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오해로 인해 결국 당분간 묻어두기로 정했다.
대한민국을 무슨 디스토피아 소설 속에 나올법한 나라로 착각하니 조금 웃기긴 하다. 소말리아를 묘사하면 아주 까무러치겠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이지만 최강대국인 미국조차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종차별부터 시작하여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띠는 도시.
군인을 향한 예우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나 잘 살펴본다면 문제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대우마저 시궁창이었다면 진짜 반란이 터졌을 거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느라 파병을 가야하는 일이 잦고, 그곳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목숨마저 잃는다.
괜히 고등학교까지 찾아와서 모집 광고를 하겠나. 군인에게 있어서 목숨만큼 중요한 '명예'를 얻을 수 있는데다가 그에 대응하는 대우까지 받으니 입대하는 것이다.
그래봤자 대한민국보다는 훨씬 낫지만. 애당초 국방비 하나에만 1000조를 꼴아박는 나라다.
아버지에게 들으니 미네르바 제국도 국방비에 예산을 쏟아붓는 중이라고.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지만 악마 숭배자로 인해 약 30%를 박는단다.
심지어 이것도 경제력이 좋은 미네르바 제국이어서 망정이지, 다른 나라는 최대 50%까지 박는다고.
대한민국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10%였던 걸로 아는데 이상하리만치 많다.
"현역 시절 나에게 충당되는 보급만 하더라도 성인 남성 기준 10명 분량이었단다. 당장 너마저 한 끼에 3인분씩 먹지 않느냐."
"아."
경제 구조가 단순한 것도 있으나 기사라는 직종 자체가 문제였다. 기사는 마나를 사용하는 군인이며, 마나는 거저 생기는 게 아니다.
호흡을 통해 마나를 쌓을 수도 있지만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바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량이 곧 마나라는 의미.
지구의 고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열량을 축적하는 식으로 진화했듯이, 이 세상의 인류도 비슷한 과정을 밟은 모양이다.
따라서 기사가 하루에 먹는 식사량은 일반인이 보기에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당장 나도 한 끼에 3인분씩 먹는다.
기사도 아닌데 왜 이리 많이 처먹냐고 묻는다면 밤일이 너무 힘들어서, 라는 대답밖에 못 하겠다.
"그런데 하루에 10명 분량이었다고요? 의외로 저랑 비슷하시네요?"
"마나를 무식하게 때려박는다면 소모되는 마나양이 무시무시하단다.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마나가 없도록 압축하는 게 우선이지. 그게 더 강한데다가 효율도 좋거든."
"아델 누나도 할 수 있어?"
"아니. 내가 그걸 하려면 집중해야 돼. 숨 쉬듯이 하려면 몇 년은 단련해야 될 걸?"
"오······"
나는 눈을 반짝거리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내 눈빛에 부끄러우셨는지 말없이 헛기침만 하셨다.
"그건 그렇고 기사가 먹는 식사량은 어마어마하네요. 전쟁이 터졌을 때 보급로가 끊긴다면 재앙이겠어요."
"보급로가 끊기면 지휘관에게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지. 안전하게 후퇴하던가, 아니면 최후의 일격으로 돌진하던가. 현명한 자라면 전자를 선택하겠지. 최후의 일격에 성공해도 보급 때문에 물러나야 하니까."
보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다. 나폴레옹조차 러시아의 청야전술에 당했으며 나치 독일도 보급 때문에 패망했다.
대부분이 화려한 전투에 눈을 뺏겨서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군대를 조지기 쉬운 가장 좋은 방법은 보급을 없애는 것이다.
당장 한 끼만 굶어도 시발시발거릴 텐데 며칠을 굶는다면? 전차나 자동차는 연료가 없으면 깡통이 될 뿐이지만 기사는 사람이라 죽는다.
"혹시 네 세상에도 보급을 경외시하다가 대차게 망한 장군이 있었느냐?"
"많죠.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가 어렵네요."
삼국지의 조조는 보급 잘 털어먹기로 악명이 높았고, 마속은 명령을 어기고 이상한 곳에 진을 쳤다가 보급로가 끊겨 제갈량이 직접 목을 쳤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승리한 이유도 이순신의 명량 해전 덕분이다. 명량 해전 하나 덕분에 일본군의 보급로가 완전히 박살나 승리를 거머쥐었으니.
2차 세계 대전은······ 우리의 독립운동가 무타구치 렌야 하나로 귀결된다. 아주 주옥 같은 명언을 남긴 건 덤이고.
내가 환생하기 직전까지 러시아가 보급을 등한시하다가 우크라이나에게 개털리고 있던 걸로 안다.
"아버지는 없었어요? 현역 시절 때는 지금과 달리 보급이 열악했다는데."
"보급이 열악한 게 아니라 보급로가 취약했지. 야만수인 놈들이 틈만 나면 보급을 털어먹었거든. 지금은 누가 보급을 담당하는지 몰라도 아주 깔끔하다고 들었다. 덕분에 새로운 소초도 건설하고 온수도 충분히 나온다더구나."
"다행이네요."
그 사람 마셜로 알고 있다. 지금도 편지를 주고 받고 있는데 마티우스 후작이 아끼는 이유가 보급을 잘해도 너무 잘하기 때문이라고.
포병은 말 그대로 꿈이자 이상이었으며 적성과 재능은 보급이다. 마셜이 무례를 저질러도 마티우스 후작이 커버를 치는 것도 이 덕분이다.
훗날 100만 대군에게 아이스크림마저 보급하는 조지 마셜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혹시 네가 지금 쓰는 책도 보급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있어? 실제로 터진 전쟁이라며."
나와 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델리아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슬슬 피와 강철에서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이는 중이라 궁금하겠지.
아델리아는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전선에 나서는 기사에 가깝지만 그렇다 해서 교육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듣자하니 아카데미에서 보급로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때는 죽자 살자 지키라고 교육 받는다고.
이뿐만이 아니라 보급로가 끊겼을 때를 상정하며 모의전투를 하는 등. 엘리트를 배출하는 헤일로 아카데미인만큼 다양한 군사학을 전수받는다.
"누나.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많아. 내가 살던 곳도 다를 건 없어."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아델리아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궁금해졌는지 살살 눈치를 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하늘처럼 청명한 눈동자에 짙은 호기심이 새겨져 있다.
"으음······ 그리 말하니 더 궁금해지네. 조금만 알려줄 수 있어?"
"나도 솔깃하구나. 여기도 보급을 말아먹어서 패배하는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너희 세상은 어떤 식으로 망했는지 궁금해."
흥미가 동했는지 아버지마저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그들의 부탁을 듣고 잠깐 고민했다.
보급 때문에 망한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보급 자체를 등한시해서 전쟁을 말아먹은 케이스는 생각보다 드물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나치 독일의 보급선이 너무 길어져서 그런 거지 처음부터 무시한 건 아니다.
반대로 어떻게든 보급을 하기 위해 기를 썼다. 그 보급품 안에 콘돔이나 샤워용품이 들어있던 건 비밀 아닌 비밀.
임팔 전투가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가 보급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급 때문에 망한 케이스는 너무나도 많아요. 하지만 보급을 아예 상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보급을 상정하지 않는다고? 밥이 떨어지면 풀이라도 뜯어먹으라는 소리냐?"
아버지가 어처구니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표정에는 쉬이 믿지 못 하겠다는 감정이 담겨있다.
"네."
"······?"
그런데 저게 정답이었다는 게 함정. 내 간결한 대답에 아버지는 물론, 아델리아마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기가 뭘 들었는지 곰곰이 되새기는 듯한 반응. 나는 그걸 보며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사이 아버지는 명료한 내 대답에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아이작? 이 아비가 농담을 한 건데······"
"진짜에요. 풀 뜯어먹고 전진하라고 했어요."
"주변에 먹을 수 있는 풀이 많다면야······ 아니. 그래도 풀독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혼란해하시는 우리 아버지. 그만큼 상식 밖의 이야기라 믿기 어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임팔 작전 당시 통과하려던 지역은 평범한 숲이 아니라 정글이다. 생태계의 보고인 것과 달리 녹색 사막이라 칭해지는 지역.
"이뿐만이 아니라 통과해야 하는 곳이 정글이었어요."
"정글? 정글이라면 풀은 몰라도 사냥을 하면 되지 않느냐? 듣기로는 온갖 짐승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걸로 안다만. 물론 보급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부터 잘못된 거고."
의외로 아버지는 괜찮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그가 근무했던 곳이 북부라는 걸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글에 대해서는 정말 단순한 부분만 알고 계실 가능성이 높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정글은 딱 아버지 수준이었으니.
이에 대해 쉽게 설명하려던 찰나, 아델리아가 입을 떡 벌린 채 기 막혀 하더니 다급히 물었다.
"저, 정글이라고? 주변이 죄다 녹색인 정글?"
"응? 누나는 뭔가 알고 있나 봐?"
"당연하지. 재학생 시절에 그곳에서 시험을 쳤거든. 그런데 정글 속을 행군하면서 보급조차 안 했다고? 그냥 싹 다 죽으라는 말인데?"
기가 찬다는 아델리아의 설명에 아버지가 그녀에게 쳐다보며 질문했다.
"정글이 그렇게 험난한 곳이냐? 기사 정도 된다면 괜찮을 텐데."
"남작 님이나 저와 같은 기사들, 그것도 소수라면 활약하기 적합한 곳이에요. 하지만 일반 병사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눈에 보이는 건 죄다 독이 있거든요. 스치기만 해도 풀독이 오르는 식물은 물론, 만지기만 해도 호흡이 정지되는 개구리까지.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위험해요."
"춥기만 한 북부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곳을 통과하는데 보급마저 상정하지 않는다면······"
"미친 사람이죠. 병사들을 지옥으로 등 떠민 수준을 넘어 발로 찬 수준이에요."
대충 이해한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뒤이어 아델리아로부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진지하게 말하셨다.
"그 사령관 부하들한테 목은 안 잘렸니? 나 같으면 진작에 목을 자르고 후퇴했을 텐데?"
"위계질서가 워낙 엄격해서 안 잘렸어요. 오히려 자기 잘못은 없다며 떳떳하게 굴었죠."
"뭐 그딴 머저리 같은 놈이 다 있느냐?"
중일전쟁까지 발발시킨 위인(?)입니다, 아버지.
나는 상식이 모조리 파괴되는 중인 아버지와 아델리아를 번갈아 보다가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우우웅-
그때 내 귓가에 무언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어왔다. 이 진동 소리는 익숙하디 익숙하다.
저택에서 기숙사로 물건을 텔레포트시킬 때 나오는 소리였으니. 이때까지 필요한 물건은 이런 식으로 받았다.
원고를 전송할 때도 마찬가지. 지금은 휴식기를 가졌기에 원고를 보낼 일이 없어서 방치하고 있었다.
"잠깐만. 내가 가져올게."
아델리아는 물건이 오자마자 자기가 먼저 움직였다. 이어서 그녀가 받아온 물건을 보며 반색했다.
네모반듯한 물건이 반듯하게 포장돼 있다. 내 전용 그림 노예······ 아니, 삽화가 칼즈가 보낸 캔버스일 터.
나는 아델리아로부터 캔버스를 받은 후 포장지를 조심스레 뜯기 시작했다. 내가 포장지를 뜯자 아버지와 아델리아가 시선을 집중한다.
"우와······ 역시 잘 그리네."
"뭔데?"
"한 번만 보여주겠느냐?"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두 사람이 어서 보여달라 부탁했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감상하다가 테이블 위에 캔버스를 올렸다.
"이게 뭐야? 이 사람은 히틀러인 것 같고 이 사람은······"
"사람도 사람이지만 이건 대체 무엇인 게냐? 네가 저번에 말해줬던 그거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거 맞아요."
그림의 정체는 정말 간단하다. 대신 칼즈가 조금 고생했겠지.
"이 사람은 히틀러, 그리고 제복을 입은 사람은 하인츠 구데리안이에요. 마지막으로 이건······"
히틀러와 구데리안.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전차'들이죠."
그들은 공장에서 생산 중인 크고 아름다운 전차들을 지켜보고 있다.
'폴란드한테도 다 터져나가지만.'
괴물 중의 괴물인 티거가 등장하려면 한참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