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4 작전은 홀로코스트의 전신이 되는 작전이자 우생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신체적 및 정신적 장애인을 모두 '열등종자'로 분류하고 전부 안락사시킨다는 미친 짓거리.
머나먼 고대, 스파르타에서나 볼 법한 이 작전은 어떻게 보면 '품종 개량'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공장 내에서 생성되는 불량품을 골라 폐기하는 것처럼, 사람 또한 그런 식으로 축출하는 식으로.
하지만 히틀러도 이 작전이 쉽게 용납받지 못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 종교 쪽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영향력을 줄여나갔으며 선전도 꾸준히 진행했다. 선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 놈들한테 우리 세금이 들어가는데 살려줄 필요가 있나?]
[당신의 세금이 이 밥벌레 놈들의 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놈들이 뱉는 건 똥오줌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을 할 때 이 자들의 입에는 세금이 들어갑니다.]
딱 저런 내용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더도 말고 딱 저런 내용의 선전을 꾸준히 선포했다.
평상시였다면 정말 미쳤다고 할만한 선전이지만 당시 독일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배. 박살났다가 겨우겨우 되살아난 경제. 히틀러의 등장과 독재. 결정적으로 우생학.
이것들이 합치고 합쳐진데다가 히틀러의 사상이 결합된 나머지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저항하는 자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아까 말했듯이 히틀러 또한 반발, 특히 종교계에서 반발이 일어날 거라 예측했으니.
그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수많은 종교에서 T4 작전을 비판했으며 그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결과적으로 '백장미단'이 탄생하게 되고 시위까지 펼쳐지면서 T4 작전은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다.
'그냥 홀로코스트 안에 T4 작전이 포함된 거지 뭐.'
루즈벨트 대통령이 나치를 싫어하는 걸 넘어 혐오하는 것도 T4 작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부터 미치광이라는 건 알고 있어도 이걸 통해 악마 새끼라는 걸 눈치챘을 터.
더구나 미국은 대공황으로 빌빌거리고 있던 상황이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데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
'편린이 나온 거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장애인, 특히 서구권 쪽의 장애인은 대우가 심히 좋지 않다.
고대에서는 아예 화살받이로 사용되거나 버려질 정도였고, 중세는 신의 저주를 받았다며 멸시했다.
근대에도 마찬가지. 근대는 산업혁명으로 노동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던 시대라 장애인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정도다.
그 결과로 복지시설이 탄생했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지만. 아무튼 지구에서의 장애인 대우는 이렇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장애인의 대우는 어떻게 될까?
정말 흥미로운 것이, 장애인을 향한 복지가 상당히 잘 돼 있는 편이며 인식 또한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아니. 그 전에 장애인으로 분류하는 것조차 상당히 골치아픈 수준이다.
'당장 드워프만 해도 지구 기준으로 왜소증이니까.'
드워프는 모두 알다시피 짜리몽땅한 키가 특징이다. 지구였다면 장애인 취급 받았겠지.
이외에 온몸에 털이 나는 수인과 머리에 뿔까지 나다 못해 악마로 변하는 마족 등등.
종족마다 '개성'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신체적 특징으로 장애인을 분류하기 곤란하다.
님 좀 독특하게 생겼네요. 대체 무슨 종족임?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라며 그럭저럭 넘어가는 수준이랄까.
이처럼 정신만 멀쩡하다면 땡이다. 차라리 못 생겼다고 하지(...) 장애인이라 놀리지는 않는다.
'팔다리가 없어도 대부분 몬스터한테 당했구나, 라며 넘어가니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개의치 않는다. 신체적 결손이 발생한 사람들은 대부분 몬스터에게 당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죽지 않으면 됐지라며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이 놀리긴 하지만 대게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
그만큼 신체적 결함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향한 시선은 나쁘지 않다.
'정신 질환도 비슷하고.'
PTSD로 고생하는 군인이나 모험가는 물론, 악령에게 당해 미쳐버린 사람들이 존재하는 등.
특히 정신질환자들은 '영혼'이 다쳤다며 종교에서 어떻게든 케어하는 편이다.
상처입은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을 따르는 것.
지구와 달리 신의 존재가 확실한 덕분에 종교인들은 숭고한 마음으로 정신질환자를 보호하는 중이다.
정리해서 T4 작전은 이 세상 기준으로 경악하다 못해 입이 떡 벌어질만한 프로그램인 셈.
물론 T4 작전은 홀로코스트에 비해 평범한 커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트릭은 넣어야지.'
하지만 T4 작전의 민낯을 곧이곧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서술 트릭을 넣었을 뿐.
이 세상 사람들 기준에서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임과 동시에 구제해야 할 영혼이다.
그래서 히틀러가 T4 작전을 발표했을 때는 자신들처럼 장애인을 보호하는구나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의문이 들겠지. 이 세상의 인식이 그런데 굳이 트릭까지 넣으며 지뢰를 심을 필요가 있나?
'이걸 적는 사람이 나라서 그렇지.'
있다. 여태까지 데인 적이 많아 숨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장애인 말살을 따라 하려는 사람은 없겠으나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차마 대놓고 묘사하기가 곤란하다. 대신 폴란드 침공 이후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를 통해 민낯을 제대로 밝힐 예정이다.
'슬슬 히틀러가 악당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돼.'
수정의 밤 사건으로 히틀러, 더 나아가 나치 독일에 대한 여론이 낮아지는 중이다.
하물며 난징 대학살로 전쟁의 비극 또한 엿보여준 상황. 사람들은 마음은 이렇다.
히틀러라면 전쟁을 벌여도 '신사적으로' 할 것이다. 적어도 일본 제국처럼 야만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가뿐히 씹어주면서 폴란드 침공 이후 '인종청소'를 할 계획이다. 이건 내가 악마인 게 아니라 역사가 그렇다.
동시에 T4 작전의 민낯까지 제대로 밝힌다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깨닫겠지.
아. 히틀러는 선한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이구나. 이 사람은 악마의 현신이구나.
TMI를 주자면 폴란드 침공 당시 민간인 사상자는 무려 20만 명이다.
전쟁은 원래부터 끔찍한 피해를 낳는다지만 이건 엄연히 학살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랬고.
'난징 대학살 하나로 일본이 개새끼로 변했지.'
지금 이 세상은 중세에서 막 근대로 발전하는 시대. 그리고 전쟁 방식은 중세에 머물러 있다.
마법이 존재하더라도 마법은 일종의 '포격' 역할을 대신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백병전이 주를 이루며 전쟁의 흐름도 중세와 아주 흡사하다.
견고한 '성'을 두고 공성과 수성이 오가는 전쟁. 정해진 지역에서 화려하고 명예로운 전투가 이루어지는 전쟁.
여기에 '민간인'이 휘말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살을 하는 순간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끝까지 저항해버리니 가만히 두는 게 상식이다.
'몽골은 그딴 거 없었지만.'
그 악랄한 몽골조차 점령한 곳에 '의사'는 물어봤다. 순순히 굴종하면 넘어갔으나 거절하면 지옥도가 펼쳐졌지.
아무튼 민간인이고 나발이고 모든 지역이 전쟁터가 된다는 건 이 세상 기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T4 작전도 T4 작전이지만 폴란드 침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깨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칼즈에게 보낼 스케치를 바라봤다. 일주일 동안 3권을 뽑아내면서 칼즈는 죽여줘······ 라며 흐느적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묵묵히 그림을 뽑는 걸 보면 내가 삽화가 하나는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고생했다는 보상으로 돈을 2배로 주기까지. 그러더니 다시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편지가 돌아오더라.
가끔 신념이 깊은 사람을 섭외하지 못할 때 돈이 부족하지 않나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비행기는 어떤 형태로 등장할까? 이건 석탄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을 텐데.'
스케치에는 폴란드 침공 때 등장할 '비행기'가 그려져 있다. 정확히는 폭격기다.
괴링이 마약에 절여지기 전, 상대적으로 멀쩡하던 시기에 독일 공군은 매우 강력했다.
폴란드 공군도 독일군 못지 않게 강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일럿에 한해서지, 전투기와 폭격기의 수준은 처참한 수준.
'비행기라는 개념을 잘 이해시킬지 모르겠······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서 지구 기준의 상식을 바라서는 안 된다.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도통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전차는 아예 내가 보여주기도 전에 에인스가 먼저 만들고 있지 않았나.
물론 기관의 한계로 비행기는 만들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비슷한 걸 탄생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해군과 유보트.'
이어서 다른 스케치를 꺼냈다. 다른 병종과 달리 해군은 유보트를 제외하면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다보니 그림으로 보여줄 게 너무 많았다.
강철로 이루어진 배가 바다 위에 둥둥 뜨고, 심지어 바다 아래로 잠수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알면 까무러치겠지.
여러모로 고려할 게 많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작업량에 시달릴 칼즈에게 미리 애도하겠다.
"··· ···"
나는 스케치를 서랍 안에 넣으려다가 멈칫거렸다. 서랍 안에는 자그만한 상자 하나가 보관돼 있다.
마리에게 들키지 않도록 아델리아에게 따로 요청했던 선물. 이것만큼은 마리에게 들키면 안 된다.
"후우······ 긴장되네."
"뭐가 긴장된다는 거야?"
"!!!"
눈을 감으며 가슴을 두드리고 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에 화들짝 놀라 펄떡 뛸 수밖에 없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마, 마리? 네가 왜 여기 있어? 수업은?"
마리였다. 그녀는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중하느라 마리가 오는 걸 몰랐던 것일까. 아니, 오늘은 분명 수업이 있는 날이라고 들었는데.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내 손은 조심스레 서랍을 밀어넣는 중이었다.
다행히 마리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생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휴강이지롱~ 교수님께서 출장 때문에 조수가 오늘은 그냥 가라고 했어."
"그냥 가라고 했다고? 공지조차 안 하셨던 거야?"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데? 그런데 뭐 때문에 긴장한 거야?"
마리는 그리 말하면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평소보다 더 뛰기 시작한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이상한 행동을 했다가는 마리에게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녀는 눈치가 매우 빠르다.
내가 거짓말을 더럽게 못하는 것도 있으나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으면 안 된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이벤트인데 망쳐버릴 수는 없으니까.
"읏차!"
"어? 응?"
그래서 마리를 낚아채듯이 번쩍 안아들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가, 갑자기 뭐하는 거야?"
"그냥 이러고 싶었어."
"흠. 이상한데······"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의심하는 마리. 역시 눈치가 빠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이상하게 반응했겠지.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숨기는 건 아니지?"
"숨긴다면? 어떻게 할 거야?"
"음······"
내가 뻔뻔하게 되묻자 예상치 못했는지 마리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뒤이어 그녀는 나와 똑바로 마주하더니 빙긋 웃으며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대로 침대로 가면 용서해줄게. 아리엘도 지금은 잘 시간이니까. 괜찮지?"
"어련하시겠습니까."
다행히 어찌 저찌 입 막음은 성공한 것 같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겨우겨우 벗어나고 대략 이틀이 흐르고······
[히틀러를 믿지 마라!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다!]
[우리는 사악한 제논의 흉계에 속고 있다! 그가 쓰는 글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전부 제논의 화려한 글에 속고 있을 뿐이다. 절대 맹신하지 마라.]
내 사악한 흉계(?)를 눈치 챈 사람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