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4 - 과거(2)
'나에게 넘겨준 신성 조각이 사실 눈치 관련 신성이었나?'
이쯤되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모라는 눈치가 없는 면모를 보여줬으니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데 하물며 몇 천년 동안 성격을 유지한 초월자는 오죽할까.
반성하고 있는 것 같다만 제 딴에는 가까워지기 위해 '장난'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꾸준히 언급했지만 필멸자와 초월자의 사고방식을 동일선상에 놓으면 큰 오산이다.
모라도 나름 고민해서 군시절의 모습을 보여줬겠지. 허나 많고 많은 기억 중에 왜 군생활을 꼽았는지 모르겠다.
'아니. 학창 시절을 보여줘도 되는데······'
[그······ 밤 10시를 넘기면서 공부하는 것도 썩 정상적이라 생각은 안 해서······]
'··· ···'
내 감정을 읽었는지 모라가 자신감이 뚝 떨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만 따로 말한 듯하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납득 아닌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 시절을 말하는 것 같다.
헤일로 아카데미조차 오후 5시면 모든 수업이 종료된다. 또한 3학년부터는 전공만 파고들기에 널널해진다.
이것마저도 수업이 많다니 뭐니 하면서 투덜거리는데 대한민국의 교육 과정을 보면 까무러치겠지.
대학생 시절에 야자가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었다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밖에 추우니까 방상외피 같은 거 다 입고 가라."
"예. 알겠습니다."
"내복은 입었냐?"
"예."
일단 지금 보여주고 있는 장면부터 관찰해야겠지. 과거의 나, 그러니까 김유환은 현재 후임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다.
가족들도 지시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직감했는지 말없이 지켜봤다.
뭔가 부끄러운 것 같으면서도 오묘한 느낌. 나는 전생의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저 때도 콧대 하나는 잘 물려받았지.'
콧대뿐만 아니다. 눈썹도 두텁고 눈도 우묵하게 파여있어서 전반적으로 남성미를 물씬 풍기고 있다.
남자 외모에서 가장 중요한 T존이 강렬하다는 뜻이다. 그나마 아쉬운 건 피부 정도랄까.
더군다나 군인이라는 직업상 머리를 짧게 밀 수밖에 없었다.
보통 짬을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긴 하다만 나는 그냥 짧게 자르고 다녔다.
괜히 지적 받는 게 짜증났으니까. 그래도 운이 좋게 휴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전생에도 키 크고 잘생겼구나. 피부는 군인이라 어쩔 수 없을 테고. 지금이랑 다른 매력인데? 정말 아이작 맞아?"
전생의 내 외모를 이리저지 둘러본 마리가 신기하다는 어조로 감평을 내렸다.
지금의 나와 전생의 나를 서로 번갈아 보는 모습이 뭔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 사람 나 맞아. 가슴팍에 김유환이라는 글자······ 아, 못 읽겠구나."
"읽을 수 있는데?"
"뭐?"
"읽을 수 있어. 김유환. 그리고 저기 네모난 박스에서 나오는 영상의 말도 들리는 걸?"
나는 마리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도 마리처럼 자동번역이 되는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모라가 편의를 위해서 특별한 조치를 취한 모양이다. 이럴 때는 참 쓸데없이 좋아요.
그래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나 맞아."
"호옹······ 신기하다. 그런데 외모가 우리랑 다른 거 같네. 뭐랄까, 특정 민족처럼 보여."
"저런 외모와 비슷한 민족이 우리 세상에도 있던가?"
"없던 걸로 아는데?"
후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을 보며 가족들과 애인들이 저마다 말을 나눴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내 콧대를 높혀줬으나 인종에 대한 건 약간 조심스럽다.
루미너스가 전부 몰살시킨 민족이 동양인 즉, 황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윽고 지휘통제실에 방문하고, 안전 검사 이후에 탄약고로 걸어갔다.
최전방에다가 겨울이라서 숨을 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행히 방한복은 전부 지급해준 모양이구나. 이 날씨에 방한은 필수지."
"확실히 따뜻해 보이기는 하네요. 그런데 정말로 갑옷을 안 입어도 되는 거야?"
탄약고로 걸어가는 나와 후임의 모습을 보며 데이브가 질문했다.
방탄모를 제외하면 방어구도 없이 근무를 하러 나가는 것이다. 현역 기사인 데이브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응.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무기, 그러니까 총 보이지? 강철로 만든 갑옷으로는 총을 막을 수 없어. 방탄복을 따로 입어야 돼."
"그럼 그 방탄복도 없이 가는 거야?"
"그거 실상황이 아닌 이상 웬만해서는 착용 안 하는데?"
훈련에서조차 안 끼는 경우가 대다수다. 더럽게 무거운데다가 답답하거든.
대한민국의 훈련은 어지간해서 가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군장이 텅 비어있는 건 기본 패시브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로 실상황이 터진다면 전투 민족으로 돌변한다. 연평도 사건 때가 대표적인 예시다.
데이브는 내 대답을 듣고 황금색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머리를 긁적거렸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네이비 기사단이 빡센 건지 모르겠네."
"너도 최전방이었다며? 바로 코 앞에 적군이 있는 곳."
이번에는 니콜이다. 그녀도 데이브처럼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응. 맞아."
"그런데 왜 안 끼고 가? 그러다가 기습을 당하면 어쩌려고? 심지어 방금 전에는 적군이 도발까지 했잖아.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어······"
논리정연한 질문에 나는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니콜의 의문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북한도 '어지간해서는'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가하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던 시절에 북한군이 잠깐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등신처럼 길을 잘못 든 거더라.
지뢰 설치라니 뭐니 하면서 지통실이 난리가 났던 것과 별개로 맥 빠지는 결과여서 완전히 묻혔던 걸로 안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그것도 엄청 낮아. 그리고 선제 공격을 당했다는 건 경계를 느슨하게 섰다는 거잖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누나도 알지?"
"흠······ 그렇긴 하네. 경계만 잘 선다면 먼저 공격을 당할 일도 없으니까."
다행히 잘 넘긴 듯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앞을 쳐다봤다.
후임과 나란히 걷다보니 어느새 탄약고 앞까지 도달한 상황이다.
"정지.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쏜다. 담배."
"없어."
"누구냐?"
"됐고 빨리 나와. 이 새끼들아. 추워 뒤지겠구만."
음. 전형적인 말년 병장의 짬을 보여주는구만.
나는 암구호따위는 쿨하게 씹어주는 전생의 나를 보다가 주변의 눈치를 봤다.
아델리아를 제외한 애인들은 군인과 거리가 멀기에 킥킥 웃은 반면, 내 가족들은 썩소를 짓고 있다.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족들은 알고 있겠지. 전형적인 짬질이다.
"아이작."
"응."
"설마 너는 저런 걸로 트집 잡아서 갈구지는 않지?"
데이브의 혹시나 하는 질문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내가 갈굼을 받으면 받았지, 후임을 갈구는 사람은 아니다.
모라가 어째서 말년 병장 시절을 보여줬는지 알 것 같다. 이병 시절에는 온갖 갈굼을 당했던 걸로 안다.
그때는 휴대폰도 없어서 운동만 주구장창했다. 싸지방은 선임들의 장소였고.
"태원아."
"이병. 이태원."
"집에 보내줘."
"곧 전역하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집 가고 싶어."
탄약고 근무를 서는 와중에도 말년병장의 짬질은 멈추지 않았다. 흑역사를 대방출하는 느낌이라 얼굴로 절로 화끈거린다.
"저 마음 잘 알지."
"어느 세계던 간에 군인들은 다 똑같구나."
"어쩐지 아이작이 어릴 때 기사가 되는 걸 꺼려하던데 저것 때문이었구나?"
각각 데이브, 니콜, 어머니의 감평이다. 확실히 형제들과 다르게 나는 기사가 되는 걸 꺼려했다.
이 세상의 군대는 대한민국에 비해서 열린 사회지만 군대는 군대다.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우리 가문은 전부 군인 출신이로구나."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아버지의 농담 아닌 농담에 현장은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쑥쓰러움에 볼을 긁적일 뿐이었고.
덕분에 어째서 모라가 이 장면을 골라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무난한 스타트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
군인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의 공통된 주제를 만들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관계가 더욱 친밀해진다.
"아이작은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나는 진짜 성자인 줄만 알았는데."
"세실리 누나?"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걸? 그리고 저때는 몰라도 지금은 진짜로 특별한 사람이잖아?"
세실리가 내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능청스레 대꾸했다. 빙긋 웃는 얼굴이 소악마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녀의 말마따나 내가 특별하다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과연 그 누가 전생을 기억하고 신조차 건드리지 못할까.
"김유환 병장님은 전역하시고 뭘 하실 겁니까?"
"뭐하기는. 소설이나 써야지. 군대 와서 남는 시간동안 한 게 그거니까."
"혹시 전에 연재하시던 작품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됐어. 알아서 찾아."
비록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저때는 부끄러워서 말 안 한 거다.
왜. 그런 거 있잖나. 아는 사람에게 내가 쓴 작품만큼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
저때도 소설을 쓰는 건 엄연히 '개인적인 취미'에 가까웠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취미가 있기 마련.
소설을 쓴다는 걸 들킨 것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심리 때문에 밝힌 거다. 그거 때문에 부조리 아닌 부조리도 당했고.
"그러면 복학은 바로 하실 겁니까?"
"자퇴할 거 같아. 부모님 일을 도울 예정이라서."
"낙하산?"
"뒤질래? 라고 하고 싶지만 팩트라서 뭐라고 할 수가 없구나."
그래. 저것도 이제 기억난다.
대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자퇴할 계획이었다.
소설도 써야하고 겸사겸사 부모님의 일도 도와야 했으니까.
전생의 내 아버지는 건설업계에서 인지도가 높으신 분이셨다. 어머니는 평범하디 평범한 전업 주부셨고.
정말 평범하면서도 화목한 가정이었다. 외동으로 자라면서 두 분의 사랑을 듬뿍 받아먹었고,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열심히 되돌려줬으니.
그 가정이 불우한 사고 하나로 송두리째 무너지······
"··· ···"
"아이작?"
"아······ 네?"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정신이 살짝 멍해졌을 때 마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탄약고 근무 때의 상황 재현이 종결됐는지 어느새 백색방으로 되돌아온 상황이었다.
뭔가 생각이 나려는 것 같았는데 까먹은 느낌.
"음······ 아무것도 아냐. 일단 내 군시절은 저랬다고 보면 돼."
"알았어. 그런데 처음에 미사일? 북한 쪽에서 미사일을 쐈다는 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도발이야. 우리 뜻대로 안 해준다면 막 나갈 거라는 신호지. 그런데 도발을 너무 자주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어."
심심하면 도발하는 곳이 북한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또? 라는 말이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다루는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일상'이라 무던히 넘기는 편이다.
"그 미사일이라는 무기의 위력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아버지가 나에게 호기심 어린 어조로 질문하셨다.
그 질문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옮겨졌다. 다들 미사일이 그렇게나 궁금한 건가.
나는 어떻게 하면 미사일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오해를 쌓기 전에 선수부터 쳤다.
"일단 먼저 말씀드릴게요. 저도 북한의 도발이 위험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게, 북한은 잃을 게 없는 반면 대한민국은 잃은 게 너무나도 많아요.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부패한 나라로 손꼽히거든요."
"흠.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 그럼 미사일의 위력은 어떻게 되는게냐?"
"멀리서 메테오를 발동시키되, 그 메테오를 원하는 목표물에 정확히 타격시킬 수 있는 무기라 생각하면 편해요. 기술력에 따라 회색 사막에서 알븐하임으로 꽂을 수도 있죠."
"뭐, 뭐?"
아주 적절한 예시에 아르웬이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알븐하임을 비유에 넣었기에 저리 반응하는 거겠지.
다른 사람도 아르웬에 비해서는 아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리 말하니 이해가 되는구나. 헌데 그만한 위력의 무기라니······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길래?"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에요. 어쨌거나 다들 이해는 하셨죠?"
다행히 미리 선수를 친 덕분에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제부터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학창 시절을 보여주는 게 좋겠지. 대학교가 아니라 중·고등학교의 상황을 보여주면 될 것이다.
'······이게 좋겠다.'
이번에는 모라가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윽고 모든 상상을 끝마치고,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아. 씨발 애미 디진 새끼."
걸쭉한 패드립과 함께.
"부모님이 홀수인가? 왜 자기 잘못을 인정 안 하지?"
"정공겜이 다 그렇지 뭐."
"빨리 롤 망했으면."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 방금 아이작이······"
"부모님 욕을 한 거야······?"
"부모님이 홀수······? 대체······"
"··· ···"
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