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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538)화 (539/763)

Chapter 537 - 신화(1)

'아버지 살해'와 '세계의 종말'은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사들이다.

 

아버지 살해 같은 경우는 대표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 세계의 종말은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가 있다.

 

특히 아버지 살해만큼 임팩트를 주는 서사가 없기에 다양한 매체에서 차용되는 편이다.

 

너무 많은 나머지 손으로 꼽기에도 힘들다. 틈만 나면 세계의 창조주를 찢어죽여 세계를 창조한다거나 아버지를 몰아내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루미너스와 모라가 패륜을 저질렀다고 해도 놀랐을 뿐이지 담담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스만 해도 뭐······'

 

패륜은 기본이요, 주신이라는 놈이 강간, 근친, 불륜 등등. 온갖 범죄란 범죄는 저지르고 다닌다.

 

심지어 주신뿐만 아니라 멀쩡한 신들마저 극소수다. 굳이 꼽자면 헤스티아 정도랄까.

 

게다가 속은 어찌나 좁은지 틈만 나면 천벌을 내린다. 물론 그리스인들의 성격도 정상인과 멀었으나 속이 좁은 건 맞다.

 

다시 말해 나에게 되도 않는 고행을 내렸던 모라조차 그리스에 비해서는 선녀 중의 선녀다.

 

하물며 무작정 패륜을 저지른 게 아니라 바다의 신의 사상에 대응하지 않았는가.

 

아무 명분도 없이 아버지를 몰아냈다면 모를까, 확실한 명분이 있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세계 멸망도 자세한 과정이 나오지 않아 의문점이 많긴 한데······'

 

신화적인 의미의 대멸종은 물론, 생물학적 대멸종도 파악한 지구다.

 

대표적으로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대홍수'가 있다. 인간의 타락이 극에 달하자 야훼가 직접 심판을 내린 이야기.

 

그 과정에서 노아가 거대한 배, 방주를 제작하여 인간 및 동물을 구한 신화다.

 

또한 두루마리 속의 내용에 따르자면 신들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멸망했다고.

 

이것만 본다면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와 매우 흡사하다.

 

'루미너스나 바다의 신이나 둘 다 맞는 말이라 누구의 편을 들기에도 애매하네.'

 

여태까지 꾸준히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다. 인류는 새장 속에 갇혀지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새장을 없애야 하는 것인가.

 

바다의 신은 지구처럼 새장을 없애는 쪽으로 노선을 잡은 반면, 루미너스와 모라는 격렬하게 거부했다.

 

명분도 충분한 것이, 당장 지구만 하더라도 온갖 환경 오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유다.

 

물론 좆되는 건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지만 골병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이래서 사상이 무섭지.'

 

지구의 신이 똥을 뿌렸다지만 바다의 신 입장에서는 몇 시대 앞선 문화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설득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나섰다는 것이 크나큰 잘못이다.

 

바다의 신이 루미너스와 모라에게 폭군이라고 비난했으나 정작 본인도 폭군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걸 보면 진짜로 신화 같은 느낌이 들긴 하네.'

 

어쨌거나 흥미로운 진실이다. 스케일이 미친듯이 클 뿐이지 전쟁도 인류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게다가 바다 건너 수인의 고향이 있다는 것과 머나먼 고대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신이 존재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제일 관심이 간다.

 

자세한 건 궁전에 들어가야 알겠지만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이것 때문에 나를 여기로 보낸 거겠지.

 

'이제야 좀 신답게 느껴지는구나.'

 

지금까지 너무 인간적이서 정말 신이 맞나? 싶었는데 이걸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 살해와 신들의 전쟁.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진 세계의 멸망.

 

신화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들이 연이어 튀어나오자 그제서야 신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이건 말 그대로 '끝'이면서 '시작'에 해당하는 신화다. 제대로 된 신화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흥미롭다고? 그게 끝이니?"

 

그동안 내 짧은 감상을 들은 엘레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비슷하다. 당황했는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니.

 

전생에서 매운맛 신화들을 접해본 나에게 있어서 이정도는 순하디 순한 맛에 지나지 않았다.

 

"네. 모든 기록에서 사라진 신이 있는 건 조금 놀랍지만요."

"대멸망은? 대멸망에 대한 감상은 없어? 루미너스 님이나 모라 님께서 또다시 대멸망을 일으킬 수도 있잖아."

"아."

 

그런 거였구나. 나는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깨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매운맛에 해당하는 신화가 전혀 없었기에 충격을 받았다면, 두려움의 이유는 신의 존재 자체다.

 

사이좋게 사라졌으면 몰라도 루미너스와 모라는 멸망 이후에도 존재를 유지했다.

 

필멸자들 입장에서는 저 신들이 또 대멸망을 일으키면 어떡하나? 라며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스탈린이 또다시 대숙청을 일으킬 거라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 셈이다.

 

"흠······ 글쎄요. 아직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단언할 수 없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해요."

"어째서야?"

"그랬다면 악마 숭배자부터 모조리 박살냈을 테니까요."

 

물론 악마 숭배자를 전부 조지기 위해 세계를 멸망시키는 건 너무 과한 짓이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거지.

 

하지만 현세에 끼치는 신들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간접적인 영향밖에 못 미친다.

 

아마 이것도 두루마리에 기록된 전쟁 혹은 대멸망과 관련이 있을 터.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다만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께서 바다의 신 즉, 아버지를 무너뜨린 건······ 명확한 패륜이죠. 죄는 죄지만 어떤 이유로 죄를 저질렀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애초에 바다의 신도 신들에게 폭군이라 비난했지만 정작 본인도 폭군의 기질을 보이는 중이고요."

"그러니까 네 말은······ 전후사정을 알기에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시죠?"

"흠······"

 

엘레나는 내 설명을 듣고 다소 침착해진 표정을 지었다. 안경 너머로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가 이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보아하니 본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록이 튀어나와 두려움에 먹혔던 모양이다.

 

그러나 학자된 입장에서 무작정 루미너스와 모라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말했듯이 자료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으니까.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네. 그래. 네 말대로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겠지. 자그마치 신들의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혼란스러웠나 봐."

"그럴 수도 있죠. 저도 깜짝 놀랐는 걸요."

"깜짝 놀란 것 치고는 상당히 침착한 것 같은데?"

"제가 원체 무뚝뚝한 편이라서."

 

실은 예방주사를 너무 많이 받은 거지만. 내 능청스러운 대답에 엘레나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렸다.

 

나는 살짝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두루마리를 조사하다가 시리스에게 물었다.

 

"아무튼 이 자료가 궁전 안에서 나왔다는 거죠?"

"네. 세이비어 쪽에서 두루마리를 바다로 던졌으나 제가 몰래 가져왔습니다."

"불태운 것도 아니고 바다로 던졌다라······"

 

정말로 숨기고 싶은 과거였다면 불에 태우고도 남았겠지. 그러나 루미너스는 그러지 않았다.

 

이 말은 즉, 어떤 이유로든 간에 과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

 

속죄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도와달라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싶은 걸까.

 

루미너스가 나에게 어떤 말을 전달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할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지구와 달리 신들이 별로 없던 이유도 전쟁 때문에 다 죽어서 그런 건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라그나로크 때도 몇몇 신을 제외하면 다 죽었지 않았는가.

 

어떤 내막이 깃들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만 천천히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 이건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아, 혹시 연구할 게 있으시다면 갖고 계세요."

"괜찮아. 다른 건 몰라도 언어 같은 건 다 연구했거든. 마음 같아서는 공동 연구를 하고 싶은데······"

 

신의 천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학자로서의 열망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지 엘레나가 두루마리를 바라봤다.

 

초록빛 눈동자에는 강렬한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욕구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공동 연구를 해도 상관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기꺼이 허가를 내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 명확한 자료가 나오기 전에는 그 어떤 정보조차 발설하면 안 돼요. 이것만 본다면 신들이 악으로 느껴질 테니까요."

"너는 신들께서 저지른 패륜과 대멸망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거니?"

"그건 아니에요. 좀 더 아름답고 숭고하게 포장하자는 거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지언정 신다운 위엄을 갖추도록."

 

지구 시절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만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헤라가 나쁜년이고 제우스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머리가 커질수록 헤라가 불쌍해지고 제우스가 개새끼더라.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았을 때는 말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아버지를 몰아내는 건 고정 관념을 깨라는 의미도 있으니까.'

 

하물며 고대 그리스 시절 제우스 신전은 고아원을 겸하기도 했다.

 

헤라가 내리는 신벌은 역경 그 자체를 의미하는 대신, 제우스가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역경을 헤쳐갈 뒷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무작정 개새끼라 할 수는 없는데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루미너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건 지구의 신들이 간섭한 거라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

 

그래서 자료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인의 고향 즉, 바다를 넘어가야 된다는 뜻이겠지.

 

나는 두루마리를 돌돌 접으며 시리스에게 넘겨줬다. 이곳으로 오면서 몸만 왔기에 보관은 그녀에게 하는 편이 낫다.

 

"전 이만 궁전 안으로 들어가볼게요. 여러분은 꾸준히 탐사하실 거죠?"

"그래야지. 오늘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네."

 

엘레나는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기지개를 폈다. 그동안 꾸역꾸역 참느라 고생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지하실에서 나왔다. 지하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다 특유의 짠내가 코를 비집고, 새파란 물결의 향연이 시야에 잡혔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환경, 바다.

 

'바다의 신이라······'

 

루미너스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바다의 신은 루미너스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 정확히는 봉인이라 해야겠지.

 

더이상 천사가 태어나지 않는 이유도 아버지이자 바다의 신이 유폐되서 그런 게 아닐까. 가설이지만 의외로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다.

 

'그럼 악마 숭배자들이 숭배하는 만물의 아버지가 바다의 신일 테고······'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 기분이다. 악마 숭배자들은 진실을 파헤치려 하다가 특정 이유로 배척받은 거겠지.

 

루미너스나 모라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종교 쪽에서 이단자라며 모욕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들이 저지른 죄까지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다.

 

사정이 딱하다고 한들 그들이 지은 죄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끔찍하니까.

 

'그래도 제우스보다는 낫네. 루미너스가 강간이나 근친 같은 걸 했다고 상상하면······'

 

상상이라 해도 너무 불경한 상상이었던 걸까.

 

콰광!!

 

내가 바라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난데없이 '벼락'이 떨어졌다.

 

콰과광!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저것들 중 하나는 루미너스고 하나는 모라겠지.

 

나는 시간차 공격에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뒤의 사람들이 뭐라 하는 소리쳤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루미너스와 모라는 현실적인 남매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쌍으로 저러는 걸 보면 확실하다.

 

"우, 우리 괜찮은 거 맞지? 지금이라도 연구하지 말까?"

 

전조도 없는 벼락에 엘레나가 새파래진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저 벼락들을 경고로 추측하신 것 같다.

 

나는 머쓱함에 뒤통수를 매만지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제가 잠깐 쓸데없는 상상을 해서······"

"무슨 상상?"

"천벌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상이요."

"······나에게까지 피해가 안 오도록 해줄래?"

 

그러면서 내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는 엘레나와 그녀의 동료들.

 

이건 내 잘못이 맞는지라 어색한 웃음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엘레나 일행과 헤어진 후에는 케이트가 말했던 쉼터로 이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할 일이 남아있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쉼터에 도착하자 케이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했다.

 

"오셨군요.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네. 궁전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 거 맞죠?"

"이미 허가를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궁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엘레나가 투덜거린대로 궁전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궁전 안에서 신들의 과거가 담긴 두루마리가 나온만큼 경계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일 터.

 

하지만 이것마저도 시리스의 잠입 능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점이 웃기고도 우스운 일이다.

 

"어서오시지요, 제논 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궁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외모의 노사제와 만남을 가졌다.

 

송충이 눈썹이 눈을 전부 가릴 정도였으며 수염 또한 풍성하여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겼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으나 복장과 더불어 분위기를 보아하니 직위가 높은 사제인 것으로 보인다.

 

"제 이름은 데이모스 란델. 루미너스 님을 모시는 충실한 시종입니다."

"아."

 

데이모스 란델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있다. 이번 회색 사막 원정의 책임자이자 세이비어 교국 추기경 중 한 명.

 

직급으로 따지자면 케이트와 동급이었기에 나 또한 예를 갖추며 정중히 인사했다.

 

"빛의 시종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이샬 가문의 차남,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이라고 합니다. 데이모스 님의 이름은 익히 들었습니다."

"허허허. 그래봤자 제논 님에 비할 바가 있을까요."

 

데이모스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냥 간단한 안부 인사, 그리고 루미너스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대신 내가 궁전 안쪽 깊숙히 들어간다는 걸 알고 있는지 약간의 경고성 멘트를 남기는 건 잊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할 겁니다. 케이트 추기경이 보호할 테니 괜찮겠지만 여러모로 기겁할 부분들이 많거든요."

"유령이라도 나오나요?"

 

괜스레 겁주려고 하는 것 같아 농담조로 말했지만.

 

"예. 나옵니다."

"······네?"

"저희의 신성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짙은 원념을 지닌 원혼이지요."

 

진짜더라. 데이모스는 그리 말하고는 허허 웃으며 궁전 밖으로 나섰다.

 

나는 괜스레 물어본 것 같은 기분에 바짝 긴장했다. 유령이라면 정말 질색인데.

 

"저······ 케이트 씨?"

"예. 말씀하세요."

"실례지만 팔 좀 붙잡아도 될까요?"

"네?"

 

심히 쫄보스러운 부탁을 건네자 케이트가 당황했는지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나도 이게 등신 같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전생에서도 '공포'와 관련된 건 질색이었다.

 

심지어 깜짝 깜짝 놀래키는 것마저도 격할 정도로 반응하는 편이다. 그 반응이 맛있어서 마리가 장난을 자주 치는 거지만.

 

"······아이작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감사합니다."

 

케이트가 미묘하게 붉어진 얼굴로 자기 팔을 내어줬다. 이에 나는 소심하게 팔을 붙잡았고.

 

[꺄아아아아!! 살려······ 살려줘······!]

"으악!"

 

때아닌 흉가 체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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