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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64)화 (565/763)

Chapter 563 - 과거(1)

제논 축제가 코 앞까지 다가왔을 때, 피와 강철의 연재는 독소전쟁 직전에서 멈췄다.

 

독소전쟁 직전에 멈췄다고 해도 무슨 일이 안 터진 건 아니다.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탈리아가 있었으니.

 

원래 히틀러는 겨울이 오기 전에 소련을 침공할 계획이었지만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초장부터 꼬였다.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이겼다면 모를까, 프랑스 산악 부대에게 털렸던 전력 어디 안 간다고 그리스한테도 털리더라.

 

오죽하면 나치 독일에서도 이탈리아 때문에 2개의 사단만 써도 될 것을 20개의 사단을 써야 했다고.

 

[나치 독일은 악마다. 소비에트 연방은 괴물이다. 이탈리아는 뭘까?]

[저렇게 말아먹는 것도 신기한 수준. 그러나 역사적으로 저런 상황은 의외로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100km를 진격하고 800km를 따먹히는 기적의 계산법을 이루어냈다.

 

영국이 본토를 방어한 후라지만 이탈리아는 기행 중의 기행을 펼쳤다. 자기네들이 벌써부터 이겼다고 파티를 했으니까.

 

다행히 나치 독일이 롬멜을 투입하고, 이탈리아에서도 못 싸우는 병력만 있는 게 아니어서 나름대로 치열한 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독소전쟁이 발발 후에는 보급이고 뭐고 지원을 못 해줬지만. 롬멜 본인도 전술이 아닌 전략에 약한 것도 있었고.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한 독일! 드디어 펼쳐지는 악마와 괴물의 정면 충돌.]

[독일은 꾸준한 전투로 힘과 경험을 기른 반면, 소련은 겨울 전쟁에서 봤듯이 이가 빠져있는 상태다.]

[첩자의 보고를 지속해서 무시하는 스탈린. 훗날 큰 화를 일으킬 것.]

 

사람들은 악마와 괴물의 대결이라며 기대감을 품었으며.

 

[전에 발생한 대전쟁의 사상자가 약 4000만명?! 이게 정녕 가능한 수치인가?]

[병사들만 따지면 약 320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총이라는 무기가 모든 이를 군인으로 만들 수 있기에 가능한 수치.]

[이 전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소전쟁이 시작됨과 동시에 밝혀진 1차 세계 대전의 사상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곧 논란으로 변질됐다. 종족 전쟁에서 사상자가 약 300만명이었는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고.

 

이에 많은 학자들이 '총'의 발명으로 이만한 수치가 기록된 거라고 의견을 내보였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종족 전쟁은 '전사'들의 싸움인 반면에 세계 대전은 모든 사람들이 병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징병할 수 있는 숫자 자체가 다르다.

 

또한 여태까지 꾸준히 묘사된 '화력'이 논란을 잠재웠다. 여기 사람들 눈에는 메테오를 뻥뻥 날리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보급은? 저만한 규모의 병력에 보급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미네르바 제국에서 가동되는 공장처럼 생산력은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량은 이야기가 다르다.]

[프랑스에 곡창지대가 존재한다지만 이것만으로는 힘들 것.]

[분명 여기에 비밀이 있을 것이다. 100만이 넘는 대군에게 식량을 보충할 수 있는 비밀이.]

 

다만 '보급'만큼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중에 화력 덕후, 마셜도 끼어있더라.

 

마셜은 거의 논문에 가까울 정도로 보급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군인이 하루에 먹어치우는 보급의 양과 보존 및 운송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철저하게 분석하며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의견이지 나를 비판하는 건 아니었다.

 

[공기에서 빵을 만든 화학자, 프리츠 하버. 히틀러의 신념으로 추방된 유대인.]

[화학이라는 개념은 연금술과 유사하다. 식량난 해소의 키워드는 연금술인가?]

[연금술을 '학문'으로 지정해야 될 때가 다가왔다.]

 

그래도 마셜의 설득력 높은 평론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연금술 즉, 화학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식량난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적이자 갈등의 원인이었으니. 식량난은 신성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분야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한 바라서 쉬이 넘어갔다. 전에 리나에게도 조언을 했던 부분이며 지금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된 상황이다.

 

원래 연금술은 학문보다는 철학에 가까웠는데 이것도 천천히 개선되고 있었다. 이 또한 마력 기관의 도움이 크다.

 

마력 기관은 신이 아닌 인류가 직접 만든 발명품이며, 자연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기계'였으니까.

 

[인류는 신들의 축복으로 성장했다. 신들은 인류의 부모이자 보금자리. 그러니 이제는 독립할 차례다.]

 

오죽하면 나름 저명한 철학자가 저런 말을 서슴없이 꺼낼 정도다. 저 평론은 지금까지 다양한 논란을 낳고 있다.

 

당연하게도 크게 반발하는 쪽은 세이비어 쪽. 신의 심판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며 협박까지 하고 있다 들었다.

 

작디 작은 눈덩이가 구르면서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는, 이른바 '스노우볼'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악마 숭배자는······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다. 무슨 꿍꿍인지 몰라도 그냥 가만히 있더라.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다른 의미로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악마 숭배자가 저지른 인체 실험은 비인도적이어도 쓸모가 있다. 조합하면 독성을 띄는 약초와 그렇지 않은 약초가 세밀하게 구분돼 있다.]

[위를 강제로 적출한 악마 숭배자가 쓴 기록에 따르자면, 위가 없을 시 소화가 불가능하다.]

[귀에는 고막이라는 게 있다. 고막이 손상되면 청력에 큰 문제가······]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진다. 악마 숭배자는 여러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을······]

 

바로 악마 숭배자가 저지른 인체 실험이다. 사람을 산제물로 바치는 놈들인만큼 인체 실험도 서슴없이 저지르더라.

 

더 충격적인 건, 나치 독일마저 이건 아니다 싶어 폐기시켰던 '아기 공장'마저 존재했다.

 

그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 대부분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악마 숭배자의 지식을 습득하라고? 이건 명백한 신성 모독이다!]

[악마 숭배자의 사악한 지식을 얻고 무엇을 하려는 건가!]

[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전과 격이 다른 반발이 터져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악마 숭배자의 기록이라니?

 

신이 노하다 못해 천재지변을 일으켜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세이비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건 좀······ 이라며 만류했다.

 

전에 한 번 설명했듯이 신전이 병원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어지간한 상처나 병은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의학을 발전시켜야 하냐는 쪽과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라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

 

[악마 숭배자는 천인공노할 존재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아니라면 이런 지식을 얻지 못 했을 것.]

[언제나 신의 도움으로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신께서는 우리 스스로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할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일을 신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웃기는 소리.]

 

팽팽한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역풍을 심하게 맞을 수도 있었으니. 악마 숭배자의 의도도 모르는 상황이고.

 

그래도 나는 '의학' 쪽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악마 숭배자가 인체실험을 저지르며 터득한 지식들은 매우 유용하다.

 

더 놀라운 건 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들이 저지른 인체실험에 비해서 '학문'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건 리나에게 들은 이야기다.

 

추축국이 행한 인체실험은 순수한 의학의 발전보다는 우생학적 이유 및 무기 발전을 위한 것이었으니.

 

반면 악마 숭배자는 사람을 동물처럼 다루었을지언정 진정한 의미의 '연구'를 진행했다.

 

'진짜 이 놈들의 목적이 뭘까?'

 

그래서 더욱 의문이다. 하는 짓은 방사능 폐기물 그 자체인데 이런 부분에서는 유용하다.

 

정말로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위하는 건지, 아니면 세상을 리셋시키려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대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용서는커녕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할 쓰레기들이라는 것.

 

누군가 자기자신을 악마 숭배자라 밝히는 즉시 뺨때기를 날려줄 준비가 돼 있다.

 

"그래서 우리를 신전으로 데려온 이유라도 있느냐?"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

 

모라의 신전, 그것도 백색방에 들어선 아버지는 의문에 찬 목소리로 질문하셨다.

 

제논 축제가 개최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일주일이 남은 상황.

 

나는 그 시간동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생의 내 모습을 전부 보여줄 예정이다.

 

때마침 데이브와 니콜도 휴가를 나온 상황이었기에 이만한 시기도 없었다.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 과거를 보여드리려고요."

"네 과거라면······"

"정말 괜찮은 거니?"

 

내 과거를 언급하자마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는다. 동시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절대 아니다.

 

"괜찮아요. 저는 정말로 오해를 풀고 싶어서 여러분을 부른 거니까요."

"네가 그렇다면 괜찮겠지만······"

 

내가 해명을 해도 걱정하는 눈초리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피식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애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렇게 모여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다.

 

누군가의 시선을 끌 방법도 없다. 모라의 신전에 미리 말을 한 상황인데다가 마법으로 모습을 감췄으니.

 

"흠. 흠. 아이작."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니콜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언제나 든든한 친누나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이윽고 그녀는 임신한 마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아델리아를 힐끔거렸다.

 

그녀는 처음 방문한 모라 신전의 모습에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마리는 사고다 쳐. 이건 이해할 수 있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델리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니콜이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너 이리 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어."

"아, 좀!"

 

미리 감지한 데이브가 니콜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갔다.

 

니콜이 아둥바둥거렸으나 데이브의 악력을 뿌리칠 수 없었다.

 

"걱정되서 그래, 걱정되서! 저러다 아델리아도 덜컥 임신시키면 어쩌려고?"

"다 들린다, 다 들려. 아델리아! 네 친구 좀 말려라!"

"으휴. 창피하다, 창피해."

"야. 너는 자존심도 없어? 이건 정실이고 나발이고 여자로서 자존심을······"

 

아델리아를 아끼는 니콜이 무어라 소리쳤지만 금방 묵살당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니콜의 언행이 이해가 가는 것이, 니콜에게 있어서 아델리아는 둘도 없는 친구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애인이 바로 친동생이고.

 

여러모로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다리를 놓은 것도 본인이 강제로 놓았으니 책임감마저 있을 테지.

 

하지만 니콜이 스스로 말했듯이 지금과 별 상관 없는 이야기다. 저건 저택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나누면 된다.

 

"크흠.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 마저 설명할게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여기서 제 전생의 이야기, 그러니까 과거를 보여드릴 겁니다.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늘 언급했다시피 전생의 저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까요."

"그 평범한 인간이 신의 도움을 받고 성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쓰면 잘 팔리지 않을까?"

 

내 설명에 세실리가 손을 들어올리며 명료히 반박했다. 빙긋 웃는 얼굴이 참으로 화사하기 그지 없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레오나가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덧붙였다.

 

"제논 일대기 다음에는 아이작 일대기야?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자서전에 지나지 않겠지만 제논 일대기에 버금가는 이야기일 게 분명할 것이니라."

"이미 평범과는 거리가 먼데 굳이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해야겠어?'

 

레오나 다음으로 아르웬, 아르웬 다음으로 마리의 결정타가 이어졌다. 나는 뒷통수를 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글로 쓰기만 하면 대단한 업적이다 못해 신화에 가까운 내용이다. 다시 들으니 내 자존감이 낮은건가 싶기도 하고.

 

"아, 아무튼. 내 과거를 보여주는 이유는 별거 없어. 더이상 숨길 것도 없겠다, 약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거든."

"오해라······ 너희 나라가 잘 산다는 거 말이야?"

"응. 그리고 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보여주는 것도 있어. 백 번 설명해봤자 한 번 보여주는 것보다 못할 테니까. 가장 먼저 보여줄 건······"

 

나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상상했다.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게 좋겠지.

 

가족들과 애인들은 우리나라를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도움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전혀 안 믿더라. 여기에 징병제로 인해 강제로 징집된 것까지.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조금 오래 걸리니 빌드업을 천천히 해야 된다.

 

'어디 보자. 뭐부터 보여줄까?'

 

화려한 번화가? 아니면 내 학창 시절? 아니면······

 

"아. 씨발."

 

그때 내 귓가로 선명한 욕설이 파고들었다. 이에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색방이 아니라 익숙하디 익숙한 '생활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참 정겨우면서도 좆 같았던 곳이었지.

 

그리고 중앙에 배치된 텔레비전 앞에는······

 

"십새끼들 또 미사일 쐈네. 쌀 달라고 시위하는 건가?"

 

초소에 들어서기 전, 뉴스를 보며 투덜거리는 내가 앉아있었다.

아니. 이걸 왜 보여주는 거지?

[헤헤.]

'······모라 님?'

[고민하고 있는 거 같아서 조금 도와줬어.]

"··· ···"

장난인 건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가 심히 의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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