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531화 (532/763)

전쟁은 인류의 문명 건국 탄생 이후 뗄래야 뗄 수 없는 역사이자 비극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필요 없다며, 비극만을 부르는 행동이라 비난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류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류에는 수많은 종족 및 민족이 포함돼 있으며 각기 사상, 문화, 외모, 환경, 강점과 단점 등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그런 차이점은 곧 '갈등'으로 변하고 그 갈등이 커지고 커져 전쟁으로 번진다. 그렇다면 전쟁은 시기마다 어떤 양상으로 변화했을까.

고대에서 전쟁 목적은 농경지 및 인구 확보가 0순위였다. 영토는 후순위였으며 정복 전쟁을 치렀던 왕국들조차 일반인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후로 중근세로 넘어와 국제정치학이 크게 발달하면서 전쟁은 왕들 사이의 '훌륭한 대화 수단'으로 변화했다.

외교를 하다가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식. 여기서 죽어나가는 병사들은 신경 쓸 게 아니다.

현대는 모두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쟁이 '지옥' 그 자체로 바뀌었고. 이처럼 전쟁의 양상은 시대가 흐를수록 다양하게 변했다.

지구가 아닌 이 세상도 다를 게 없다. 종족이 다양하고 마나와 마법이 존재하더라도 전쟁의 양상은 중근세와 비슷하다.

그렇다고 꼭 서양의 중근세처럼 외교의 일환으로 전쟁을 치른 건 아니다. 동양의 중국처럼 '하나'를 이루기 위한 전쟁도 있다.

종족 전쟁 이후 미네르바 제국의 전신이었던 인간 연합이 그 예다. 그들은 알븐하임과 조약을 맺은 이후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다.

어쨌거나 현 시점에 따르자면 서양 중근세에 가까운 전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전쟁은 거칠고 잔인하다. 동시에 숭고하며 명예롭다.]

중근세의 전쟁은 명예롭긴 하다. 귀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전선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니.

또한 가끔 가다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끼리 일기토를 벌이는 경우도 많다. 이에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진 곳에서 싸우는 편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민간인'이 휘말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휘말린다 하더라도 '씁. 미안하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편이며 '학살'은 더욱 용납받지 못할 일이다.

민간인들도 자신들의 지도자가 바뀌어도 배만 부르게 만들면 끝이라는 마인드다.

폭정을 저지르는 군주보다 차라리 다른 지배자에게 통치를 받는 게 더 낫다고 할 정도.

이처럼 중근세에 민간인은 불가침의 영역에 가깝다. 민간인 쪽에서 먼저 나서지 않는 이상 절대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총'을 비롯한 다양한 '전쟁 기계'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폴란드 침공은 기계의 발달이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폭격기의 무자비한 폭탄 떨구기. 그 아래에는 민간인들이 살고 있다.]

[피와 강철에서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서히 알 것 같다.]

세계 대전은 아무리 급해도 민간인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완전히 박살난 전쟁이다.

총기 및 대포의 발달은 유리한 고지가 있을지언정 지형지물을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들에게 전달됐고.

이 세상도 기껏해야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거나 화살 혹은 마법을 난사하는 게 끝이다.

대포가 있긴 해도 '아직까지는' 마법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총이야말로 진정한 악마의 병기였다. 모두가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건 어린아이조차 가능하다는 뜻이다.]

[무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무력을 손아귀에 쥐어주는 총과 강철들.]

[우리가 바라던 전쟁은 이런 것이 아니다. 명예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치 독일군의 예행 연습이나 다름없던 폴란드 침공은 무시무시한 문화 충격을 선사했다.

특히 나치 독일군은 폴란드 침공을 하면서 반인륜적 학살까지 저질렀으니 충격이 배로 다가왔을 터.

더군다나 피와 강철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겨읽는 소설이다.

민간인들조차 자기 땅이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죽음. 폭격기는 하늘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과연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는 것인가?]

[불가능하다. 하늘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공간. 판타지여도 인류의 피조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마력 기관은 물론 전차마저 제작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머리 위에서 폭탄을 떨어뜨린 폭격기 즉, 비행기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로 하늘을 난다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마법이나 날개 없이 하늘을 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 거냐. 하늘은 선택받은 자만이 오갈 수 있는 영역이다.

비행기에도 날개가 있지 않느냐. 기계는 무엇이든 간에 가능하게 만든다.

이를 보듯이 많고 많은 의견들이 서로에게 오고 갔으나 한 명의 의견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치자. 나는 여기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그렇다. 지긋지긋하게도 빌어먹을 몬스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을 마음대로 유영하는 비행 몬스터가 떡하니 존재하고 있다.

당장 현대조차 비행기와 새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하물며 몬스터라면?

드래곤의 열화판이라 칭하는 와이번이 습격하는 순간 비행기는 초전박살이 날 터.

근본 중의 근본이나 다름없는 문제가 튀어나오자 다들 '소설은 소설로 보자'라는 식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마나도, 마법도 없이 하늘을 날고 싶다. 그것은 낭만 그 자체.]

[에인스가 제논 일대기에서 증기 기관차를 보고 마력 기관과 마력 기관차를 발명했듯이, 이번에도 비슷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하늘만 날게 하면 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특히 마키나에서 비행기 문제로 난리를 피우고 있다고.

가이스트의 혁명이 성공하고나서 드워프들은 진정한 의미의 장인으로 돌아왔는데, 비행기가 여기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물론 마력 기관이 혁명적이라지만 엄연히 한계 또한 있는 엔진이라 개발하려면 족히 십 수년은 걸리겠지.

더군다나 비행기 자체가 막대한 실패를 딛고 나서 발명된 기계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고.

그래서 약간의 설명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가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나름 섬세히 묘사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비행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이리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정말로 폭군이었던 것인가? 갱생의 여지는?]

[그는 본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기 위해 유대인을 탄압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자국민마저 혹독하게 몰아붙이는데 타국의 국민들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우리의 주인공, 히틀러에 대한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여태까지 불안한 행보를 보이던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으로 평가가 수직낙하했다.

평소 폴란드와 사이가 나쁘다는 암시는 많았다만 이건 조금 심하지 않나, 라는 기류가 만연했다.

심지어 폴란드의 선전포고마저 자작극이었으니 여론이 점점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히틀러는 학살자다. 이건 부정해서는 안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나치 독일의 총통.]

[우리는 과연 이것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약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면 당장 신전에 방문하라.]

이윽고 폴란드에서 벌어진 학살극까지 등장하자 너도 나도 할 것없이 까내리기 바빴다.

기계의 발달로 민간인의 영역까지 전쟁의 겁화가 번진 건 문화 충격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민간인들에게 '고의'로 폭격을 떨어뜨린 건 그 누구도 쉴드를 쳐주지 않았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십새끼라 욕했다.

[전쟁의 특수성이다. 폴란드와 독일은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으며 국민들도 서로를 혐오하고 있었다.]

[학살을 한 건 엄연한 잘못이지만 이게 바로 전쟁이다. 살인이 정당화되는 상황.]

그렇다고 쉴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직까지 히틀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피의 쉴드를 쳐주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인들의 폴란드 혐오는 유대인 못지 않게 강했을 뿐더러 전쟁이라는 특수성이 합쳐진 거라 변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간들도 종족 전쟁 당시 수인들을 향한 혐오로 학살을 저질렀다. 이후에 그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히틀러도 비슷한 행보를 걷지 않겠나? 심지어 그는 전에 있던 대전쟁에 참전했던 자다.]

[대전쟁에 참전했던 자였던만큼 전쟁의 끔찍함도 잘 알고 있을 것. 얼마 지나지 않아 제지할 것이다.]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피의 쉴드이지 않을 수 없다.

내 입장에서는 저게 썩은 동앗줄이라는 걸 알고 있으나 저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무엇보다 T4 작전의 진면목 또한 아직까지는 모르고 있다. 다음 권에서 제대로 드러난다면 저런 쉴드조차 할 수 없겠지.

[나치 독일군들의 전쟁 준비는 하나하나 따졌을 때 매우 미흡하다. 폴란드를 두고 예행 연습을 한 것과 다름없다.]

[나치 독일군도 나치 독일군이지만 폴란드군은 더 심각했다.]

이외에 객관적인 시선으로 각 국의 군사들을 분석한다거나.

[도대체 전에 발발한 대전쟁이 얼마나 심했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관망만 하고 있는 건가?]

[단치히를 위해 죽을 수 없다! 파리에서 반전 시위를 펼치는 사람들.]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으로 북해를 점령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다.]

[서로 너무나도 대비되는 폴란드와 영·프 연합. 한 쪽은 지옥이고 한 쪽은 평화 그 자체다.]

'가짜 전쟁'에 대해 비판을 하는 등등. 폴란드 침공 하나만으로 많은 이야깃거리가 등장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를 향한 비판은 히틀러 못지 않게 많았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쉬쉬했다지만 당장 미친놈이 옆에서 활보하는데 아무런 제지도 없는 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나름 변명을 하자면 전에 치렀던 전쟁이 워낙 끔찍해서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그걸 알 턱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옥도 그 자체인 폴란드와 달리 가짜 전쟁에서는 병맛 넘치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나치 독일군은 적군의 가정 사정까지 배려하고 있다. 폴란드인들도 차별없이 저승으로 보내고 있다.]

[빨래를 하기 위해 군가를 부르는 부대는 영국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세 나라 합쳐서 악단을 만들어라.]

'지금 여러분이 여기서 이러는 동안 당신의 애인을 누군가 채 갈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 라는 내용이 담긴 삐라를 뿌리기.

우리는 전선으로 빨래를 널러 간다는 내용의 군가 만들기.

다리를 폭파할 테니 모두 물러나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

마지막으로 발전소의 고장이 정치적 이유가 아닌 순전히 기계 고장이였다고 알려주기 등등.

가짜 전쟁에서 실로 병맛 넘치는 에피소드로 가득 채워져서 그럴까.

[지옥과 평화를 대비하기 위해 제논의 무리한 설정인 것 같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도 군인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정녕 저것이 전쟁을 선포한 나라의 모습이란 말인가? 가끔 제논이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안 믿더라. 저것들 전부 다 고증인데 많은 사람들이 무리수라며 혹평했다.

아무래도 지옥도 그 자체인 폴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나 평화로워서 그런 모양이다.

사실 저런 이유로 훗날 영·프 연합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가짜 전쟁에 어울리는 이명처럼 아무것도 안 했다고.

이 업보로 프랑스가 6주 당해버렸다는 건 훗날의 이야기. 일단은 폴란드 침공에 집중할 예정이다.

[제논은 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고증이라니까 그러네. 왜 이리 안 믿는 건지 원.

이러한 비판들은 가뿐히 무시했다. 나는 전생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을 뿐, 지구 작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피와 강철 신간을 발매한 지 며칠이 흘렀을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귀빈과 맞이하게 되었다.

"루미너스 님께서 저를 부르신다고요?"

언제 봐도 황금 밀밭을 연상시키는 황금색 머리카락과 청명한 벽안.

순백의 수녀복을 통해 순수함과 은은한 색기가 드러나는 미녀.

"예. 루미너스 님께서 한 번 방문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시기는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추기경, 케이트가 정말 오랜만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미모는 여느 때와 다를 것없이 아름다웠으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전에는 딱딱함과 고리타분함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꽤나 풀어진 기분이랄까.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에 얼떨떨한 것도 잠시, 가장 시선을 끄는 것부터 언급했다.

"그나저나 이 아이는 누구예요?"

케이트도 케이트지만 그녀의 옆에 착 달라붙은 소녀가 눈길을 끈다.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수수한 미모를 띠고 있어 장래가 심히 기대되는 여자애다.

복장 또한 케이트와 달리 평범한 의복을 입고 있다. 이를 보면 정식적으로 성직자가 된 건 아닌 모양.

"아. 저······"

내 지목에 소녀가 어쩔 줄 몰라하며 케이트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나를 경계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듣자하니 제논 일대기는 어린애도 읽는다던데.

그 사이 케이트는 잔잔한 미소를 짓더니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 후임이 될 아이입니다."

"··· ···"

떡잎부터 남다른 아이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