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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83)화 (584/763)

Chapter 582 - 석유(2)

마키나에서 석유를 이용한 마력 기관을 만들 수 있다고 언플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이거 퍼뜨린 새끼 자진해서 엎드려라."

"죄송합니다!"

"기술장님이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력 기관의 개량이고 나발이고 현재의 공학 기술력으로는 힘들다.

아이작이 느끼기에는 이 미친 난쟁이들이 또 이상한 걸 제작하는구나 싶겠지만, 마키나로서는 그냥 지른 거에 가깝다.

문제는 그 언론을 퍼뜨린 주체가 마키나라는 것. 나라에서 개량만 하면 된다고 당당히 선포한 셈이니 매우 골치 아픈 상황이다.

"하아······"

마력 기관의 개발자이자 가이스트의 기술장, 에인스는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멋대로 찌라시를 퍼뜨린 드워프들을 조지고 싶지만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

'나도 마력 기관은 양수기를 기반으로 만든 건데······'

마력 기관이 희대의 발명품, 그것도 세계를 바꿀 역작으로 칭송 받고 있다. 그러나 에인스로서는 양심이 따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력 기관은 증기 기관처럼 양수기를 기반으로 발명되었으며, 그것마저 제논 일대기가 없었으면 발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물론 증기 기관 즉, 외연 기관의 장점이 연료 선택의 자유도가 높다는 것이다. 석탄 대신 석유를 넣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굳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석탄에 비해 효율이 좋지 않다. 더구나 사람들이 원하는 건 '소형화' 즉, 새로운 기관이다.

피와 강철에서 보았던, 전차의 엔진처럼 석유만 넣고 가동할 수 있는 기관을 말이다.

'보일러의 크기를 줄일 수도 없는데······'

마력 기관은 전차를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극강의 효율을 보이고 있으나 한계가 명확하다.

그렇다고 크기를 줄이자니 보일러 문제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보일러 없이 가동되는 기관을 따로 발명해야 된다는 뜻이다.

"일단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전부."

"하, 하지만······"

"너희들을 통째로 석탄으로 쓰기 전에 당장."

"예, 예!"

에인스는 사고를 친 드워프들을 밖으로 모두 내쫒았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다.

이윽고 대장간에 홀로 남은 그는 짧은 다리를 터덜터덜 움직이다가 커다란 기계 앞에 털썩 앉았다.

희대의 역작이자 마키나의 에너지 운용을 담당 중인 마력 기관. 이번에 새로이 개량해서 만든 초대형이다.

비록 기술력의 한계로 마나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은 그닥 넓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발전소'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 중이다.

"에휴······"

에인스는 열심히 가동 중인 마력 기관을 바라보면서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축소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럽다.

심지어 마력 기관이 돌아가는 건 물이 증발하면서 생기는 증기력 덕분이다. 물조차 없어야 된다.

'그런 게 있었다면 공장들이 고생하지도 않았겠지.'

에인스 입장에서 증기력을 마나로 치환하는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에너지를 마나로 치환하는 기술은 진작부터 존재했다.

단지 그 에너지를 창조하는 기계가 없었기에 빛을 볼 수 없었을 뿐이지. 그의 입장에서는 널려있는 걸 주워먹은 거나 다름없다.

물론 그에게만 주워먹은 거지, 아이작이 봤다면 사기 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제논 님에게 물어봐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아이작에게 달려가서 지식을 얻고 싶다. 제논 일대기 및 피와 강철로 혁명을 이룩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민폐에다가 마키나에서도 할 일이 많다. 너무 자주 찾아가면 불편해 할 터.

'그래. 차라리 말을 바꿀지언정 스스로 해결해야지.'

아이작 입장으로서는 천만다행인 게, 그도 내연 기관의 원리는 하나도 모르고 있다.

마력 기관조차 에인스가 이것저것 주워담아서 발명한 건데 문과인 아이작으로서는 불가능한 조언이다.

심지어 석유로 제작할 수 있는 물질, 플라스틱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상황이다. 지금은 세실리의 스타킹을 열심히 찢고 있겠지.

아무튼 간에 에인스로서는 이번 사태만큼 골치 아픈 일이 없었다. 모처럼 평화롭게 대장장이 일을 하나 싶었다만 다른 쪽이 사고를 쳤다.

한창 마나를 생성하느라 석탄을 태우는 보일러실처럼, 에인스의 마음도 차차 타들어갔다.

"이보게! 친구!"

"음?"

그때 에인스의 귀로 우렁청 외침에 들어왔다. 익숙하면서도 정겨운 목소리다.

이에 고개를 돌리니 가이스트의 서기장을 맡고 있는 친우, 기아스가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옆에는 기아스의 보좌관인 드워프가 무언가를 끌고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레를 이용한 모양이다.

"뭐야? 지금 한창 바쁠 텐데?"

에인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기아스에게 말했다. 기아스는 가이스트에 있어서 정치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당원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 없이 움직일 시간이다. 그런데 대장간에 찾아왔다.

그런 에인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아스는 수레를 끈 드워프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뒤이어 드워프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지자 기아스가 에인스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 말대로 정신 없이 움직이고 있지. 마음 같아서는 퇴출시키고 싶었지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되는 법이잖나?"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발명품은 못 만들어. 뭘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발명은 무슨 발명."

"그러지 말고 이번에 내가 가지고 온 것부터 확인해 봐."

"대체 뭐길래?"

에인스는 기아스의 보좌관이 끌고 온 수레로 다가갔다. 그리고 수레에 담긴 물건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헬리움에서 얻어온 검은 물이라네. 제논께서는 석유라고 부른다지?"

"석유는 보통 새까맣지 않나?"

현재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검은 물, 즉 석유였다. 그런데 석유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포함돼 있다.

원료로 추정되는 석유는 정말 새까맣기 그지 없었지만, 다른 건 상당히 옅은 색을 띠고 있다. 어떤 건 아예 흰색에 가까웠다.

게다가 마법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걸 보면 보관 마법을 사용한 듯했다. 이게 대체 뭐라고 보관 마법까지 사용하는 걸까.

"맞아. 하지만 지난번에 들었잖나. 헬리움에서는 썩어넘치는 검은 물을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연금술을 발전시켰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지. 스타킹인가 뭔가 하는 양말도 그쪽에서 만든 거라며?"

"그리고 검은 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는 방법까지 터득했지. 피와 강철에서 등장한 전차나 비행기도 무작정 석유를 넣는 건 아니잖나? 헬리움에서 석유를 분류하는 건 자기들이 도와줄 테니 발명만 해달라고 부탁했네."

"자기들 멋대로?"

에인스는 심기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기아스에게 따졌다. 이런 건 보통 국가 대 국가 간의 상의가 오고 가야 된다.

그러나 헬리움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무작정 마키나에게 맡겼다. 명백한 외교적 실례다.

"발명을 못 해도 상관없다고 했네. 어차피 자기들 땅에서는 썩어넘치는 게 검은 물이라더군. 자기들은 기계를 만들 역량이 하나도 없으니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했네. 그리고 애당초 우리가 먼저 입을 털기도 했고."

"······입을 털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군. 그나저나 분류는 또 어떻게 했길래 새까만 물에서 이런 것들이 나오는 거지?"

마력 기관을 발명한 에인스지만, 그는 기계공학에 빠삭하지 다른 건 전혀 모른다.

공학의 기초인 물리는 기본이요, 연금술의 기본조차 모르고 있다.

드워프가 손기술의 달인이라지만 우물도 하나만 파야 대성한다고, 헬리움처럼 국가 단위로 연금술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이렇다 보니 에인스 입장으로서는 검은 물에서 다양한 물질이 나온 것 자체가 신기했다.

"증류라는 걸 이용했다던데 그건 잘 모르겠고, 한번 이것들을 이용해보게나. 어쩌면 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는가?"

"답은 개뿔. 어디 한번 얼마나 불에 잘 타는지나 보자고. 잘 타면 석탄 대신 쓰면 되겠지."

이미 반쯤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에인스는 코웃음치며 병 하나를 집어들었다. 무색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한 액체였다.

기아스는 그 액체를 보자마자 아주 잠깐이나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분명 가지고 갈 때 무어라 당부했던데.

'깨끗해 보이는 액체는 폭발 위험이 있다고······'

아이작이 봤다면 '휘발유'라고 칭했을 연료. 그리고 휘발유는 폭발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것도 모른 채 에인스는 시험이랍시고 보일러에 투입시킬 작정이었다. 깨끗하니까 석유처럼 폭발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 하에.

"자, 잠깐······!"

뒤늦게나마 제지하려던 기아스였으니 이미 늦었다. 에인스의 손에 있던 휘발유는 이미 보일러에 쏙- 들어간 지 오래다.

보관용기에 설정된 마법이 은근 단단했는지 곧바로 터지지는 않았다.

한 1초 정도?

콰앙!!!

적은 양이어도 휘발유는 휘발유. 갑작스러운 고온에 노출되자마자 큰 폭발을 일으켰다.

거센 화염이 분출되며 튼튼한 보일러가 망가질 정도의 위력. 그 위력에 걸맞게 에인스와 기아스에게 여파가 도달했다.

짜리몽땅한 키와 튼튼한 근육 덕분에 무게 중심이 낮아 잘 넘어지지 않는 드워프. 하지만 휘발유 폭발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으헉!"

"어억!"

상상을 뛰어넘는 폭발력에 에인스와 기아스가 꼴사납게 넘어졌다. 천만다행히 불길은 수레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잠시 후, 기아스는 거센 기침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발은 심했지만 거리가 있어서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단지 무턱대고 휘발유를 던져버린 에인스에게 화가 났을 뿐. 기아스는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에인스를 꾸짖었다.

"콜록. 콜록. 사람 말부터 좀 듣지. 마족들이 몇몇 액체는 폭발 위험이 있다고 했네. 걸쭉한 건 그나마 불에 잘 타지도 않지만 다른 건 전부 위험해. 알겠나?"

"··· ···"

"에인스?"

에인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불안해진 기아스는 서둘러 바닥에 누워있는 친우를 찾았다.

다행히 어디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보일러 바로 앞에 있어서 수염이랑 눈썹을 전부 태워먹었다.

우스꽝스러운 외양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으나 에인스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 홀린 것처럼 멍한 얼굴이랄까.

"이보게. 자네 괜찮나? 이거 몇 개인지 보여?"

"······굉장한 폭발이군."

"에인스?"

스르르-

무어라 중얼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에인스. 그는 폭발로 인해 망가진 보일러를 멍하니 쳐다봤다.

보일러를 수리하면서 몇 시간 동안 붙들어 매야겠지만 상관없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방금 전 그 폭발만이 떠올랐다.

"저 폭발을 이용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뭐?"

"방금 전 그 폭발은 우리를 밀어냈어. 증기력 같은 '힘'이 있다는 뜻이지."

아무래도 자신의 친우가 영감이 떠오른 듯했다. 이러면 분명 뭐라도 만들겠지.

그게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할 것이다.

"시끄럽고 보일러나 고쳐. 지금쯤이면 에어컨이란 에어컨은 전부 가동이 중지됐을 테니."

"조금 오래 걸리겠는데?"

"몇 시간?"

"하루 정도?"

다음 제논상은 에인스가 다시 한번 받을 거라는 것을.

******

에인스가 영감을 떠올림과 동시에 마력 발전소를 수리하고 있을 때쯤.

스타킹 팔아 돈을 번 아니, 앞으로 석유로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올릴 예정인 헬리움.

석유의 가치가 알음알음 올라가면서 산유국이었던 헬리움이 집중 조명을 받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헬리움으로서는 알븐하임조차 가지지 못한 막대한 축복에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예언가로 칭송 받는 제논의 작품에서 언질되었으니 가치는 보장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헬리움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석유를 처음부터 이용했으며 그 결과로 연금술이 극도로 발달됐다.

연금술이 발달된 덕분에 스타킹을 비롯한 다양한 물질을 석유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쓸모있는 게 아니다. 특히 이중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공장을 차려서 대량 생산을 유도하자는 건가? 정말 이딴 물질이 쓸모 있다고 보는 건지 궁금하군."

"저희는 몰라도 백성들은 자주 쓸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여 쓸모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지요."

"하지만 이건 공장이 있어도 대량 생산이 힘들지. 연금술을 그대로 공장에 접목시켜야 하는데 가능하다고 보는 겐가?"

헬리움의 왕, 데스칼은 공손히 간청하는 신하의 요청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현재 그의 손에는 포크가 쥐어져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평범한 포크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범한 포크가 아니다. 대중적으로 쓰이는 철이나 나무로 제작된 게 아니었으니.

너무 빨리 발명한 탓에 여전히 빛을 발하지 못 하고 있는 물질.

"이걸 대량 생산한다고 치세. 허나 이걸 만들어 쓸 바에야 차라리 다른 걸 쓰는 게 낫지 않겠나?"

'플라스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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