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측했던대로 마력 기관의 도입으로 러다이트 운동의 불씨가 번졌으나 그것조차 얼마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동자가 악마 숭배자길래 응? 하면서 의문을 가졌다. 여태까지 잠잠하던 놈들이 왜 튀어나오나 싶어서.
하지만 실제로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라 내 예상이 빗나갔구나 싶었다. 악마 숭배자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직조공들의 허심탄회한 자백. 마력 기관은 악마 숭배자가 아닌 자신들이 망가뜨렸다고 밝혀······]
[이런 일은 악마 숭배자들만이 할 거라는 믿음 하에 저지른 것. 그러나 돌아온 대가는 죽음.]
[미네르바 제국은 일부를 제외한 직조공들을 모두 해산시켰다. 다행히 마력 기관의 수리는 진행되었으며······]
이것조차 아니었다. 직조공들이 악마 숭배자에게 뒤집어 씌웠던 거더라.
본래 평민이 국가 소유 기관에 손해를 입힌다면 미친 짓이라 하겠지만 악마 숭배자는 공공의 적이자 악으로 간주되는 단체.
그들이 행한 일이라면 혀만 쯧쯧찰 뿐이지 직조공들에게 가는 피해는 거의 없다. 아마 직조공들도 그리 생각했겠지.
하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참혹했다. 직조공들의 증언 이후 불과 사흘만에 최고 장인의 목이 매달린 것이다.
메세지는 없었으나 직조공들은 스스로 본인들의 죄를 고백했다. 아무래도 피부로 와닿았겠지.
악마 숭배자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웠다가 본인들의 목마저 매달린 판국이라고.
'과정만 보면 러다이트 운동이랑 유사하긴 한데······'
원래 러다이트 운동도 가상의 인물을 최고 지도자 삼아 활동했다.
만약 누가 이 기계를 망가뜨렸냐고 물으면 가상의 인물을 언급했다.
피해를 입은 공장주들은 없는 사람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짜증만 낼 수밖에 없었다.
운동이 격화됐을 때는 노동자들이 공장주를 협박해서 돈을 뜯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운동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머지않아 사장됐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천천히.
[마력 기관으로 가동되는 공장의 생산량은 가히 압도적이다. 품질은 물론 그 어떤 문제점도 없다.]
[공장 가동 사흘만에 생산된 천의 양은 대공황 이전보다는 아니어도 엄청난 수준. 심지어 마력 기관 한 대가 생산하는 양이다.]
[제논의 말이 옳았다. 마력 기관과 공장이야말로 대공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직조공의 목이 매달리면서 엄금에 처해졌던 공장의 가동도 속속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로 삼았던 시범 가동의 효과가 누출된 것이다.
미네르바 제국은 시범 운용이라며, 아직 고려할 게 많다며 신중론을 펼쳤으나 퍼지고 퍼진 소문은 막기가 힘들다.
더구나 마력 기관의 효능은 눈에 와닿을 정도로 뛰어났다. 따라서 너도 나도 할 것없이 마력 기관을 향한 기대가 주를 이루었다.
세계 최초로 공장을 가동시켰던 미네르바 제국의 국채가 펄펄 날아오르기 시작한 건 덤.
대공황으로 주식을 비롯한 각종 국채가 박살났던 상황이었는데 마력 기관 한 방으로 역전됐다.
물론 아직까지는 대공황이 해결된 게 아니었지만, 마력 기관의 효능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작."
"응?"
"키스해도 될까?"
"··· ···"
나를 향한 리나의 호감도가 쭉쭉 오르는 건 덤이고.
러다이트 운동이 터지자마자 또 며칠동안 잠을 못 잤던 그녀다. 나는 그런 리나에게 애도를 해줬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고, 러다이트 운동은 악마 숭배자의 활약 아닌 활약으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낳았다.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 공급량과 더불어 나의 예언 아닌 예언이 합쳐지며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돈을 못 쓰는 바람에 동맥경화마냥 막혔지만 이제는 아니다. '국채'에 한해서 너도 나도 할 것없이 투자를 시작했으니까.
제국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이다 못해 활기가 점차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리나가 저런 반응을 짓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음······ 리나?"
"왜? 뭐 부탁할 거라도 있어?"
"······아냐."
나는 맞은편에 앉아 싱글벙글 웃는 그녀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나는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 바빴다. 며칠 전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하기야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턱턱 막혔던 경제의 활로가 뻥 뚫렸으니 기뻐할만도 하지. 나 같아도 저럴 거다.
'그 모든 원인이 나라는 거지만.'
벌써부터 그 사실을 깜빡했는지 리나를 나를 향해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기 바빴다.
마치 조련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비유가 좀 그렇긴 해도 이게 조련이 아니면 뭐겠나.
내가 대충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리나 입장에서는 황금덩어리나 마찬가지일 터. 아마 지금도 속으로 기대하고 있겠지.
'그나저나 사칭했다는 이유만으로 악마 숭배자가 직접 나설 정도인가?'
나는 어색함을 풀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셨다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은 직조공들의 자업자득이나 다름없지만, 악마 숭배자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사고방식 자체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 놈들이니 그렇다 쳐도 너무 뜬금없다.
여태까지 쥐 죽은 듯이 살던 놈들이 왜 직조공들의 사칭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심지어 직조공의 시체는 아침에 발견됐다. 쓸데없이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확실한 '메세지'를 남긴 것도 아니다. 이것 때문에 언론에서 무슨 뜻인지 갑론을박을 나누고 있었다.
"리나."
"응? 왜?"
내 부름에 리나가 화사한 미소를 띤 채 답한다.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라 진심이 우러러 나오는 미소.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라진 그녀에 떨떠름해졌지만, 우선 갖고 있는 의문부터 해소하는 게 우선이다.
"악마 숭배자가 어떤 메세지를 전달했는지 파악했어?"
"아니. 교단과 따로 연락까지 했는데 드러난 건 하나도 없었어. 말 그대로 경고성이긴 한데······"
"무엇에 대한 경고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내 가정에 리나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사실 저게 문제다.
악마 숭배자는 무엇 때문에 경고를 한 것일까.
단순히 사칭했다는 이유로? 현재 공장은 미네르바 제국의 소유 즉, 국가 기관이다.
대놓고 국가와 싸우자는 뜻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데 악마 숭배자 입장에서는 손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마력 기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영 이상하다. 악마 숭배자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마력 기관을 보호하겠나.
오히려 그들로서는 마력 기관을 파괴해야함이 당위성에 걸맞다. 대공황이 어떻게든 이어져야 회복하기 편할 테니까.
세상을 파괴시키기 위해 온갖 공작이란 공작은 다 펼쳤던 집단인데 이제 와서 그러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루미너스에게 물어보기도 그렇고.'
악마 숭배자는 어둠 밑에 숨어있는 놈들이다. 신들조차 그들의 뒤를 추적하기는 어렵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주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걸 보면 필시 그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때문에 몇몇 사람은 악마 숭배자가 아닌, 제 3자가 저지른 일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래. 하지만 악마 숭배자가 저지른 짓은 맞아. 교단에서 시신을 조사한 결과 사특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했거든."
"흠."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괘씸죄로 직조공의 목을 매달았다고 봐야하는 건가.
당분간 신들에게 가지 않을 거라 스스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그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한 번 나누고 싶지만 너무 위험하고.
'악마 숭배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굳이 꼽자면 클라크 할아버지와 케이트. 이 두 명이 있다.
클라크 할아버지는 악마의 진정한 기원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나 너무 단편적이라 힘들다.
케이트는 뭐······ 악마 숭배자들의 뚝배기를 잘 깨는 사람이라 애매하고. 마땅히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다.
"아이작?"
"응?"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리나가 사근사근거리는 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평소 황녀답게 사무적이고 딱딱한 어조를 사용하던 그녀였기에 위화감마저 드는 말투.
뭐지 싶어서 앞을 쳐다보자마자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왜?"
리나가 실로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파랗게 빛나는 두 눈에 열망이 가득하다.
열망과는 별개로 부드럽게 풀려있는 미소가 포인트. 처음 보는 표정이라 뭐라고 딱 집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그녀가 나에게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
짤짤짤 털면 온갖 보물들이 쏟아져나오는 황금 고블린처럼, 이번에도 내가 지식을 토해내기를 원하고 있다.
'지식도 지식인데······'
사실 지식 자체는 알려줄 수 있다. 그동안 마음 고생한 게 있었으니 미안해서라도 줄 예정이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진득하게 담긴 '열망'이 문제다. 전에 볼 수 없던 감정.
더 큰 문제는 저 부드러운 미소로 하여금 호감마저 보여주고 있다는 것.
나는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긴장했다. 분명 예상과 한참 엇나가는 질문일 터.
"혹시 마리와의 결혼식은 언제 잡을 거야?"
"그건······ 응? 뭐?"
"마리와 결혼식은 언제 할 거냐고 물었어."
그리고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조금 전의 주제와 한참 엇나간 질문이 날아왔으니.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뒤를 돌아봤다.
뒤에서는 마리와 아리엘이 서로 정답게 놀고 있다. 놀고 있다기보다는 마리가 아리엘을 교육하는 중이다.
"······그건 왜?"
난데없이 결혼 이야기가 나와 당황스럽다. 내가 그리 물으니 리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야만 내가 너와 이어지는 날이 빠를 테니까. 마리와 결혼하는 순간부터 미네르바 제국에 소속되겠지만 황실과는 별개잖아? 이번 일로 다짐할 수 있었어."
뒤이어 그녀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나에게 천명했다.
"나는 절대 너를 놓치기 싫다는 걸."
가식 같은 건 전부 벗어던진, 진실된 고백. 평소와 비슷하면서 다른 단호한 의지.
황녀로서의 기백을 풍기면서 리나만의 매력 또한 듬뿍 묻어나왔다.
다른 여인들에게 받았던 고백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에 나는 리나만의 독특한 고백에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되물었다.
"······그거 고백이야?"
"고백이라면 고백이겠지. 조금 서툴러도 이해해줘. 나는 남들에게 고백을 받는 위치라."
리나는 그리 말하며 우아하게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황금빛 머리카락이 화사하게 빛났다.
나는 황녀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약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리나가 미간을 아주 약간 좁히며 불평했다.
"왜 웃니? 나도 나름 용기내서 말한 건데."
"그게 아니라 귀여워서 그래. 너 지금 귀 빨개진 거 알지?"
"뭐, 뭐?"
내 지적에 당황하며 자신의 귀를 만지는 그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었던 표정이 와르르 무너진다.
"장난인데."
"··· ···"
곧바로 장난이라 고백하자 리나가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흘렸다.
그런 내 반응에 그녀도 이내 피식거렸다. 동시에 새하얀 뺨이 미묘하게 붉어진다.
"······그래서 받아줄 거야?"
이제는 수줍음을 담으며 묻는다. 본인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차를 마시기까지.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간파한 지 오래다. 방금 전의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저것이 황녀가 아닌 리나만의 매력이겠지.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며 좀 더 장난을 쳤다.
"거절한다면?"
"그,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네 선택이니까."
"말이 떨리는데?"
"이건······ 에이씨. 장난치지 마! 난 진지하다고!"
결국 리나가 먼저 백기를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뒤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가장 먼저 마리가 반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델리아와 아리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나는 마리의 질문에 고개를 돌리며 별일 아니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리나가 나한테······"
"야! 야! 그만! 말하지 마! 말하면 너 죽일 거야! 죽일 거라고!"
리나는 정말 부끄러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입까지 틀어막았다.
황녀로서의 품위는 갖다 버린 지 오래. 지금은 흑역사를 감추기 위해 노력하는 한 명의 여인만이 남았다.
"엄마. 엄마. 귀 좀 빌려줘."
"응?"
마리는 우리의 행동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치 빠른 아리엘이 그녀의 귀에다가 속삭였다.
뒤이어 모든 진실을 전달 받은 마리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내 장난에 동참했다.
"리나~? 이 앙큼한 고양이년. 이제는 지켜보는 게 힘들어서 참석까지 하려고? 드디어 용기를 냈구나!"
"넌 닥쳐! 참석은 또 무슨 소리야!"
"아리엘? 저기 예쁜 언니가 모르는 척하는 거 맞지?"
"뭔지 몰라도 기대하고 있는 거 같은뎅?"
이어지는 모녀의 연타에.
"······너희들 진짜 싫어!!"
리나가 아이처럼 생떼를 부렸다.
이처럼 단란하기 그지 없는 하루가 흘러갔다.
공장의 가동 또한 순탄하게 흘렀으며 공급 또한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디 기계 파괴 운동으로 확산됐을 러다이트 운동은.
[점점 강해지는 마력 기관의 찬양. 기계야말로 진정한 발전을 이룩할 힘이다!]
[기계를 다루는 기관이 생겨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과연 기계는 인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니면 피와 강철처럼 따라갈 것인가?]
[기계 혁명이 발발한 피와 강철의 구독자 또한 대폭 늘어나······]
기계 부흥 운동으로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