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71)화 (572/763)

Chapter 570 - 구멍(1)

가족에 대해 설명하려던 찰나에 모라가 제지했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아닌, 방송을 하는 것처럼 백색방 전체에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

 

신의 부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나 또한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녀가 나선다고 하니 불안하다. 여태까지 모라가 나서서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고행만 꼬집어서 말하는 건 아니다. 내 머리카락이 장발로 유지되는 것도 있고, 한때는 장난이랍시고 성별을 바꾸려 했다.

 

다행히 그때는 루미너스가 제지했지만. 루미너스가 말하길, 중성화를 시킨 기분이 들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못 미덥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아까 전에도 내 군대 시절을 멋대로 보여줬지 않았는가.

 

"모라 님?"

[그런 거 아냐. 단지 너에게도 알려줄 사실이 있어서 그래.]

 

내 미심쩍은 물음에 모라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루미너스였다면 믿음직스러웠을 텐데.

 

그래도 신은 신. 인간적으로는 믿음이 부족하다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한 분들이다.

 

고행 때는 실수라고 할 수 있지. 그 실수를 말미암아 또다른 실수를 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믿어도 되는 거죠?"

[믿어도 돼. 이건 너에게도,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일일 테니까.]

"음······"

 

저리 자신만만하니 더이상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고민민하자 모라는 살풋 웃더니 특유의 발랄한 음색으로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건 네가 보여줄 내용과 다르지 않아. 차이점이라면 아이작의 시선이 아닌, 멀리서 지켜보는 식이지.]

"3인칭이라는 소리인가요?"

[응. 아까 봤던 거랑 비슷해. 그래야 더 이해가 갈 테니.]

 

이건 상관없다. 영원한 흑역사로 자리잡을 '패드립' 상황도 3인칭으로 보여줬다.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는 1인칭 시점이었으나 머지않아 시점이 바뀌었다. 이런 걸 보면 신기하다.

 

나는 팔짱을 끼며 약간 고민하다가 기꺼이 허락을 내렸다. 이번에는 사고를 안 치겠지라는 믿음이다.

 

"알겠어요. 믿어볼게요."

[고마워. 단, 아까도 말했지만 너도 주의 깊게 봐야할 거야.]

"어느 부분을요? 설마 이리로 넘어오면서 기억을 조작했다거나······"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불행한 기억을 조작해서 이리로 넘겼다던가 등등.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이었기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겠지만.

 

[그건 아니야. 너와 네 전생의 가족은 평범하고, 또 화목했어. 너는 그 가치를 일찌감치 깨달아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지.]

"사실 제가 고아였다던가 그런 건 아니라는 거죠? 다행이네요."

[대신······]

 

모라는 잠깐 말을 흐리더니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행복을 너무 일찍이 깨달았다는 게 문제였지.]

"··· ···"

 

그 말을 듣자마자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전생의 부모님은 외동이었던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고, 나 또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그것이 내가 폐인이 된 결정적 원인이다. 사고로 돌아가신 후에 내 정신은 차마 제정신이라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사회와 스스로 거리를 두고, 미친 듯이 소설만 집필했던 시기.

 

[그럼 시작할게.]

 

내가 씁쓸하게 웃는 동안 모라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와 동시에 백색방이 다른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뒤이어 새하얀 공간이 아닌 익숙하다면 익숙한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살고 있는 저택보다는 훨씬 좁지만, 나의 진정한 안식처였던 아파트 내부.

 

그리고 그 아파트 안에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부부. 아부."

 

오동통한 젖살을 지닌 아기가 힘겹게 걷고 있다. 어떻게든 밸런스를 잡기 위해 두 팔을 애매하게 펼쳤다.

 

귀여움이란 귀여움은 모두 한 곳에 때려박은 듯한 외모와 뚜렷한 이목구비.

 

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나.

 

"거,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우리 유환이 걷는다! 유환아!"

 

걷는데에 열중하는 아기와 다르게 앞의 두 남녀가 박수까지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의 뚜렷한 이목구비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남자.

 

반대로 다소 흐릿한 인상이었으나 충분히 미녀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여자.

 

전생의 내 부모님이다. 주름살 하나 없이 젊디 젊은 전생의 부모님.

 

꽈당-

 

"뿌애애앵!"

"아이고. 유환아 괜찮니?"

"안 아파?"

 

첫 걸음마에 실패한 내가 세상이 떠나가라 운다. 진짜 세상 서럽게 우네.

 

부모님은 해맑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나를 달래줬다. 두 분 모두 미소가 정말 매력적이셨다.

 

"아이작은 원래부터 의젓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한 번은 넘어졌을 때 씨······ 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거 기억해.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가족끼리 회의를 열었었는데."

 

전생의 내 가족들을 보면서, 현생의 가족들이 저마다 추억에 잠겼다. 대부분 내 어린 시절이다.

 

릴리와 나머지 형제들의 나이 차이가 심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도 늦둥이로 태어난 편이다. 니콜과 나이 차이가 5살 이상이였으니.

 

늦둥이로 태어난 나를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모른다. 정작 나는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어서 어른스럽게 행동했지만.

 

물론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똥오줌은 못 가렸다.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더라. 정말 치욕스러웠지.

 

"유환아. 아빠라 불러볼래?"

"엄마. 엄마.

"역시 아빠보다 엄마가 좋지?"

"압빠. 압빠."

 

청개구리 같은 면모도 있었구나. 내가 반대로 말하자 부모님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음을 흘리셨다.

 

뒤이어 내 생일 때 다 함께 축하를 불러준다거나, 걷는 걸 도와준다거나, 유치원에 데려준다던가 등등.

 

현재의 삶과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뭐 하나 특출난 곳 없는 삶.

 

나는 저 삶에 대해 진정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만족이다.

 

"유환아! 너 또 이럴래?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

"으아아앙!"

 

물론 청개구리 면모를 보았듯이 어릴 때는 말을 진짜 안 들었다. 지금도 말을 안 들어서 엄마에게 혼나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저 시절에는 체벌이 가능했던 시기다. 매로 다스려도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던 시절.

 

엄마의 손에 들려있는 회초리를 보면 아마 몇 대 맞은 걸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사랑의 매를 휘두른 엄마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라지만 마음이 불편했을 테니까.

 

"저 세상도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부모님이나 유모가 매로 때렸니?"

 

그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가 호기심을 담으며 조심스레 질문하셨다.

 

이 세상도 '사랑의 매'라는 풍습이 존재하고 있다. 시대상에 어울린다면 어울리는 풍습.

 

하지만 가끔 가다가 너무 과격한 나머지 아이의 정서를 망치는 경우도 흔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체리가 있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사랑을 마음껏 퍼부어주되 아이가 엇나가지 않도록 따끔하게 훈계하셨다.

 

"네. 어딜 가나 다 똑같더라고요."

"그렇지? 옛날에 너네 형이 아버지에게 따끔하게 혼났던 적이 있었는데."

"아, 어머니. 왜 그때 일을······"

 

데이브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어머니는 그저 살풋 웃으실 뿐이다.

 

옛날에 형이 아버지에게 한 번 대들었던 적이 있다. 물론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고 태도가 싹 달라졌지만.

 

니콜은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알아서 정신을 차렸다나 뭐라나. 나는 전생의 기억 덕분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다만 상식적인 부분에서 괴리감을 느낀 나머지 예상과 동떨어진 사고를 친 적이 몇 번 있다. 다른 의미로 힘드셨을 거다.

 

"엄마. 엄마."

"응? 왜 그러니?"

"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없어? 다른 친구들은 다 있다는데."

"··· ···"

 

내 질문에 엄마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어렸던 나는 그 미소의 뜻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전생의 나에게 본가와 외가라는 개념은 없었다. 두 분 모두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암으로 인해 명을 달리하셨다.

 

어머니 쪽은······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낫다. 별로 좋지 않은 걸 넘어서서 멀쩡히 성장한 것조차 기적이었으니.

 

좋지 않은 가정 환경에도 두 분 모두 나를 올바르게 키우셨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삶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된다.

 

"유환아. 아빠 얼마만큼은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엄마는?"

"엄마도 하늘만큼 땅만큼!"

 

어린 시절에는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무리하게 학원을 보내지 않으셨고, 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데에만 초점을 두셨으니.

 

동생을 따로 두지 않은 것도 그 일환이다. 자칫하다가 동생에게 신경이 쏠린 나머지 나를 소홀히 대할까봐.

 

실제로 그들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으니 그럴 가능성은 꽤 높았다.

 

하지만 언제나 부모님의 곁에 있을 수는 없는 법. 초등학생 시절까지는 부모의 품에 있다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아니다.

 

교복을 입고 하교한 날. 나는 휴일이었던 아빠에게 저런 질문을 꺼냈다.

 

"아빠. 아빠."

"음? 왜 그러니?"

"섹스가 뭐야?"

"······?"

 

아빠는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한동안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더니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말이니? 그거 어디서 들었어?"

"학교에서. 애들이 계속 섹스섹스거리던데?"

"··· ···"

 

초등학생이 무난했다면 중학교 때부터는 매운맛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창 사춘기에 돌입할 나이의 아이들.

 

나는 적어도 중학교 1학년까지는 순수했다. 컴퓨터를 하다가 우연찮게 '성(性)'을 접했을 때도 놀랐을 뿐, 그 이상의 행위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모님에게 이거 뭐냐고 다급히 물었거든. 그때 엄마가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컴퓨터를 종료하셨던 걸로 안다.

 

'그나저나 다행히 그 부분은 편집하셨나 보네.'

 

이 정도면 믿을 수 있겠지. 한편 나에게서 난감한 질문을 받은 아빠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다가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유환아? 학교에서 성교육을 가르쳐주지 않았니?"

"뭔지 몰라서 하나도 이해가 안 가던데?"

"······그래. 그렇겠지. 하나도 쓸모 없을 테니까."

 

아빠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확실히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성교육은 조금 아니, 많이 쓸모 없었다.

 

나중에 애들한테 그런 건 어디서 들었냐고 물으니 다들 하나 같이 인터넷에서 접했다더라.

 

때로는 학교에서 알려주는 것보다 친구 혹은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이 더 유익했다.

 

"그래도 케이트보다는 낫네. 그 사람은 성인이 될 때까지 몰랐잖아?"

"··· ···"

 

옆에서 마리가 위안 아닌 위안을 건넸다. 하기야 케이트는 '씨앗'이라는 개념만 알겠지, 그 이상은 몰랐다.

 

제논 일대기에 등장한 19금 씬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개안했지만.

 

아무튼 다사다난한 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서서히 상식을 알게 됐다.

 

저 때도 정말 평범했다. 일진들이 싸우든 말든 내 할 일만 하고 지냈으니까.

 

탈선한 일은 절대 없었다. 단지······

 

"엄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공부는 알아서 한다니까! 그냥 가만히 좀 놔둬 제발!"

 

사춘기가 강하게 왔을 뿐이지.

 

나는 사춘기가 강하게 온 내 모습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모라 님? 편집 되나요?'

[이게 너의 전환점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알다마다. 나는 모라의 반박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유환아! 어디 가!"

"유환아!!"

 

왜냐하면 저때 홧김으로 가출했거든.

 

그것도 춥디 추운 겨울에.

 

"음. 저래야 정상이지."

"하긴. 우리 아이작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긴 했어. 저 분들에게 감사해야겠네."

 

현재의 부모님의 평가에 더욱 열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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