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49 - 불타는(5)
부모님에게 안부 인사를 건넬 겸 클라크 할아버지에게 케이트의 훈련을 부탁할 겸 겸사겸사 저택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내가 멀쩡히 얼굴을 보여주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셨다. 상당히 위태로웠으니 걱정하실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나와 함께 돌아온 아리엘을 보고는 깜짝 놀라셨다. 5살밖에 안 되던 애가 갑자기 10살로 성장했으니 놀랄만도 하다.
그래도 아리엘이 천사라는 걸 인지하고 나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가셨다.
이후로는 어디 아픈 곳이 없냐니, 불편한 곳이 있다면 반드시 연락하는 등. 늘 그렇듯이 나를 걱정해주셨다.
나는 그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인사를 받으며 클라크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아까 말했듯이 클라크 할아버지에게 케이트의 훈련을 부탁할 계획이다. 그리고 클라크 할아버지도 기꺼이 수락하셨다.
듣자하니 케이트에게 부족한 점이 한 둘이 아니라 참견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했다고. 내가 다리를 놓아주자 꽤 기뻐하시는 눈치셨다.
[내 장례식은 더 멀어지는구나.]
"바둑부터 떼어놓고 얘기하세요."
[흠. 흠.]
"할아버지. 저랑 한 판 하실래요?"
[오! 그러면 나야 좋지.]
클라크 할아버지와 아리엘이 대국을 두는 동안 모라의 신전을 찾아갔다.
우리 영지는 모두 알다시피 루미너스와 모라의 신전이 함께 있다.
사실상 영지 자체가 성역에 가까워 범죄를 저지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악마 숭배자도 접근할 수 없다.
넓고 넓은 세계에서 내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마이샬 영지다.
"웨에옹! 에에엥!"
"컹! 커엉! 컹!"
"짹! 째짹!"
그런데 밖으로 나가자마자 동물들의 무수한 애정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기숙사에서는 새들만 달라붙어서 그나마 정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온갖 동물들이 달라붙는다.
고양이와 개는 기본이고 지붕 위에 앉아있던 참새들까지. 다행히도 쥐는 없었다.
마이샬 영지가 문화 도시로 결정되면서 위생 관리를 빡세게 한 덕분이다.
"얘들아. 좀 떨어져줄래? 나 많이 바쁘거든?"
"우웨옹!"
"멍! 멍멍!"
물론 그런 거 상관없다. 지나가는 동물들마다 나에게 앵기기 바빴으니까.
고양이는 실로 놀라운 점프력으로 이미 내 머리 위를 차지한 지 오래고, 작고 귀여운 참새들은 내 어깨에 안착했다.
마지막으로 강아지는 안아달라는 듯이 나에게 매달리는 중이었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쓰다듬어줘! 머리 쓰다듬어줘!]
[여기 정말 편하군. 이제부터 내 집으로 삼겠다.]
[같이 노래할래? 재미있을 거야!]
각각 개, 고양이, 참새들의 목소리다. 그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울려도 어지럽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결국 하는 수없이 깔끔하게 포기하고 모라의 신전으로 향했다.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는 강아지는 그냥 안고 갔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망정이지,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다.
"저 분 아이작 님 아니셔?"
"그런 것 같은데······ 원래 동물들도 키우시나?"
"신기하네. 저 고양이는 웬만해서는 사람 손을 싫어할 텐데."
기이하디 기이한 내 모습에 영지민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멀리서 소곤거리는데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마냥 생생하다. 이것도 신성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모습 덕분에 사람들이 쉬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 꼴로 서울 1호선을 탑승했다면 드루이드남으로 불렸지 않았을까.
"나 이제 모라 님의 신전에 들어갈 건데 너희들도 따라올 건 아니지?"
[쳇.]
[빨리 돌아와야 돼!]
[우린 저기로 가자.]
모라의 신전 앞에 도착하자 동물들도 눈치가 있는지 다들 내게서 떨어졌다.
머리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는 가볍게 착지하고, 강아지는 내 얼굴을 몇 번 핥다가 자기가 알아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내 어깨에서 노래를 부르던 참새들이 날아가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한 동물들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길거리 동물들에게 한껏 사랑을 받고 들어온 탓에 몸을 깨끗이 씻고 갈 수밖에 없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뒤이어 고행 사건 이후로 모라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접신을 하자마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인사하는 그녀.
나는 복잡한 심경이 가득 담긴 그녀의 인사를 담담하게 받아줬다. 시간이 흘러 모라를 향한 적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니 매듭 지을 건 확실히 매듭을 짓고, 앞으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신들의 과거를 바탕으로 책을 집필할 예정이었으니. 모라와의 관계도 천천히 다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히르트 님에게 혼난 걸 제외하고요.'
[응······ 별일 없었지.]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목소리톤이다. 한껏 낮아진 음성하며 살살 눈치를 보는 티가 역력하다.
아무래도 옛날의 활기차고 장난스러운 성격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래도 나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적어도 실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너무 의기소침해 하지 마세요. 저도 모라님께 심한 말을 했으니까요. 옛날처럼 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전 모라 님의 활발한 성격이 좋아요.'
[그래도······ 너에게 피해를 줬잖아. 지구의 신이 너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더 심한 짓을 했을 수도 있었어.]
'그리 말씀하시니 속이 더 편해지는 기분이네요.'
저런 생각은 나도 해본 적이 있다. 지구의 신이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더 심한 짓을 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없는 일이자 저쪽도 크게 반성하고 있다. 설사 하더라도 히르트 쪽에서 필사적으로 저지했겠지.
더 이상 이 부분에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 된다.
'앞으로 조심해주세요. 알겠죠?'
[응. 조심할게.]
'그러면······'
본격적인 화두를 던져보도록 할까. 우선적으로 루미너스와 모건 왕의 이야기부터다.
모라도 나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테니 핵심적인 부분부터 질문했다.
'모라 님께서도 허락을 내리신 거죠? 제가 여러분의 과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쓸 거라는 걸.'
[응. 네가 원하는 대로 써도 상관없어. 오빠는 물론 나도 성심성의껏 보조해줄 거야.]
'정말 괜찮으신가요?'
루미너스에게도 했던 질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들의 과거는 공포와 충격일 터.
패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세상을 한 번 멸망시켰다. 전생에서는 흔하디 흔한 신화이나 이 세상은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신앙심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신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걸 넘어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
[괜찮아. 과학이 발전하고 바다를 돌아다니는 순간부터 자연스레 진실을 찾게 될 테니까. 옛날 게리오스 왕국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악마 전쟁이 발발했죠. 혹시 이번에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모건 그 색······ 흠. 흠. 미안.]
모라가 욕을 하다 말고 급히 멈춘다.
도대체 모건 왕은 뭘 했길래 루미너스와 모라 둘 모두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걸까.
대단하다면 대단한 위인이다. 저러고서 지박령으로나마 현세에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모건 왕은 우리 보고 왕국을 방치했다고 비난했지만 마냥 그런 건 아니거든. 우리가 엘프들에게 명령해서 사절단을 보냈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주술을 버리고 마법과 종교를 믿으라고 했다 들었어요.'
[모건 왕은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했어. 당시 게리오스 왕국의 중심은 주술이었거든. 게다가 우리도 천사들의 반기를 제압하느라 힘을 소진했던 상황이고.]
엘프의 선조 즉, 천사는 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날개를 스스로 뜯어버리고 지상에 추락했다.
사실 저건 제논 일대기에 넣은 설정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걸 믿고 있다. 내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닫게 됐지.
천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모라의 설명에 따르자면 천사도 본인이 믿고 있는 신이 있었다고.
신들의 전쟁 당시 루미너스가 대부분의 신들을 소멸시키는 바람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두 부류로 나뉘었다.
신들을 몰아내려는 쪽과 신들을 보호하려는 쪽. 당연하게도 후자가 승리하고 엘프가 되었다.
'천사가 그렇게나 강한가요? 신들을 몰아낼 수 있을만큼?'
[전쟁 이후에도 살아남은 신들이 있었거든. 오빠의 힘이 너무 강력해진 나머지 또다른 전쟁이 발생한 거야.]
실제로 인류사에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전쟁 이후로 너무 강력해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내란이 발생하는 일.
그러나 문제는 루미너스가 전쟁의 신이었다는 점이다.
'혹시 그 신들도······'
[그 신들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어. 수인과 드워프를 창조한 신 즉, 내 동생들이었거든. 수인과 드워프가 멸종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신성은 유효해. 단지 신자들이 존재 자체를 몰라서 힘을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면 신자들마저 죄다 쳐죽인 루미너스는 도대체 얼마나 강했던 거지. 나치 독일마저 실패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이다.
[다행히 그때 오빠가 정신을 차려서 기록을 없애는 걸로 끝났지. 아니었으면 수인과 드워프도······]
'··· ···'
[난 지금의 오빠가 좋아. 그때 오빠는······ 분노와 증오에 눈이 뒤집혔거든. 평화의 여신인 나조차도 저지할 수 없었어.]
전쟁과 평화는 물과 기름과 같지만 동시에 공존한다. 그럼에도 모라가 저지할 수 없다는 건 상황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평화의 여신조차 막을 수 없던 전쟁의 광기. 도대체 무엇이 루미너스를 광기에 빠져들게 만든 건지 궁금하다.
'······왜 그러셨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그건······ 천천히 설명할게.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거든. 무엇보다 바다의 신, 그러니까 아버지도 처음에는 누구보다 상냥하고 성숙한 분이셨어. 지구의 신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 ···'
착각일 수도 있지만 지구의 신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모라의 은은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와중에 난데없이 외지인이 찾아와 원흉을 제공한 셈이다.
그야말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유럽인들. 서로 도움을 줬으면 모를까, 질병보다 심한 사상을 주고 튀었으니 화가 끝까지 났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못 하시나요?'
[말했어. 네가 이리로 넘어온 것도 따지고 보면 지구의 신들 때문이니까. 지구의 신들도 이 점을 반영하고 침략하지 않은 거야.]
서로서로 빅엿을 날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건 덤이고.
'그런데 지구의 신이 이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건, 여러분도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건가요?'
[당장은 지구밖에 안 돼. 그것도 저쪽에서 허락을 내려야 하지. 우리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필멸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인구는 물론, 과학을 발전시켜 우주로 뻗어나가야 되지. 필멸자들의 시야가 곧 우리의 시야니까.]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네요.'
지구의 인구는 70억을 넘긴 지 오래고, 냉전을 통해 우주비행기술이 극도로 발달됐다.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신들 입장에서는 예쁜 걸 넘어 사랑스럽겠지.
새삼 지구의 신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모라 님께서도 제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아시죠?'
[방금 그 고양이 귀엽던데. 데리고 오지 그랬니?]
'딴청 피우지 마시고요. 한 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드루이드가 된 기분이라서.'
드루이드도 드루이드지만 제어를 못 한다는 게 크다. 밖에 나갈 때마다 온갖 동물들이 달라붙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지난번 히르트를 통해 받았던 '순수한 권능'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지구의 신들이 어떤 반응을 짓는지도 궁금하고. 꿈에서는 격마저 바꾸었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 전에 일부러 저에게 먹이려던 건 아니죠?'
[절대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어. 너도 나에게 신성을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니?]
혹시 다른 속셈이 있는 건가 싶어 물었지만 모라는 칼 같이 대답했다. 약간 억울하다는 투다.
내 미래를 읽을 수 없으니 신들로서는 대형 사고로 취급할 수밖에 없겠지.
아리엘도 신들의 지시를 받는 종자가 아닌, 명확한 자아가 존재하는 아이다.
불타는 효녀(...)로서의 본분을 다한 거지 누군가 개입한 건 절대 아니라는 소리.
[아무튼 동물들이 달라붙는 건 네가 예상한 대로 엄마가 준 권능, 순수한 권능 때문이야. 안 그래도 자연에게 사랑받는 권능인데 여기에 신성까지 합쳐졌으니······]
'조절하는 방법은 없나요?'
[안타깝지만 조절하는 방법은 없어. 신이 지상으로 강림할 때마다 주변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원리와 같거든.]
그럼 평생 동안 동물들에게 사랑 받고 지내야 된다는 건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동물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자체는 솔직히 괜찮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나도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나에게 앵긴다는 게 문제다. 무슨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온갖 동물들을 끌고 가니 불편하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엄마가 권능을 도로 가져가면 괜찮거든.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거잖아?]
'네.'
[그러면 동물들이 쉬이 접근할 수 없도록, 든든하고 강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말이야.]
'음······'
모라의 설명을 들으니 네이비 기사단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몬스터마저 심심찮게 사냥하던 짬타이거, 레오.
집채만한 덩치를 자랑하는 호랑이를 내 곁에 둔다면 나쁘지 않겠지. 그러나 네이비 기사단의 소중한 동료를 빼앗아가는 거라 미안하다.
결국에는 천천히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물들과 대화도 할 겸 당분간 즐기는 편이 좋겠지.
'이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야겠네요.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테고.'
[그러렴. 아, 하나 있긴 있네. 잠깐만.]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던 찰나 모라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뒤이어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려 가는 듯했다. 상의를 해야 할 정도로 귀중한 정보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모라와 접신이 되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아까 내가 말했지? 수인과 드워프의 창조주, 내 동생들이 있었다고.]
'네. 말씀하셨어요.'
[훗날 책을 쓸 때 자세히 알려주겠지만 본래 수인은 동물 형태로 변할 수 있어.]
'정말요?'
처음 듣는 이야기다. 나는 깜짝 놀라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응. 신성력으로 다양한 능력을 사용하듯, 수인도 신성력을 이용해 동물 형태로 변신할 수 있었어. 하지만 천사들이 반기를 들면서 신성이 약해지는 바람에 수인도 그 능력을 잃어버렸지.]
'음······'
[아마 수인이 본인의 신을 되찾으면 레오나 그 아이도 동물로 변하는 게 가능할 거야. 다만 이건 그때 가서 얘기하는 게 좋겠지.]
이미 한 배를 타기로 결정한 거, 나에게 숨겼던 진실들을 마음껏 공개하는 신들이다. 덕분에 약간이나마 신뢰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수인이 동물로 변할 수 있었다니.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신기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만약 레오나가 동물로 변한다면 당연히 사자로 변하겠지. 그리고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인의 무력도 상당한 편이었으니 앞으로 상황이 편해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네요.'
[그렇지. 다른 건 없니?]
'다른 거라······ 지구의 신들은 어떤 반응인지 궁금한데······'
[미안하지만 그건 알려줄 수 없어.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거든. 그나마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칼 같이 대답하는 그녀다. 나는 쩝, 하며 입맛을 다셨다.
대신 자각몽에서 최고신이라 불린 노인이 조만간 보자고 했으니 얼마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혹여 지구의 신이 노발대발할까봐 걱정했거든요.'
[지구 입장에서도 영혼의 격이 올라간 거라 마냥 나쁜 상황은 아니야. 다른 질문은 없니?]
'마땅히 없지만······ 제 주변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신들은 내 미래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인의 미래는 볼 수 있다.
물론 주변인의 미래도 내 선택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지만 적어도 '선택'은 가능하다.
[음······ 당장 위험한 건 없어. 문제는 마리 그 아이인데······]
'······마리요?'
앞으로 청혼할 예정인 마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모라는 살짝 다급한 어조로 내 걱정을 덜어줬다.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야. 그냥······ 네가 그때 욕망을 이길지 몰라서.]
'아. 그건 예상하고 있습니다.'
청혼을 한다면 보나마나 서로 물고 빨고 난리나겠지. 그럴 줄 알고 미리 예약한 곳이 있다.
첫날밤 못지 않은, 불타다 못해 모든 것들이 전소될 밤을 보낼 예정이다.
단, 피임은 확실히 할 거다. 예정에도 없는 임신을 하게 되면 서로서로 곤란해질 테니까.
적어도 달달한 신혼 여행까지 보내고 싶다.
[얘.]
'말씀하세요.'
[그······ 아냐. 이건 안 되겠네.]
헌데 모라의 반응이 이상하다. 할 말은 많은데 차마 말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나는 그 반응에 한 쪽 눈을 치켜떴다. 이 여자 아니, 이 여신이 반성을 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그 선택 하나로 미래가 큰 축으로 바뀌어서 그래. 너의 격이 올라간 만큼 조언을 해줄지언정 내가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거든.]
'강요요? 강요하신 적은 없잖아요.'
[강요에 준하는 조언이니까 그렇지. 어쨌거나 선택을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알겠니?]
전과 달리 강한 어조로 말하는 모라에 떨떠름히 답했다.
'······전 마리의 선택을 따를게요.'
[그러렴. 운명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마리 그 아이도 엄청 기뻐할 거고. 어느 선택이든 간에 마리 그 아이가 기뻐할 운명이니 걱정하지 마.]
'그러면 괜찮아요.'
마리가 기뻐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