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86화 (487/763)

아버지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무인인 건 틀림없지만 동시에 밑바닥부터 시작한 진취적인 인물이다.

사실 운이 억세게 없다고 봐야 하는 것이, 현 황제였던 베리트의 호위 기사로 있다가 정치 싸움에 휘말린 나머지 북부 지역으로 발령났다.

그곳에서 온갖 지옥이란 지옥을 다 겪으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결과적으로 북부 지역을 안정시켰다.

당시에는 보급은커녕 말 그대로 사람만 갈아넣던 곳이라 엄청 끔찍했다고. 다행히 지금은 보급이 원활하여 인력을 갈아넣을 이유가 없어졌다.

전쟁에 나서서 싸운 군인들은 하나 같이 이리 말했다. 적과 싸우는 것보다 무서운 건 굶주림이라고.

여기에 '동장군'이라 칭하는 겨울의 한파까지 몰아치는 순간 어마어마한 손실이 발생한다. 그런데 북부 지역은 따뜻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춥다.

이런 열악한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어서 그럴까. 여러모로 군대스러운 일화들이 끊이지 않았다.

"아까 전에 대검을 새한테 던졌다가 꽂힌 채로 그대로 날아갔다고 했었지? 잘 생각해 보니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구나."

"어떤 거예요?"

"선임이 비행 몬스터에 납치됐다가 겨우겨우 살아돌아온 일. 그 일로 며칠간 식량 문제를 덜었지."

"··· ···"

헌데 스케일이 장난 아니더라. 나도 최전방에 근무한만큼 '몬스터'에 비견되는 생물들이 많다는 건알고 있다.

예를 들어 날개가 멧돼지만한 독수리라던가, 자동차만한 멧돼지라던가, 손바닥만한 나방이라던가.

하지만 이곳은 '판타지' 세상.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수리는 익룡마냥 사람을 낚아챌 정도로 거대하고, 멧돼지는 코끼리만하다. 마지막으로 나방은······ 더이상 설명을 생략한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대체 어떤 인외마경이 펼쳐져 있을까.

"······그런 곳에서 근무할 수 있어요?"

"평범한 기사면 힘들겠지. 네이비 기사단만 가능한 일이란다. 너도 전방에서 근무했다 했으니 마나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조건이 좋았을 것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

소초를 포함해 천국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서 체력이 좋아지긴 했다. 신체 검사도 1등급으로 나왔고.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UDT나 707 같은 특수부대가 아니다. 환경이 개 같은 거지 전문적인 훈련은 따로 필요없다.

하지만 북부 지역은 '최소' 특수부대가 근무해야 되며, 심지어 자칫하면 크게 다치거나 죽는 곳이다. 전방에서 근무한 나조차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새삼 아버지가 더 존경스러워지네요. 형하고 누나도 그렇고."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다치는 일은 없을게다."

"그런데 군대는 별의별 같잖은 이유로 다치잖아요. 아버지도 적이 싼 똥을 밟으셨다가 뒤통수가 깨지셨고."

"크흠.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민망한지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하시는 아버지. 평소 근엄했던 아버지가 저런 반응을 보이시니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버지와 이런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정체를 숨겼을 때는 그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뿐이었지.

아버지는 평생을 군에 몸 담았던 분이고, 그에 반면 나는 학자에 가깝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공통된 분모가 거의 없다.

옛날에 나를 어떻게든 기사로 키우려 노력했으나 당시 내 재능이 처참해서 포기하셨다. 물론 덕분에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지만.

이후에도 가끔 대화를 몇 마디 주고 받고 끝냈지 지금처럼 길게 한 적은 없었다. 벌써 의자에 앉은지 1시간이 넘어가는데 서로 즐겁게 담소를 주고 받는 중이다.

'지뢰는 최대한 밟지 말아야지.'

하지만 아버지는 끔찍한 환경에서 피 말리게 싸웠던만큼 괴로운 기억도 많다. 소위 지뢰가 엄청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새한테 잡혀갔다는 그 분은 지금도 연락하고 계세요?"

"죽었다만."

"··· ···"

바로 지금처럼. 나는 담담하게 대답한 아버지에 입을 조개처럼 꾹 다물었다.

아버지와 함께 근무하던 동료는 몇 명 없다. 대부분 전부 죽었거나, 후유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둘 중 하나다.

어찌 저찌 살아남은 몇몇 동료들은 아버지처럼 은퇴를 했거나 교관으로 활동 중이라고.

최대한 지뢰를 피하고 싶다만 현역 시절이 워낙 괴랄해서 한 번 삐끗하면 터지는 수준이다.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된단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의 숙명이잖느냐. 나야, 강제로 전출된 입장이라 욕이란 욕은 다 했지만 그곳에서 근무하던 동료들은 사명감을 띄고 있었지."

아버지는 내가 당황하자 괜찮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여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잠에 들기 위해 매일매일 술을 들이키고 신전에 방문했던 분.

지금은 어느 정도 트라우마가 해소되었는지 그런 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언급 자체를 꺼리는 건 여전하셨다.

"나 또한 그들에게 감화되어 진정한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단다. 북부 지역의 악명이 워낙 자자해서 그곳에 근무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명예도 얻을 수 있었지."

"··· ···"

"제국도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월급은 물론, 위험수당과 장례금도 충분히 지급했단다. 너도 그렇지 않았느냐?"

"어······"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데록데록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받았던 월급 아니, 연봉이 얼마였더라. 적금을 전부 떼면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이 10만원도 안 됐던 걸로 아는데.

봉급도 봉급이지만 명예라는 것부터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군필자들 사이에서 썰로만 남을 뿐이지.

아버지도 내 반응을 보고 무언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왜 그런 반응인게냐? 설마 징병제라는 이유로 나라에서 돈을 안 줬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뇨. 돈은 줬긴 줬는데······ 좀 많이 적었어요."

"얼마?"

1골드에 10만원 정도 값을 하니까······

"대충 4골드 정도? 전역할 때는 6골드 정도를 받았던······"

"··· ···"

"걸로······ 아는데······"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아버지는 물론, 곁에 서 있던 아델리아마저 뭘 잘못 들었나? 라는 얼굴이었다.

뒤이어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드시더니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로 질문을 날리셨다.

"4골드라고? 40골드가 아니라······?"

"병사에서 기사가 된 사람도 한 달에 30골드는 받는데······ 몬스터 토벌만 해도 보상금으로 몇 십 골드를 보상으로 수령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없었는데?"

내가 근무했을 때는 저 정도 되는 봉급을 받았다. 최전방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뭐, 가끔 특수 근무 수당 같은 게 있긴 하다만 그것도 20만원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른 징병제 국가도 그 정도 받는다니 뭐니 하지만 그곳은 대부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우가 좋다.

핀란드 같은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으니 말 다했지. 심지어 상근처럼 출퇴근이다.

그나마 비슷한 곳은 북한과 러시아 정도? 북한은 말할 필요도 없고 러시아는 최근에 민낯이 까발려진 상황이다.

"목숨 걸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데 봉급을 그 정도밖에 안 준다고? 최전방에 있어도?"

"네."

"큰 돈이 필요없을 정도로 복지가 좋다는 얘기니?"

"아뇨."

"역시 그렇겠······ 뭐?"

아버지는 내 대답에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중간에 덜컥- 멈추셨다.

휘둥그레진 눈을 보아하니 상당히 놀라신 것 같은데, 나는 그 표정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한민국 군인의 복지는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필 혹은 면제라는 속설이 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일단 간략하게 설명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금이야, 옛날보다 좋아졌다지만 복지는 물론이고 대우조차 안 좋아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콕 집기도 어렵네요."

"열심히 복무하다가 순직해도?"

"네. 그래서인지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부를 때는 국가의 아들, 다치면 네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 이런 식으로."

"뭐 그딴 나라가 다 있니? 당장 반란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하겠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아델리아가 황당과 분노가 두루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토로했다.

아버지도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간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셨다. 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머쓱하게 웃었다.

대한민국 군인의 씹창난 인식과 대우는 유서 깊은 전통(?)이다. 역사를 조금만 돌아봐도 왜 이러는지 답은 금방 나온다.

우선 군사정부 자체부터 지독할 정도로 폐쇄돼 있으며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군인의 총부리가 민간인을 향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이 발달되고, 군 내부의 온갖 병폐들이 폭로되면서 점차 나아졌으나 인식은 이미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지 오래.

몇몇 사람들은 이 나라에 전쟁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군인을 향한 인식과 대우는 그대로일 거라고 직설했다.

"아델리아 말이 맞단다. 아무리 징병제라지만······ 조금 아니, 정말 너무하다 싶구나. 너는 아무렇지도 않았니?"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냥 쓰게 웃고 넘어갔어요."

"하아······"

"후우."

참담하디 참담한 대우에 결국 아버지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셨다. 아델리아도 한숨을 내쉬며 눈을 조용히 감았다.

나는 생각에 빠진 듯한 그들의 눈치를 보다가 차를 홀짝 마셨다. 이런 격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미네르바 제국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군인을 향한 인식과 대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거의 미국과 맞먹는 수준이라 보면 된다.

이제는 지긋지긋하겠지만 다름아닌 몬스터의 존재 때문이다. 군인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시민을 지키는 검이자 방패.

군인이라 해서 꼭 사람과 싸우지 않고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 더 많다. 모험가와 용병이 있다지만 이들은 한계가 명백하다.

따라서 군인, 그러니까 기사를 향한 명망이 높은 건 당연하고 대우마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사가 되겠다는 건 '보호 받는 사람'에서 '보호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라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준다.

여기서 만약 누군가 '기사나부랭이'라고 욕한다? 응. 너 바로 징집. 그 전에 존나 쳐맞고 입대하자. 딱 이거다.

마티우스 후작의 딸, 아이라도 이런 식으로 끌려갔다. 심지어 걔는 귀족이라 5년간 의무적으로 복부해야 된다.

'이러니 참담할 수밖에 없겠지.'

나야, 익숙해서 괜찮다지만 이들에게는 재앙보다 더한 상황일 것이다. 명예도, 복지도, 대우, 인식도 시궁창인 지옥 자체.

아델리아 말마따나 당장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누군가 구심점이 되어 선동만 해도 총부리가 또다시 시민을 향하겠지.

당연히 군인을 향한 인식은 바닥을 길 테고. 무한의 굴레에 빠진 악순환이다.

나에게는 말 그대로 딴 나라 아니, 딴 차원 이야기지만. 그곳에 전쟁이 나든 말든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는 딴 세상 이야기고, 제가 그런 대우를 받았다 해서 저도 그런 대우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책에서도 명예롭지만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집단으로 묘사할 거예요."

"그게 아니라······ 아이작."

"네?"

내가 오해 아닌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아버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셨다.

이에 아버지를 바라보니 온갖 감정들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게 아닌가.

측은함, 동정, 연민, 한탄, 슬픔 등등. 죄다 '슬픔'에 쏠린 감정들이 한데 섞여있다.

원래 아버지는 억세고 강한 인상이 특징인데 그것들이 죄다 흐물흐물 풀려있었다.

'또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시는 거지?'

전생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런 상황이 꼭 나온다. 게다가 오해를 풀면 풀수록 실타래가 더 엉키듯이 꼬였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나는 다음에 이어질 아버지의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혹시······ 그 나라는 국가가 직접 세뇌를 한다거나······"

"······예?"

"아니면 나라를 이끌어야 할 청춘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게냐?"

"··· ···"

그거 우리 윗동네가 그래요. 차이점이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세뇌를 시킨다는 것과 국가 자체가 개막장이라는 점.

같은 징병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윗동네의 의무 복무는 10년이 넘는 걸로 안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나는 안타까워 하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해명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이것도 이유가 있어요. 조금 설명하려면 긴데······"

"이유가 있어도 군인에게 그런 대우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그것도 한창 꽃피울 나이에 희생하는 거잖니."

"남작님 말에 동의해. 군인을 욕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 군인들에게 보호 받고 있잖아. 나중에 나라에 큰 위협이 닥치면 당장 군인부터 찾을 걸?"

"··· ···"

조목조족 죄다 맞는 말이라 나조차도 혼란스러워진다. 반박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일이 설명하자니 6·25 전쟁부터 시작해서 5·18 운동까지 설명해야 되고, 해명을 하자니 죄다 맞는 말이라 입이 열리지 않고.

그런 상태로 가만히 있기를 몇 분. 아버지는 측은한 얼굴로 담백하게 말을 여셨다.

"많이 혼란스럽겠지. 가장 아름다운 20대를 그런 식으로 희생했으니. 하지만 그건 분명 잘못된 관념이란다."

아니. 나를 무슨 세뇌당한 사람으로 보시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건 윗동네에서 하는 거라고요.

"남작님 말씀이 맞아. 누구는 하하호호하면서 노는데 기사들은 무기를 들고 치열하게 싸우잖아. 군인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거든."

아델리아도 혹여 세뇌(?)가 덜 풀렸을까봐 조곤조곤한 음성으로 나에게 설명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어린아이를 교육하는 느낌이다.

나는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가 해탈한 듯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냥 우리나라가 이상한 걸로 할게."

"이상한 걸로 하자는 게 아니라 이상한 거 맞아."

"이상한 걸 넘어 기형적이지.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 ···"

당분간 전생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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