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89화 (490/763)

드워프의 나라, 마키나에서 시위가 발발했다.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된 소식이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위가 터진 거라 여러모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키나는 나에게도 꽤 중요한 나라였으니까.

미네르바 제국은 경제력이 가장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으나 생산력은 생각보다 뒤떨어진다.

생산력은 경제력과 직결되긴 하지만, 미네르바 제국의 경제력이 강한 이유는 촘촘한 경제 구조 덕분이다.

최초로 '중앙은행'을 발행하여 국고 관리를 빡세게 한 건 물론이고 심지어 금융을 관리하는 기관까지 존재한다.

생산력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 미네르바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생산력과 특유의 경제 구조가 합쳐져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비록 악마 숭배자가 '위조 화폐'를 찍어낸 탓에 휘청이고 있다만 미네르바 제국이어서 망정이지, 다른 나라였다면 대공황으로 직결됐을 터.

하지만 이런 미네르바 제국이어도 '생산력' 앞에서는 마키나에 한참 뒤떨어진다. 약간 과장을 보태 한창 몸집을 불리는 소련과 다름없다.

더군다나 마키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 명이 한 명이 장인들이다. 생산이 부족하다? 길 가다가 아무나 골라서 투입시키면 끝.

인간들에게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드워프에게 있어서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장인의 종족이라 할 수 있다.

[마키나의 국왕, 부르주 5세. 아무 일도 없었다.]

[시위대는 현재 해산되었으며 다시 일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장인의 종족이라 해서 '기계'는 절대 아니다. 이번에 터진 시위 또한 쌓이고 쌓인 것들이 폭발한 것이다.

신문에서도 보듯이 시위는 금방 종료되었으며 국왕이 직접 아무 일도 없다고 답변했으나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거 분명 탄압했다고. 시위대를 거침없이 폭력으로 대하거나 감옥으로 끌려갔겠지.

지구에서도 비슷한 역사 아니, 너무나도 흡사한 역사가 있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산업 혁명이 터지기도 전에 발발했다는 게 차이점이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생산력 아래에는 이런 어둠이 숨어있다. 마키나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금 인쇄소 중 한 곳은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도저히 수요를 따라갈 수 없더군요."

신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때 앞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며 앞을 쳐다봤다.

평소와 달리 그늘이 진 얼굴을 하고 있는 머스크. 그동안 꽤 고생했는지 볼이 홀쭉해졌다.

시위, 그것도 제지술과 관련된 드워프 공장들이 시위를 했기에 출판사에게도 영향이 갔을 터.

듣자하니 시위가 발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게 됐단다. 안 그래도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가동이 멈추기 직전이라고.

현재 피와 강철뿐만 아니라 제논 일대기도 여전히 출판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책'의 전성기라 봐야된다.

원래 평민들은 책을 잘 읽지 않았으나 제논 일대기 이후 독서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문학과로 진입한 학생들의 숫자가 대폭 상승한 건 덤.

제논 일대기가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책에 가까워진 사람들이 폭증한 것이다.

"인쇄소는 괜찮아요. 그러면 신간은······"

"죄송하지만 원고를 주셔도 당장 인쇄하긴 힘들 겁니다. 여유분이 쌓이려면 최소 보름은 필요합니다."

종이 생산 즉, 제지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조하는 기계가 있더라도 사람의 손길을 무조건 탄다.

제논 일대기부터 시작해서 피와 강철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종이의 공급. 이건 말 그대로 드워프 공장들을 갈아넣은 것이다.

다시 말해 근본적인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뜻. 나는 그저 책만 쓰고 있는데 그런 폐해를 낳았다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근데 이때까지 이걸 왜 모르고 있었지?'

처음 마키나를 조사했을 때와 달리 병폐가 예상보다 심하다. 언론 통제가 있다지만 알려진 정보, 그러니까 드워프 공장들의 피해를 거의 알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만약 마키나의 실태를 보았다면 소련 건국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적었을 터.

내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머스크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디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조금 의아해서요."

"뭐가 의아하다는 거죠?"

"어째서 저에게 이런 소식이 닿지 않은 거죠? 드워프 공장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절을 했을 텐데."

당장 내 주변에는 국가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지인들이 널려있다. 드워프는 없어도 실태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실태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아예 몰랐다는 부분에 가깝다.

마키나가 그만큼 정보 통제를 잘한 것도 있겠으나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다.

"······너무 복잡해서 딱 잘라 말하기 어렵군요. 일단 근본적으로는 혁명의 싹을 자르려는 거겠죠."

내가 의문을 꺼내자 콧수염을 잡아당기며 고민하던 머스크가 의견을 꺼냈다.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질문을 건넸다.

"이것도 제이로스 혁명 때문에?"

"예. 만약 마키나까지 혁명이 발발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안 그래도 악마 숭배자 때문에 뒤숭숭한 지금, 사회 분위기상으로 너무 좋지 않은 타이밍이죠."

"음······"

나는 일리 있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이 사람은 장사가 아니라 정치를 했어야 됐다.

만약 악마 숭배자로 인해 정세가 혼란스럽지 않았다면 옳다구나! 하면서 마키나를 공격했겠지.

명분만 없었지 안 그래도 주변 국가에게 밉보이던 마키나였는데 공격할 건덕지는 많았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현재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특히 미네르바 제국은 악마 숭배자로 몸살을 끙끙 앓는 중이다.

다행히 내가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어느 정도 수그러 들었지만 여러모로 모욕을 당한 상황.

여기에 마키나에서 혁명까지 터진다면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도 있다.

"이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작 님의 존재일 겁니다."

"저요?"

"네. 드워프 공장들이 생산을 멈춘다면 자연스레 작품들의 출판이 늦어지죠. 만약 아이작 님의 명성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낮다면 모를까, 너무 높은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손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마 부르주 5세도 이 점을 노려 제압했겠죠."

이른바 명분이라는 소리다. 내 작품이 늦게 나올수록 너희들이 손해 볼 텐데? 라며 압박을 넣었겠지.

이것 또한 신권이 너무 강한 나머지 발생한 참사라 볼 수 있다. 내가 뭐라고 해도 마키나 쪽에서는 억울하다며 항변을 하겠지.

자신들은 그저 신을 위해 한 것뿐이다. 신을 위해 노력한 건데 왜 뭐라고 하는 거냐. 우리는 신의 천벌이 무섭다.

그 사람들을 향해 '좆까'라고 시원하게 답해주고 싶다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시대상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사람이 나오기 힘들 테고.'

마르크스도 산업 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를 보고 본인의 철학을 논파했으며 레닌도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다 보니 인간들은 물론 다른 종족도 비슷한 사상을 지닌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

하물며 마키나는 정보 통제가 확실하여 외국의 사람들이 실태를 알기 어렵다. 당장 나조차 몰랐지 않는가.

지금도 시위가 발발했으나 '폭동'으로 취급됐으며 국가 차원에서 깔끔히 통제당했다.

만약 인터넷이 존재했다면 어느 정도 알아차렸겠지. 허나 이 세상은 오직 소문과 언론으로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주변의 인맥들이 굉장하여 진실을 눈으로 볼 수 있던 거지,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공장들이 호소하는 것조차 단순한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지금 머스크가 나에게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드워프들이 같잖은 일로 시위를 해댄 탓에 생산이 느려졌다고.

사실 그 같잖은 일이 무리한 노동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머스크는 평소 직원을 잘 대해주기로 유명하다.

이에 나는 그를 시험할 겸 정보도 알아볼 겸 질문을 꺼냈다.

"머스크 씨."

"네. 말씀하시죠."

"머스크 씨는 직원을 하루에 몇 시간씩 근무시킵니까?"

"······?"

내 질문에 눈을 깜빡거리는 머스크. 무슨 의도로 질문한 건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볼 뿐이다. 아무런 의도도 들어있지 않다는, 무해한 표정.

그에 머스크는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속 시원하게 밝혔다.

"당직이 아닌 이상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시킵니다. 최근에는 너무 바빠져서 야근이 잦지만 수당은 두둑히 지불하고 있죠."

"월급은 얼마나 되죠?"

"직급과 직위에 따라 다릅니다. 회계사 같은 고급 인력은 한 달에 80골에 가까운 임금을 지급하죠. 세금을 계산해야 되는 날이 온다면 추가 수당을 지급합니다."

"만약 직원이 사고를 당한다면요?"

"저희는 출판사라서 사고를 당할 일이 거의 없지만······ 제가 악마 숭배자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를 아십니까?"

알다 마다. 그 일 때문에 신전을 산다는,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일을 저지르려고 했지.

지금이야, 우리 영지로 회사를 옮겼으나 그만큼 위험했던 사건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치료비는 물론이거니와 반년 정도 휴식을 권고합니다. 물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고요. 한 번 당하니까 트라우마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러면······"

나는 잠시 말을 흐렸다가 전생,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떠올렸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긴 해도 최악이었던 걸로 안다.

"하루 16시간 근무."

"네?"

"휴식 시간도 없고, 근무 중 사고를 당해도 일절 보상도 없음. 어린이도 근무가 가능하나 조건은 같습니다."

"··· ···"

"만약 이런 직장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머스크는 자기가 뭘 들었나 싶었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직원을 원하는 거지, 노예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렇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요?"

"전 사람 목숨을 사고 팔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 전에 그런 상단이 존재하기나 합니까?"

정말 그다운 대답이라 생각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피식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워프 공장들의 착취는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며칠이 소요되겠지.

"저야 모르죠. 아무튼 신간은 천천히 발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제 이름을 빌미로 이상한 짓을 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겠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천벌 받을 겁니다."

"고작 이런 일로 신들이 개입하지는 않을 겁니다."

신이 개입할 정도면 광신에 휘말린 세이비어 정도겠지. 실제로 내가 성자도 아니고.

물론 안전장치는 걸어놓을 필요가 있다. 정보통제가 막강한 마키나에서 무슨 짓을 할지 전혀 모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케이트 씨의 도움이 필요해. 그런데 이 여자는 대체 언제 오는 거지?'

케이트가 떠난 지 벌써 3개월이 지나갔다. 연락도 없이 도통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기다려봐야지.'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자. 나는 언론에 뿌릴 말을 머스크에게 말한 후, 미리 준비했던 물건을 꺼냈다.

머스크도 내가 물건을 테이블 위로 올리자 뭔지 알겠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그림인가요?"

"네. 어차피 신간도 늦게 나올 텐데 삽화를 미리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히틀러와 구데리안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1호 전차를 바라보고 있는 삽화.

전차가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이었기에 나름 중요하겠지만 상관없다. 처음에는 다들 이걸 보며 뭐하는 물건이지? 싶을 테니까.

루미너스는 드워프 3명이 전차를 발명하여 우리 영지로 온다고 했지만.

"괜찮죠?"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게 언제인지는 말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다.

*****

[마키나의 시위를 본 제논의 일침. 나를 빌미로 공장들을 고생시키지 마라.]

[드워프 공장들을 위해 피와 강철은 당분간 늦은 주기로 발간될 것.]

[만약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마키나에서 발발한 시위가 전세계로 퍼져나가 아이작에게도 닿았다.

아이작은 머스크와 의논했던대로 발매 주기를 늦추는 한편, 공장들의 편의를 위해 본인을 이용하지 말라며 일침을 날렸다.

당연히 이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나갔으며 마키나 또한 불평을 가질지언정 수긍했다.

신의 축복을 받는 성자와 감히 대등하게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칫했다가 주변 국가에게 집중 포화를 맞을 수도 있었으니.

"더 움직여!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이 쓸모없는 놈들!"

"조, 조금만 쉬게 해주시면······"

"공장 주제에 말대꾸를 해?!"

"아아악!"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공장들의 대우가 좋아진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항심을 키우지 않겠다는 듯, 채찍질만 더 강해졌다.

고된 노동으로 쓰러져 가는 공장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가고, 공장주들이 그들에게 행하는 폭력은 더 강해졌다.

당근? 당근 따위는 없다. 공장 한 명이 쓰러지면 다른 공장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기계의 '부품' 같은 존재. 공장들은 피로가 쌓이고 쌓여도 말없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우리에게 자유를! 우리에게 창작을! 우리에게 휴식을!"

"부르주 5세는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 어린애에게 망치가 아닌 펜을 쥐어달라!"

하지만 그렇다 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난번 발생한 시위가 무자비하게 탄압된 걸 지켜봐서 그럴까.

드워프 공장들은 시시때때로 광장이나 길거리에 모여 거칠게 항의했다.

이제는 종이를 제작하는 공장들이 아닌, 각 분야의 공장들이 한데 모인 상황.

국가가 자신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직접 목도한 이상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원 발사!!"

국가는 그보다 더 큰 폭력으로 화답했다. 제압을 위해 특수 제작된 화살이 발사되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공장들에게 쏘아진다.

"으아아악!!"

"도, 도망쳐!"

"우리가 뭘 했는데! 우리가 뭘 했냐고!"

광장에서 왕궁으로 전진하던 시위대는 쏘아지는 화살비에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화살 끝이 뭉특하게 제작되어 사망자는 없었다.

"아아아악! 내, 내 눈! 내 눈!!"

"혀, 형제! 빨리 사제! 사제를 불러줘!"

하지만 사망자만 없을 뿐이지 부상자가 속출했다. 심지어 개중에는 화살 끝이 눈에 적중당해 실명된 드워프마저 존재했다.

이처럼 국가의 무력 앞에서 시위대의 힘은 무력하기 그지 없는 일.

이제는 시위가 아니라 '혁명'이 필요할 때. 드워프들도 슬슬 그것을 직감했으며 사회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더이상 숨 죽여서는 안 되오! 우리가 무엇을 잘못 했소? 우리가 무리한 것을 원했소? 우리는 단지 휴식과 시원한 맥주만 필요했을 뿐. 이런 대우를 원한 게 절대 아니오!"

"옳소! 옳소!"

"역시 배운 사람이 말은 참 잘하는구만!"

그리고 혁명을 위해서는 제이로스 혁명이 그러했듯, 확실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현재 단상 위에서 열심히 연설하는 드워프, 기아스처럼.

에인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기아스는 단상 앞에 서서 열광 중인 공장들을 둘러봤다.

그동안 모진 핍박과 열악한 환경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얼굴들. 하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는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 불빛들이 모이고 모인다면 국가마저 태울 수 있는 거대한 화마가 될 터. 기아스는 주변의 호응에 만족하며 미소를 지었다.

삐이이익!

하지만 그 미소조차 얼마 가지 않았다. 기아스를 포함해 시위대는 호루라기 소리가 귀에 들어오자 고개를 돌렸다.

"저기 반동분자들이 있다! 어서 체포해!"

순찰 중이었던 병사에게 제대로 걸렸다. 그 숫자도 심상치 않다.

최근 시위가 자주 발생하면서 부르주 5세는 순찰을 대폭 강화했다. 말 그대로 찍어누르기 위한 탄압.

"부르주 5세의 노예들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전부 도망쳐! 아직 싸울 때가 아냐!"

병사들의 등장에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는 더이상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시위대는 더이상 국가로부터 희망을 버린지 오래.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기아스도 병사들의 손에 잡히기 전에 서둘러 빠져나왔다. 골목길 사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추적을 뿌리쳤다.

"휴우······"

빠져나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기아스. 뒤이어 그는 골목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다행히 뒤에 달라붙은 병사는 없다. 조금 시끌시끌하지만 자신을 잡는다는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기아스는 가슴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재질을 보아하니 신문의 일부인 걸로 추측됐다.

"전차라······"

그의 손에 쥐어진 종이의 정체는 다름아닌 전차, 그러니까 아이작이 선공개한 삽화였다.

히틀러와 구데리안이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는 전차. 하지만 기아스는 히틀러와 구데리안이 아닌, 전차 그 자체에 집중했다.

'에인스가 제작하고 있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에인스도 그림과 비슷한 병기를 제작 중에 있다. 마력 기관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강철 요새.

강력한 화력을 위해 상층부에는 '대포'를 장착하고, 그 아래에는 장전이 가능한 석궁을 탑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진척에 애를 먹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거칠디 거친 마키나의 도로 사정이다.

바퀴를 이용하자니 너무 덜컹거려서 조작이 힘들었으니까. 바퀴 하나 때문에 더이상 나아가질 못 하고 있다.

'이런 식의 구조라면······'

기아스는 전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한궤도에 집중했다. 만약 이런 형식의 바퀴라면 험지에서도 충분히 운용할 수 있다.

'어떻게?'

제논 즉, 아이작은 어떻게 이런 병기를 생각한 것일까. 에인스가 발명 중인 강철 병기와 유사해도 너무 유샤하다.

아니. 유사한 걸 넘어 막히는 부분까지 뻥! 뚫어줬다. 기술로만 따지자면 한 단계 앞서 있다.

제논 일대기에서의 증기 기관차도 그렇고, 지금의 전차도 그렇고.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인가?'

본인은 아니라고 했으나 이제는 그것마저 못 미덥다. 미래의 지식이 없는 이상 이런 강철 병기는 상상조차 못할 터.

'아무렴 상관없다. 혁명의 구심점이 될 수만 있다면.'

기아스는 그림을 품 속에 소중히 넣었다. 에인스와 한다이는 전차 발명에 열중하느라 바깥 일은 거의 모르고 있다.

언변이 뛰어난 자신에게 혁명의 구심점이 되어달라고 요청했을 뿐.

'이것만으로 충분해.'

수십 년간 기술을 연마한 장인에게 필요한 건.

'우리도 무력을 갖출 수 있다.'

단 한 장의 설계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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