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501화 (502/763)

에인스는 탐욕의 상징과 함께 용광로로 사라진 탐욕의 화신을 내려다 봤다.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광로에는 뜨거운 쇳물만 넘칠 뿐, 탐욕의 형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1000도가 넘는 용광로에 빠졌으니 유골조차 남기지 못했을 터. 저 쇳물은 훗날 또다른 상징으로 쓰이리라.

'도대체 무엇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지?'

에인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돈에 미쳤다지만 부르주 5세는 도를 넘은 수준이다.

편집증인가, 탐욕인가, 권력욕인가, 아니면 셋 전부가 합쳐져 괴물이 탄생한 건가.

뭐 하나 종잡을 수가 없다. 정신병 수준으로 심한 나머지 악마 숭배자가 뒤에서 수를 쓴 건가 싶었다.

실제로 악마 숭배자가 활개칠 때 마키나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하지만 부르주 5세가 악마 숭배자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전에 자기 형제들을 독살했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한 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탐욕에 타락한 것과 군주들이 가지는 특유의 편집증. 이걸 교묘히 움직였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 ···"

에인스는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의 쇳물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부르주 5세의 도를 넘는 탐욕에 경악한 것인지 좌중은 고요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탐욕에 눈이 멀었다지만 자기 목숨마저 버릴 정도였을 줄은 몰랐을 테니.

하지만 명확한 '선례'를 보여줬으니 남은 건 대비뿐이다. 부르주 5세는 타살이 아니라 자살한 거니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이에 에인스는 확성기를 들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방금 전 탐욕의 말로를 직접 지켜봤습니다. 제논 일대기에서의 탐욕도 이와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죠. 제논 일대기의 탐욕은 자기자신이 만들어 낸 창작물에 목숨을 잃었고, 부르주 5세 또한 탐욕이 자기자신을 집어삼켰습니다.]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사람을 얼마나 망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군중들.

그러나 '자본'이 굴러가는 사회에 있어서 탐욕은 무조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순리이자 '돈'이 존재하는 이상 필연적인 것.

설령 자본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간에 과도하면 생기는 죄악이다.

[이제 이 나라에 탐욕의 화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탐욕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닙니다. 탐욕을 포함한 죄악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나올 수 있으며 그 감정들은 마키나를 포함한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작금의 혁명도 '분노'를 통해 표출된 것.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죄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에인스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실제로 혁명이 발발한 원인은 참지 못해 터져버린 분노 때문이었으니까.

비단 드워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희노애락이 존재하는 사람인 이상 죄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부르주 5세는 지나친 탐욕으로 분노를 일으켰고, 지금의 저희는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었죠. 다시 말해 이런 감정이 격해진다면 언제 어디서든 또다른 죄악이 등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오늘 발발한 혁명은 부르주 5세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기에 단결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혁명이 끝났을 뿐 정리는 되지 않은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콩고물을 얻기 위해 탐욕을 저지르는 사람이 많다.

에인스는 그 점을 경고하고 있다. 내부 사정이 안정될 때까지만 잠시 탐욕을 거두어 달라. 하나로 단결되었을 때야 말로 발전의 기회다.

군중들도 그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부르주 5세라는 명확한 선례도 있었으니 적당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되는 거야?"

"공장들의 휴식과 자유만 준다면 상관없겠지만······"

"또다시 부르주 5세 같은 놈이 등장하면 어떡하려고?"

물론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부르주 5세가 너무 임팩트 있게 폭정을 저질러서 공장들은 두려웠다.

상황이 정리된다면 공장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주겠지만, 또다른 부르주 5세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드워프들은 그게 가장 두려웠다. 법 밑에서 알음알음 착취를 하는 악덕 공장주들이 또다시 등장할까봐.

[여러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족전쟁부터 지금까지 막대한 부를 얻었으며, 그 부는 끔찍한 결과를 도래했죠.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물건을 만들 겁니다. 그것이 드워프라는 종족이니까. 우리는 자유와 휴식을 얻을지언정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부르주 5세가 등장하는 것만큼은 막아야겠죠. 그리 된다면 오늘의 역사적인 날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 생각하십니까?]

뜬금없게도 들리는 에인스의 질문. 그 질문에 드워프들은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며 바라보다가 저마다 한 마디씩 나눴다.

"너 어디 구역이냐?"

"나는 광산에서 일하고 있지. 너는?"

"무기 제작 담당. 너는?"

"실 짜고 있는데?"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드워프가 공장은 아니지만 공장은 전부 드워프라고. 사실 '공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드워프에게만 통용되는 소리다.

어린아이마저 선천적인 손재주를 타고 나 야금술에 해박하며, 숙련공은 두말 할 것 없다.

가끔 가다가 재능이 없는 드워프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1차 산업 즉, 광산에 집중하는 편이다.

오로지 생산과 그를 통한 수출 및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 대부분의 드워프가 장인인 나라.

[우리는 공장들. 그리고 한 명 한 명이 수십 년간 기술을 연마한 기술자입니다. 마키나는 종족전쟁 이후 탐욕에 눈이 멀어 진정한 발전을 멀리했습니다. 그냥 원래 만들던 물건만 만들고 진정한 창작은 꿈에도 꾸지 못 했죠.]

[저는 이번에 발명한 '마력 기관'의 소유권을 하마터면 부르주 5세에게 강탈당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력 기관은 공장들의 편의가 아닌, 더 심한 착취로 이어질 뻔했죠. 분노한 저는 저기 있는 강철 괴물, 전차를 발명하여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마력 기관은 드워프 공장이 아닌, 기술자에게도 불세출의 발명품이라 칭송받은 물건이다.

석탄을 태움으로써 발생하는 마나가 동력이 되어 움직이는 기계. 사람만이 배출할 수 있다는 마나를 석탄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런 걸작품의 소유권을 빼앗길 뻔하다니. 심지어 부르주 5세는 그걸로 공장들의 편의를 봐주기는커녕 더 심하게 착취할 예정이었다.

진실을 들은 공장들이 분노하며 부르주 5세를 욕하고 있을 때, 몇몇 드워프가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저건 왜 알려준 거지?"

"마력 기관으로 우리를 더 편히 만들어 주려나? 그럼 우리야 좋지."

"광부들의 일자리가 엄청 늘어나겠어."

대부분의 드워프는 에인스가 마력 기관으로 공장들을 좀 더 편히 만들어 주는 건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유권은 오로지 에인스에게만 있으니까. 상식적으로 이게 당연했다.

하지만 에인스의 생각은 달랐다.

[이에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마력 기관의 설계도를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전세계로 뿌릴 것입니다.]

"뭐?"

"저게 무슨 말이야? 설계도를?"

"에, 에인스 씨가 미쳤나? 당장 분해만 해도 감이 잡힐 텐데 설계도를?"

삽시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군중들. 그들은 에인스가 꺼낸 발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누이 언급했다시피 드워프는 천부적으로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종족.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손으로 무언가 뚝딱뚝딱 만든다.

물리? 수학? 공학? 그런 걸 일일이 생각할 바에야 이것 저것 개조하다 보면 창작이 가능하다.

공공의 장인이라는 뜻의 '공장'이 등장할 정도로 드워프의 손재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재능을 지금껏 대량 생산에만 치중하고 있었기에 빛이 바랬을 뿐.

[한때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혁신적인 것을 창작하고 싶다. 내가 만든 물건이 인정 받기를 원한다. 그 물건으로 내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릴 때 가졌던 꿈이었죠. 허나 그 꿈은 무자비한 탐욕 앞에 무너졌습니다. 창작이 아니라 단순 노동만 반복했으며, 우리는 시대에 순응하며 억압을 받았죠.]

[혁명이 성공한 지금, 그 억압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손발을 묶던 족쇄는 모두 사라졌으며 공장들은 하나로 단결했습니다.]

[하지만 만족하십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묵묵히 만들던 물건만 만들 겁니까? 우리가 어떤 종족입니까? 우리는 산 위에 이 커다란 왕궁을 지을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난 드워프입니다.]

[이제는 발전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두 발에 족쇄가 묶여 300년 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족쇄가 사라진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입니다.]

허나 오늘부터 달라진다. '복제'에 지나지 않던 생산이 아닌, 진정한 '창작'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기아스가 마키나의 드워프들에게 혁명의 불씨를 심어줬다면, 에인스는 다른 의미의 불씨를 심어주기 시작했다.

끝없는 착취로 사라질 뻔했던, 대부분의 드워프가 가졌던 진정한 욕망. 퇴색되었을지언정 없어지지 않던 진짜 탐욕.

[끊임없이 만드십시오! 우리의 손발을 묶던 사슬은 부서졌으니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마력 기관을 필두로 여러분의 창작 욕구를 끌어올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의 창작품을 모두에게 공유하십시오! 제가 설계도를 공유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당신이 만든 창작품을 보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경쟁하고, 그 경쟁으로 발전하고, 그 발전으로 새로운 탄생이 등장할 겁니다!]

[탐욕스러웠던 '개인'의 공장들이 아닌,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여 발전시키는 '모두'의 공장으로써! 마키나를 부흥시키고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원하는 이상이자 체제. 실패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가이스트가 다시 일어날 기회를 줄 것이니!]

에인스는 목소리를 높여 연설을 하다 말고 잠깐 멈췄다. 이어서 앞의 군중들을 쳐다본다.

저마다 만들고 싶은 발명품이라도 떠오르는 건지, 생각에 빠져있는 얼굴들. 물론 저들 중에 '혁신'을 보여줄 이들은 많지 않을 터.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공장'이 아니라 '기술자'가 된다는 건 무시무시한 잠재력이다.

에인스는 그 잠재력을 믿었다. 물론 중간중간 모자란 점이 드러나겠지만 천천히 해결하면 될 것이다.

[그럼 여러분.]

에인스는 고요해준 군중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군중들은 단상 위에 당당히 서 있는 그를 말없이 쳐다봤다.

[여러분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까?]

공장들의 욕구를 제대로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그의 질문.

[마력 기관보다 더 효율적인 기계? 아니면 세심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물건? 아니면 광부들이 좀 더 일을 편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조 장치?]

만들 건 많다.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다.

300년 동안 착취를 받으면서 깨닫지 못했던 창작 욕구. 말없이 물건만 만드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시대는 이제 없다.

이제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욕심 많은 개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만약 마력 기관처럼 토대가 되는 물건을 발명한다면, 저희 가이스트는 그 대상에게 명예로운 상을 드릴 겁니다. 재물이 아니라 오직 명예만을 위한 상.]

마지막으로 욕구를 만족시키는 보상까지. 에인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전차를 가리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전차의 엔진 즉, 동력원은 마력 기관입니다. 그리고 마력 기관은 제논 일대기에 등장한 증기 기관차에서 영감을 얻었죠. 증기 기관차는 제논 일대기에 등장한 기계. 마지막으로 제논 일대기의 저자는 제논입니다.]

[따라서, 마력 기관처럼 혁신적인 발명품을 제작하는 자에게는 '제논상'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작이 들었다면 눈을 동그랗게 떴을 발언이다. 상은 상이다만 어째서 자기 필명이 붙는지 의아해했겠지.

그러나 에인스 뿐만 아니라 군중들도 납득하는 분위기다.

제논 일대기에 증기 기관차가 묘사되지 않았더라면, 마력 기관은 등장조차 못 했을 테니까.

심지어 '전차'마저 그림으로 묘사되었지 않았는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차고 넘쳐났다.

물론 저것들 모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등장할 예정이지만 아이작이 먼저 보여줬다는 이유로 선지자 취급 받고 있다.

자기 무덤을 팠다기에는 약간 애매하고 전생의 노벨상과 비슷하다. 드워프의 특성상 기계공학에 치중돼 있다는 게 차이점이지.

[자. 그러면 여러분.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에인스는 다시 한 번 군중들을 둘러보며 끝을 맺었다.

[여러분은 무엇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일러스트보기 Click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