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라는 직업은 시대, 나라, 그리고 세계관이 달라져도 본질은 똑같다.
튼튼한 육체를 만들고, 그 육체를 기반으로 나라의 검과 방패가 되는 것.
이른바 '무력'이 제일 중요한 직종이어서 훈련은 필수다.
특히 이 세상은 총기와 같은 무기가 발달되지 않고 냉병기를 사용한다. 전생의 군인보다 기본적인 무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각자에게 알맞는 무기술은 기본으로 배우고, 맨몸으로 싸워야 할 때를 대비하여 다양한 격투술을 연마한다.
여기에 근무 환경에 맞는 훈련까지. 그렇다면 북부 지역을 담당하는 네이비 기사단은 무슨 훈련을 할까.
"마나를 끊임없이 순환시켜라! 몸에서 김이 안 나는 놈은 오늘 점심 먹을 생각을 하지 마라!"
"하나! 둘! 셋! 넷!"
웃통을 전부 다 까고 연무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팔다리에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쇳덩어리를 단 채로.
다시 말하지만 모래 주머니가 아니라 쇳덩어리다. 아카데미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저건 겉보기에도 무거워 보였다.
게다가 속옷만 입고 있어서 그들의 탄탄한 몸이 훤히 보였다. 남녀 가리지 않고 바위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는 중이다.
아델리아도 말라보여도 오밀조밀한 근육이 박혀있는데 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하다.
더 대단한 건 이 혹독한 추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는 것. 아버지처럼 마나를 가속시켜 열을 내는 걸로 보였다.
'근데 저건 훈련도 아닌 뜀걸음이잖아.'
역시 네이비 기사단. 기본적인 체력 훈련마저 범상치 않았다.
야만적인 것도 아닌 게, 옆에서 아버지가 설명해주시길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는 단련이라고.
근무 환경이 워낙 가혹하다 보니 최악의 상황을 자주 직면한다고 말씀하셨다.
최악의 상황을 자주 직면한다니 뭔가 이상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거겠지. 역시 기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훈련은 보통 어떤 식으로 하나요? 저건 아무리 봐도 체력 단련처럼 보여서요."
"글쎄다. 나는 전출 가자마자 실전에 투입되서 잘 모르겠구나. 가끔 여유가 있을 때마다 몇몇 노하우를 알려주긴 했다만 훈련과 거리가 멀었고. 마티우스 후작이 더 잘 알겠지."
이후로 아버지는 아무리 실제와 비슷한 훈련을 해봤자 실전만도 못하다고 덧붙이셨다.
북부 지역은 야만수인도 야만수인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미개척지역.
검은 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적어도 이 시점에는 '똥땅'이다.
그런데 시시때때로 야만수인들이 약탈을 하러 침범하고, 더 나아가 혹독한 환경에 적응한 몬스터들이 즐비하고 있다.
이 두 존재 중 하나라도 세력을 키웠다간 미네르바 제국도 큰 타격을 입게 되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야만수인과 몬스터 둘 중 하나라도 무시하는 순간 우르르 내려올 테니까.
"아버지 현역 시절에는 야만수인의 세력이 강했잖아요. 그때는 몬스터가 없었어요?"
"확답을 주기 어렵구나. 몬스터는 웬만해서 자기 영역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만약 북부를 본격적으로 개척한다면 야만수인과 더불어 몬스터까지 상대해야겠지.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만."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와 비슷한 상황인 건가. 석유까지 있는 걸 보면 정말 흡사하다.
하지만 서부개척시대가 낭만적으로 묘사되긴 해도 약육강식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버티지 못하면 아주 비참하게 부러지던 시대. 일반인, 보안관, 범죄자 할 것 없이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총을 필수로 들고 다녀야 했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원주민과 갈등을 빚기까지. 이것만 본다면 딱 서부개척시대와 유사하다.
그런데 북부 지역은 그것보다 더 심하다. 야만수인과 몬스터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되는데 환경까지 미쳤다.
미국의 서부는 그나마 따뜻한 계절이 있기라도 하지 이곳은 1년 내내 춥다.
일반인은 물론이요, 기사들조차 버티기 어려운 곳인데 개척을 시도할 수 있을지나 미지수다.
"만약 시간이 흘러 안정된다면 네이비 기사단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똑같겠지. 네이비 기사단만큼 이 환경에 적응한 무력은 또 없을 테니까. 야만수인은 몰라도 몬스터만큼은 해결하기 힘들 게다."
결론적으로 북부 지역 개척은 오래 걸릴 거라는 뜻이다.
개개인으로 따지면 최강인 네이비 기사단조차 힘들어 하는 지역이니 당연하겠지.
그래도 아버지의 현역 시절보다는 보급과 인력 충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점점 나아질 것이다.
"면회자는 이곳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기사의 안내에 따라 면회를 위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건물 양식 자체는 목재였지만 전생에 겪은 군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는 부모님이 치킨이랑 피자도 사주셨는데. 약간 울적한 기분이었지만 서둘러 털어냈다.
"안은 많이 따뜻하네요?"
안은 더욱 독특했다. 면회장이라기 보다는 분위기가 주점과 흡사했으니.
또한 아카데미 기숙사처럼 온도 조절 장치라도 있는지 안은 따스하기 그지 없다.
오죽하면 후끈후끈한 열기 때문에 방한복을 벗어도 될 정도다.
"그러게 말이다. 신축을 했다더니 많이 바뀌었구나. 나 때는 이런 것도 없이 천막만 있었는데 말이지."
"······너무 심하지 않아요?"
"보급이 오는 족족 야만수인 놈들한테 다 털렸거든. 게다가 당시는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넣는 곳이어서."
아버지는 그리 설명하시며 면회장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셨다. 감회가 새롭다는 기색이 역력하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버지가 '나 때는~'이라 말하시니 어감 자체가 다르다.
부조리를 비롯한 가혹 행위를 겪은 게 아닌 그야말로 사지를 오갔던 지역이었으니까.
"신축을 하시고 한 번도 안 오신 거예요?"
"안 그래도 고생하는 후배들인데 괜히 신경 쓸 것만 늘어나잖느냐. 뭐,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하면 기꺼이 가르쳐 주겠다만. 온 김에 후배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야지."
지옥 같은 생활을 한 북부지만 정은 남아있던 것일까. 아버지는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듯이 어깨를 이리저리 푸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약하게 웃었다. 기사단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겠지.
나 또한 고생하는 기사단에게 선물을 줄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인본이 있다.
단, '특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선사할 예정이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겠지만 데이브와 니콜이 오면 말해줄 생각이다.
"자. 여기 메뉴판 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도중에 어느 한 털복숭이 중년인이 메뉴판을 내놓았다.
얼굴을 뒤덮는 수염과 걸걸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으나 단연코 돋보이는 건 눈이다.
눈을 뜬 건지 만 건지 모를 정도로 작은 눈. 포켓몬스터의 웅이를 보는 것 같다. 피부도 까무잡잡한 것이 닮기도 했고.
대신 덩치는 전혀 웅이를 닮지 않았다. 아버지와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으며 전완근이 무지막지하게 컸다.
나는 주인마저 범상치 않다며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그가 건네준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아하니 단순 면회장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음식점인 듯했다.
메뉴도 메뉴지만 술까지 있다. 하지만 술은 비번일 때만 구입이 가능하다고 적혀있다.
전생의 군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신기할 뿐이지 놀랍지는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메뉴판을 건넨 주인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 왜 그런가 하니······
"뭐야. 자네가 왜 여기 있어? 설마 내가 가고 나서도 계속 근무한 거야?"
"그건 아니고 따로 계약한 거야. 은퇴한 지는 좀 됐어."
"허, 참. 재능을 잘 살렸다고 해야할지. 어쨌거나 네 요리 실력이면 믿고 먹어도 되겠지."
"하하하! 그거 참 고맙군. 그럼 애들 올 때 주문해."
주인장은 그 말만 남기며 뒤뚱뒤뚱 돌아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걸음걸이.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이 쏠린 것 같은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이에 발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중년인의 오른쪽 다리가 의족이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했는데 한 쪽 다리가 저래서였구나.
나는 여러 사정이 담긴 것 같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버지께 슬쩍 질문했다.
"옛 동료셨어요?"
"그래. 언제나 맛있는 밥을 해주던 놈이었지."
정말로 웅이였어? 그 생각을 하려던 찰나에 아버지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를 살리겠다고 자기 다리 한 쪽을 자른 놈이기도 하고."
"··· ···"
"근황을 알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잘 살고 있는 모양이구나. 저 놈 성격상 데이브나 니콜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겠지."
여러 복잡한 감정이 담긴 대답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늘 설명하지만 과거의 북부는 지옥을 형상화한 지역. 아버지는 그런 곳에서 몇십 년을 견뎌내셨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견디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터. 저 주방장처럼 한 쪽 다리를 잃은 건 양반이다.
덜컥-
"어디 있······ 아! 저기 있다. 아버지! 아이작!"
얼마 지나지 않아 숙연해진 분위기를 깨뜨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아주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다.
이에 나와 아버지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무지 내라 그런 것인지 제복이 아닌, 흑색 갑옷을 착용한 데이브와 니콜이 반가운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제복을 입었을 때도 멋있었는데 갑옷을 입은 모습도 정말 멋지다.
"안 추웠어? 아버지는 몰라도 아이작 너는 추웠을 텐데."
"아버지가 품위 따위는 챙기지 말고 다 입으라고 하셨어. 진짜 춥긴 춥더라."
"많이 춥지. 방심하는 순간 동상이 걸리는 곳인데.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감각은 있어?"
"그 정도로 오래 밖에 있던 건 아니야."
오자마자 동생 걱정 한가득인 형과 누나. 그런데 추위가 미쳤다보니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실제로 이런 추위에 조금만 있어도 동상이 걸리고, 더 나아가 동사한다.
바깥에서 웃통을 다 까고 훈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살기 위해 단련하는 것이다.
내부의 마나를 가속시키지 않는다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잘라야 될 수도 있으니까.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똥군기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실용적인 부분만 추구하는 편이다.
"밥은 먹었어?"
"아니. 너랑 아버지가 면회를 온다길래 안 먹고 있었지."
면회를 오면 맛있는 걸 먹는다. 이건 전생이든 판타지 세계든 다를 게 없구나.
나는 오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와 아버지는 오기 직전에 식사를 하고 와서 큰 건 필요없었다.
"돼지통구이로 시킬까? 어차피 나는 얼마 안 먹거든."
"그러자. 두 개로 시켜야겠네."
"두 개씩이나? 먹을 수 있어?"
"안 먹으면 힘들어서 죽어. 평소에 마나를 너무 많이 쓰거든."
판타지 세상에도 적용되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인 것인가.
전에 언급했듯이 마나를 얻기 위해서 호흡법 같은 방법이 있으나 가장 쉬운 건 바로 식사다.
전생의 운동 선수조차 10000 칼로리 이상 먹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는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다.
이건 나도 다를 게 없다. 훈련이나 여인들과 잠자리를 가지면서 체력과 신성력을 소비했다면 다음 날 아침에 더 많이 먹어야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간 웅이······ 아니, 아버지의 동료분에게 주문을 시켰다.
"돼지통구이 2마리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는 주인 아저씨.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언제 봐도 정겨운 형, 데이브와 누나, 니콜. 최근들어 야만수인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던데 잘 생활하고 있을까.
전생에서 북한이 도발했을 때의 긴장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사회에서는 또? 라며 넘어가도 막상 군대에 있다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으니. 그들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어찐 일로 면회를 신청한 거야? 그동안 면회를 온 적이 없었잖아."
그때 데이브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를 닮은 얼굴에 의문이 자리잡았다.
이건 어머니를 똑 빼닮은 니콜도 똑같다. 의문에 찬 황금빛 눈동자들 속에 내 얼굴이 비추어졌다.
여인들은 몰라도 가족들에게는 차마 고행을 겪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괜스레 걱정만 끼치는 거니까.
하지만 그들이 걱정되는 건 거짓이 아닌 진심이다. 이에 나는 어색한 듯, 뒷목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그냥 걱정되서? 알다시피 시국이 시국이잖아. 동부에서도 스타비르크가 독립을 한다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운 상황이고. 북부도 위험하지 않나 싶어서 그래."
"음······ 하긴 그렇겠다. 그래도 걱정 마. 야만수인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은지 조용한데다가 보급도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네이비 기사단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음식이야."
"우리 아이작 기특하네. 형이랑 누나 걱정할 줄도 알고."
데이브는 내 걱정을 떨쳐주기 위해 자세히 설명했으며 니콜은 따스한 표정을 지어줬다.
다행히 나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물론 네이비 기사단은 보급 1순위에 올라가 있을 테니 부족하지는 않을 터. 그래도 걱정되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누나. 누나도 알잖아. 내 실제 나이."
"그래봤자 누나 눈에는 막둥이인 걸? 옛날에는 조숙하다고 생각했는데 크고 나니 뭔가 어리게 느껴져. 오빠도 그리 생각하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봤는데 그럴 수밖에 없지. 자기가 알아서 식사를 야무지게 했을 때도 기억나.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신기해 했는지."
"··· ···"
나도 그때는 기억하고 있다. 육아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이 밥을 안 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전생을 기억하는 몸. 가리는 거 없이 꼭꼭 씹어먹은 데다가 나 혼자서 척척 해냈다.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정말 놀라워하셨지. 듣자하니 데이브와 니콜은 이곳 저곳 싸돌아다니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어쨌거나 힘든 일은 없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매일매일 힘들어서 뭐가 힘든지 잘 모르겠다는 것 빼고는 괜찮아."
"오빠. 꼭 그렇게 말해야 해?"
"왜?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잖아. 안 그래도 아이작이 온다는 말에 선임들을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조금 힘들긴 했지."
둘의 대화를 보아하건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선임들에게 시달렸던 것 같다.
네이비 기사단에서 내 이름값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건 네이비 기사단에만 한정돼 있는 게 아니라 군대 자체가 그렇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게 있어야지. 내 책이 바로 그 수단 중 하나다.
애당초 보급품으로 제논 일대기를 지급한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전에 둘이 휴가를 나오려고 하자 몇몇 선임이 사인을 대신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책은 안 갖고 왔네? 다 거부한 거야?"
"거부할 수밖에 없지. 마티우스 후작님께서 그런 짓 했다가 휴가를 다 잘라버린다고 하셨거든."
데이브의 대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내 인기가 높다고 해서 휴가와 비교할 수 없겠지.
나는 절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나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데이브와 니콜에게 넌지시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형. 누나. 혹시 선임분들 중에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셔?"
"응?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
"응. 그러니까 군기를 잡는 사람이라고 해야 되나? 군기도 군기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강한 사람 있잖아."
이른바 짬이 높은 사람이다. 이곳에는 '짬'이라는 은어 자체가 없어서 저리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는 '계급'이 존재하는 집단. 그리고 네이비 기사단은 능력과 짬이 적절히 섞여있는 것으로 안다.
"그 분도 제논 일대기 팬이셔?"
"제논 일대기뿐이겠냐. 피와 강철까지 읽고 계시는데."
"네가 온다는 말에 제일 기대했던 분이셔. 마티우스 후작님 앞에서 찌그러졌지만."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더 쉬워진다.
"혹시 그 분에게만 조용히 말씀드릴 수 있어?"
가혹행위가 없어도 군대는 그 특징상 부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군기 확립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당장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군조차도 온갖 부조리란 부조리가 존재했다.
나치 독일이라는, 미친 악마 새끼가 눈 앞에 떡하니 존재해서 다 묵인된 거지.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얄짤없이 부조리가 터져버렸다.
네이비 기사단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둘도 알게 모르게 부조리를 당하고 있을 터.
"그 분에게 드릴 선물이 있거든."
"무슨 선물?"
"형이랑 누나를 잘 챙겨달라는 선물."
군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이건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훈련이 아닌, 단지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피곤함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부조리는 훈련보다 일상 생활에서 더 많이 발생하니까.
데이브와 니콜도 내 말의 뜻을 알았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훨씬 초롱초롱해진 걸 보아 부조리를 당하긴 당한 모양이다.
"역시 내 동생! 너밖에 없다! 내가 내일 빨래 담당이었는데!"
"누나가 뽀뽀해줄까? 우리 사랑스러운 동생."
데이브와 니콜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꽉 껴안았다. 나 또한 방실방실 웃으며 기뻐했다.
"쯧쯧. 그러면 안 되는데······"
옆에서 아버지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번만큼은 무시하자.
'죄송해요. 아버지.'
저도 부조리 많이 당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