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506화 (507/763)

"아이작이 고행을 겪을 거라고?"

마리는 푸른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세실리를 쳐다봤다. 이에 세실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아이작이 예배실 안으로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고 곧장 기숙사로 복귀했다.

이어서 여전히 잠을 청하는 중인 리나를 둔 채 마리와 아델리아에게 어느 한 사실을 알려줬다.

아이작은 그곳에서 책만 집필하는 게 아닌, 실제 영웅이 받는 정신 수양처럼 고행을 겪을 거라고.

그게 무엇인지는 모라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으나 매우 고될 거라고 언질만 한 상황이다.

또한 본래라면 레오나와 아르웬도 호출해야 됐으나 이 둘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따로 설명할 예정이다.

"응.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모라 님은 물론 루미너스 님께서도 합의하셨대. 어쩌면 우리가 알던 모습과 달라질 수도 있어."

"어째서? 아무리 아이작이 경솔했다지만 책임을 지려 하고 있잖아."

마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이작과 붙어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수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아이작은 성숙하고 배려심이 깊은 것 같으면서도 애 같은 면모가 강하다.

평소에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쳤을 때 아이처럼 허둥지둥거리는 편이다.

다소 상반되는 성격이지만 전생의 비참한 인생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내향적이고 잘 나서지 않으려는 성격이지만 알게 모르게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

우유부단한 면모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사람이 조금만 호의를 보여도 밀어내지를 못했으니.

소소한 행복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듯이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이작이다.

"그리고 신들께서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집필을 허락한 게 아니셨어? 모순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무엇보다 피와 강철을 집필해도 된다고 허락한 건 루미너스와 모라다.

피와 강철로 인해 마키나에 혁명이 발발하고, 유례 없던 대공황이 터졌지만 곪아있던 고름을 짠 거나 마찬가지.

만약 먼 미래에 대공황이 터졌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심했을 것이며, 미네르바 제국은 회생조차 불가능했을 거라는 평가가 있다.

이런데도 정신 좀 차리라고 고행을 시키다니, 마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걸 넘어 황당했다.

"마리 말이 맞습니다. 아이작이 경솔하긴 했어도 이번 사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더 강해요."

아델리아도 이번만큼은 쉬이 넘어갈 수 없었는지 마리의 의견에 동조했다.

기껏 몸 속에서 자라나는 종양을 제거했건만 아파 죽겠다고 책임지라는 것과 다를 게 뭔가.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아이작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 넘어서 화가 날만한 상황이다. 이 고행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다가 멘탈이 와르르 무너진 아이작이 절필을 선언하거나 모라를 악신으로 묘사한 책을 내도 할 말이 없는 수준.

세실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조용히 해명했다.

"맞아. 나도 그 점은 부정하지 않아. 모라 님도 인정하셨고."

"그런데 왜?"

"미래를 보셨대."

"무슨 미래?"

마리의 질문에 세실리는 잠시 말을 아꼈다가 사뭇 충격적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

"아이작이 자신의 손을 스스로 자르는 미래."

"······뭐?"

"네?"

예상을 뛰어넘는 말에 마리와 아델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작가에게 있어서 손은 재산과 명예를 가져다 주는, 말 그대로 없어서는 안 될 신체 부위.

작가가 스스로 손을 자른다는 건 절필의 극단적인 선언이자 정신적으로 몰려있을 때나 가능한 행위다.

헌데 심성이 유약한 아이작이 손목을 자기 스스로 자른다니. 도대체 얼마나 심한 상황이 도래하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소, 손목을 자른다고? 자기가 직접?"

"응."

"모라 님이 제대로 보신 미래가 맞아?"

다소 불경한 질문이긴 했지만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뜻이다. 당장 아이작의 곁을 케어하는 사람만 해도 몇 명인데.

분명 예상을 한참 웃도는 미래일 터. 그 미래가 무엇인지 두려워졌다.

"미래는 유동적이라 신들께서도 쉬이 예측할 수 없으셔. 아이작이 손목을 자른다는 미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확률이 높다는 거야."

"어째서······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마리는 경악으로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아델리아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나 얼굴은 딱딱해질대로 딱딱해졌다.

세실리는 그들이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도 내심 혼란스럽긴 매한가지다.

모라에게 이야기를 듣고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동시에 막대한 자책감이 일었다.

자신과 마족은 아이작으로부터 구원받았는데 정작 그가 가장 힘들어 할 때 버팀목이 될 수 없었으니.

하지만 모라로부터 전달받은 미래는 버팀목으로도 버틸 수 없었다. 이건 아이작의 전생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사항이었으니까.

"······어떤 미래인지 알아?"

그 사이 생각 정리를 끝낸 마리가 힘없이 물었다. 세실리는 그에 고개를 무겁게 끄덕거렸다.

뒤이어 그녀는 마리와 아델리아를 번갈아 보다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생부터 이어져 온, 아이작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미래라고 하셨어."

"전생부터 이어진? 아이작의 전생은······"

마리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두 손으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곁의 아델리아도 설마하는 눈으로 세실리를 쳐다봤다.

아이작의 전생에 대한 건 가족은 물론 그와 관계를 맺은 연인들 전부가 알고 있다.

아이작의 세상 즉, 지구는 여러모로 믿을 수 없는 세계였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아이작 개인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돼 있었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것만 해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여자친구는 바람까지 피웠다. 심지어 국가가 징병제를 유지함에도 복지는 하나도 없었다.

환생하고 나서 가족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이유도 저것 때문이다. 아이작은 결코 '화목한 가정'이 깨지기를 원치 않는다.

"누가? 대체 누가? 누가 그러는 거죠? 악마 숭배자?"

마리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쯤, 아델리아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건드린 수준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 중 한 명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큰 화를 입었을 터.

아이작의 위상은 가히 신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한데 가족을 해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설령 한다더라도 사전에 제압될 터. 따라서 이런 일을 저지를만한 건 악마 숭배자밖에 없다.

"아니. 악마 숭배자가 아니라고 하셨어."

하지만 세실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델리아의 말을 부정했다. 악마 숭배자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인가.

"사람들."

"사람들?"

"응. 최근 발생한 대공황에 이어서, 앞으로 아이작이 책을 낼 때마다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사람들."

입을 사람들이 아니라 입을 수도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지금은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악마 숭배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작네 가족을 해친다는 대답에 마리와 아델리아는 더욱 의아해졌다.

비록 대공황이 끔찍한 현상을 낳았다 해도, 단지 고름을 일찍 터뜨려준 것이지 않는가.

"어째서?"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마리의 질문에 세실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녀가 입 밖으로 꺼낸 건.

"사람은 간사하니까."

사람의 추악한 본질을 명확히 꿰뚫는 말이었다.

******

나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다. 무책임했다는 걸 안다. 경솔했다는 걸 안다. 마지막으로 남 일에 큰 관심 없었던 걸 안다.

그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건 제논 일대기를 집필할 때나 통하는 거지, 피와 강철은 궤를 달리하는 책이다.

피와 강철 속에 담긴 다양한 사상과 비극들. 그 비극들로 인해 발생한 세계 최악의 전쟁.

누누이 언급했듯이 내가 평범한 작가였다면 단순히 흥미로운 부분들이라며 넘어갔을 것들이다.

하지만 이건 안일한 생각이다. 나는 히르트에게 순수한 권능까지 물려받았으며 아리엘이라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선물까지 받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만으로도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데 온갖 맛들이 첨가된 책을 발간했으니 그 여파는 상상 그 이상일 터.

정작 나는 그 현상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남 일로 취급했다.

[미안해, 얘들아. 오늘도 일자리는······]

[어떡해요. 이제 슬슬 식량도 떨어지는데······]

[엄마. 배고파. 밥은 언제 먹어?]

그리고 그것이 남 일이 아니라는 건 이 공간에 들어오고나서 깨달았다.

지금 내 앞에는 일을 구하지 못한 가장과, 그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네르바 제국발 대공황은 전세계에 커다란 경제 후퇴 현상을 유래했으며 그 증상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귀족은 본인이 투자했던 상회와 상단들이 줄줄이 도산하여 몰락했고,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해 몸을 내던졌다.

중산층도 귀족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을 기준으로 그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신이시여! 어째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퍽!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평민 가족이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신을 원망하며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이윽고 사람이 땅에 닿자마자 마치 풍선처럼 펑! 하고 터지더니 사방으로 새빨간 피를 흩뿌린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은 신이 나의 수양을 위해 따로 안배한 공간.

풍선이 터진 것처럼 바닥에 퍼졌던 붉은 피는 어느새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절망하는 가족에게로까지 번지는 붉은색.

[단지 조금만 힘들 뿐이야. 내가 어떻게든 일을 구해볼게. 그러니······]

샤아아아-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려던 가장에게 붉은 피가 완전히 번지자, 그 남자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에 충격 받은 주부가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그 주부도 붉은색으로 물들더니 이윽고 남자처럼 가루로 변모했다.

결국에 부모 없이 남게 된 3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은 붉은색으로 물들지 않았지만 알음알음 흔적이 남아있었다.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대공황으로 인해 수많은 가정들이 이런 식으로 망가진다는 뜻일까.

저벅- 저벅- 저벅-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장남으로 추측되는 소년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온통 흰색이었던 몸에는 붉은색 반점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나는 그 소년을 멀거니 쳐다봤다. 소년의 아버지가 일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거리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중이다.

이윽고 시간이 흘렀다는 걸 보여주는 건지, 소년의 키와 몸ㅇ; 점차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몸 곳곳에 남은 붉은 반점은 그대로다. 오히려 몸이 커진 탓에 붉은 반점의 크기가 더욱 커진 듯했다.

[구원자는 무슨······ 우리 집은 그 놈 때문에 망가졌는데.]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소년 아니, 청년의 읆조림. 나는 청년이 나아가는 길을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청년은 조금 전, 그의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역행하고 있다. 떠나가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리에는 청년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까 전에는 한산했던 거리였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붐비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도 온 몸이 새하얬으나 복장은 저마다 가지각색이었다. 아무래도 대공황을 어찌저찌 해결한 모양.

하지만, 사람들 몸에는 청년처럼 붉은 반점이 군데군데 묻어있다. 청년처럼 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대부분이 붉은 반점을 갖고 있었다.

"··· ···"

나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거리 중앙에 미리 배치해 놓았던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 위에는 타자기가 올려져 있다.

하얀 사람들은 그 책상을 피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걷고 있다. 나는 홀린 듯이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끼익-

의자에 앉자마자 귀에 들어오는 미묘한 소음. 의자에 앉은 채 다시 한 번 거리를 둘러본다.

방금 보았던 그 장면은 여전히 뇌리에 남았으나 시작조차 안 한 상황.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폴란드 침공까지 집필하기 위해 스스로 이 공간에 찾아온 게 아닌가.

이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타자기에 손을 얹었다. 긴장으로 인해 손바닥이 땀으로 푹 적셔진 게 느껴졌다.

그러자······

휙!

거리를 오가기 바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누가 먼저라 할 것없이 정확히 나를 향해.

난데없이 무수한 시선이 꽂히자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시선 하나하나가 사슬이 되어 내 몸을 꽁꽁 얽매는 듯한 느낌이다.

얼굴조차 맨들맨들한 흰색이라 공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사람인데 사람 같지 않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허나 저게 현실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무수한 관심을 준다. 부담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로.

방금 전 파탄난 가정과 나를 원망한 청년을 보고나서 느낌이 전혀 달라졌다.

저들은 나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다. 이건 달라진 게 없다.

동시에 이제는 두려워하고 있다. 대공황 이후로 또 어떤 사회 현상을 낳을지 무서워하고 있다.

몸 곳곳에 묻어있는 붉은 반점이 바로 그 영향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커질 수도 있는 붉은 반점.

꿀꺽-

나는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타다닥-

이윽고 내가 아주 잠깐 타이핑을 거치자.

꾸물꾸물-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의 붉은 반점이 아주 약간이지만, 아주 약간이지만 꾸물거리며 커지기 시작했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군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타다닥- 타다다닥-

이에 나는 그 현상을 애써 무시하며 타이핑을 이어나갔다.

꾸물꾸물-

붉은 반점은 하염없이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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