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529화 (530/763)

모두 알다시피 제논 일대기 등장 이전 이 세상의 책들은 하나 같이 심오한 철학을 품은 것밖에 없었다.

교육을 받은 귀족들마저 난해할 뿐더러 해석은커녕 이해조차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아이작의 말을 빌리지면 영국인 혹은 미국인조차 풀 수 없는 수능 영어 문제.

이렇다 보니 교육을 받더라도 관심이 가는 게 아닌 이상 책과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제논 일대기 유행 전만 해도 헤일로 아카데미 문학생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걸 생각해보자.

설령 재능을 드러낸 사람이 등장해도 이미 기득권을 꽉 쥐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꼽게 볼 수밖에 없다.

책을 발매한 자들은 대부분 귀족이었으며 설령 익명으로 발간하더라도 그들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순간 들키기 마련이니.

게다가 제논 일대기처럼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새싹을 피우기도 전에 짓밟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논은 어려웠던 책을 쉽게 만든 수준이 아니다. 여러 단어를 창조하고 문학을 특정 계층이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제논 일대기는 문학계에 퍼져있던 고정 관념, 그러니까 패러다임을 산산조각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재생되는 가독성과 문장력. 어려운 단어를 뜯어고쳐 쉬운 단어로 바꾸고 마지막으로 재미까지 챙겼다.

작품성과 대중성.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걸 넘어선 수준이다. 여기에는 전생의 영향이 컸다.

아이작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가 쓴 단어 중에 전생의 언어를 갖고 온 게 많았으니까.

사활, 호구, 포석, 묘수 같은 바둑에서 따온 용어를 포함해 다양한 언어를 갖고 왔다.

단, 이 세상에 아예 없던 단어를 창조하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일일이 주석을 다는 건 잊지 않았다.

만약 이러한 설명조차 없었다면 다른 책들처럼 '해석'을 하기 바빴겠지. 주석을 달았던 게 신의 한 수가 된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나 읽는 책이다. 책은 쉬워서는 안 된다.]

[우매한 책을 읽으면 자신 또한 우매하게 변할 것.]

[단순한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 책이다. 읽어도 얻는 게 없다.]

본래 권력을 꽉 잡고 있던 문학계의 유명인들은 저마다 제논 일대기를 비판했다.

안 그래도 자신들과 전혀 다른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거슬렸는데 인기까지 높으니 불안해질 수밖에.

마음 같아서는 아이작을 찾아내고 싶었으나 당시에는 정체를 꽁꽁 숨겼던 터라 힘들었다.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던 탓에 아무런 조치도 못했다. 단지 언론에 비판만 수두룩히 넣었을 뿐.

[책은 문제 풀이를 위해 쓰는 게 아니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다.]

[후손들이 책을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책은 왜 있는 건가? 그냥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책은 쉬워야 된다. 하지만 동시에 심오한 철학을 품고 있어야 된다. 무작정 문장을 어렵게 만드는 것만으로 철학이 깊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미 제논 일대기에 현혹된 사람이 더 많았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도 많아서 비판을 했던 자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물었다.

안 그러면 진짜로 매장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몇몇 평론가가 잘못 말했다가 소리없이 묻혔다.

아이작의 위세가 하늘을 뚫어버리는 지금, 비판을 해봤자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제논 일대기의 성공으로 책의 판매량이 급증하여······]

[철학가들은 이를 '낙수 효과'라 칭하고 있다. 제논 일대기로 책을 접하는 것 자체로······]

[책의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아카데미 문학생들의 상향평준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

[테르스 아카데미는 물론 헤일로 아카데미의 문학생들의 입학생이 대폭 증가해······]

또한 예기치 못한 낙수 효과까지 발생했기에 입을 꾹 다무는 게 최선이었다.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책을 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논 일대기 하나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물론 제논 일대기의 인기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출판사에서 공모전 비슷한 걸 진행하다가 욕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책의 인기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었으며 제논 일대기 완결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피와 강철의 발매도 다를 게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작의 책이라며 너도 나도 할 것없이 구매하기 바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제논이 더 세세하게 경고했다면 피해가 좀 더 적었을 것.]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하지만 제논은 신이 아니다. 또한 루미너스와 모라도 제논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손 놓고 피해를 관망하고 있던 건 맞지 않느냐?]

대공황 이후 아주 미세하게나마 '틈'이 발생했다는 것.

절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아이작의 명성에 자그만한 틈이 생겨버렸다.

아이작도 뒤늦게나마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실제로도 마력 기관 도입 이후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꼬운 시선을 보냈다. 어찌 됐든 간에 대공황으로 피해를 본 건 사실이니까.

모라가 고행을 통해 보여준 사람의 간사함. 그 간사함의 편린이 서서히 드러난 것이다.

물론 흠이 생겼더라도 명성이 명성인만큼 대놓고 들이박는 사람은 없었다.

설령 들이박는다 하더라도 아이작에게 동정의 시선이 갈 뿐더러 그 사람의 외침은 묻힐 터.

그러나 들이박는 게 아닌 그 자그만한 '흠'을 비집고 들어간다면? 이러면 어떻게 될까?

"그 말이 정말 사실입니까? 히틀러가 미치광이로 변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다는 이야기가?"

"감당하실 수 있겠소?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면 용서치 않을 거요!"

문화의 나라, 테르스 왕국.

그 왕국의 수도이자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커쳐스하임의 광장.

문화의 나라인만큼 수많은 예술가들이 오가고, 본인들의 작품을 자랑하는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원래부터 예술가들이 모이고 모인 탓에 시끌벅적한 광장이지만 오늘은 더 시끄러운 것 같은 느낌.

아니. 실제로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어서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웅성거리는 인파들 중앙. 그 중앙에는 간이로 제작된 단상이 하나 설치돼 있었으며 어느 한 남자가 당당히 서 있었으니.

"제 말이 맞습니다! 제논은 그 간악한 문장으로 우리를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속으시면 절대 안 됩니다!"

나이를 먹었는지 얼굴 곳곳에 잔주름이 있었으며 인상 또한 고집스럽고 불퉁해 보이는 남자.

만일 아이작이 단상 위의 남자를 보았다면 미국의 대통령을 떠올렸을 얼굴이다.

짙은 금발이 아닌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라는 게 차이점이지만 퉁명스러운 인상이 너무나도 독특한 중년인.

그 남자는 피와 강철 속에 등장하는 히틀러를 시원하게 폄훼하는 걸 넘어 가루가 되도록 까는 중이다.

"절대 제논을 믿지 마십시오! 그 자는 사악한 흉계로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겁니다!"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남자의 이름은 노스 핀 라무스.

테르스 왕국의 귀족임과 동시에 한때 문학계의 거장이었던 소설 작가였다.

제논 일대기가 한창 유행하고 있던 시절 비판을 가했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됐던 작가 중 한 명.

그리고 이번에는 피와 강철을 가루가 되도록 까면서 어마어마한 관심을 얻는 중이다.

"이보쇼! 당신 제논 일대기 때도 그랬다가 찌그러졌지 않았어? 집에 박혀서 책이나 써, 이 인간아!"

노스의 얼굴을 알아본 한 평민이 삿대질을 하며 거하게 비판했다.

다른 나라였다면 귀족 모독죄로 당장 끌려가도 할 말이 없지만 이곳은 테르스 왕국.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데다가 진짜 끌려가도 평민 의회가 나서서 보호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민의 신랄한 비판이 튀어나오자 너도 나도 할 것없이 비판에 나섰다.

"그래! 요즘 재미있는 책 많이 내던데 갑자기 왜 그래? 노망났어?"

"어디 한 번 들어보죠. 담배도 안 피워, 술도 안 마셔, 심지어 채식주의인 히틀러가 학살을 저지른다고? 고양이 멍멍하고 우는 소리하고 있네."

"하하하하!!"

역시 문화의 왕국이라고 해야 될까. 어느 한 평민이 정말 아름다운 비유를 대자 광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노스는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기보다 까내리기 바쁜 현상에 울컥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원래 이정도는 예상하고 있지 않았나.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설명하면 될 터.

'물론 제대로 된 근거는 없지만······'

솔직히 말해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다. 그냥 아무렇게나 막 지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피와 강철을 읽긴 읽었냐고? 읽긴 있었다. 그러나 짜증만 솟구쳤다.

왜냐하면 자신을 포함한 문학계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킨 제논 일대기의 저자, 아이작의 차기작이었으니까.

제논 일대기가 완결됐을 때만 해도 드디어 저 수준 낮은 작품이 끝나는구나 싶었다.

바뀔대로 바뀐 문학계의 바람? 그 정도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아이작도 없는 마당에 감히 누가 자리에서 버틸까.

그런데 이게 웬 걸. 제논 일대기가 완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와 강철이 등장했다.

심지어 전혀 다른 세상, 그러니까 '판타지'라는 장르를 새로 개척하기까지. 다른 의미로 제논 일대기보다 파급력이 강했다.

한때 명예로운 삶을 살았던 노스로서는 화병이 나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이미 전에 제논 일대기를 비판하다가 몰락했던 상황이라 추하디 추한 말년을 보내던 와중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놈의 명예에 더 큰 흠집을 낼 수만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피와 강철의 나비 효과로 대공황이 터져버렸던 것.

하늘을 찌를듯이 올라가던 아이작의 명성에 유일한 흠이 생겼으며 실제로 피해자까지 등장했다.

노스는 이 부분을 노렸다. 여태까지 그가 언론에 보였던 말들을 종합하여 때를 기다렸다.

어떻게든 그 흠집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몰락시킨 아이작에게 빅엿을 날리기 위해서.

결정적으로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있지 않는가. 그들은 외줄타기만 잘하면 된다고 뒷배를 자처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때다. 그는 뜨거운 분노가 아닌, 차갑게 식어버린 분노를 이용해 있는 힘껏 외쳤다.

"아까도 말씀드렸시피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악당입니다! 그럼 당신들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과정이 정의롭다고 보십니까?"

"그럼 어떻게 정권을 잡아? 히틀러가 불법이라도 저질렀어? 전부 다 합법이잖아."

역으로 당했다. 어느 한 시민의 말마따나 히틀러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았다.

그 합법이 독재로 변하고, 나치 독일이라는 끔찍한 괴물을 탄생시켰다는 게 문제지만.

적어도 이 과정 자체만 보았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불법도 마찬가지다.

이미 썩을대로 썩어버린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이라 불법을 안 저지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히틀러가 독일을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악을 저질렀다며 이해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치 독일이 안 된다는 겁니다! 나라가 썩었다면 차라리 혁명을 일으키지, 한 사람에게 의지하면 왕이 탄생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지. 바이마르 공화국에도 왕정이 있었잖아. 권력을 내려놓을 뿐이지. 혁명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아주 적절한 비유를 대자 시민들이 저마다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다. 노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하물며 히틀러는 본래부터 위험한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종족전쟁 이전의 엘프를 생각하면 됩니다! 엘프는 본인을 제외한 다른 종족을 하등한 종족으로 생각했죠! 가장 높은 곳에 신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없었다면 엘프는 우리를 노예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귀쟁이 놈들이 좀 그렇긴 하지."

"그리 말하니까 설득력이 높네. 그런데 종족전쟁에서 엘프는 자멸하지 않았나?"

"우리 인간도 다를 게 없는데 뭐."

노스는 영리했다. 군중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실과 적절히 대입하며 히틀러를 까내렸으니까.

이렇듯 순탄하게 선동이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어느 한 시민이 손을 번쩍 들며 거세게 반박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국가의 권위는 절대 스스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폭정이라도 스스로를 불가침화하고 신성화한다. 만약 국가의 권력수단이 민중을 폐허로 이끈다면, 저항은 모든 개개인 시민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다! 히틀러가 쓴 책, 나의 투쟁에서 등장한 글귀입니다!"

"윽······"

"당신 말대로 히틀러가 학살을 저지른다면 국민들에게 명령했을 텐데, 아무리 모두가 미쳤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차라리 혁명을 일으키고 말지!"

역시 레볼루숑의 나라답게 마지막은 혁명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노스는 저 말에 대한 그 어떤 반박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 히틀러가 행하고 있는 일도 엄연한 '독재'지만, 적어도 '폭정'까지는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기본 디폴트는 민주주의가 아닌 군주제였으니 더욱 와닿지 않겠지.

'제기랄. 비겁하게 진실로 대응하다니.'

노스도 이에 대한 마땅한 반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팩트는 언제나 날조와 선동에 묻히기 쉬운 법.

이에 그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며 그 시민의 목소리가 묻히게끔 소리쳤다.

"그, 그래서 히틀러가 안 된다는 겁니다! 본인은 운과 언변, 그리고 연설을 통해 군중들의 마음을 붙잡았을 뿐! 속이 텅 비어있는 사람이라는 건 책 곳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말 즉, 저 말은 스스로에게 겨누는 창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요!"

"몇 권에 등장하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그건 여러분이 직접 찾아봐야 합니다! 너무 많아서 지금으로서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무적의 회피기. 모르면 찾아보세요.

노스가 일종의 가불기를 시전하자 시민들도 찝찝한 반응만 보였지 마땅한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원래 같으면 회피기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이작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는, 그를 향한 모욕이 될 수도 있으니.

무엇보다 저 당당한 태도로 하여금 함부로 나서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말들을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만약 제논이 나서서 제지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너무 나서는 노스의 행동에 불안했는지 시민이 물었다.

빈말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노스의 행동 자체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닌 말로 천벌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수준.

주인공(?) 히틀러에 대한 모욕은 피와 강철에 대한 모욕으로 직결된다. 당연히 아이작으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겠지.

"저는 단지 근거를 모으고 모아 의견을 낸 겁니다! 그런데 제논이 나서서 방해한다? 그러면 제 말이 맞는 거겠죠! 아닙니까?"

"음······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러고 보니 진·릴리 사태 때도 그랬잖아."

심지어 명확한 전례, 그것도 세상을 충격과 공포에 떨게 만든 진·릴리 사태도 있었다.

찌라시 아닌 찌라시에 수많은 진·릴리 커플을 공포에 떨게 만든 사건.

차이점이라면 그건 악마 숭배자가 선동한 거고 지금은 평범한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 정도.

이처럼 전례까지 있었기에 아이작은 물론 다른 사람도 제지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노스 씨는 무엇을 말하고자 그 자리에 선겁니까? 정말 히틀러가 학살을 일으킨다면, 제논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피와 강철을 발간하는 겁니까?"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있던 때에 누군가 궁극적인 목표를 거론했다.

히틀러가 개새끼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그걸 보여준다면 여론만 낮아질 텐데 뭐하러?

대체 아이작은 피와 강철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냐. 이게 가장 요점이었다.

그리고 노스는 간절히 바라던 질문이 날아오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했다, 잭스!'

물론 저 말을 한 사람은 노스가 미리 심어놓은 사람이다.

선동 또한 마찬가지. 본래 선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피와 강철'에서 습득했다.

쓰라는 책은 안 쓰고 정말 쓸데없는 것만 배워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스는 전에 없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더니 있는 힘껏 외쳤다.

"그거야 피와 강철의 독자들을 전부 파시즘 혹은 공산주의의 광기에 물들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마키나가 공산주의로 혁명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 또한 비슷한 과정을 밟도록 말이죠!"

"저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학살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선을 상당히 넘어선 발언이 튀어나오자 군중들이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노스는 혼란에 빠지거나 말거나 지체하지 않고 선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제가 사악한 흉계라고 말한 겁니다! 여러분들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히틀러가 조금만 잘못해도 그럴 수 있지~ 라며 넘어가는 걸? 게다가 귀족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수염을 따라하고 있죠. 제논이 점점 우리를 물들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노스의 말마따나 아이작은 독자들의 뒷통수를 시원하게 때리기 위해 그런 식으로 쓰는 중이다.

노스가 이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의미의 통수가 날아온 상황.

하지마 선동을 진행하는 노스조차 모르는 사실들이 있다.

"히틀러는 폭군입니다! 결코 그를 믿으면 안 됩니다!"

히틀러는 폭군을 넘어선 악마였으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악이지만, 제논은 그 악이 그게 상식이라고 여러분들께 주입하는 중입니다!"

단순한 십새끼가 아닌 그레이트 십새끼를 한참 넘어섰다는 것.

십새끼가 미친 짓을 했을 때 적당한 명분이 있다면 어느 정도 참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레이트 십새끼가 미친 짓을 하면 명분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걸 '악'이라 평가한다.

"절대 믿으시면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노스로서는 정말 안타깝게도, 히틀러가 십새끼라고만 선동하는 중이었다.

그레이트 십새끼를 넘어선 그 무언가라는 건 짐작조차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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