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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48)화 (549/763)

Chapter 547 - 불타는(3)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쑥쑥 성장한다. 어딜 가나 자주 듣는 말이다.

 

위의 말이 실감나던 순간이 바로 연예인들의 가족들이다. 육아 프로그램에서 나오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중학교에 입학하더라.

 

그거 보고 프로그램이 언제 시작됐나 확인하면 최소 5년 전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지났구나 싶었지.

 

이 세상도 별다를 게 없다. 마이샬 가문의 막내 동생, 릴리도 이제는 엉금엉금 기는 걸 넘어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람에서 꼬물꼬물거리 바쁘던 애가 그만큼 성장하니 감회가 새롭더라. 여기에 옹알이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이렇듯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 특징이 있지만, 말 그대로 무럭무럭이지 갑작스레 성장하지 않는다.

 

무슨 진화를 하는 것마냥 5살짜리 아이가 10살 내외의 아이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필멸자'에 한해서는.

 

"아리엘?"

"네. 아빠."

"··· ···"

 

혼란스러운 새벽이 지나가고 모두가 일어난 아침. 나는 침대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리엘을 바라봤다.

 

올망졸망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 윤기가 흐르는 붉은색 머리. 약간 뾰족한 귀와 등 뒤에 돋아난 반투명한 날개까지.

 

모로 봐도 아리엘이다. 원래 입고 있던 옷은 전부 작아진 바람에 내 와이셔츠를 걸치듯이 입고 있다.

 

그러나 존댓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몸이 성장한 것도 그렇고 심한 괴리감이 들었다.

 

"······정말 아리엘이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마리가 황당 반, 조심스러움 반의 목소리로 물었다.

 

불침번으로 피곤할 법도 하지만 졸음이 확 달아난지 오래인 것 같다.

 

그리고 아리엘은 마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냥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저 아리엘 맞아요. 엄마 딸 아리엘."

"아리엘은 존댓말을 안 썼는데······"

"그럼 존댓말 하지 말까?"

"아리엘 맞구나."

 

우아함이 깃든 존댓말이 아닌, 토끼처럼 깡총깡총 튀는 듯한 반말이 튀어나왔다.

 

누가 들어도 아리엘 특유의 말투라서 마리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해맑게 웃는 아리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마리에게 질문했다.

 

"······혹시 내가 5년 뒤의 미래로 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랬으면 눈을 떴을 때 기숙사가 아니라 저택이었겠지. 이 바보야."

"음."

 

그것도 일리가 있군. 어쨌거나 하룻밤 사이에 아리엘이 폭풍성장을 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도통 몰라서 그렇지. 아리엘은 마족도, 엘프도 아닌 천사여서 어지간한 사고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아리엘을 빤히 마주 바라보다가 이내 아, 하며 무언가 알아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히르트 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어. 천사는 정신적 성장에 따라 성장한다고. 아리엘도 그런 경우인가?"

"아니면 네 몸에 있던 신성력을 아리엘이 다 흡수한 걸 수도 있고. 아리엘은 뭐 아는 게 없니?"

"몰라."

 

아리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당분간 넘길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게다가 아리엘도 아리엘이지만 내 상태도 중요하다. 지금은 정리부터 할 필요가 있다.

 

"아이작 님. 혹시 어디가 불편하다거나 편찮으신 곳은 없습니까?"

 

세실리와 함께 간호를 담당했던 케이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 즉시 두 손을 펼치면서 몸 곳곳을 살펴봤다. 보름동안 고열로 고생했던 것과 달리 멀쩡하다 못해 상쾌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변한 점도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인데도 아침처럼 시야가 훤하다거나 몸에 힘이 넘쳐난다던가 등등.

 

하지만 저건 전부 내부적인 현상일 뿐, 외부에 드러난 현상은 더욱 눈에 띠었다.

 

"딱히 없어요. 그런데 내 몸이 뭔가······"

"전반적으로 깨끗해졌다?"

"응."

 

세실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꺼내줬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몰래 씻은 적이 있었는데, 탈피를 하는 것마냥 피부 껍질이 벗겨지고 새로운 피부가 드러났다.

 

안 그래도 작가라는 직업 특징 때문에 피부가 하얀 편이었는데 이제는 더 말끔해졌다. 마리와 비견될 정도로 하얗다.

 

'이런 건 보통 무협에서 등장하지 않나?'

 

초월에 달하는 깨달음 혹은 압도적인 무력을 얻으면서 몸의 구조가 변하는 일, 환골탈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정말 유명한 현상이나 나 같은 경우는 약간 다르다.

 

피부가 새로 돋아난 걸 빼면 달리 변한 곳이 없다.

 

"피부도 피부지만 몸도 약간 커진 거 같은데?"

"그래?"

"한 번 일어서봐."

 

나는 부탁에 따라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혹여 비틀거릴까봐 케이트가 나를 부축했다.

 

내가 일어서자 마리도 확인을 위해 내 곁에 섰다.

 

"맞네. 확실히 커졌어."

"어느 정도?"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커진 건 확실해."

 

마리가 자신의 키와 내 키를 서로 가늠하면서 말한다. 까치발까지 드는 모양새가 정말 귀엽다.

 

'정말 환골탈태라도 한 건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지간한 그릇으로는 신성을 소화시키기 힘드니 억지로 환골탈태를 시킨 거라면 얼추 앞뒤가 맞다.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에게 물어봐야겠지. 모라의 신성이니 그녀를 한 번 찾아갈 예정이다.

 

'에휴. 연재도 해야 되는데.'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환골탈태와 아리엘의 성장으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

 

만약 여기서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면 멘탈이 흔들렸을 것이다.

 

똑똑똑-

 

[나 왔어. 안에 들어가도 될까?]

 

몸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을 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레오나인 것 같다.

 

어째서 레오나가 이곳에 왔는지 묻는다면 그녀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전달받았다.

 

마리처럼 불침번을 담당하고 있으며 정성을 다해 간호해줬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끼익-

 

"아이작은······ 어? 일어났네?!"

 

레오나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를 발견하더니 화색을 띠었다. 애정과 안도가 듬뿍 묻어나오는 표정이다.

 

뒤이어 그녀는 신발을 후다닥 벗어던지고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푸른색이었던 눈동자는 어느 순간 황금색으로 변하고, 바지에 감췄던 꼬리가 빠져나오며 격하게 살랑거린다.

 

레오나도 나를 간호하느라 고생했으니 원없이 애정을 받을 생각이다.

 

"어디 아픈데는······ 어?"

"안뇽! 고양이 엄마!"

 

물론 하룻밤 사이에 불쑥 성장한 아리엘을 보고나서 뇌정지가 왔지만. 정작 아리엘은 손을 번쩍 들며 반기기 바빴다.

 

그와 동시에 레오나의 황금색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하기야 누가 봐도 저런 반응이겠지.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대략적인 설명을 꺼냈다.

 

"······그렇구나. 천사는 천사라는 건가?"

"아마도?"

"그래도 별일 없어서 다행이네. 그러는 너는······"

 

레오나는 뒷말을 흐리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리처럼 뭔가 직감적으로 느끼는 바라도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이어 그녀는 팔짱을 끼더니 애매모호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몸이 커진 것도 커진 건데······ 왜 이리 안기고 싶지?"

"응?"

"너희들은 안 그래? 난 당장이라도 얘한테 안겨서 쓰다듬을 받고 싶은데?"

 

내가 의문을 갖는 동안 레오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의견을 구했다. 그러는 사이 머리 위에 돋아난 동물귀가 쫑긋거렸다.

 

하지만 레오나의 의견과 달리 여인들은 글쎄? 라는 표정만 지으며 저마다 한 마디씩 나눴다.

 

"글쎄? 난 잘 모르겠네. 무슨 느낌인지 좀 더 설명해줄래?"

"뭐랄까······ 내 본능이 자꾸만 유혹을 하는 느낌? 체취가 더 짙어진 것도 있지만 마음이 저쪽으로 쏠려."

"음······"

 

그 말에 세실리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여인들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가지각색의 눈동자가 나에게 쏠리는 걸 보니 뭐랄까······ 미묘하다. 저것 말고 표현할 게 없다.

 

"딱히 그런 건 못 느끼겠는데? 아이작이 다 나아서 기쁜 마음밖에 없어."

"나도. 안기고 싶은 건 원래부터 그랬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머쓱해지는 건 레오나였다. 그녀는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입 주위를 긁적였다.

 

하지만 레오나가 수인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비록 혼혈이라지만 수인의 본능 또한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절대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달라고 하지, 저런 식으로 애둘러 표현하지 않으니까.

 

"아무튼 다 낫기도 했으니까 슬슬 정리하자. 혹시 신경 써야 할 소식이라도 있어?"

"연재를 하지 않다 보니까 슬슬 건강이 좋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있어. 머스크 씨에게 편지도 왔고."

"가족들은?"

"당연히 걱정하셨지. 오늘 깨어났으니까 연락을 보내면 될 거야."

 

처음 내가 신열로 쓰러졌다고 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찾아오셨다.

 

하지만 상태가 악화된 시점이어서 부모님이 병문안을 오신 것도 몰랐다.

 

내가 저택으로 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아있는 것 또한 상태가 너무 나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것 같은 유리와 같은 상태나 다름없었으니.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생생하네.'

 

조만간 몸 상태를 확인할 겸, 케이트가 클라크 할아버지로부터 훈련을 받을 때 겸사겸사 단련하면 되겠지.

 

지금은 밀리고 밀린 연재부터 해야 된다.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했는데 보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몸 곳곳을 점검했다. 깨끗한 피부도 피부지만 어디 달라진 곳이 없나 재확인하기 위함이다.

 

"음······"

 

다행히 멀쩡하다. 멀쩡한 걸 넘어서 성장까지 했으니 오히려 더 좋다.

 

마지막으로 아랫도리를 확인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렇게 보니 뭐랄까······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여기에 미워하기는커녕 사랑할 수밖에 없는 딸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진짜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한 번 이 현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전생이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인생.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니 더욱 다짐할 수 있었다. 악마 숭배자가 별의별 공작을 부려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내 주변인이 위기를 겪는 게 아닌, 내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해결할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혔던 연재분부터 풀어야겠지. 나는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며 상황에 대해 물었다.

 

"연재 빼고는 없지?"

"있긴 있어.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지만."

이외에 테르스 왕국이 시도때도 없이 미네르바 제국을 툭- 툭- 건드리다던지, 잠잠했던 스타비르크에 다시 열기가 뻗어나온다던지 등등.

 

내가 쓰러진 보름동안 세계 정세는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히 공장이 잘 가동돼 공급난이 해결된다는 것 정도.

 

다른 건 몰라도 국제 정세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으로서는 꾸준히 연재를 하는 게 최선이다.

 

"알겠어. 그럼 연재분부터 보내야겠다. 일단 창문부터 열까? 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책상으로 향하면서 물으니 다들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창문은 책상 바로 뒤에 있다.

 

책상 서랍에서 연재분을 꺼낼 겸 창문을 열면 되겠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짹짹짹! 짹짹!"

"어?"

 

그리고 새 한 마리가 이때다!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갈색 깃털에 자그만한 몸뚱아리가 귀여운 새다.

 

"까악! 까악! 깍!"

"구구구! 구구!"

 

그런데 다른 새들도 우르르 몰려오더라. 나는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콕! 콕콕! 콕!

 

창문을 닫자마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새들이 부리로 쪼기 시작한다.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창문 너머를 쳐다봤다.

 

어서 열라는 듯이 날개짓을 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새들. 당최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째액! 짹! 짹!"

"깍! 까악!"

 

내 몸에 자기 머리를 비비는 새들은 더욱이. 뭔가 드루이드가 된 기분이다.

 

난데없이 새들의 애교를 한 몸에 받게 된 나는 어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다른 사람들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저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쓰다듬어줘! 쓰다듬어줘! 쓰다듬어줘!]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내 머릿속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울린다는 것.

 

나는 설마하면서 내 어깨, 머리에 앉은 새들을 둘러봤다.

 

[봤어! 날 봤어!]

[날 봐! 날 봐!]

[이쪽이야! 이쪽!]

 

음.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알겠다.

 

당분간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들겠다고.

 

*******

 

아이작이 쓰러지는 바람에 잠시나마 연재가 중단됐던 피와 강철.

 

많은 사람들은 아이작의 건강을 우려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에서 신간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피와 강철 신간에 실린 내용은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과 프랑스 내부적인 문제.

 

여기서 노르웨이 침공보다는 프랑스 내부적인 문제를 중점으로 다루었는데, 여러모로 유명한 '엘랑'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설치한 것도 엘랑으로 인하여 병력들이 갈려나갔기 때문이었으니.

 

그리고 세상은.

 

[감히 기사의 정신을 무시하는 건가!]

[병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정신력이다! 아무리 강해도 나약한 정신으로는 이길 수 없다!]

[제논은 어째서 불굴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인가?]

 

다양한 의미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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