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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41)화 (542/763)

Chapter 540 - 신화(4)

모건 왕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신화에 대한 비밀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야훼가 일으킨 대홍수는 본래 사악한 인간들을 쓸어버리고 세상을 리셋시키기 위한 멸망이다.

 

그 과정에서 노아에게 부탁해서 방주를 제작하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싣게 했고. 그것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대홍수다.

 

만약 그 대홍수가 일종의 세대 교체 역할을 한 것이라면 여러모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맞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대홍수는 기원전 2800년 즉, 이집트 문명이 건재하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그런 것일 뿐, 세계 곳곳에 다양한 신화가 존재하는 걸 보면 앞뒤가 맞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하나 충고하지. 필멸자의 사고방식으로 초월자들을 이해하려 하지 말게나. 그들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도 존재하는 자들이니. 시공간을 초월하고 한 세상을 관조하는 존재. 그게 바로 '신'이라네.]

 

내 생각을 읽은 모건 왕이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넸다. 덕분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약간이나마 개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 같은 필멸자 따위가 신들의 사고방식, 더 나아가 생활상을 이해할 리가 만무하다.

 

기록된 신화들도 어디까지나 '필멸자'가 기록했을 테니 여러 해석이 등장하는 것일 터.

 

구약성서에 기록된 대홍수가 기원전 2800년에 발생했다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이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신화에서는 신들과 그들의 자식이 몬스터를 비롯한 괴수들을 쓰러뜨렸어. 그것 때문에 지구에는 몬스터가 없는 걸까?'

 

가장 유명한 예로 헤라클레스가 있다. 그 대영웅이 쓰러뜨린 괴수 한 마리 한 마리가 나라 하나쯤은 파멸로 몰고 갈 괴물이다.

 

북유럽은 라그나로크로 인해 서로 공멸했고, 이집트 신화와 인도 신화 같은 경우는 신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 과정 속에서 '몬스터'라 불릴만한 동물들이 죄다 멸종한 건 팩트다. 만약 그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구는 여전히 몬스터에게 시달렸겠지.

 

'이런 걸 보면 퍼즐이 딱딱 맞는 느낌이기도 하고······'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우스의 종교적 권위가 기독교로 쏠리던 시점이 로마 시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방금 전 모건 왕이 말했듯이 신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들. 전쟁을 굳이 '현재'에서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신화'로 기록될만큼 머나먼 과거에서 서로의 이권을 두고 전쟁을 벌인 후, 그걸 통해 서서히 영향력을 끼쳤다면······

 

'······머리 아프네.'

 

역시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안 된다. 나는 눈을 감으며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꾹- 지압했다.

 

어찌 됐든 지구에서 신들끼리 전쟁을 벌였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한낱 필멸자들은 그것도 모른 채 신화라는 설화로 기록했을 터.

 

반면 이곳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것도 지구의 신이 넘어와서 사상을 전파했다는 게 문제다.

 

'소련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하다못해 몬스터나 괴수를 전부 쳐죽이고 난 후에 찾아오던가.

 

사상이 전파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루미너스를 비롯한 신들은 나름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었겠지.

 

물론 내가 이렇게 투덜거려봤자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단지 신화에 해당하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일단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사상이 가장 무서운 법이죠. 자칫하다가는 나라가 분열될 수도 있으니까요."

[듣기로는 그대도 드워프의 나라에 사상을 전파한 탓에 혁명이 발생했다고 들었다만? 그 결과로 세계의 경제가 마비되었고.]

"······그거는 어찌저찌 해결하고 있습니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나나 지구의 신이나 이 세상을 한 번 좆되게 만들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스케일의 차이일 뿐이지.

 

모건 왕은 내 반응을 보고 피식 웃더니 손을 올리며 선심 썼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짐을 웃게 만들었으니 알고 싶은 걸 말해보아라. 루미너스가 허락하는 대로 답해줄 수 있으니.]

"그전에, 폐하께서도 루미너스 님이 소멸시킨 신들이 누가 있는지 모른다는 거죠?"

[그렇다. 기록까지 완전히 말살된 탓에 파악하기 힘들지.]

"허면 제가 임의로 신화를 집필하여 임의로 신을 창조한다면, 그 신이 존재하게 되는 겁니까?"

 

이게 가장 궁금하다. 나는 현재 좋든 싫든 세상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다.

 

만약 내가 임의로 신화와 관련된 책을 작성하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신화를 믿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새로운 신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없던 존재이기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걸까.

 

모건 왕도 꽤 흥미로운 주제였는지 버릇대로 턱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그거 재미있는 의견이로구나. 하기야 신은 신자의 신앙으로 존재하는 자들. 신이 존재함으로써 신앙이 생기는 건 몰라도 그 반대의 경우라······ 너희 세계에는 그런 경우가 있었느냐?]

"비슷하게나마 있습니다만 확실치 않습니다."

 

애매하지만 예수와 석가모니가 그런 예다. 실존인물이자 훗날 종교로 재탄생하게 되는 인물들.

 

신에 준하는 신화를 갖고 있지만 방향이 전혀 다른 성인(聖人)들이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신앙을 받는 건지 모른다는 거지.'

 

여태까지 '지구의 신'이라고 말했을 뿐이지, 그 안에 야훼 혹은 다른 신들이 포함돼 있는지 전혀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예수와 석가모니도 마찬가지. 단, 이들도 초월자로 승천했다고 루미너스로부터 들은 바가 있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이자 가장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종교 하나 때문에 분쟁이 발생한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으니.

 

[흠. 그러면 조금 난감하겠구나. 혹여 나중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쓸 것이냐?]

"아뇨?"

 

당장 피와 강철의 뒷수습을 하느라 머리 아픈데 신화까지 갈아엎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 내 단호한 대답에 모건 왕은 드물게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따졌다.

 

[그럼 왜 물어본 것이냐?]

"궁금해서요."

[······쯧. 이래서 학자란.]

 

처음에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혀를 차며 투덜거리는 모건 왕. 죄송하지만 제가 뿌린 똥들이 너무 많아서요.

 

마음 같아서는 크레토스 뺨 치는 루미너스의 과거를 쓰고 싶지만 그건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

 

물론 루미너스에게 허락을 받는다면 어떻게든 완결까지 낼 수 있겠지.

 

하지만 신권이 강한 이 세상의 특징상 어마어마한 충격이 강타할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피와 강철부터 완결지어야지.'

 

솔직히 말해 소재가 슬금슬금 끓어오르기 직전이었지만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다.

 

제논 일대기 집필 당시에도 피와 강철을 쓰고 싶었는데 겨우겨우 참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기록이 없어도 너무 없다. 최소한 다양한 기록을 접하고 써야 될 터.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를 넘어가야 된다는 소리인데······'

 

그쯤이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직접 말하지 않을까 싶다.

 

이단자라며 매장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루미너스 님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의 과거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히르트 님은 자연의 여신이자 그들의 어머니이니 여러모로 곤란한 입장이었을 테고, 모라 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모라는 신들의 전쟁으로 파국으로 치닫은 세상의 생명들을 보호했지. 하지만 그 힘은 전쟁의 신과 바다의 신에 비해서는 미약하여 소수의 종족만 구원을 받았노라. 모든 종족의 기원이 되는 인간, 그리고 수인과 드워프. 이 셋이지.]

 

엘프는 천사가 스스로 날개를 뜯고 내려온 종족이고, 마족은 모두 알다시피 악마가 기원이다.

 

나는 모든 종족의 기원이 인간이라는 점에 역시 그렇구나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이 부분은 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인간과 다른 종족 사이의 혼혈은 존재해도, 이종족과 이종족 사이의 혼혈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멘델이 이 세상에 왔다면 유전학과 자기 부랄을 찢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건 과학적 근거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신화적 근거로 접근해야 되는 부분이다.

 

더 나아가 모든 종족의 기원이 인간이라는 것 또한 밝혀졌고, 여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겼다.

 

"인간을 베이스로 둔 종족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는 뜻입니까?"

[물론이지. 일일이 말하기에는 너무 많으니 한 번 직접 찾아보게나.]

"그럼 드워프와 수인을 창조한 신이 따로 있었다는 겁니까?"

[물론이라네. 인간은 바다의 신과 히르트 사이에 낳은 쌍둥이 남매, 루미너스와 모라를 본따 만든 최초의 인류. 그리고 드워프와 수인은······]

 

모건 왕은 잠깐 말을 흐리더니 위쪽을 힐끔거렸다. 나는 그 눈짓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뻥 뚫려있는 천장에는 따사로운 태양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예상컨데 루미너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허락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모건 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쌍둥이 남매 이후에 태어난 형제들. 즉, 바다의 신의 자식들이라네.]

"··· ···"

[여기까지만 말해두겠네. 아무리 짐이라 해도 그 놈의 감정을 건드리는 건 한사코 피하고 싶으니.]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갔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유폐된 바다의 신과 히르트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쌍둥이 남매 신들만 존재하던 게 아니다.

 

수인과 드워프는 루미너스나 모라를 신봉하지 않고 히르트를 따르고 있다. 종족 단위로 각인된 거부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 보니 신성력을 사용하는 드워프나 수인이 있나?'

 

주술은 몰라도 신성력을 사용하는 건 못 봤다. 문화적인 이유인 줄 알았는데 더 깊은 사정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루미너스 혹은 모라가 그들을 차별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못 느꼈다.

 

단지 전쟁 속에 발발한 비극, 더 나아가 필멸자들에게 각인된 문화 때문이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니. 이제는 짐이 묻겠네. 아니, 정확히는 제안이겠군.]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모건 왕이 내 말을 싹뚝 잘라버렸다.

 

나는 질문이 아닌 제안이라는 그의 말에 의아해진 것도 잠시, 다음에 이어진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끔뻑였다.

 

[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지식을 원하는지 알 것 같군. 하지만 너무 방대한 양일 뿐더러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내 후손이라도 말이지.]

"······원하시는 게 있나요?"

[하하! 역시 내 후손들답군. 전에 왔던 후손도 길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미사여구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하라고 하자 모건 왕이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그는 왕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는 궁금하지 않나? 신의 권능으로부터 벗어난 짐이 어찌하여 이 장소에 속박돼 있는지.]

"··· ···"

[이유는 단순해. 노예가 된 짐은 끝까지 악마들에게 대항했으나 패배했고, 악마들은 그런 짐에게 흥미가 생겨 온갖 실험을 자행했지. 악마 놈들의 놀잇감이 된 거라네.]

"혹시 폐하의 시신을 찾아달라는 건가요? 악마 숭배자들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음? 어떻게 알았나? 혹시 전에 왔던 후손이 알려준 건가?]

"그건 아닌데······"

 

나는 뺨을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소설을 너무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레 유추하게 됐다.

 

모건 왕은 미묘해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아무렴 됐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이윽고 내 앞까지 도달하게 된 모건 왕. 그는 내 주변을 빙글빙글 배회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했으니 그럴 수 있지. 어쨌거나 짐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악마 놈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짐의 시신을 불태우는 것. 그리고 짐을 이 빌어먹을 곳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

"··· ···"

[물론 합당한 보답은 해야겠지. 무엇을 원하나? 짐이 서쪽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된 무력? 아니면 명예? 부? 무엇이든 말하게. 전부 들어줄 테니.]

 

비록 원령 상태지만 모건 왕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 지금도 신의 권능을 피하고 있지 않는가.

 

특히 서쪽 전체를 지배했다던 무력. 이것이 알파이자 오메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시대는 무력이 곧 명예요, 부로 직결되니까. 이건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을 가치일 터.

 

나는 모건 왕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클라크 할아버지께서는 무엇을 선택하셨습니까?"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거절했다네. 그러기 위해서는 판을 깔아야 되고, 본인이 직접 그 판을 깔 거라고 단언했지.]

 

모건 왕의 말대로다. 마이샬 가문은 클라크 할아버지가 손을 쓰기 전까지 악마 숭배자들에게 틈만 나면 살해당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어머니 즉, 할머니마저 악마 숭배자에게 살해된 정황마저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악마 숭배자는 마이샬 가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으며 세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모건 왕의 제안이 아니더라도 악마 숭배자를 토벌하기에는 적절한 걸 넘어 천재일우나 다름없다.

 

[자. 그대는 받아들일 텐가?]

 

모건 왕이 살살 유혹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재차 묻는다.

 

그에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한치의 거짓없이 대답했다.

 

"관심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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