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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91화 (492/763)

세 얼간이 아니, 세 드워프의 황당한 요구에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어그로를 끌기 위해 바깥에서 환장의 라이딩을 하고 다녀서 그럴까, 수업을 하고 있던 학생들의 귀에까지 소식이 퍼진 모양이다.

고위급 귀족 자제들, 다시 말해 내 지인들의 귀에도 이 소식이 들어갔다는 뜻.

그 결과로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기숙사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너한테 지식 전수를 부탁했다고?"

"응."

"부패한 마키나를 갈아엎기 위해?"

"그렇다는데?"

"너는 나라 하나가 뒤집어질 수도 있는데 왜 그리 태연자약하니? 네가 아직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

사랑스러운 내 약혼녀, 마리는 무덤덤한 내 대답에 황당하다는 투로 나를 다그쳤다. 나는 그 반응에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녀의 말을 되새겨보니 확실히 나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무려 나라 하나가 혼란해질 수도 있었으니.

제논 일대기를 집필했을 때부터 이어져 온 거지만, 나는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평소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냥 상황 파악이 더럽게 느리다.

마리의 말처럼 세 드워프가 나에게 찾아온 건 단순히 자문 수준을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수준.

'뭔가 숨어있던 현자를 찾아온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숨어있지도 않고 현자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마키나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겠어요. 제가 들었던 것보다 착취가 심하군요. 언론에게는 막대한 뇌물을 먹여 소식이 퍼지는 걸 막았을 테고."

"그렇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마키나는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지도 모릅니다."

"흠······"

내가 마리에게 혼나는 동안 리나는 기아스로부터 마키나의 현황에 대해 파악했다. 그녀도 마리처럼 소식을 듣고 내 기숙사로 찾아왔다.

"그정도로 백성들을 심하게 대한다고?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리나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마찬가지로 기숙사에 찾아온 세실리가 화를 냈다.

성군의 면모를 지닌 그녀로서 마키나의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마족은 공통된 상처를 공유하고 있어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설령 상처를 건드려도 처음에는 허허 웃으며 넘어간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었던 헬리움이 멸망하지 않고 버틴 이유는 마족의 강한 힘도 있으나 저런 성향 때문이다.

종족 단위로 거대한 비극을 안고 있다보니 왕은 결코 백성을 압박하지 않고, 백성은 그런 왕에게 고생한다며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당장 테르스 왕국에서 혁명이 일어난지 100년도 지나지 않았잖아. 그런데 마키나의 왕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그건 마키나의 교육 사정과 특유의 폐쇄성 때문일 거야. 내가 듣기로 마키나에는 교육 기관이 따로 없거든. 교육보다는 일손을 더 늘리기 위해 공장이 되는 편이지. 그래서 바깥 사정에 대해서 거의 모를 거야."

"뭐?"

리나의 대답에 세실리가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헬리움 같은 경우는 반강제적으로 고립된 반면 마키나는 자의적로 폐쇄된 셈이니까.

또한 기초적인 교육 기관은 웬만해서는 작은 나라라도 존재한다. 아카데미가 일종의 대학교인 셈이다.

하지만 마키나는 그러지 않았다. 손재주는 매우 좋으나 기초적인 학문이 떨어져서 다른 나라에 조언을 받는다고.

냉장고나 온수 조절 장치 같은 '마법 물품'에서 '마법'은 대부분 엘프가 대신 처리해주는 것으로 안다.

"헬리움의 공주시여. 우리 드워프들은 대장간에 한 번 들어간다면 웬만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손재주가 너무 좋은 나머지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손을 움직이는 편이죠."

"그, 그렇군요. 제가 드워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서 처음 알았네요."

기아스의 정중한 설명에 세실리가 떨떠름해 했다. 마족이 국제로 사회로 진출했다지만 아직 2년밖에 지나지 않아 모르는 게 더 많다.

"모를 수밖에 없지. 드워프는 마키나가 아닌 이상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당장 헤일로 아카데미에서 거주하는 드워프도 거의 없잖아?"

"미네르바 제국의 경제력으로도 못 데려오는 거야?"

"못 데려오는 건 아니야. 대신 마키나의 왕이 워낙 재수없······"

리나는 순간적으로 모욕을 하다 말고 세 드워프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평판이 나락이라지만 왕을 대놓고 욕하는 건 엄연한 실례다.

하지만 이미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평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기아스는 눈치를 보는 리나에 피식 웃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도 왕을 매달아 버리고 싶으니 마음껏 욕하십시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 손 보이십니까?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겁니다."

기아스 다음으로 한다이가 잘려나간 손가락을 보여줬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하더니 왼쪽 약지 한 마디가 사라져 있다.

이에 리나도 푸른 눈을 굴리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재수없어서 그래."

"외교를 잘한다는 거지?"

원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욕을 하면 칭찬이나 다름없다. 세실리도 그 부분을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응. 마음 같아서는 드워프 장인들을 빼오고 싶지만 안 된다고 버티고, 회유를 하자니 관세를 올려버리고, 군사적인 압박을 넣자니 생산을 중단할까봐 곤란하고. 외교적으로 이득을 보기 힘든 나라가 마키나야."

마키나에서 생산되는 건 무기뿐만이 아니다. 종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물품들이 생산되는 중이다.

드워프가 제작한 물건이라 신뢰성은 보장되고 더 나아가 대량 생산까지. 물론 여기에 어마어마한 관세를 매기는 건 덤.

자원으로 깡패질을 하는 건 동서고금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했다. 마키나 같은 경우는 인적 자원이지만.

"그렇구나. 그런데 관세가 뭐야?"

"··· ···"

천진난만한 세실리의 질문에 리나가 이 뭐 병······ 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지금 머리에 온갖 번민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고립돼 있던 헬리움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겠지. 국제 외교에 발을 디딘지 이제 겨우 1년을 넘긴 상황이니까.

하지만 국가 지도자급에 달하는 인사가 저런 말을 하니 얼척이 없을 것이다.

이에 세실리는 키득키득 웃더니 리나의 어깨를 툭- 치며 잔망스레 입을 열었다.

"장난이야. 설마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봐? 아무리 헬리움이 외교에 미숙하다지만 이제 알 건 다 안다고."

"아깝네. 몰랐으면 뜯을 수 있는 건 다 뜯으려 했는데. 헬리움제 무기가 그렇게 좋다며?"

"너 그거 진심이지?"

"글쎄?"

물론 리나도 만만치 않았다. 세실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자 리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무리 사적으로 친하다지만 외교는 철저하게 해야 되는 법. 앞으로 저 둘의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리라.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무리를 하면서까지 제논을 찾아온 가치가 있나요?"

리나가 팔짱을 끼며 드워프들을 내려다 본다. 또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기 시작했다.

평소 나와 마리가 분위기를 망가뜨린다지만 리나는 제국의 황녀. 황녀로서의 위엄과 우아함은 어디 가지 않는다.

기아스는 물론, 다른 드워프들도 기백에 살짝 눌리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들이 제논을 찾아온 이상 이 소문은 부르주 5세의 귀에도 들어가겠죠. 그리고 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선전 활동을 펼쳤다면서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죠?"

"······알고 있소. 반기를 든 셈이지."

기아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나의 말마따나 이 드워프 삼인방은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

만약 내가 소문만 무성한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인'이다. 그것도 신마저 인정한 공인.

그렇지 않아도 나를 부르기 위해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었던 상황이다. 부르주 5세의 귀에 무조건 들어간다.

말 그대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 달리 말하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또 갈망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신들이 타고 온 마차. 그 마차를 타고 간다면 부르주 5세가 소식을 접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이후부터 마키나는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할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마키나는 우리 미네르바 제국을 포함해 수많은 나라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 무슨 뜻인지는 알겠죠?"

"··· ···"

리나의 설명에 드워프 삼인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그녀의 설명에는 무수한 뜻이 담겨있었으니.

사실상 대놓고 이리 말한 것과 똑같다. 드워프 삼인방이 반기를 일으키는 순간 미네르바 제국에서 손길을 뻗을 거라고.

혁명을 도와준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 혁명으로 인해 피해를 볼 드워프 장인들을 하나둘씩 빼낼 심산이다.

그것만 하더라도 미네르바 제국 입장에서는 웬 커다란 호박들이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거겠지.

굳이 모든 정황을 알려준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패를 보여줄 정도로 드워프 삼인방의 전망이 어둡다는 뜻이다.

"제이로스 혁명도 반밖에 성공하지 못 했어요. 그 덕분에 평민 의회가 출범했지만 실패는 실패. 그러나 마키나는 다를 거예요. 실패하는 즉시 주동자들은 사형. 그리고 지금보다 더 한 착취가 이루어지겠죠. 우리 미네르바 제국은 손 안 대고 코를 풀겠지만."

"··· ···"

"정말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건가요? 특히 에인스 당신은 마력 기관을 발명했으니 다른 나라에 망명해도 되잖아요."

에인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드워프 특유의 체격으로 인해 올려다 봐야 했으나 이글거리는 눈빛은 여전하다.

뒤이어 그는 한참동안 리나를 쳐다보더니 모든 이를 벙찌게 만드는 대답을 꺼냈다.

"잘못된 기계를 수리하는 것뿐인데 이유가 필요한가? 드워프로 태어나서 그런지 당장 고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기분이야."

"··· ···"

"난 내 발명품이 드워프 공장들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 줄 알았어. 하지만 탐욕스러운 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군. 놈은 마키나를 나라가 아닌 하나의 대장간으로 생각하고 있어. 우리는 망치와 모루, 그리고 곡괭이에 지나지 않지."

에인스는 잠깐 말을 삼키더니 격양돼 있는 투로 이어나갔다.

"우리는 망치나 곡괭이 따위가 아니야. 단지 진정한 창작을 원하는 드워프일 뿐. 이게 노예지, 아니면 뭔가?"

"그래서 왕이 되려는 거군요."

"아니. 나는 왕 따위 원하지 않아."

왕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에 리나는 물론, 가만히 듣고 있던 나 또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탐욕스러운 부르주 5세를 끌어내리기 위해 혁명을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나라에 지도자가 없다면 그 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제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왕은 나라의 기둥이다. 기둥을 뿌리채 뽑는다면 새로운 기둥을 갈아끼워야 하는 법.

그것을 제때 끼워주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폭삭 주저앉을 것이다.

"대신 모두가 공평하게 창작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할 뿐이지.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심취한 것도 그때문이고."

"······공산주의라 해서 모두가 공평한 건 아닙니다만? 피와 강철을 읽으시나요?"

"꾸준히 읽고 있지."

"그럼 소련의 스탈린이 어째서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 칭해지는지 생각해 보세요."

어쩐지 공산주의의 정수에 대해 알려달라 하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레닌이 공산주의를 부르짖었으니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사상으로서의 완벽에 가까워도 정치 체제로서는 한계와 잠재력이 명백하다.

민주주의는 '경쟁'을 통해 빈부격차가 발생할지언정 잠재력이 높지만, 공산주의는 모두에게 공평히 배분됨으로써 경쟁력을 약화시키니.

소련도 처음에는 공산주의와 스탈린의 5개년 계획 덕택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의 냉전에서 패배했다.

"무엇보다 국가가 존속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건 문명을 건립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에요."

"그럼 기아스 네가 왕 해라. 난 연설 같은 거 못 하니까."

"뭐?"

"5년 정도만 해.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아니 뭔······"

에인스의 무대포 요구에 기아스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그래도 소리치지 않는 걸 보면 에인스를 믿는 모양.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진행된 상황이나 비전이 있는 건 분명하다.

'최초의 드워프 서기장이 등장하는 건가.'

아니면 저 3명이 같은 권력에 서서 각자의 일을 맡는 구조일 수도 있다.

"이래나 저래나 고통받는 드워프 공장들을 해방시키는 건 똑같아. 부르주아라고 했던가? 그놈들이 모든 권력과 공장들을 차지하는 게 아닌, 한 명 한 명이 진정한 의미의 장인이 되어 창작하는 것. 만약 창작을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건 그것대로 공평한 거니까. 나는 그런 사회를 원해."

"··· ···"

"그러니 만약 혁명에 성공한다면, 나는 마키나 전체에 마력 기관의 설계도를 뿌릴 거야."

"······네?"

사뭇 충격적인 에인스의 발언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마력 기관 설계도를 마키나 전체에 뿌린다니.

물론 설계도 하나만 보고 뚝딱뚝딱 제작하기는 힘들다. 어디까지나 드워프가 아닌 다른 종족의 기준에서.

하지만 '드워프'라면? 손재주가 선천적으로 뛰어나며 각종 기계들까지 섭렵 중인 장인들이라면?

공공의 장인 즉, 공장들이라 부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갖춘 드워프 공장들이라면?

"모든 드워프들이 공평한 기술을 가지고, 다양한 창작을 시도할 수 있는 사회."

에인스는 두 손을 불끈 쥐면서 본인의 사상을 밝혔다.

"그 창작들로 하여금 경쟁 욕구를 일으키지만, 그런 장인들을 올바른 곳으로 이끄는 사회."

정말이지.

"난 그런 사회를 원하고 있어."

오직 드워프만이 가능한 공산주의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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