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500화 (501/763)

혹시 몰라 미리 말하는 거지만, 부르주 5세는 욕심이 많은 거지 멍청한 게 아니다.

탐욕에 눈이 멀지언정 자기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마키나 내의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보 유출을 막고, 공장들이 찍 소리조차 못하게 채찍질을 가했다.

그러나 그조차 알지 못한 큰 구멍들이 곳곳에 있었으니, 혁명의 불씨가 수도뿐만이 아닌 전역에 퍼졌다는 것.

두번째로 치안을 담당할 '경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대상에 따르면 지극히 당연한 거지만 사회 분위기가 나락이었다는 게 흠이다.

미네르바 제국과 테르스 왕국은 기사 이전 계급인 '병사'를 치안대 즉, 경찰처럼 이용하고 있다.

허나 이것마저 제대로 사법화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더군다나 '판타지'라는 특징으로 인해 사법화가 되기 매우 복잡하다.

과장을 보태 개개인의 무력이 군대에 필적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인데, 경찰을 군대에서 떼어놓는 것조차 막대한 수고가 들 테니까.

다시 마키나로 돌아와-

왕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군대가 치안을 다스리는 사회에서, 나라 곳곳에 혁명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상황.

상비군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군대가 전역에 퍼져있다 보니 한 번 꽝! 터진 혁명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모 게임에 등장하는 종족과 흡사한 엘프였다면 마법으로 연락을 받고, 그 즉시 텔레포트를 사용했겠지. 그러나 드워프는 마법을 거의 모른다.

보통 같으면 수도에 군대를 밀집하여 어떻게든 수도만 지켰겠으나, 늘 언급했듯이 부르주 5세는 탐욕이 과했다.

과유불급. 현재 부르주 5세에게 적당한 언어일 것이리라.

"와아아아아!"

"가이스트! 가이스트! 가이스트!"

물론 그거 다 필요 없고 물량이 짱이다. 기관총은커녕 총조차 발명되지 않은 시대였으니.

입구를 뚫어버리고 내부까지 진입한 가이스트와 마키나의 공장들.

드워프 삼인방은 쇠창에 적중당해 골골거리는 전차를 이끌며 왕궁으로 향하는 중이다.

왕궁의 외부는 혁명단원들이 미리 처리했고, 이제 남은 건 알현실로 들어가 부르주 5세를 끌고 오는 것뿐.

"그 놈이 도망가지는 않았을까?"

온 몸을 붕대로 둘둘 감은 한다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미리 구비했던 포션과 응급처치를 통해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그 탐욕덩어리가 도망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설령 도망가더라도 문제 없어. 민심은 우리에게 있는 데다가 후사를 따로 두지 않았거든."

"후사를 두지 않았다고? 왜?"

"자식한테도 재산을 주기 싫었겠지. 돈에 미친 놈이라니까?"

"허."

때때로 특정 욕망이 사람의 기본 욕구를 아득히 추월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권력욕. 권력은 한 번 맛보면 무조건 중독된다는 명언이 있을 정도다.

한때 최고의 위치에 올라갔던 사람이 그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처럼.

부르주 5세도 마찬가지. 자본주의에 가까운 마키나의 사회에서, 그는 상속조차 아깝다며 자식을 두지 않았다.

왕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마저 저버린 모습. 심지어 자기 형제마저 독살했다는 소문도 있다.

자본주의와 군주제가 만들어 낸 괴물. 판타지 세계관과 드워프라는 종족이 탄생시킨 괴물이다.

"이, 이봐. 저거 설마 황금이야?"

"황금이······ 맞는데? 동상이 아니라 황금이라고?"

"나 저 그림을 그린 사람 알아. 엄청 유명한 사람인 걸로 아는데······"

전차가 말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당원들은 생전 처음 발을 디딘 왕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궁 내부는 부르주 5세의 사치를 보여주듯, 온갖 사치품으로 덕지덕지 도배했으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그림, 공예품, 조각 등등.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공장들과 달리, 부르주 5세와 충복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바빴다.

"넌 알고 있었냐?"

"······어느 정도는."

기아스의 물음에 에인스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력 기관의 발명가로서 왕궁에 방문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왕족 및 귀족만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아닌 다른 통로를 이용했다.

그 통로는 여느 길과 다를 바 없었지만, 부르주 5세를 만나자마자 의심을 품었다.

손가락마다 휘황찬란한 반지를 끼고 있는 건 물론이고 왕관은 돈지랄 그 자체였으니.

화룡점정으로 치아마저 황금으로 도배한 놈이다.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

"어, 어? 저, 저거! 저거 내가 가공한 보석이잖아! 이거 도난당해서 납품조차 못 했던 거라고!"

"이 카페트는 내가 만든 건데······"

"저 샹들리에 저거 내가 한땀한땀 만든 거야. 빌어먹을 놈들. 왕이 그냥 도둑놈이었어."

러시아 혁명 당시 붉은 군대가 귀족들의 삶을 보고 얼이 빠졌지만, 공장당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사치스러운 삶은 둘째치고 자기 작품을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으로 빼앗겼으니까.

'공장'이라 칭해지는 드워프만이 가능했던 사건이자, 드워프였기에 발생한 추태였다.

그 추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지금, 공장당의 분노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기아스 님. 왕을 만나면 다리에 화살 한 발 꽂아도 됩니까?"

"저는 그 놈 뒷구멍에 제 보석을 쑤셔박고 싶습니다! 더러워서 못 참겠어요!"

"샹들리에를 한땀한땀 입에 넣어주고 발로 차버리고 싶소."

보아라. 자신의 작품이 눈 뜨고 코 베였다는 걸 알고 나서 분위기가 더욱 격해지지 않았는가.

기아스는 그런 그들을 달래느라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자신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반면 에인스는 묵묵히 전차를 움직이며 알현실로 나아갔다. 그는 이미 부르주 5세를 어떻게 처리할지 다 생각해 놓았다.

"멈춰라! 이 반란군 놈들아!! 감히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

그 순간 누군가 짙은 노호성을 터뜨렸다. 알현실로 향하는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크기.

당원들을 말리던 기아스는 물론, 잠시 휴식을 위해 눈을 감았던 한다이, 마지막으로 묵묵히 운전을 하던 에인스도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에인스가 운전석의 해치를 열고 바깥을 바라보니 이게 웬 걸.

지난번 부르주 5세와 대면했을 때, 그의 옆에서 시시각각 태클을 걸던 귀족이었다.

"오! 오랜만에 보네. 이름은 모르겠지만."

"닥쳐라!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 불순한 걸 끌고 오느냐!"

에인스가 반갑게 인사하던 말던 외눈안경의 드워프가 버럭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얼룩져 있다.

당연하지만 승세는 이미 가이스트에게로 쏠린 상황. 그들 입장에서 귀족의 외침은 풀벌레만도 못했다.

"저 새끼 뒷구멍에 박아도 되죠?"

"화살은 괜찮습니까?"

"입에 샹들리에를 물리고 발로 차도 되겠소?"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당원들의 분노만 끌어올릴 뿐이지만.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는데 짜증만 증폭된다.

기아스는 조금만 건드리면 터질 듯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에인스를 쳐다봤다.

기아스는 어디까지나 연설 및 선동만 담당할 뿐, 최종결정권한은 언제나 에인스에게 쥐어져 있다.

"이보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당신들 졌어. 그러니 왕을 여기로······"

"반란군 놈들에게 들을 말은 없다! 갈 거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

절대 물러가지 않겠다는 기세로 호기롭게 외치는 귀족. 보통 같으면 기개에 감탄하여 억지로 치웠겠지만······

"그러지 뭐."

치익-

분노한 민중과 '전차' 앞에서는 얄짤없다. 에인스는 콧방귀를 뀌며 전진 페달을 꾸욱 밟았다.

그르르르륵-

"어?"

이게 아닌데. 앞길을 막아섰던 드워프 귀족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했다.

그도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이렇게 한다면 적어도 '명예롭게' 저항한 셈이니까.

하지만 에인스는 명예고 나발이고 벌레 밟듯이 전차를 이동시켰다. 여태까지 당한 게 있는데다 그는 '기술자'다.

귀족들이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명예'따위, 기술자에게 같잖은 허례허식에 지나지 않는다.

'발명품'을 통해 얻은 명예면 몰라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신분으로만 얻은 명예는 쓸모없다.

쿠르르르르-

좆 됐다. 드워프 귀족은 점점 다가오는 전차를 보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대로 옆으로 구르자니 명예는 전부 집어던지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저 강철 괴물에 짓밟힐 운명이다.

이에 귀족이 다급하게 몸을 굴리려던 순간.

"안 됩니다! 잠깐만 멈추십시오!"

다행히 명예를 아는 자가 있었는지 당원 중 한 명이 급히 소리쳤다. 드워프 귀족은 그 말을 듣고 화색을 띠었다.

역시 저 중에 명예를 아는 자가 있긴 모양이다. 이제 남은 건 신분을 유지하고 뒤탈 없이 지내는 것뿐.

"이 카펫은 제가 제작한 겁니다! 저 더러운 놈의 피가 묻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미 바퀴 자국은 남았는데?"

"그건 명예로운 혁명의 길입니다. 그 길에 더러운 귀족놈의 피가 묻으면 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까?"

"오. 그것도 맞는 말이네. 야, 누가 쟤 좀 치워라.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고."

그딴 거 없다. 드워프 귀족은 당원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 했다.

자신이 아는 명예와 저들이 아는 명예는 다른 건가? 어째서 자신의 피를 더럽다고 모욕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드워프 귀족은 당원들에게 끌려가며 밖으로 나섰다.

그 후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여러모로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는 건 알려줄 수 있다.

-으아아아아아악!!

저기 들리는 비명 소리처럼. 에인스는 비명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유유히 페달을 밟았다.

이제 귀찮은 놈도 처리됐겠다, 가이스트는 알현실로 향해 조용히 전진했다.

휘황찬란한 복도의 외관과 달리, 전면부에만 쇠창이 4개나 꽂혀있는 전차의 외양.

흡사 패잔병에 가까웠지만 붉은 카펫 위에 전차의 바퀴 자국이 도장처럼 찍히며 묵묵히 나아갔다.

그리하여.

쿵!

굳게 닫혀있던 알현실의 문이, 전차의 묵직함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알현실의 문이 활짝 개방됨과 동시에 드러난, 알현실 내부의 모습.

복도만 하더라도 사치품으로 가득했으나 알현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황금의 방. 황금의 방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방 전체가 황금으로 도배돼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으며 간단한 물품들조차 황금이다.

마키나의 지리적 특징상 광산이 많아 황금 또한 많이 채굴된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도를 넘은 수준이다.

"왔군."

가이스트를 포함한 당원들이 알현실을 보며 경악하고 있을 때, 앞쪽에서 어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고개를 돌리니 눈에 들어온 건 황금의 옥좌. 그리고 그 옥좌 위에 앉아있는 탐욕의 왕이었다.

늘 그렇듯이 손가락마다 보석이 박힌 반지과 온갖 장신구를 착용했다.

왕관은 또 어떠한가. 왕관 중앙에는 주먹만한 다이아몬드가 박혔으며 그 양옆으로 색색의 보석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옷 또한 마찬가지. 탐욕의 절정을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황금을 실로 짠 듯한 복장이다.

자본주의와 군주제가 낳은 괴물이자 탐욕의 화신, 부르주 5세.

그는 황금의 옥좌에 당당히 앉은 채, 전차를 끌고 온 가이스트를 고고히 내려다 봤다.

"하찮은 놈들이 기어이······"

품위를 지키기 위해 부르주 5세가 먼저 입을 열었지만.

"저 새끼 잡아!"

"우아아아아!!"

"어?"

드워프에게는 그딴 거 필요없었다. 에인스의 명령을 필두로 당원들이 돌진하여 끌어내렸다.

왕을 수호하는 호위도 없었다. 호위는 이미 지나오는 길에 전부 쓰러뜨렸으니까.

끝까지 곁에 붙는 호위 기사? 호위 기사마저도 밖으로 보낸 참이라 부르주 5세 혼자밖에 없다.

그야말로 허수아비이자 아무것도 없는 왕. 부르주 5세의 왕위 계승은 단 10초만에 끝났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짐의 옥체에 손 떼지 못할까!"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닥치고 내려오십시오."

위엄이고 뭐고 가이스트 입장에서는 탐욕에 눈이 먼 미친놈이다. 품위 같은 건 챙겨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오늘을 기점으로 욕심 많은 폭군이자 암군으로 낙인찍힐 텐데 명예는 사치지.

에인스는 당원들이 신속하게 부르주 5세를 포박하자 그와 마주했다.

해치 위로 얼굴만 달랑 대놓고 있었으나 부르주 5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기에 역전된 상황이다.

"그러게 임금만 좀 올려주지 그랬어. 겸사겸사 휴식도 줬으면 이 사단은 안 일어났을 거야. 왜 이리 멍청할까?"

"하. 짐이 멍청하다고? 우매한 네 놈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준 짐을? 우매한 건 너희들이지 짐이 아니다!"

반성의 기미는 눈꼽만큼도 없었는지 부르주 5세는 에인스의 말에 가당치도 않다는 뉘앙스로 대답했다.

그에 주변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정말로 왕은 백성을 사랑할 마음이 없었다.

에인스도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한 대 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왕이 답이 없는 놈인 건 확인했고, 다음은 이유다. 부르주 5세가 막장인 반면 그의 아버지 즉, 부르주 4세는 민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호부견자라지만 현군 밑에서 이런 폭군 겸 암군이 등장할 수 있다니.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다른 질문. 네 놈의 아버지는 적어도 우리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 심지어 도중에 종족전쟁까지 발발했는데도 그걸 이용해 부를 줬을 정도로 현명했지. 그런데 네 놈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왕위를 받은 네 놈은 어째서 우리를 착취한 거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데?"

"짐은 마키나의 왕이자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금을 가지고 있다! 누가 감히 짐의 명령에 토를 단단 말이냐!"

"··· ···"

안 되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에인스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가 뒤를 쳐다봤다.

쇠창에 꽂힌 채 망가질대로 망가진 전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대의 흐름은 예상치 못한 괴물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했고, 그 괴물은 또다른 괴물(전차)을 탄생시켰다.

"위아래가 명확한 신분이 문제인가 아니면 자본이 문제인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군. 뭐든지 과하면 욕심이 되고, 그 욕심은 탐욕을 불러 파멸을 이끄는 법."

부르주 5세의 상태를 확인한 기아스가 한탄하듯이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은 가이스트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에인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괴물도 포박했겠다, 남은 건 승전보를 울리는 것뿐.

"야. 이 새끼 포신에 매달아. 이제 밖으로 돌아간다."

"예."

"뭐, 뭐하는 짓이냐! 이거 놓지 못 하겠느냐! 짐은 왕이란 말이다!"

당원들이 명령에 따라 부르주 5세를 포신에 매달기 위해 움직였다.

"이 새끼 시끄러운데 한 대 쳐도 됩니까?"

"조용해질 때까지만이다. 기절시키면 안 돼."

"이것 놔······"

퍽!

부르주 5세가 발악하려던 찰나, 당원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시원하게 가격했다.

고된 망치질로 단련된 주먹질은 매우 호쾌했으며 사심마저 듬뿍 담았다.

"이, 이 놈들이······! 감히 짐을······!"

퍼억!

"아악! 하찮은·····!"

퍽! 퍽!

"짐이 누구······!"

퍽! 퍼억! 퍽!

"··· ···"

드디어 조용해진 부르주 5세. 매서운 드워프들의 주먹질에 그의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에인스는 포신에 매달려 추욱 늘어진 부르주 5세를 보며 혀를 쯧쯧 차다가 전차의 방향을 돌렸다.

부르주 5세의 신변도 확보했겠다, 남은 건 밖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야. 에인스. 저 놈 몸에서 이런 거 찾았는데?"

"응? 뭔데?"

돌아가는 도중에 기아스가 에인스가 물건 하나를 건네줬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구슬이다.

단지 표면에 '버튼'처럼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이건 뭐지?"

꾹-

에인스가 호기심에 버튼을 누르자.

콰아앙!!

방금 전까지 알현실이 있던 곳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이에 화들짝 놀란 가이스트와 당원들이 그쪽을 쳐다봤다.

알현실이 있던 곳에서 매캐한 흙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 ···"

"··· ···"

가질 수 없다면 모두 부숴버리겠다. 부르주 5세의 몸에 나온 건 다름아닌 격발 장치.

이 미친 왕은 자신들에게 돈을 줄 바에야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탐욕에 제대로 미친 놈이었다.

다행히 상황이 워낙 급했기에 장치를 누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

에인스는 당황보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부르주 5세를 쳐다봤다. 주포에 대롱대롱 매달려 볼품없는 모습이다.

"이 개잡놈이. 대체 욕심이 얼마나 많은 거야? 히르트 님은 왜 이딴 놈을 가만히 방치한 거지?"

"··· ···"

부르주 5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시체인 모양이다.

장난이고, 그냥 많이 얻어터진 탓에 기절한 거다. 더 때리고 싶어도 죽을까봐 그러지 못했다.

"어떡할 거냐? 저 놈의 목을 칠 거냐?"

"목을 치면 주변 나라에서 크게 동요할 텐데?"

에인스와 마찬가지로 어처구니 없어하던 기아스와 한다이가 처우에 대해 물었다. 우려가 된다는 목소리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막장 중의 막장인 부르주 5세라지만 주변국의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만약 이대로 부르주 5세의 목을 자른다면 다른 나라가 크게 동요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대공황 또한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

부르주 5세의 목을 벤 후에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보여줘야지."

"보여준다고?"

보아하니 에인스도 따로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부르주 5세를 매섭게 노려보다가 말을 끝맺었다.

"사람이 돈에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를."

"··· ···"

기아스와 한다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부르주 5세의 목을 자르는 걸로 결정난 듯했다.

"아. 그렇다고 내 손을 더럽히진 않을 거야. 다들 걱정 마."

"응? 그럼 뭘 하려고?"

"가서 보여줄게. 자자, 일단 가자고."

궁금하긴 하지만 에인스가 저리 장담하니 믿어도 될 것 같다. 이 혁명도 그가 계획한 거지 않는가.

그리하여 가이스트는 왕궁 밖으로 조용히 나섰다. 주포에 부르주 5세라는 기념품을 매단 채로.

"이 놈들······ 감히 짐을······"

"이 새끼 덜 맞았나 본데?"

"··· ···"

******

-우와아아아아!!

-가이스트 만세! 공장당 만세!

부르주 5세를 매달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귀를 찌를듯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가이스트를 비롯한 당원들은 바깥을 가득 메운 마키나의 드워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발발한 혁명을 통해 이루어 낸 값진 승리. 진정한 의미로 단결되어 결실을 맺었다.

-부르주 5세를 처형해라!

-처형! 처형! 처형!

-죽여! 저 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고!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부르주 5세를 향한 무시무시한 악의가 쏟아진다. 주포에 매달린 그에게 돌이 던져지는 건 기본이고 가끔 가다 망치가 날아왔다.

당원들은 어떻게든 그들을 말렸지만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건 막을 수 없다.

게다가 당원들도 막을 뿐이지 적극적이진 않았다. 당장 본인들도 부르주 5세의 목을 따고 싶은 걸 억누르고 있었으니.

한편 위풍당당하게 전차를 끌고 가던 에인스는 미리 준비한 것으로 추정되는 '처형대'로 나아갔다.

처형대라 하기에는 단두대도 아니고, 교수형을 위해 제작된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단상. 모두의 이목을 끌기 위한 단상에 지나지 않았다.

"물건은 준비됐지?"

"예! 시키신 대로 전부 준비했습니다!"

"좋아. 이 자식을 단상 위로 올려."

"알겠습니다!"

주포에 매달렸던 부르주 5세가 단상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에인스는 전차의 시동을 껐다.

뒤이어 장전수 겸 석탄 보급원에게 수고했다는 말은 남긴 후 해치 밖으로 나섰다.

에인스가 밖으로 나서자 그의 동료들도 나서기 위해 움직였다.

"아. 너희들은 남아있어.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도 괜찮냐?"

"네가 그리 말한다면 따라야겠지만······"

한다이 다음으로 기아스가 걱정 및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에인스를 쳐다봤다.

전차의 개발부터 시작해 혁명까지 전부 그가 담당했지만, 지금 보이는 행동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계획이라니. 의심보다는 섭섭하다.

"자칫하다가 너희들까지 덤터기 쓸까봐 그래. 책임은 내가 모두 질 거니까 날 믿어. 알겠냐?"

에인스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두 동료도 군말없이 따라줬다.

원체 기상천외한 발상을 자주 하는 그여서 좀처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윽고 에인스는 전차에 동료들을 그대로 둔 채 단상 위로 올라섰다.

단상 위에는 처형을 기다리는 부르주 5세와, 반항하지 못하도록 막는 당원 둘이 지키고 있었다.

"자네들은 내려가 있게."

"네? 하지만······"

"괜찮으니 내려가."

그런데 에인스는 당원들마저도 단상 밑으로 내려보냈다. 내려갈 때까지 당원들은 걱정어린 눈빛을 지우지 못 했다.

이후로 단상 위에는 에인스, 그리고 무릎을 꿇은 부르주 5세만 남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키나의 드워프들은 열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츰 수그러들었다.

머지않아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고 고요함이 찾아왔을 때, 에인스는 미리 준비했던 확성기에 입을 대었다.

[아. 아아.]

잠깐 테스트를 거치고.

[반갑습니다, 동지들이여. 제 이름은 에인스 마티손. 마력 기관의 개발자이자 가이스트의 일원입니다. 오늘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더 이상의 탐욕과 착취는 없을 겁니다!]

기아스의 화려한 언변과 달리, 담담하기 그지 없는 발표였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마키나의 공장과 백성들은 그의 발표에 다시 한 번 열띤 환호성을 내질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정한 해방.

공장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귀족과 왕은 혁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피가 흘렀으나 그들은 용맹한 전사로서 이름을 남기기라.

역사는 이름 하나하나를 기록하지 못하나 절대 잊지 않는다.

[저희는 혁명을 거치면서 끝없는 탐욕을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저희가 끝없는 착취를 받는 동안 왕은 끝없는 사치를 부렸으며, 저희가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동안 왕은 몸이 터져라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더 이상 탐욕에 물든 왕은 없을 테니.]

언변만 듣는다면 당장이라도 왕을 처형할 것 같은 느낌이다. 군중들도 그걸 직감했는지 처형! 처형! 처형! 이라며 외치고 있다.

그 상황 속에서 부르주 5세는 묵묵히 무릎을 꿇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의 최후를 직감하기라도 했는지 초연해 보이는 모습.

[여기서 잠깐 부르주 5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죠. 살고 싶습니까?]

에인스는 확성기를 부르주 5세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능욕이라도 할 작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생각이 딱히 없고 진짜로 궁금해서 물은 거다. 이른바 악의 없는 행동.

물론 부르주 5세에게는 치욕 중의 치욕이었기에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죽일 테면 죽여보아라! 짐이 죽더라도 짐의 재산은 네놈들한테 가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돈에 미쳐있는 발언을 한다. 에인스는 혀를 쯧쯧 차며 그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이어서 그는 부르주 5세에게만 들리게끔 귀에다 속삭였다.

"미안하지만 난 돈 따위 필요없어. 우리는 그냥 자유가 필요할 뿐."

"뭐?"

"에인스 님! 말씀하셨던 물건을 갖고 왔습니다!"

부르주 5세가 당황하는 동안 타이밍 좋게도 당원들이 '물건'을 갖고 왔다.

예정에도 없던 물건이 등장하자 부르주 5세는 물론,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당원이 갖고 온 물건은 바로······

"용광로?"

"저건 왜 들고 온 거지?"

"설마 저기에 부르주 5세를 빠뜨리려고?"

섭씨 1000도가 넘는 물건이자, 광물을 녹여 철을 얻기 위한 준비물.

야금술의 상징이자 대장장이의 필수품, 용광로였다. 안에는 녹아서 걸쭉한 액체가 된 쇳물이 가득 담겨 있다.

"하! 덜 떨어진 공장들이 사용하는 용광로에 짐을 집어넣겠다? 그거 참 우매한 놈다운······"

부르주 5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에인스의 행동이 한 발 빨랐으니.

에인스는 부르주 5세가 입으로 떠드는 동안 그의 머리 위에 놓여있는 왕관을 벗겼다.

반지를 포함한 장신구는 모두 제거했으나 왕관만큼은 방치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 뭐 하는······ 그게 무슨 물건인지 아느냐! 네 놈따위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왕관이란 말이다!!"

여태까지 여유를 유지하던 부르주 5세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왕관은 그 존재만으로도 신분과 명예, 그리고 부를 상징하는 물건.

하지만 에인스의 손에 들려있는 왕관은 '탐욕'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왕은 없다."

"내놓아라! 당장 내놓으란 말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왕관을 네 놈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뒤에서 부르주 5세가 바락바락 소리쳐도 에인스는 묵묵히 용광로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보다못한 부르주 5세가 꿇었던 무릎을 간신히 펴며 당당히 일어선다.

그걸 확인한 당원들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대비하려 움직였지만······

휘익!

에인스가 손에 쥔 왕관을 용광로로 던지는 일이 더 빨랐다.

철퍽!

이윽고 탐욕의 상징이었던 왕관이 용광로 안으로 빠지고.

"안 돼애애애애!!!"

부르주 5세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에인스와 부딪혀 함께 빠져들어갈 터.

에인스는 이걸 예상이라도 했는지 몸을 살짝 비틈으로써 그가 손쉽게 지나가도록 배려(?)했다.

남은 건 더러운 몸뚱아리가 안으로 빠지는 것뿐.

첨벙!

"으아아악! 뜨거어어어! 아아아아악!!"

철퍽! 철퍽! 철퍽!

처음부터 끝까지 탐욕을 버리지 못한 왕은.

"사, 살려줘! 뜨거······!! 꼬르륵······"

탐욕의 상징과 함께 '자의로' 사라졌다.

부글! 부글! 부글!

본인이 천하다고 모욕한, 공장들의 용광로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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