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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84)화 (585/763)

Chapter 583 - 석유(3)

아이작이 봤다면 플라스틱이라 칭했을 물질. 플라스틱은 지구 문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장난감과 간단한 용품부터 시작해서 더 나아가 총기류까지. 플라스틱이 안 끼는 곳은 거의 없다.

특히 첨단산업의 결과물인 컴퓨터와 스마트폰에는 플라스틱이 반드시 들어간다.

이처럼 플라스틱은 현대 문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지만, 이 세상은 약간 다르다.

"우리가 처음 이 물질을 발명했을 때 부족한 재료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지. 하지만 이걸 쓸 바에야 다른 걸 쓰는 게 더 나아."

데스칼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플라스틱 포크를 까닥거리며 명료히 말했다.

전에 말했듯이 헬리움은 썩어넘치는 석유를 최대한 활용했으며, 그 결과로 연금술이 엄청나게 발달했다.

보통 같으면 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할 테지만 헬리움의 고립성과 이 세상 특유의 개성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래도 연금술 하나만큼은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석유 하나만 파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물질을 분석하는 능력도 상승했으니.

아무튼 석유와 연금술을 조합한 결과 다양한 물질을 생성시킬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나일론이다.

또한 나일론을 등장시킨만큼 플라스틱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기로만 따지자면 100년이 훌쩍 넘겼다.

"대신 자네 말대로 공장을 지원하는 건 고려해보겠네. 다른 건 몰라도 옷만큼은 제작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폐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나."

데스칼은 플라스틱 상용화를 주장한 신하를 밖으로 내보냈다. 신하도 예의를 담아 정중히 인사한 후 밖으로 조용히 나섰다.

그러면서 왕의 집무실에는 데스칼 홀로 남게 됐다. 그는 조용해진 공간 속에서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포크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플라스틱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물질. 그걸로 만든 포크는 정말 평범해 보인다.

'이게 제작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라······'

하지만 제작년도로 따지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무려 50년 동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플라스틱 포크다.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녹아서 가공하기 쉽지만, 때에 따라서 극한의 한기 혹은 열기에도 버티는 물질.

더군다나 강철에게 있어서 최악의 천적인 산성에도 강하다. 범용성 하나만큼은 무궁무진했다.

'미스릴이 희귀성과 더불어 숙련된 대장장이만 다룰 수 있는 금속이라면, 이건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금속이지.'

심지어 미스릴은 플라스틱처럼 인위적으로 합성할 수 없다. 무조건 광산, 그것도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한 확률로 찾아야 된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석유와 연금술을 합치면 땡이다. 확률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이처럼 기적 그 자체나 다름없었지만, 데스칼을 비롯한 역대 헬리움의 통치자는 플라스틱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것만 만드느라 연금술사를 모조리 투입할 수도 없으니.'

우선 아까 말했듯이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다. 지구에서 물건이 싼 이유가 공장 및 대량 생산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세상은 이제야 막 공장이 들어서서 대공황을 차츰 치유하고 있다. 그러나 석유로 만든 재료들은 원래부터 연금술사가 담당했다.

문제는 그 가공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것. 석유로 특정 물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연금술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연금술사가 어디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흔한 직종은 절대 아니며 인식조차 괴짜에 가깝다.

헬리움은 살기 위해 국가 단위로 지원해서 크게 발전한 거지, '생산'에 적합한 인력은 절대 아니다.

생산을 할 바에야 차라리 노하우를 던져주고 연구에 몰두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나마 노하우를 알려주면 편하겠지만······'

스타킹의 원재료, 나일론은 노하우가 쌓이고 쌓인 덕분에 숙련공들이 존재하지만 플라스틱은 아니다.

비운의 발명품이었던만큼 지원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헬리움에서 소수의 숙련공 및 연금술사만 알고 있다.

물론 특유의 성질 덕분에 아예 안 쓰이는 건 아니다. 상하수도를 비롯하여 녹이 슬거나 부패하면 곤란한 분야에 적용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플라스틱은 유용성에 비해 쓸 곳을 마련하지 못 하고 있다. 정확히는 어디에 쓸지를 모르고 있다.

'군대나 모험가 직종에 적용해볼까?'

데스칼은 포크를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군대나 모험가 같은 직종에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모험가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으며 틈만 나면 노숙을 한다. 노숙을 하면서 식사를 해결하고.

듣자하니 의외로 지출이 심한 분야가 개인 용품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잃어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탓에 그렇다고.

만약 플라스틱 수저를 이곳에다가 투입시킨다면? 여러모로 큰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량 생산만 된다면 말이지.'

방금 전 신하의 요청은 부정적으로 대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름 실용성이 높다.

공장이 없었더라면 무조건적으로 반대했을 터. 그만큼 마력 기관과 공장의 등장은 마법보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공장과 연금술을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마키나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미네르바 제국에서 가동되는 공장은 단순한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허나 석유는 분류 과정부터 험난하다.

온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갈리고, 그 방법 안에서 또다시 과정을 거쳐야 된다.

그걸 죄다 마법으로 때우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더러 플라스틱의 효능성도 완벽히 입증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플라스틱은 너무 빨리 발명된 탓에 그 쓸모를 인정받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이미 노하우가 축적된 것만 공장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지금 필요한 건 물질 제작을 공장이 대신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헬리움은 어마어마한 부를 안을 수 있다.

당장 스타킹만 하더라도 큰 인기를 끌고 있었지 않았는가. 제논 일대기 출간 이후에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더구나 마키나에서 석유를 이용한 기관을 발명한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역시 신께서는 우리를 버린 게 아니었어.'

데스칼은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마족으로 살면서 신을 향해 의구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어째서 신은 자신과 동족들에게 고달픈 삶을 선사한 거냐고. 많고 많은 땅 중에서 어째서 이 땅을 고른 거냐고.

하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최근에는 행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그 시작은 제논 일대기 출간이요, 두 번째는 제논을 사위로 맞이한 것.

그리고 이번에는 피와 강철을 통해 석유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헬리움의 가치가 급부상했다.

'남은 찌꺼기로 도로 포장을 하면 된다고 했나?'

유일한 자식이자 행운을 물어오는 딸, 세실리가 알려줬다. 석유를 증류하고 남은 찌꺼기가 도로 포장에 유용하다고.

당연하게도 아이작이 알려준 지식이었다. 실제로 그 찌꺼기는 죄다 버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쓸 곳을 찾았다.

'혹시 이것도?'

데스칼은 다시 한 번 플라스틱 포크를 바라봤다. 신의 사도인 아이작은 어쩌면 이 기적의 물질도 쓸 곳을 찾아낼지 모른다.

세 번까지는 우연이라 할 수 있어도 네 번부터는 실력이다. 데스칼은 아이작이 정답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실리에게 플라스틱 포크를 보내야겠지. 겸사겸사 스타킹도 몇 벌 보내줄 예정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타킹이 조금 심하게 찢어져 버렸다고. 원래 스타킹 자체가 잘 찢어지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서 보내야겠군.'

이에 데스칼은 지체없이 플라스틱 포크 및 스타킹을 세실리에게 전송했다. 안부 인사 겸 설명을 위한 편지도 잊지 않았다.

방학이 끝났기에 세실리는 아카데미를 다니는 중이다. 그녀가 머무는 기숙사에 보내기만 하면 아이작에게도 전달될 터.

그리고 데스칼의 예상대로 택배(?)를 발송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이 물질을 완벽히 분해 아니,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자연의 고통'을 인류가 고스란히 맞이할 것입니다.]

"··· ···"

문제는 그것이 무시무시한 예언 아닌 예언이었다는 것.

플라스틱이 이미 존재했다는 건 둘째치고 미래를 알고 있는 아이작으로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에 쓰레기로 이루어진 섬이 존재할 정도이며, 바다 거북이 중 절반 이상이 플라스틱을 삼켰다.

물론 플라스틱만 환경오염을 조성하는 게 아니지만, 그중 투톱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탄소 배출과 플라스틱이다.

그나마 이 세상은 탄소 배출에 대한 걱정은 거의 없다. 마나라는 전기가 일찍히 등장한 덕택에 탄소 배출량이 훨씬 덜하다.

석탄을 이용한 마력 기관마저 증기력으로 마나를 생성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나마 덜하다는 거지, 우려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중에서 제일 심각한 것이 플라스틱이다. 이에 아이작은 마법도 존재하겠다, 그걸 쓰기 전에 해결법부터 강구하기로 정했다.

안 그러면 히르트의 분노가 머리 위로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이 물질을 완벽히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라! 이건 어명이다!"

데스칼로서는 심히 무시무시한 예언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의 분노도 아니고 자연의 고통이라는 글귀가 무섭게 와닿는다.

자연의 분노는 지진과 화산을 칭하는 거지만 '자연의 고통'은 전혀 듣지 못한 재앙이다.

모든 이의 어머니이자 자연 그 자체인 히르트를 고통 받게 하는 것도 천인공노할 짓인데, 그 고통이 모조리 되돌아 온다니.

"예? 하지만······"

"폐하. 이 물질의 최대 강점은 내구성입니다. 그런데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으라니, 그 말씀은······"

당연하게도 신하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기껏 기적의 물질이라 칭했던 플라스틱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으라니?

더군다나 이들은 마족이다. 100년 정도 안 썩는다 해도 오래 가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문제는 100년을 넘어 500년까지 썩지 않는 플라스틱도 있다는 것. 지구조차 플라스틱이 썩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신하들은 데스칼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음에 이어진 말에 태도를 바꾸었다.

"제논이 예언을 내렸다. 이 물질은 기적적으로 제작된만큼, 자연의 어머니에게 큰 고통을 줄 것이라고. 만약 우리가 완벽하게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 한다면 자연의 어머니는 점점 고통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 아예 폐기하면 되지 않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하지만 기적의 물질인만큼 100년 뒤에는 모든 분야에서 쓰일 거라 했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헛소리라 치부했을 예언. 하지만 아이작이었기에 데스칼 및 신하들은 철썩 같이 믿었다.

이미 헬리움에서는 아이작을 신과 동일시 여기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제논 일대기부터 시작해서 피와 강철까지 이어진 축복 덕분이다.

게다가 100년 뒤다. 인간으로 치자면 10년 후에 기적의 물질이 폭넓게 사용될 거라고 예언한 상황이다.

"저희에게 남은 시간은 100년이라는 말이군요. 자연의 어머니가 받게 될 고통을 고스란히 받을지, 아니면 지금 이대로 유지할지."

"기적을 창조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연금술사들에게 거대한 과업이 내려졌군요."

그래서 신하들은 군말없이 따랐다. 솔직히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력 기관과 공장, 더 나아가 전차마저 탄생한 마당에 그 누가 믿지 않을까.

데스칼은 신하 중에서 단 한 명의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자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자연에서 얻은 것들로 기적을 탄생시켰다."

본래 연금술은 철학에 가까웠던 학문.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 기적에 대한 책임을 질 때가 온 것 같구나."

오늘부로 연금술이 화학으로 재탄생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깨닫게 된 헬리움에서 또다른 태동이 발생하고 있을 때쯤.

'제가 벌 받을 일은 없겠죠?'

아이작은 진심으로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마력 기관과 전차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헬리움에서 플라스틱이 진작에 발명됐다는 건 예상을 초월한 일이다.

지구조차 1900년대가 되어서야 발명된 물질인데 이 세상은 스타킹과 함께 발명됐다고.

천만다행히 그 쓸모를 전혀 알지 못해 묻혀진 비운의 발명품으로 남게 됐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진가를 깨닫게 될 터.

플라스틱이 환경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알고 있는 아이작으로서는 루미너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지구처럼 환경이 오염되고, 더 나아가 히르트를 괴롭히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이야. 어머니도 지구를 통해 그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

그리고 루미너스는 그런 아이작을 살살 달래줬다. 그 덕분에 약간이나마 안심이 된 아이작이었지만.

[그리고 그 업보는 우리가 아닌 너희들에게 돌아오잖니? 우리가 아픈 게 아니라 너희들이 고통 받는 거란다. 우리는 경고만 할 예정이지.]

'······그게 더 무서운데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한 인류의 대가지.]

오히려 신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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