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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44)화 (545/763)

Chapter 543 - 참 쉽죠?(3)

내가 생각하기에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3가지가 있다.

 

신. 영웅. 예언.

 

이중에서 신은 알파이자 오메가고, 영웅은 신과 일반인을 이어주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언은 신이든 영웅이든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예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단연코 그리스식 예언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예언은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좋지 못한 예언이 떨어졌을 때 그것을 피하려다가 되려 맞닥뜨리게 되는 형식이다.

 

대표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 북유럽 신화의 종말인 라그나로크가 이에 해당한다.

 

이 세상에서도 예언, 그러니까 신들이 내려주는 신탁은 그리스식 예언에 가깝다.

 

신은 미래를 엿볼 수 있으며 그걸 토대로 예언을 내린다면 반드시 적중하는 식. 타임 패러독스를 역이용한 사례인 것이다.

 

물론 신들은 웬만해서 자세한 내용의 신탁을 내려주지 않는다. 애매모호하게 전달하고 자기들끼리 해석하라는 편이다.

 

[그 빌어쳐먹을 예언 말인가?]

 

그리고 게리오스 왕국 최후의 왕, 모건 왕도 그 예언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듯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게리오스 왕국이 건재하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최소 3000년 전. 그때는 루미너스 혹은 모라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던 시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탁은 물론이요, 신성력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시기다. 이때 겨우겨우 마나를 발견했다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모건 왕은 예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혐오과 경멸이 잔뜩 묻어나오는 표정이다.

 

"······그때 신들께서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던 걸로 아는데요?"

[활동은 안 했지. 한 번 멸망한 세상을 수습하느라 휴식이 필요했으니까.]

"그럼 누가 예언을 내린 거죠?"

 

그런 거라면 예언을 내릴만한 사람이 없는데. 내 질문에 모건 왕은 한숨을 내쉬더니 착잡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설명하려면 조금 길어지겠군. 우선 게리오스 왕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고 있나?]

"바다를 이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게리오스 왕국이 서쪽의 패권을 쥘 수 있던 이유 중 하나.

 

"······주술?"

 

주술이다.

 

마법은커녕 마나조차 제대로 발현하기 힘들었던 시대에 사용하던 능력 중 하나.

 

확실한 대가를 보장하는 마법과 다르게 저점과 고점이 왔다 갔다하는 힘.

 

[그렇다네. 게리오스 왕국은 주술로 부강해진 왕국일세. 그리고 주술사는 왕국에서도 강력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지.]

"주술사가 예언가를 겸하기도 했나요?"

 

내 예측에 모건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듣는다면 고대에 흔하디 흔한 생활상 중 하나다.

 

그러나 이곳은 지구와 다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속출하는 세계.

 

모건 왕은 복잡한 표정으로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줬다.

 

[주술은 당시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이 하사한 것 같은 힘이었다네. 혹시 지금도 주술을 사용하는가?]

"현재는 대부분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술은 정말 가끔 가다 사용하는 힘이고요."

[예상대로군. 그러면 주술의 기원이 어디로부터 파생됐는지는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술은 마법과 달리 소수 중의 소수만 사용하는 능력.

 

그것을 연구하고 싶어도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애니머즈, 그러니까 수인들이 주로 주술을 사용한다지만 게리오스 왕국처럼 널리 퍼지지도 않았다.

 

[그럴 수밖에. 대전쟁 이후 대부분의 기록이 사라지면서 어디서부터 파생됐는지 모르겠지. 마법이 루미너스와 모라가 직접 만든 능력이라면, 주술은 바다의 신과 자연의 여신이 소통을 위해 만든 능력이라네.]

"소통을 위해서요?"

[그래.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거나 제사를 지낸다거나 등. 숭배 혹은 소통을 위해서는 주술밖에 없었거든.]

"으음······"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도 신과 소통하기 위해 제사를 지낸다거나 제물을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때 신들이 과연 답을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효능'이 있기에 지속했을 터.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에 가깝지만 고대의 사람들은 진심으로 믿었다.

 

[범용성은 떨어질지언정 태초의 신들이 만든 힘이기에 마법보다 몇 단계 높은 능력이라네. 어쩌면 악마 숭배자들이 신들의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유도 이때문일지도 모르겠군.]

"그럼 악마 전쟁 때도······"

[아니. 그때는 루미너스가 개새끼였다네. 알고도 안 막았거든.]

"··· ···"

 

신에게 덤덤한 어투로 개새끼라 하니 뭔가 인지부조화가 온다. 저래도 되는 건가.

 

나는 혹여 천벌이 떨어질까봐 두려워 모건 왕에게서 슬금슬금 떨어졌다.

 

모건 왕은 그런 내 반응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신들 입장에서는 우리 왕국은 눈엣가시를 넘어선 골치덩어리였다네. 가만히 두자니 주술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억제하자니 말을 안 들었거든.]

"말을 안 들었다고요?"

[귀쟁······ 아니, 엘프.]

 

모건 왕은 순간 버릇적으로 귀쟁이라 말하려다가 엘프라 정정했다. 하긴 귀쟁이라는 별명이 찰지긴 하지.

 

[엘프는 신의 대리자인 천사의 후예들. 알븐하임이 건국되었을 때부터 마법과 신성력을 사용하는 국가였다네. 하지만 게리오스 왕국은 서쪽 끝에 자리잡았고, 알븐하임은 동쪽 끝에 자리잡아 만남을 가지기 어려웠지.]

"··· ···"

[그런 상황에서 엘프 순례자들이 왕국을 방문했다네.]

 

알븐하임이 건설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알븐하임은 최초의 문명이라 칭해지며 수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그중에서 괄목적인 성과를 이룬 건 단연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세이비어 교국이 건국된 것도 악마전쟁이 원인이었으나 종교를 전파한 건 엘프들이다.

 

안 그래도 신의 힘을 목도한 상황인데 말을 잘하는 신자들이 조금만 부추겨도 신앙심이 생겼겠지.

 

마족도 마찬가지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자면 마족들이 정처없이 돌아다닐 때 다크 엘프 순례자가 몰래 도와줬다는 기록이 나왔다.

 

어찌하여 헬리움이 모라를 국교로 삼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정작 다크 엘프는 알븐하임으로부터 축출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엘프 순례자들은 신탁을 받아 왕국에 도달했다고 말했어. 그리고는 더 이상 주술이 아닌 마법과 신성력을 사용하라고 부탁했지. 물론 전부 거부했지만 말이야.]

"평범한 전도사였군요."

[그래. 그러나 그들이 가진 힘이 문제였어. 마법과 신성력은 불안정한 주술과 다르게 너무나도 안정된, 매혹적인 능력이었으니까. 그리고 엘프 놈들은 간사하게도 이걸 배운다면 자신들처럼 강해질 수 있다고 유혹했지.]

 

현재 주술이 사장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안정성이다. 배울 수만 있다면 보장된 힘을 얻을 수 있는 문물.

 

하지만 저 말을 들으니 의문이 하나 들었다. 인간이 마법을 얻게 된 시기는 종족전쟁이다.

 

그전까지는 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주술은 아주 가끔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게리오스 왕국처럼 엘프가 대놓고 마법을 가르쳐줬다는 건 찾아볼 수 없다.

 

"그 엘프들이요? 상황이 꽤 급했나보네요."

[엘프 순례자들이 마지막으로 경고했을 때가 짐이 통치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으음······"

 

그러면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종교.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처럼, 마법은 몰라도 신성력은 사용했다고 들었다.

 

종교를 이용하여 주술이 세를 얻지 못하도록 막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러모로 계산적이다.

 

게리오스 왕국의 백성들 대부분이 악마가 된 이유도 주실이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이겠지.

 

신들에게는 '그러게 내 말을 듣지 그랬냐'라며 관망했을 것이다. 겸사겸사 주술의 힘을 박멸시켰을 테고.

 

"그렇다면 그거랑 예언이 무슨 상관인 거죠?"

[짐은 엘프 순례자들이 전달한 신탁을 전부 무시했다네. 주술사가 내린 예언도 마찬가지고. 그딴 예언들을 들을 바에야 정복한 영토를 관리하는 게 더 우선이었거든.]

"그러면······"

[짐의 아들이자 노예가 주술사의 예언에 매혹됐지.]

 

저런.

 

어째서 예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지었는지 알 것 같다.

 

[주술사는 간악하게도 이런 예언을 남겼다네. 마음을 버려라. 그리 된다면 제국은 거대한 화마가 되어 전세계를 뒤덮으리라.]

"정말 예언대로 됐군요."

[그래. 빌어먹게도 예언대로 됐지. 짐은 화마가 될 생각도, 마음을 버릴 생각도 없었는데. 그때 조금만 얘기를 나눴더라면······]

 

모건 왕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조적인 말을 남겼다.

 

실제로 게리오스 왕국은 거대한 화염의 파도가 되어 전세계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불은 그 쓸모를 다한다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법. 게리오스 왕국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제가 생각하고 있던 예언과 다르네요. 그건 예언이 아니라 유혹인 것 같습니다."

[그대 말이 맞다네. 그럼 그대가 생각하던 예언은 어떤 예언인가?]

"어떤 거냐면······"

 

나는 그리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기실현적 예언에 대해 알려줬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단연코 오이디푸스 이야기. 그리스·로마 신화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서사다.

 

이윽고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모건 왕은 흥미로운 얼굴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팔짱까지 낀 걸 보니 아예 흠뻑 빠져든 모양이다.

 

"······해서,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두 눈을 뽑아버리고 죽을 때까지 전세계를 방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패륜아라며 대중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요."

[안타깝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구나. 예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것들이 실은 예언 속에 포함돼 있다니.]

 

모건 왕은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나를 힐끔거렸다.

 

뒤이어 장난기가 담긴 듯한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대도 싫든 좋든 예언가라 칭송받고 있지 않은가?]

"그거 전부 헛소리에요. 전 예언가가 아닙니다."

[짐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게나. 방금 그대가 말한 예언을 역으로 이용하자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이죠?"

 

예언을 하라는 게 아니라 예언을 이용하라니. 당최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모건 왕은 미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나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당부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대의 선택일세. 짐은 단지 악마 숭배자를 좀 더 끌어들일 수 있도록 조언하는 거라네.]

"일단 말씀해보세요."

[어떻게 하는 거냐면······]

 

그 설명을 들은 내 반응은 실로 단순했다.

 

"······그것 참."

 

정말이지.

 

"뭣 같은 발상이네요."

 

병신 같은 생각이라고.

"조만간 해보겠습니다."

[좋은 선택이라네.]

나중에 기똥차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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