으로 그 절정을 찍었다.

그 누구도 히틀러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T4 작전도 수면 밑으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절멸 작전이 시행된다.

[아무런 과정도 없이 절멸 프로젝트가 시행됐다면 많은 사람들이 제논을 욕했을 것.]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어떻게 사람의 광기를 이 정도까지 표현할 수 있는 건가?]

[납득할 수 없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는 전개.]

개연성이 전혀 어긋나지 않았다. 본래 2차 세계 대전은 개연성 따위는 집어치운 걸로 유명하지만, 인간의 광기만큼은 잘 표현했다.

물론 집에서 빵 먹고 있던 아이작으로서는 제가요? 라며 어리둥절할 상황이지만.

아이작 입장에서는 지구의 역사를 적절히 버무려 쓴 게 피와 강철이다.

개연성 같은 건 개나 줘버리자라는 식으로 집필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광기를 너무나도 잘 설명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문서 승인만 된 상황. 좀 더 지켜봐야······]

가끔씩 몇몇 사람들은 신중론을 펼쳤지만.

[당신이 숨 쉬는 있는 지금도 폴란드나 소련의 유대인은 5초마다 총살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걸 읽는 동안 한 명이 또 총살당했다.]

잔인하고도 가혹한 현실적 발언에 전부 침묵했다. 슬픈 사실은 실제로도 그랬다.

아무튼 이로서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악당'이 아니라 진정한 '악마'로 거듭날 수 있었다.

등장인물 혹은 단체로서의 매력은 하늘을 찌를듯이 올라갈 수 있으나, 진심으로 추종할 수 없는 존재들.

아이작이 걱정했던 부분이 홀로코스트 하나로 대부분 씻겨져나갔다.

[악마 숭배자와 나치 독일. 그 승리자가 궁금하다.]

[악마 숭배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개새끼. 나치 독일은 가상의 십새끼다.]

[나치 독일이 우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차라리 악마 숭배자가 낫다.]

또한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실존하는 역사지만)라 악마 숭배자와도 비교됐다.

물론 악마 숭배자가 그나마 낫다는 건 절대 아니다. 위의 평가처럼 악마 숭배자는 실존하는 개새끼였으니까.

악마 숭배자도 나치 독일처럼 인간성을 상실한지 오래며 음지에서 온갖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단순히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웅장한 대결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악마 숭배자가 역병처럼 조금씩, 내부에서부터 퍼진다면, 나치 독일은 세상을 덮치는 거대한 해일이다.]

[어쩌면 악마 숭배자들은 이런 결과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한 국가를 광기에 빠뜨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한때 헬리움에서는 강경파 마족이 기승을 부렸다. 강경파 마족들은 전부 악마 숭배자와 연관이 있었다.]

그래서 악마 숭배자들을 욕했다. 악마 숭배자였다면 이런 일을 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실제로 인체 실험을 비롯해 끔찍한 행위를 밥 먹듯이 했던 작자들이지 않았는가.

그들의 목적은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치 독일과 비슷할 것이라 유추했다.

[신간 이후 면도기의 수요가 대폭 늘어나······]

[유행처럼 번졌던 히틀러의 칫솔 수염. 이제 그 수염은 축제에서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논이 차별을 만들어냈다며 비판해······]

면도기의 수요가 대폭발한 건 덤이다. 덕분에 한동안 인중이 깨끗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물론 대다수가 꺼림칙해서 면도를 한 것뿐이지,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칫솔 수염을 고수했다.

아무리 나치 독일이 인간성을 잃어버렸다고한들 판타지는 판타지니까.

진심으로 추종하는 건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 해서 코스프레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삼기에는 소설 속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제논이 우리에게 날리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신께서 우리를 보호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이 책을 보며 위험성을 깨달아야 된다.]

[마족의 악마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류 전체의 악마화를 걱정할 필요가 있다.]

[제논이 말한다. 악마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되는 개연성으로 인해 경각심을 가졌다.

괄목한 부분은 악마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악마는 마족에게만 통용되는 단어였으나 이제는 아니다.

악마는 마족만이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될 수 있다고. 사람의 탈을 쓴 악마도 악마라고.

[과연 나치 독일은 단순한 학살로 그칠까? 이보다 더 잔혹한 일이 나오지 않을까?]

동시에 불안에 떨었다. 절멸 프로젝트 즉, 홀로코스트가 가동된 이상 어떤 참사가 드러날지.

안 그래도 아기 공장 및 T4 작전으로 그 편린을 보여준 나치 독일이다. 더이상 뭐가 나오던 간에 경악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리고······

"허, 참나. 이런 식으로 물 먹인다라?"

이런 상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로브를 끝까지 뒤집어 써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늙수레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노인.

그는 최근 귀에 들어오는 소식들이 탐탁치 않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이런 광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신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불순하게도 신을 마땅찮게 여기는 노인. 천벌을 받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는 개념치 않았다.

대충 예상했다시피 노인의 정체는 악마 숭배자. 그리고 그 앞에는 로브를 쓴 또다른 남자가 앉아있었다.

"주교께서는 나치 독일을 원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정중하게 묻는 젊은 남자의 질문에 노인이 대답했다.

"우리가 이 미친 놈들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헛소리하지 말게나.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랑 완전히 달라. 이건 그저 광기에 지나지 않지."

악마 숭배자마저 미친 놈들이라 칭하는 나치 독일.

"그래도 부럽긴 하군."

"부럽다고요?"

"그래. 한 민족을 멸종시킬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뜻이잖나? 종족의 멸종은 신만이 행할 수 있는 것. 편린이긴 해도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셈이지."

"··· ···"

물론 악마 숭배자도 다른 의미로 미친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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