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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73)화 (574/763)

Chapter 572 - 구멍(3)

내 기억상으로 부모님은 대학교에 입학하고나서 얼마 가지 않아 돌아가셨다.

사고의 경위는 모른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전생에서 가장 절망스러웠던 기억이었으니까.

부모님은 외동이었던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냈으며 나 또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베풀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런 식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지.

그리고 내가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베푼 사랑, 즉 '효도'가 어떤 결과로 돌아왔는지 바로 눈 앞에서 펼쳐졌다.

"친척은 없대요?"

"두 분 모두 없다고 들었어요. 그나마 자식이 있기는 하지만······"

"저런. 어쩌다 이런 일이······"

"파리에서 일어난 그 선박 사고. 그 사고의 피해자래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제자매는 물론 부모님도 없으시다. 그래서 친분이 있으신 분들이 찾아왔다.

보통 장례식은 첫 날에 시끌벅적한 편이다. 부모님도 발이 넓은 편이어서 여느 장례식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환하게 웃고 계시는 부모님의 사진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며칠 동안 씻지도 관리하지 않아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과 떡진 머리.

대충 입고 있는 상복. 팔에는 혈육을 의미하는 완장이 달려있었다.

"유환아."

"··· ···"

"유환아. 아줌마 기억하지? 엄마 친구."

평소 안면을 트고 있었던 친척분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떨어진 적이 없던 친구들.

그들이 나를 불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저 하염없이 부모님이 미소 짓는 사진들만 바라볼 뿐이다.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웃분들도 내 곁에서 떨어졌다. 친구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자리를 떠났다.

장례식 중 일부인 절조차 하지 않았다. 조의금이 쌓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누가 나를 건드려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환한 미소를 지으셨던 부모님은 더이상 내 곁에 없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못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게 효도를 위한 여행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 ···"

시간이 흘러 모두가 떠난 저녁.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나는 눈을 감기 위해 드러누웠다.

친척이나 혈육조차 없는 쓸쓸함.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우리 아들.]

[아들을 잘 둔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네.]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신 그들.

반면 나는? 효도가 아니라 사상 최악의 불효를 저질렀다. 그 죄악감이 내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차라리 다 함께 갔다면 이런 기분조차 못 느꼈을 텐데. 차라리 다른 곳을 알아봤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정부나 신을 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마냥 공허한 기분만이 느껴졌다.

"엄마······ 아빠······"

누가 말했던가. 어른도 결국 누군가의 아이들이라고.

나도 다를 게 없다. 허나 나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너무 일찍 깨달은 게 문제였다.

너무나도 평범했기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청년. 불만이 가득한 사회에서 현재에 만족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던 사람.

그 중심이 되었던 부모님이 하루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효도를 위해 반쯤 등 떠밀어 보냈던 여행에서.

과연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 충격일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집에 가고 싶다."

많은 의미가 포함된 중얼거림. 저 말 하나로 내 심정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리라.

하루종일 부모님의 사진만 쳐다봐서 그럴까. 내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작."

"··· ···"

"아이작."

"어, 어?"

예상치도 못한 진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어머니가 걱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물기가 채워져 있다.

스윽-

"괜찮아. 우리 아들."

"······어머니?"

어머니가 그리 말씀하시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밑을 닦아주셨다. 나는 그저 눈만 깜빡거렸다.

언제 흐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급히 손등으로 닦아도 소용 없었다. 눈물샘이 고장난 것마냥 끝도 없이 흘렀으니.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텅 빈 느낌까지 들었다.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니 정신이 혼란스럽다.

"너는 단 한 번도 엄마나 아빠라 부르지 않았지.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엄······ 아니, 어머니······"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환생하고나서 단 한 번도 엄마, 아빠라 부르지 않았다.

귀족으로 태어났으니 자연스러운 거라 해도 이상하다. 원래 두 분 모두 평민이셨고 권위와 거리가 멀었으니까.

형제들은 존중을 담아 부르지만 가끔 가다가 엄마나 아빠라 부른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고.

위화감조차 들지 않았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숨겨진 진실을 목도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전생의 부모님을 진짜 부모님이라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할 말은 많겠지만······ 우선 저기를 보자구나."

"··· ···"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어두컴컴한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이 비추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내 모습은 '폐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서 비쩍 말라가는 몸뚱아리.

그럼에도 키보드를 끝까지 붙잡아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하루에 3연참은 기본으로 했던 걸로 안다.

콰당!

하지만 저 행위는 그저 몸을 망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의자에서 나오자마자 넘어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달리기는커녕 걷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근육이란 근육은 다 빠졌겠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밥은 대충 라면이나 배달로 때웠다. 그러나 살은 찌지 않고 빠지기만 했다.

띠링!

"··· ···"

반복된 패턴으로 글만 쓰고 있을 때 휴대폰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한 달마다 받는 정산이다.

미친 듯이 글만 쓰다보니 정산금은 두둑히 쌓을 수 있었다. 허나 말 그대로 쌓기만 했지,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허윽!"

정산금을 한 번 힐긋거리고 다시 글을 쓰려고 할 때, 갑자기 내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정확히 심장 부위다.

아마 저때 이곳에서 소환 의식을 펼쳤겠지. 내 영혼은 자연스레 이곳으로 넘어온 거고.

주위에 그 누구도 없는 쓸쓸한 죽음. 책상 위에 쓰러진 내 모습을 비추다가 이윽고 산산이 흩어졌다.

"··· ···"

"··· ···"

백색방으로 돌아왔으나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예상보다 비참하고 충격적인 죽음이었기에.

솔직히 말해 죽음 자체는 별로 상관없다. 그러나 부모님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의문이 든다. 나는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예요?"

어째서 모라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나에게 보여줬을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거였으면 차라리 말리기라도 하지.

고행 사태 때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고행에서는 뭣도 아닌 걸로 고생시켰다면, 이건 진실을 알려준 셈이다.

내 마음 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는 진실. 그 진실을 평생 동안 묻고 가도 괜찮았을 텐데.

[네가 미래를 선택했으니까.]

모라가 알 수 없는 대답을 꺼낸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백색방 전체에 모라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너는 악마 숭배자와 직접 대치하기를 선택했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고자 보여준 거야.]

"이게 지난번 고행과 다를 게 뭐죠?"

[네가 갖고 있는 구멍을 메꾸기 위한 일이지.]

"하지만 이런 짓을 하다가는······"

지구의 신들이 가만히 두고 보겠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지구의 신들도 이 부분만큼은 동의했어. 저 기억들을 온전히 보존한 채 넘어갔다면, 돌이 채 지나지 않아 돌연사했을 거야.]

"그런······"

"··· ···"

모라는 덤덤하게 얘기했으나 그 파급력은 무시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으며, 아버지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으니까.

나도 다를 바가 없다. 확실히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모라가 저런 말을 꺼냈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평범했기에 행복했던 아이야.]

"··· ···"

[나를 욕해도 상관없고 원망해도 괜찮단다. 그러나 이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중 하나였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모라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훗날 악마 숭배자가 이 구멍을 비집고 들어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

더구나 그녀는 안식과 평화의 여신. 어쩌면 이 일을 위해 손수 총대를 멨을 수도 있다.

루미너스가 행하려고 했다면 케이트를 통해 말을 전달했겠지. 그러나 루미너스는 정신 관련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니다.

"······언질이라도 해주셨어야죠."

원망이라기보다는 투덜거림에 가깝다.

이런 경우는 언질을 해도 의미가 없다. 막혀있던 혈로를 뚫은 것밖에 되지 않았으니.

하물며 마음에 구멍이 뚫렸다지만 현재는 다른 사랑으로 가득 채운 상황이다.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채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바람둥이 기질이 있던 것도 이때문인가?'

잠깐 시덥지 않은 생각을 했지만 곧바로 멀리 치웠다. 지금은 모라와의 대화가 우선이다.

"그럼 제 정신은 모두 회복된 건가요?"

[그건 아니야. 상처를 잘못 치료하면 흉터가 남듯이, 너의 정신도 마찬가지거든.]

그럴 수밖에 없다. 정신이 망가지는 건 즉, 영혼이 망가지는 것과 같다.

나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로 이리로 넘어왔다. 그것도 전생의 기억을 대부분 보존한 채.

어쩌면 전에 고행에서 모라가 말했던, 스스로 손목을 자른다는 미래도 트라우마가 발발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뭐가 됐든 간에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게."

[지금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데······]

"모라님?"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래도 속이 시원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보여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뭐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달까.

만족스럽다. 이제 더이상 숨기고 싶은 건 없다.

"악마 숭배자가 걸리긴 하지만······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러렴.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된단다.]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모라 님이 저에게 도움이 되네요."

[응. 아니, 잠깐.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모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딴청을 피우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에 모라는 한숨을 내쉬더니 특유의 발랄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더 묻고 싶은 건 있니? 신성을 걸고서, 너의 과거는 전부 보여줬다고 맹세할 수 있어.]

"으음······"

나는 그 질문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긴 있다.

내가 이곳으로 넘어오지 않았더라면 무려 90세까지 장수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 뭐 그리 오래 사냐고 어이없어했지. 그러나 그 이유가 분명 있을 터.

"만약 제가 이곳으로 넘어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으음······ 그건 좀 곤란한걸. 저쪽 세계의 일인 데다가 이미 사라진 미래라서.]

신이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모양이다. 살짝 아쉽긴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대신 설명은 해줄 수 있어. 네가 이곳으로 넘어오지 않은 세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전에 말했지만 너는 원래 90세 이상의 수명을 가진 존재야. 그 안에 다양한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가정까지 꾸렸지.]

의아한 이야기다. 나는 분명 폐인처럼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니.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모라가 부가 설명을 해줬다.

[이 모든 게 네 친구들의 도움 덕분이야. 그들이 너를 억지로 끌어냈지.]

"······정신에 하자가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끌어내도 되는 건가요?"

그 미친 새끼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거지. 당황보다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뿌듯해졌다. 내가 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구나 싶어서.

실제로 내 친구들은 탈선조차 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공부를 더럽게 못하던 나와 달리 둘 다 공부를 잘하기도 했다.

[친구가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니? 아무튼 시간이 흘러 너는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3명의 자식까지 낳게 돼. 그리고······]

뒤이어 모라가 꺼낸 말은.

[단 2표 차이로 네가 살던 나라의 지도자가 뒤바뀌지.]

생각보다 거대한 나비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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