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1 - 영국(2)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영국을 찍으면 대충 맞는다. 역시나 이번 이야기도 세계 만악의 근원에서 출발한다.
세계사 관련 부분에서 나름 유명한 명언(?)이다. 대영제국 시절 영국이 세계에 끼친 영향력을 단번에 보여주기도 하고.
한때 영국은 현대의 미국을 아득히 넘어서는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믿기지 않겠다만 사실이다.
산업 혁명부터 시작해서 세계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는 영어, 공산주의를 탄생시킨 자본주의, 표준형 의복이라 할 수 있는 정장까지.
현대 문명의 기틀 대부분을 닦았으며, 이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발명품은 단연코 '미국'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특유의 야만적인 관습으로 인하여 악영향도 골고루 끼쳤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프리카의 국경선이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다른 나라와 달리 자로 그은 것처럼 직선이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내전이 발생하는 중이며 정작 영국은 나 몰라라하며 딴청을 피우는 중이다.
또한 중국이 마약 관련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이유도 영국이 일으킨 아편 전쟁 때문이요, 아일랜드 대기근도 영국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이 근대 문명의 발전을 주도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끼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때문인지 영국은 혐오스러운 인성을 가진 나라 즉, 혐성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악행을 세탁하게 된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세계 2차 대전이다.
[영국은 콧수염 미대생에게 절해야 된다. 그게 아니라면 세탁조차 못 했을 것.]
악마에게 저항한 나라. 유럽 최후의 방어선. 굴복하지 않은 의지 등등.
프랑스까지 점령한 나치 독일의 무시무시한 기세에도 영국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다.
나치 독일은 해군력에서 한참 앞서는 영국을 살살 회유했는데, 영국은 대답은 지극히 단순했다.
엿이나 먹어라. 약간의 과장과 요약이 포함돼 있으나 영국은 나치 독일의 회유를 끝까지 씹었다.
만약 영국이 2년 동안 홀로 유럽에서 버티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참전도 없었을 것이고, 독일이 좀 더 우세했을 것이다.
[위험 요소가 있다지만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캐터펄트 작전은 영국의 정보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독일은 유보트를 제외하고 해군 장교가 거의 없다.]
[이제는 프랑스가 완전한 독일 편을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다 집어치우고 캐터펄트 작전은 영국의 혐성질을 보여주는 작전이라 볼 수 있다.
나치 독일의 해군은 여태까지 언급했듯이 '제국의 서자'라 칭할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프랑스 해군을 먹어봤자 체할 확률이 높았으며 해군을 키울 바에야 공군의 전력을 증강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었을 터.
게다가 휴전 협정에 따르자면 프랑스 해군은 사용하지 말라고 적혀있다. 물론 조약을 밥 먹듯이 파기하는 나치 독일이 지킬리가 만무하지만.
아무튼 영국은 그것도 모른 채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프랑스 해군을 도륙냈다. 그야말로 동료의 등에다가 칼을 꽂은 격이다.
당연히 프랑스는 분노했으며 훗날 연합군이 비시 프랑스의 완강한 저항에 시달리는 계기가 된다.
[영국으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물론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건 잘못된 행위.]
[전쟁에서 옳고 그름은 필요 없다. 승리가 중요하다.]
캐터펄트 작전을 본 독자들도 합리적이지만 옳지 않은 행동이라 비판했다.
또한 자주 언급됐던 영국의 혐성질이 하나둘씩 발굴되기 시작했다.
체코와 폴란드를 나치 독일에게 넘겨준 것부터 시작해서 식민지 관련 사항까지.
원래 사람들은 긍정적인 분야보다 부정적인 분야를 보는 경향이 있으며 영국이라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세계의 지배자 노릇을 하던 영국. 그러나 동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도대체 영국이 어떻게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프롤로그에서는 미국도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독립전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동시에 영국이 어찌 하여 세계의 지배자가 됐는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영국의 본토는 세계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작디 작은 나라에 불과했으니까.
심지어 고대 문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강도 없다. 먹을 것도 감자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농사보다는 약탈에 치중하지 않았을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전하고, 강탈하기 위해 발전한 끝에 이런 결과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커다란 강 근처에는 농사를 위한 인력이 필수다. 먹고 살기만 하면 그만일 테니 발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좁은 국토도 한몫했을 것이다. 국토가 넓으면 넓을수록 정보의 전달이 매우 느리다.]
평론가들과 학자들의 진지한 의견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부 맞는 말이다.
인구와 국토만 본다면 청나라가 세계 1위였겠지. 그러나 아편 전쟁 하나로 청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도 유럽인들이 넘어오기 전만 해도 제대로 된 문명이 거의 없었다.
개사기 땅이라는 것조차 어느 정도 기본 틀을 갖췄을 때의 이야기지, 유럽인들이 아니었더라면 별 거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혐성국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결사항전을 외친 영국. 바다 사자 작전을 개시하기 위해 투입된 괴링.]
[공군은 우리로 치자면 마법사에 비견되는 인력. 그 인력들을 모조리 투입시킨 전투다.]
[방어가 공격보다 우세한 건 상식.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독일 공군은 너무나 강력하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됐다. 캐터펄트 작전에서 보여준 영국의 혐성질은 둘째치고 거인과 악마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영국이 우세하다는 쪽과 독일이 우세하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우선 영국이 우세하다는 쪽의 의견은 이렇다.
[영국은 '에니그마'를 모두 꿰뚫고 있다. 정보에 한해서는 상대보다 우위다.]
[또한 본토에는 레이더가 설치돼 있기에 전력을 미리미리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더의 존재와 에니그마 즉, 암호 해독.
이 세상의 입장에서도 저 둘은 별로 신기한 건 아니다.
레이더는 비행 몬스터와 원거리에서 뻥뻥 날려대는 마법으로 인해 발전됐고, 암호는 원래부터 있던 거다.
아무리 판타지여도 레이더는 조금 무리수이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이건 미네르바 제국에서 발발한 아스카날 사건과 연관이 깊다.
수도의 방비만 믿고 있다가 드래곤이라는 재앙이 덮친 사건. 아버지의 분투와 군대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제국은 꺾였다.
그래서인지 미네르바 제국은 비행 몬스터라면 치를 떠는 수준이다. 오죽하면 알븐하임에게 고개 숙여 부탁할 정도다.
다른 나라도 미네르바 제국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도 자칫하면 좆되겠구나 싶어 레이더를 발명한 것이다.
[영국이 결사항전을 해도 괴링의 공군을 막을 수 없다.]
[독일의 공군은 세계 제일!!]
[바다가 아니라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이기는 법. 고로 독일이 승리할 것이다.]
나치 독일이 우세하다는 쪽도 만만치 않았다. 나치 독일의 공군력이 막강하다는 점부터가 기본 골자다.
나치 독일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인재풀이 넓다. 유능한 장군들부터 시작해서 각 군종마다 두각을 드러내는 에이스까지.
하물며 폴란드 침공 당시 괴링이 보여줬던 공군의 위엄을 보면 그리 믿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괴링의 실책과 독일 공군의 과장된 공적, 영국의 분투가 적절히 섞였다는 것.
런던에 실수로 떨어뜨린 폭탄이 나비효과가 되어 베를린에도 떨어졌다는 것.
결정적으로 '효율' 아닌 '자존심' 싸움으로 변했다는 것.
[우리는 이 전투를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은 자존심이 아니라 효율이 중요하다는 것을.]
[영국은 런던이 희생하는 동안 전력을 키웠고, 반대로 독일은 전력을 낭비했다.]
[프랑스는 수도가 함락되자마자 항복했지만, 영국은 수도가 망가져도 끝까지 항전했다. 이것이 둘의 차이점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독일의 패배로 이어졌다.
만약 독일이 런던이 아니라 영국의 군사공장을 습격했다면 승리를 점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히틀러는 베를린에 폭탄이 떨어지자마자 분기탱천하여 런던에 폭격을 지시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에 발생할 독소전쟁에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스탈린그라드가 바로 그 예시다.
[항공전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소강 상태로 들어선 두 나라. 영국의 처칠 총리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10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렌드리스(무기대여법)을 고민 중인 미국.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는 말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인가?]
[종족 전쟁에서 드워프가 인간에게 무기를 지급하던 것과 똑같은 형태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난 이후에는 영국과 미국 간의 외교를 보여줬다. 당시 미국은 히틀러의 폭주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 대전은 지옥이었으며 대공황은 밑바닥조차 알 수 없는 심연이었으니.
국민들도 전쟁만큼은 하지 말자며 입을 모아 말했으니 4선 괴물 루즈벨트조차도 뭘 할 수가 없었다.
[비슷한 시간에는 이탈리아가 북아프리카를 침범했다.]
[영국은 본토를 막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프랑스의 산악 부대에게 막혔던 이탈리아가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북아프리카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솔리니의 질투심과 강박증으로 어영부영 시작된 북아프리카 전쟁.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압권인 건 이탈리아의 공군원수가 항공정찰 중에 팀킬을 당했다는 것. 이건 암살론까지 퍼질만큼 어이없는 사건으로 기록됐던 걸로 안다.
[역시 이탈리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런 이탈리아의 우스운 행보를 보며 비웃었다. 더 대단한 점은 저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처럼 이탈리아는 악당형 주인공인 독일과 다르게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진짜 못 싸워도 너무 못 싸우니까 얘들이 뭘 해도 안 믿는다랄까. 실제로 졸전에 졸전만을 거듭한 끝에 무솔리니를 거꾸로 매달았지.
나는 신문에 적힌 글들을 즐겁게 보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를 넘기니 마력 기관차의 시승식이 이루어졌다는 기사가 기재돼 있었다.
[마력 기관차의 시승식이 이루어지다! 시승식은 가이스트가 진행했으며 마력 기관의 발명가, 에인스가 직접 조종을······]
[석탄 운송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을 옮길 수 있다. 철도가 존재하는 곳에는 마력 기관차가 있을 것.]
[마력 기관이 아닌 마력 기관차의 설계도도 공유할 생각이 있다. 그러나 시범 운행 이후에 공유할 것.]
놀랍게도 에인스는 마력 기관차의 설계도를 공유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사에 집중했다.
[마력 기관차는 제논 일대기에 등장한 증기 기관차를 따온 발명품이다. 마력 기관이 우리 사상의 기원이라면, 마력 기관차는 제논을 위한 헌사품.]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마키나는 다양한 발명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모든 게 마력 기관 덕분.]
아무래도 에인스는 이 모든 게 내 덕분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책을 쓴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이에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이 다음에 이어진 기사들을 보면서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족의 구원부터 시작하여 마력 기관, 악마 숭배자, 세계수의 오염, 대공황, 마키나의 혁명, 공장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제논의 손 끝에서부터 시작됐다.]
[피와 강철에 등장하는 영국이 그랬듯이 제논 또한 전세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여태까지 심었던 씨앗들이 하나둘 발아한 결과.
[훗날 세계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은 제논의 손 끝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세계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들이 튀어나왔을 때, 제논을 콕 집으면 모든 것들이 착착 들어맞을 것이다.]
[모든 근원은 제논의 손 끝으로 시작됐다. 다음에는 어떤 걸 보여줄 것인가?]
나는 '영국' 같은 놈이 되었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